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30

물론 과거의 쥐새끼가 지금의 우리가 아니듯 지금의 바퀴 혹은 모기의 꼬라지가 나중의 그들을 대변하진 못 한다. 아예 하나도 안 닮았을 확률이 크다. 보다 정확하게는 지금 우리가 매우 유용하게 쓰는 도구를 모조리 치워버리고 자기 나름의 도구를 달고 다닐 게 뻔하다. 공룡에겐 뇌도 앞발이 중요치 않았고 턱과 송곳니가 그 역할을 했듯.

허무하자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그저 물어보자는 거다. 멸종이라는 우리로서 상상 가능한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고 치자. 그래서 뭐. 심지어 그 일에 어느 한 인간의 괜한 목숨을 먼저 끊는 일도 필요치 않다. 그저 앞으로의 번식만 안 하는 노력이다.

그리고 그런 뒤에는 바퀴벌레든 모기 새끼든 알아서 빈 곳을 찾아들어가 먹이를 찾아 삘삘거리고 돌아다닐 것이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했던 누군가의 말은 끝까지 지 말이 맞다고 우긴 헛소리가 아니다. 사실이다. 인간이 죄다 죽어 썩어 문드러져도 지구는 돈다. 졸라 열받게도 지구는 돈다. 그러니 괜히 열받지 않는 게 차라리 낫다.

물론 이런 일을 반길 인간은 별로 없을 거다. 지금 충분히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마당에 무엇하러 그런 나쁜 생각을 굳이 찾아 자꾸 해대겠나. 그렇다고 손과 넉을 놓고 마냥 먹고 자고 놀고 싸고 자빠질 일만은 또 아니다. 분명 이런 선택을 하는 개체들은 소수지만 지금 여기 있고 하나 둘 늘어날지도 모르고 그러다 보면 임계점을 넘을 수도 역시 있다. 그러면 끝장이다. 물론 이런 선택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말이다.

주류와 비주류의 차이는 무조건 쪽수다. 그리고 이런 쪽수 게임에서 의외로 수 자체의 절대 크기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무슨 소리냐면 바로 추세라는 거다. 꼴같지 않은 망상 따위가 어느 날 문득 신앙으로 격상되는 이유는 느닷없는 유행을 타서다.

한때의 한 인간의 몽상이 몇 인간의 지지 혹은 추앙을 받고 그런 인간들이 하나 둘 늘어나다보면 어느 순간 덩어리가 된다. 눈덩이가 그렇듯 그런 덩어리는 어느 순간 알아서 굴러다니며 세를 불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붙는 속도가 는다.

이걸 막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흐름의 시작을 초장에 잘라버리기 위해 이름 모를 반대자들은 꽤 많은 노력을 한다. 물론 남의 돈으로 말이다. 물론 합법적인 돈이다. 세금이다. 일정 공간에 모여 사는 인간들의 생존과 번식에 대한 보장을 하는 게 바로 국가다. 다른 건 다 내팽겨치고 개판이라도 먹고는 살게 하고 새끼는 낳게 한다.

대부분의 착각과 달리 이건 국민이라 불리는 세금의 원천을 위한 일이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무조건 국민이란 이름의 인간을 죄다 삥뜯기 위해서 이런 거창안 일을 벌이는 것도 아니다. 진실은 그 중간에 있다. 마냥 이타적이지도 또 마냥 이기적이지도 않은 좀 어중간한 어쩌면 좀 공유적인 그 이유로 국가는 유지된다. 세금은 꽤나 괜찮은 방향으로 흘러들어간다. 다름 아닌 기본적인 생명 유지와 자손 형성에 대한 보장으로.

이걸 복지라 부르든 다른 어떤 낭비라 부르든 그 본질은 같다. 지금 여기의 법칙 양성생식을 통한 새 인간의 창출과 그런 인간이 다른 인간을 낳을 수 있는 정도로 자랄 때까지 필요한 성숙과 그렇게 자란 인간이 그런 선택을 선뜻 내릴 수 있게끔 하는 독려 이 세 가지다. 낳고 기르고 낳게 만든다. 지극히 생물적인 이유로 복지는 필요하다.

