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4
똥을 싸고 똥구멍을 닦는 동물은 인간 뿐이다. 아니 모든 생물 비생물을 통틀어 인간만이 이런 짓을 저지른다. 언어도 도구의 활용도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뇌 크기도 아닌 바로 이 똥 닦기만이 인간과 비인간을 가로지른다. 물론 물로 씻기도 한다. 비대.
비데인가. 아무튼 물로 찍찍거리는 그거 말이다. 그 도구가 뭐든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자신의 몸에서 나온 배설물 보다 관념적으로 말하자면 자신이 그런 배설물을 토해내는 하나의 관에 불과하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않는 거부하는 거다.
그렇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 식물 그리고 세균의 정체는 복제까지 갈 것도 없이 하나의 기관이다. 입력을 하고 무언가 처리를 하고 출력을 해내는 기관. 컴퓨터가 이를 정확히 따라한 우리 손으로 만든 우리의 새끼다. 다만 이 일을 우리와는 다른 연료 다른 속도 다른 간결성에 의해 해낸다는 게 좀 다르다. 어쨌든 기본은 같다. 먹고 뺐고 뱉는다. 연료를 어디론가 집어넣고 그로부터 일부를 기관 자체에 저장하고 나머지는 싹 다 뱉어버린다. 인간 역시 다르지 않다. 먹이를 윗 구멍으로 집어넣고 그로부터 일부를 양분이란 이름으로 기관의 각종 소기관에 끌어다 놓고 나머지는 싹 모아 뱉어버린다.
똥구멍이란 아래의 입으로 말이다. 인간이란 수직으로 서서 돌아다니는 하나의 거대한 관이다. 이 또한 인간과 비인간을 가로지르는 기준으로 쓰여도 무방하다. 수직. 그렇다. 인간을 뺀 대부분의 동물은 지면과 수평 혹은 아무리 수직으로 보여도 결국은 비스듬한 기울기를 유지하며 생활한다. 오직 인간만이 지면에 완벽한 수직으로 다르게 말하자면 중력을 철저히 거스르는 동시에 이용하는 방식으로 몸을 유지한다.
이는 동물보다는 식물의 방식과 유사하다. 식물이야말로 수직의 기본이다. 성장 그건 절대적으로 수직의 상승에 달려 있다. 그리고 바로 이 경쟁에서 일찌감치 포기한 일부 개체들이 옆으로 퍼지는 쪽으로 흘러내리는 나머지 빛을 위해 진화한다. 정확히 말하면 이렇게라도 하지 않은 게으른 개체들은 모조리 죽어 없어졌다. 나머지가 진화다.
어쨌든 인간 역시 성장의 기본은 수직이다. 제아무리 몸이 크다고 떠들어대는 인간도 수평으로 넓기만 하고 수직으로 그야말로 꼴같잖은 높이에 불과하다면 어느 한 인간도 그걸 부러워하거나 그 인간의 그런 신체적 능력을 매력으로 간주해 유전자를 뒤섞기를 간청하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사실 인간은 위로 높든 옆으로 넓든 아무런 상관이 없는 동물이다. 햇빛을 받으면 좋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으로 의존하진 않는다.
이런 마당에 어째서 수직으로의 상승이 수평으로의 상승을 압도하게 된 것일까. 이유는 뻔하다. 이것이 바로 인간성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비인간을 가르는 이 기준을 인간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굳이 그걸 의식적으로 들먹거리지 않아도 인간만이 다른 동물의 수평 혹은 기운 축에 반해 수직 축을 억지로라도 유지하며 살아 가고 있다는 사실을 뻐기고 있는 거다. 그렇게 척추를 곤두세우고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우리는 산다. 살아간다. 싸돌아다닌다. 그러다 어디엔가 퍼질러 앉아 똥을 휘갈긴다.
처음 똥을 싸는 인간의 꼴을 본 것은 아홉 살 때였다.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당시 친하게 지냈던 한 친구를 포함한 둘이 동시에 저지르는 그 짓거리를 구경할 기회 바로 그런 천운이 내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지 새끼 혹은 남이 지 새끼를 기르는 꼴을 보기 전까지 인간은 자기를 뺀 나머지 인간이 똥을 싸는 장면을 그야말로 객관적으로 볼 일이 거의 없다. 나 역시 그랬고 그래서 항상 궁금했다. 어떻게 보일까. 아니 어떨까.
