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worm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안경을 썼다. 처음 안경점에서 안경을 맞췄을 때가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안경을 쓰자마자 나의 반응은 한동안 친척들 사이에서 회자되곤 했다.
“엄마, 세상이 밝아 보여요!”
안경의 존재조차 인지하고 있지 못했던 나는 원래 세상은 조금 부옇게 보이는 줄 알았었나보다. 그 때의 시력이 0.1. 어린 나이에 급격하게 나빠진 원인으로 엎드려 책 읽는 자세가 지적됐다.
어릴 땐 책벌레였다. 엎드려 읽던 기억이 없으니 내가 기억하기도 전부터 책을 끼고 살았던 것 같다. 어릴 때는 이야기라면 닥치는 대로 읽었고, 어린이용 정보만화나 모험 이야기를 특히 좋아했다. 유일하게 읽지 않았던 건 위인전이었던 것 같다. 어릴 때의 독서 취향은 지금도 비슷해서 여전히 자서전류는 잘 읽지 않지 않는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도서실도 자주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학생이 읽으면 안될 것 같은 책들도 있었는데, 그때는 그런 책을 발견하면 조용히 입 다물고 열심히 빌려다 읽었다. 그 당시엔 청소년 타겟의 책이 많지 않았던 까닭에 나의 책세계는 어린이계에서 성인계로 순식간에 전환되었다. 이 시절엔 학원 갔다와서 잘 시간이 되면 잔다고 불을 끄고는 베란다 불에 의지해 엄마 몰래 책을 읽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인 짓이지만 그 열의만큼은 내가 정말 아끼는 나의 일부분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나의 책사랑은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중단되었다. 독서로 습득한 독해 능력은 언어가 바뀌면서 아동 수준으로 떨어졌다. 영어로 마주하는 글은 더 이상 이야기와 정보의 바다가 아니라 해석해야 하는 숙제가 되어버렸다. 책을 사봤자 채 한 장을 넘기기도 전에 흥미를 읽고 덮어버렸다. 필요하지 않으면 읽지 않고 독서는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그렇게 10년쯤 책을 멀리했다. 물론 중간중간에 책을 읽긴 했지만, 전공서적이 아닌 책은 1년에 한 권 읽을까말까 했던 것 같다. SNS나 블로그 등 짧은 호흡의 글이 내가 접하는 세상의 전부였다. 어느 새 독서 말고도 즐길 거리가 너무나 많아졌다.
그러다가 얼마 전, <이동진 독서법>이란 책을 읽게 되었다. 즐겨 듣던 영화 평론가인데 책 관련 팟캐스트를 진행한다는 얘기는 들었었다. 본인의 이름을 붙인 독서법이라니 얼마나 대단한 독서를 하나 싶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그냥 책벌레의 책예찬론이었다. 평생 읽고 싶은 책을 다 못 읽을테니 시간이 아까워서 한 번 읽은 책을 두 번 읽지 않는다는 그 욕심에 혀를 내둘렀다.
책은 짧고 내용은 단순했다. 하지만 이 책은 어린 시절 부모님 몰래 숨어서까지 탐독하던 나의 책사랑을 일깨워주었다. 책장을 넘기는 즐거움, 작가의 세계에 잠시 다녀오는 일탈감, 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 여운에 헤엄치게 되는 후희. 책 속의 내용이 내 세계의 일부가 되는 설레는 경험을 다시금 느끼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도 써본다. 독서의 즐거움, 잊어버렸다면 같이 즐겨보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