이 중 하나라도 삐걱거리면 인간은 큰 위기에 놓일 수 있다. 지금이야 이런 일에 별다른 의문을 가하지 않는 문화라는 이름의 금기들이 있지만 언제 어떻게 흘러내릴지 모르는 게 또 금기 아닌가. 무조건 낳는 게 무조건 추종되지 않는 순간 국가라는 이름의 세금징수원은 손과 발과 그리고 입이 바빠질 거다. 아니야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낳아 낳아 낳는 게 남는 거야. 물론 그래 봐야 별 소용은 없다. 낳아 봐야 그다지 좋을 게 없다는 걸 이미 알아버린 인간들에게 백날 과거의 영광을 부추겨봐야 소음이 될 뿐이다. 핵심은 설득에 있지 않다. 숫자에 있다. 낳으면 얼마 줄게. 마치 이 년 혹은 삼 년 약정의 인터넷이란 핑계의 삥을 주기적으로 뜯기겠다는 계약서에 서명을 하면 지금 당장 눈 앞에서 현찰 몇십을 뜯겨주겠다는 알량한 상술과 같은 숫자 말이다.

분명히 알아야 한다. 세금을 징수하는 인간도 세금을 내야하는 인간도 낳기를 거부하는 문화 혹은 유행이 바람을 타는 순간 끝이다. 그 세대가 끝나면 세금을 누가 내겠나. 새끼 하나 없는 인간들이 죽기 직전까지 세금을 내는 것을 과연 받아들일까. 그렇다. 새끼를 지닌 인간에게 세금이란 국가라는 계에 붓는 곗돈이나 다름 없다.

혹 돈이 넘치는 인간이라면 따로 그것을 떼어 직접 물려주겠지만 그럴 여력이 없는 인간에겐 세금이란 이름의 국가라는 이름의 망하지 않을 것이 적어도 자기 하나 보다는 낫다고 생각되는 계가 유일한 보험이다. 물론 보험도 든다. 말하자면 이 모든 미래를 위한 지금의 유기가 다 새끼를 위한 일이다. 자기를 위해서도 있지만 그건 극히 일부다. 새끼라는 기본적인 가정이 흐트러지는 순간 그 모든 미래 기반 사업은 망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사업의 중심에 국가가 있다. 그래서 자꾸 국가 국가 세금 세금 거리는 거다. 그래서 이런 저런 앞서 전진하고 있다는 몇몇 나라에서 미친 듯이 복지란 이름의 통에 온갖 자원을 때려박는 거다. 그들이 특별히 인간을 더 사랑해서가 아니다. 그것 말고는 점점 더 머리가 쪼글쪼글해질 인간들을 납득시킬 방법이 없어서다.

더 이상은 마냥 낳고 마냥 기르고 그런 모든 일에 필요한 돈을 니들이 알아서 다 벌고 심지어 그 중 일부를 갖다바치라고 요구할 수 없다. 이런 일종의 협박을 당할수록 정상적 자극 회피 반응이 가능한 인간이 누를 스위치는 도망 뿐이다. 안 낳고 만다.

그리고 이 스위치는 꽤 길게 뻗은 전선들로 연결이 된다. 안 낳으면 안 만난다. 안 만나면 안 쓴다. 안 쓰면 안 번다. 말하자면 생활의 총파업이 된다. 삼포 세대니 칠포 세대니 하는 소리를 하면 할수록 정작 그런 선택을 내린 인간들은 뭔 소리야 싶을 거다.

그들은 포기한 게 아니다. 무슨 목표라도 되나 포기를 하게. 그냥 안 하는 거다.