그렇다. 사실 어느 시기 이후부터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몸짓이 되어서 별다른 인식이 없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다. 그러니 어떻게 보일까까지 갈 것도 없이 어떤지 그게 뭔지 똥을 싼다는 게 대체 무슨 짓거린지 아예 알지를 못했다. 그러다 그야말로 느닷없이 맞닥뜨린 거다. 갈색 마요네즈 두 줄기를. 그렇다. 똥은 덩어리가 아니었다. 내가 싼 똥은 제아무리 길어봐야 결국은 덩어리였다. 허나 남이 싼 똥 정확하게는 남이 싸고 있는 중인 현재진행형의 똥은 분명 줄이었고 선이었고 정확하게는 하나의 과정과 연결이었다. 땅과 인간을 연결하는 하나의 끈. 갈색 끈. 그게 바로 똥이었다.
물론 이런 정의 내지는 정리는 아주 나중의 일이다. 당시엔 그저 휴지를 구해서 전하는 일에 열중했고 그러다 문득 마요네즈라는 하나의 단어만 머리 속에 떠올려봤을 뿐이다. 아무튼 이런 목격을 한 뒤 내게 똥은 나만의 일이 아니었다. 이젠 누구를 봐도 누구와 첫 대면을 해도 제아무리 예쁘고 잘나고 권위 있다는 표정을 지어대는 인간을 만나도 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인간도 이러다가 얼마 뒤엔 어디론가 가서 바지를 까내리고 마요네즈를 짜내겠지. 물론 갈색으로. 그리고 마구 그 흔적을 닦고 또 닦고 닦다 못해 손에 묻히고 열이 받아 비누로 닦고 또 닦고 닦은 뒤에야 다시 밖으로 나와 예쁜 척을 하고 잘난 척을 하고 위엄 있는 얼굴로 지 똥을 감추겠지 싶었다.
그래선지도 모른다. 난 개와 함께 살던 동안에 개가 똥을 싸는 꼬라지를 상당히 관심을 갖고 지켜봤는데 그때마다 꽤 부럽기도 하고 나 자신이 한심하기도 했다. 보통
개 혹은 고양이 혹은 토끼 같은 것과 함께 지내본 인간은 알겠지만 그들은 똥을 싸고도 게다가 그 똥구멍 주변에 털이 수북하게 덮여 있더라도 똥이 별로 안 묻는다. 묻어도 좀 지나면 말라버린다. 그럴 수 있게끔 언제나 엉덩이가 통풍이 잘 되게 드러나 있다.
바로 여기에 다음 인간의 기준이 있다. 인간과 비인간을 가르는 핵심 그 세 번째 요인은 바로 좌식이다. 앉는 짓. 인간만큼 앉기를 좋아하는 동물도 없다. 세상 어디에도 이만큼 생의 대부분을 앉아서 흘려보내는 동물이 없다. 식물도 마찬가지다. 식물의 꼴 그걸 짧게 보면 분명 움직이지 않는다. 허나 그걸 매우 긴 시간 동안 관찰하면 분명히 움직인다. 굳이 우리처럼 귀찬게시리 두 발을 이리 저리 휘적거리지 않을 뿐이지 팔에 해당하는 부분 즉 줄기는 그야말로 미친놈처럼 이리 뻗고 저리 뻗고 움켜쥐고 비틀며 한 시도 쉬지 않는다. 움직임 이동 동작의 기준은 철저히 인간적이라 무시할 뿐이다.
어쨌든 인간은 앉는 동물이다. 직립보행은 어쩌면 이것을 위한 어쩌면 이것에 의한 진화였는지도 모를 정도로 우리는 서서 걷는 시간과 누워 자는 시간 그리고 서로 마주보며 서로의 성기를 접합시키는 시간을 뺀 나머지는 모조리 앉아서 지낸다.
