“원래 나는 대본 시작 전 이름, 나이, 간단한 성격, 성장 배경, 관계 정도만 만들어져 있고 첫 씬을 어떻게 하나 결정도 못 본 채 컴퓨터 작업 화면 열어 그냥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수십년동안 이름을 떨친 대작가의 일 시작 방법론 치고는 소박하고 대책없어 보인다. 김수현 작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소위 말하는 전문가들로부터 잘못된 방법이라고 비난했을 법하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시작이 어땠든 그녀는 누구나 함부로 비난하기는 어려운 결과물들을 만들어낸다.
예전에 공지영 작가의 인터뷰집을 읽은 적이 있는데 자신의 집필 스타일을 묻는 질문에 공 작가는 ‘첫 문장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장면까지가 머릿속에 완전히 그려지지 않으면 컴퓨터 앞에 앉지도 못하다가 그게 정리가 되면 단번에 써내려가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일의 시작에 대한 수많은 방법론들이 있지만, 결국 시작이라는 건 어떻게 하든 말 그대로 첫 발을 뗀 것일 뿐 결과물의 퀄리티를 결정할 만한 요소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에게 맞는 방법, 그리고 그 방법이 중간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일을 완수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뭐든 상관 없는 게 아닐까.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너무 맹신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시작에만 큰 의미를 두고 일을 완결맺는 것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반’이라는 건 말 그대로 50점일 뿐이고, 50에서 시작해서 100에 좀 더 가깝게 만들어가는 과정이 더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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