이는 교육 기관에서 주구장창 주장되어온 논리이자 주장이자 전술이기도 하다. 너 이거 안 하는 거 아니야 못 하는 거야. 대표적으로 공부란 이름의 암기가 있다. 너무 당연한 자연의 원칙에 따라 암기력이란 이름의 능력은 정규분포를 따른다. 보통이라는 이름의 평균적 수준이 있고 그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 앞과 뒤에 그보다 적은 수의 인간들이 낮은 언덕을 이루며 자리한다. 그리고 양 끝에 꼬리가 붙는다. 달달 외우는 게 숨 쉬는 것만큼 쉬운 인간과 아무리 읽고 또 읽고 매달려도 하나도 못 외우는 인간이다.

이런 능력을 기반으로 설계된 교육에 종사하는 인간들이 허구헌날 하는 소리는 노력이다. 너 왜 노력을 안 하니. 그러면서 또 한다는 소리는 공부를 못 한다 이다. 대체 뭔가. 안 한다는 건가 못 한다는 건가. 사실 자기들도 모른다. 대체 얘가 안 해서 이러는 건지 아예 못 하도록 타고 나서 지도 어쩔 수 없는 건지. 그러니까 말이 서로 부딪힌다.

물론 이는 부모들의 가장 큰 착각이기도 하다. 우리 애가 안 해서 그렇지 하면 해요. 둘 중 적어도 하나는 맞다. 안 해서 그런 거. 그렇다. 안 하는 거다. 그런 안 하는 선택의 원인이 유전이든 양육이든 둘의 복합이든 어쨌든 안 하는 거다. 그래서 그 결과 그렇게 된 거다. 여기까지만 맞다. 하면 해요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해도 안 되는 애는 수두룩하다. 정규분포의 왼쪽 절반이 그런 애들이다. 우리 애만 아니길 바라는 거다.

못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의 차이. 못 외우는 것과 안 외우는 것의 차이. 못 낳는 것과 안 낳는 것의 차이. 는 굳이 따지지 않아도 좋다. 결과는 하나 달라질 게 없으니까. 못 외우면 빵점이고 못 낳으면 이 한 생을 보낸 유전적 결과값이 0인 거다. 그 뿐이다.

포기든 전에 없던 선택이든 결과는 같다. 새끼의 수는 줄어들고 줄어들 것이다. 여기에 바로 던질 수 있는 반격이 있다. 그럼 다른 애들이 더 많이 낳으면 되잖아. 맞다. 그럼 된다. 극단적으로 가정해서 한 쌍만 남았다 치고 최상으로 가정해 둘이 평생토록 짝짓기에 힘과 자원을 총동원해 새끼를 잔뜩 퍼뜨렸다고 치자. 그게 지금의 우리다.

알다시피 우리는 한 뿌리 한 쌍의 암수 하나의 정보에서 뻗어 나온 가지 끝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모든 개체들이 번식에 실패하거나 번식을 포기하거나 어쨌든 안 한다는 결과값이 나오더라도 단 한 쌍만 정신줄을 붙들고 열심히 낳아제낀다면 희망은 있다. 해충 박멸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기도 하다. 전멸 아니면 결국 다시 불이 붙는다.

그렇게 우리 다음의 후손은 우리 중 운이 극도로 좋거나 극도로 나쁜 두 마리의 암수 그들의 손자 손녀들의 집합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누군가는 썬 좋은 땅에 자리를 잡고 또 누군가는 숨조차 쉬기 힘든 고지대나 언제라도 바닷물이 들이닥쳐 잠 한 번 편히 못잘 그야말로 극한의 오지에서 살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다시 시작이다.