바로 여기에 똥을 닦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앉는다는 말은 엉덩이와 바닥의 접촉을 의미한다. 문화에 따라 바닥이 의자의 면으로 대체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이젠 이게 거의 대부분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인간은 의자의존적인 동물이 되었다. 제아무리 좋은 침대를 쓰고 꿀잠을 자대는 인간이라도 몸에 맞지 않고 삐걱거리고 균형이 꺾인 의자에서 온종일을 보내면 반드시 언젠가 어딘가는 문제가 생기고 말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바닥 혹은 의자라는 면에 의해 엉덩이를 가린다. 정확하게는 똥구멍을 말이다.
이런 이유로 혹여 똥을 싸고 나서 닦지 않고 나와 바로 일을 시작하는 인간이 있다면 그야말로 지탄의 대상이 되고 말 것이다. 제아무리 깔끔한 마요네즈 신공을 발휘했다 해도 털끝만큼은 그 털끝에 묻었을 테고 그런 찌꺼기가 반드시 의자 혹은 바닥에 묻어 악취를 풍길 게 뻔하니 말이다. 이것은 일종의 연쇄반응이기도 하다.
앉는 생활을 하다보니 똥구멍이 면과 닿아 닳는 것을 막기 위해 그 깊이가 점점 안으로 향했고 그럴수록 똥을 쌀 때면 필요한 정도로 다시 꺼내는 일이 힘들어졌고 또 그만큼 대충 안쪽에서 바깥으로 쏴버리고 마니까 그 주변까지 찌꺼기가 묻는 상황이 초래되고 그러면 그럴수록 똥을 닦아야만 하고 똥을 닦았으니 다시 앉을 수 있다.
이런 이야기에 괜한 열을 내는 이유는 사실 지금 내가 똥이 마렵기 때문이다. 직접 가서 싸고 닦고 하며 나름의 확인을 하고 돌아오겠다. 사실 나는 매일 아침 똥을 그것도 이런 문자적 똥을 싸는 중간 마다 한 번씩 휘갈기고 돌아오곤 한다. 몰랐지?
별로 확인한 건 없다. 그저 손을 잘 닦자 싶었을 뿐. 그렇다. 내가 제일 더럽게 생각하는 인간 중 하나는 똥을 싸고 손을 안 씻는 인간 물로만 씻는 인간 심지어 그런 손으로 뭔가를 곧장 집어먹거나 남의 얼굴을 쳐만지거나 악수를 권하는 인간들이다.
이미 널리 퍼진 정설처럼 인간의 손은 다른 어떤 개체들의 기관보다 더럽다. 즉 보다 많고 다양하고 끈질긴 세균들이 들러붙어 산다. 어쩌면 그들에겐 인간의 손이라는 곳이 만국박람회 비스무리한 모임의 장소가 아닐까 싶을 만큼 세균의 집합소가 손이다.
이런 인간이 이다지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이런저런 짓거리를 저지르며 백 년에 가까운 시간을 버티는 건 그야말로 기적인지도 모른다. 물론 여기에 공헌한 것 역시 손 손의 힘 손이라는 신의 전능이 맞다. 손이 없었다면 인간은 똥을 닦지도 글을 쓰지도 또 그런 글을 활용해 후대로 의학이란 기술을 착오 없이 전하기도 힘들었을 거다. 손이다.
인간과 비인간을 가르는 기준. 헌데 이건 좀 예외가 많은 기준이다. 굳이 손이란 특징을 고수하지 않는다면 앞발을 활용하는 동물은 그리고 식물은 심지어는 세균들도 널리고 널렸기 때문이다. 그들도 나름의 상황과 조건에 맞는 보조운동기관을 달고서 이런저런 일에 잘 쓰고 잘 먹고 잘 산다. 새라면 날개고 나무라면 줄기고 세균이라면 숙주의 표면에 들러붙을 때 쓰는 접합부가 그것이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손이 있다는 사실 자체보다는 그 손으로 뭘 하는지가 인간이 비인간과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정점에 혹은 중심에 다름 아닌 똥 닦기가 있다. 사실 똥은 대충 땅에 비벼도 닦이긴 한다. 다만 그러려면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바로 바닥 여기저기 박혀 있을지 모를 날카로운 무언가에 의한 똥구멍 손상과 세균으로부터의 감염을. 물론 물을 이용하면 해결될 문제다. 허나 이런 방식의 똥닦기를 하는 육지동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인간 역시 그렇다. 이유는 하나. 지금 여기 우리의 상황보다 자연에서는 물이 흔해 빠진 자원이 아니라서다. 굳이 사막까지 갈 것도 없다. 지금 당장 돈 한 푼 없이 길을 떠나보라 그리고 가능한 식수대고 간이화장실이고 없는 동네만 돌아다녀라. 그러면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알게 될 거다. 먹을 만한 혹은 손을 댈 만한 아니 심지어 똥을 닦을 만한 물이라도 찾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말이다. 물은 정말 귀한 운이다.
그러니 적게는 하루 한 번 많게는 하루에도 열댓 번 휘갈겨야 하는 똥을 위해 수통을 차고 다니지 않는 한 이 방식은 지극히 비효율적이고 비현실적이다. 그런만큼 손 그리고 그런 손으로 주변의 안전한 풀떼기를 집어 나름 맨들맨들하고 부들부들하게 만들어 내 귀한 똥구멍을 살살 닦아내는 짓의 가치는 절대적이 된다. 손은 귀하다.
똥을 닦을 수 있어서 귀하다. 글을 써서도 불후의 명작을 그려서도 누구든 듣는 순간 눈물 콧물 아랫물을 철철 흘리게 만들 명곡을 지어서도 아니다. 그딴 건 사실 있든 없든 하나 중요할 것도 없다. 지금 당장 하루 하루 먹고 살고 싸느라 바쁜 우리에게 손 이것의 최대이자 최적이자 최소의 역할은 똥을 닦는 일이다. 손아 고맙다. 말해주자.
물론 컴퓨터와 같은 손 혹은 컴퓨터가 닮은 손은 똥 닦기만으로 그 숱한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는다. 똥이야 마려울 때 빼고는 급할 게 없는 문제니 상시직으로 삼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시적으로 할 일 즉 먹이 구하기에 손은 투입되기 시작했다.
사실 대부분의 과거에 대한 사실이 그렇듯 순서는 모른다. 무엇이 있거나 없던 지도 정확히 모르는 마당에 그것의 순서와 인과를 어떻게 알랴. 예를 들자. 지금 당장 내 눈알이 뒤집어까지고 혀가 아래로 축 쳐지고 귓구멍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와 죽고 누군가 몇 시간 뒤 그런 나를 발견했다고 말이다. 이때 순서가 어떻게 되는가. 인과는 또 어떻고. 모른다. 알 수 없다. 적어도 이 세 가지 증상 혹은 과거의 사실 사이에 어떤 고리가 없는 한 순서는 결코 밝혀낼 수 없다. 설령 그런 고리가 있다 해도 그걸 파악할 인간의 지성 혹은 직관이 그만하지 않다면 엄한 데를 짚고 들어갈 확률도 없지 않다.
음 아무튼 손이 똥을 닦는 게 먼저였는지 먹이를 구하는 일에 쓰인 게 먼저인지 모른다는 거다. 그래도 감정이입 혹은 행동이입을 해보자면 나라면 먹이가 먼저였을 것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먹어야 싸니까? 근데 또 모른다. 먹이야 손이 없어도 주둥이만 잘 갖다대면 쉽게 뜯어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똥을 닦는 게 더 급했고 그렇게 닦다 보니 손이 점점 괜찮은 도구구나 싶어졌고 그 결과 먹이를 먹다가 자꾸 이리저리 움직이는 꼴이 하도 열이 받아 붙들고 먹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이렇게도 쥐어보고 또 저렇게도 뜯어보고 하니까 꽤 재미도 있고 먹기도 좋다는 생각에 점점 더 쓰고 말이다.
다 미친 소리지만 어쨌든 과거에 대한 일은 대부분 이렇지 않나. 제아무리 과학 혹은 고증이라는 이름을 들먹거리는 짓거리라도 최소한의 추측은 피할 수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