그 어떤 공평무사한 집안이라도 모든 자손들이 똑같은 양의 먹이를 똑같이 먹고 다들 똑같은 정도로 나온 배를 거들먹거리며 돌아다니진 않는다. 자손의 수가 많을수록 이런 차이의 빈도와 정도는 심해진다. 즉 세대를 거듭할수록 썩 괜찮은 땅과 시기와 운 그걸 가진 쪽과 그렇지 못한 반대편의 인간들의 차이는 벌어진다. 배가 계속 나오는 쪽 인간은 나중엔 돌아다니지도 못할 정도가 되고 일부러 굶으며 곳곳을 뛰어다니기 바쁜 인간은 어느새 근육맨이 되어 자기 자식들에게도 그런 건강한 생활을 강요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들 사이에 자원을 두고 본격적인 쟁탈전이 벌어지게 될 것은 굳이 예측이 필요 없는 일이다. 부모는 죽을 거고 그 부모가 지니고 있던 공간을 포함한 모든 자원은 쪼개지고 갈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런 파이 나누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손가락만 빨고 있을 새끼는 드물다. 제아무리 평화주의적인 새끼라도 누가 자기 몫을 코 앞에서 채가는 일은 참기 힘들다. 그렇게 최초의 부모가 보유하고 있던 자원과 보유가능했을 자원을 이후의 새끼와 그 새끼의 새끼들은 쪼개고 쪼개 나누어 가진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게 지금의 우리고 우리가 만든 사회다. 이미 있고 떠도는 자원에 대한 쪼개기다. 쪼개기인 동시에 끝임없는 주고받음이다. 이런 그들의 자식들인 우리를 만약 그게 있고 가능한 일이라면 하늘 어딘가에서 우리의 최초 조상인 인간이 내려보고 있다고 치자. 음 쟤가 저만큼 더 가졌네 잘된 일이야 그래 쟤가 낫지 아무렴.

할 리는 물론 없다. 심지어 그들은 우리를 알아보지도 못할 가능성이 크다. 설령 알아본다 해도 우리가 하는 말과 쏟아내는 글의 극소수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미 그러기엔 그들과 우리 사이에 놓인 고리가 너무 길게 늘어서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들 입장에선 우리 중 누군가에게 애착을 더 주거나 덜 줄 이유가 하나 없다는 거다.

너무 빙빙 돌렸지만 결론은 간단하다. 기껏 낳아도 다를 게 없다. 인류의 멸종을 막겠다며 온갖 피똥을 싸며 새끼를 마구 낳은 뒤 장렬히 전사해도 정작 그 인간에겐 별 효과가 없다. 알량한 사명감 혹은 공명심 심지어는 자기에 대한 연민 따위를 채우는 데 쓰일 뿐이다. 정작 자기가 낳은 그 새끼들은 서로 치고 박고 물고 뜯고 이리 저리 서로 부려먹고 부림을 당하느라 정신이 없어 제사 한 번 제대로 차려주지 않을 거고 나중엔 그런 같은 뿌리에서 자신들이 나왔다는 사실마저 까맣게 있고 서로를 종자가 다르다며 삿대질을 하고 공격을 개시할 것이다. 설마 이런 꼴을 보자고 그 고생을 한 것이겠나.

물론 아니다. 아니지만 그 결과에 대해 어떤 통제도 가할 수 없는 건 변함 없는 사실이다. 살아있는 동안에 끝없이 부딪히는 새끼 하나도 제 맘대로 움직이게 못 하는 마당에 죽은 뒤에 남은 인간들에게 대체 무슨 강요를 할 수 있겠나. 결국 그 두 인간은 지금 여기의 최후의 인간이자 나중 거기의 최초의 인간일 바로 그 두 인간은 후회 말고 할 게 없을 것이다. 씨발 씨발 씨발. 이럴 바엔 사과나 실컷 따먹고 지나가는 뱀 머리나 후려갈기면서 낄낄대다가 죽을 걸. 뭐한다고 그 재밌는 짓거리를 참고 낳기 바빴지.

물론 사후세계란 지금 여기의 망상이 그야말로 망상일 뿐이라면 그런 후회조차 가능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이처럼 소수의 인간만이 남아 자손번식에 집중하면 할수록 그들이 기대할 수 있는 결과는 그런 자기 새끼들 사이의 싸움 뿐이다. 그야말로 가학적 취향을 지닌 부모라 그런 새끼들끼리 벌이는 싸움을 보며 흥분 따위를 느끼면 모를까 보통은 자식들이 싸우는 꼴을 못 참으니 이는 별로 환영할만한 일이 아니기도 하다.

정말 냉정하게 말하자면 낳는 게 지는 거다. 점점 더 낳는 게 지는 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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