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not a love story.
여름이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았다. 크게 웃는 일은 드물었고 행동은 늘 조심스러웠다. 나는 첫 눈에 반해 어느 여름밤에 고백했고, 여름이는 그런 나를 받아주었다. 얼음공주 같던 여름이는 동기들 사이에서도 항상 인기가 많았기에 내 여자친구가 되었다는 사실에 우쭐했었다. 한동안 남자들의 부러움 섞인 시선을 만끽할 수 있었다.
사실은 여자친구는 아닐지도 모른다. 여름이는 한번도 나를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내가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싫어했다. 처음 사랑을 고백했던 날, 여름이는 앞으로는 그런 말 서로 하지 않기로 약속하자고 했다. 여름이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고, 그건 그저 스쳐 지나가는 감정일 뿐이라고 했다.
혼란스러웠다. 나는 놀이 상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연인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데이트를 하고 스킨십을 하고 서로의 앞날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응원해주었다. 우리는 누가봐도 커플이었다. 그렇지 않다고 얘기하던건 여름이뿐이었다.
나는 여름이에게 사랑에 대해 일장연설을 펼치기도 했다. 너무나 당연한 걸 설명해야 한다는 게 이상했지만, 그렇게라도 여름이가 나에 대한 사랑을 깨닫기를 바랐다. 물론 그럴때마다 여름이의 반응은 무표정한 얼굴로 작게 끄덕이는 것이 다였다.
결국 우리 사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겨울이 다 가기도 전에 우리는 헤어졌다. 내가 포기했다. 더 이상 여름이를 설득해가며 우리 관계를 인정받으려는 노력을 계속할 수 없었다. 내가 손을 놓자 여름이는 손쉽게 내 삶에서 사라졌다. 나는 우리사이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나를 처음부터 좋아한 게 아니었던 건지. 여전히 내 머리속에는 나를 보고 미소짓는 여름이, 음식이 맛있으니 맛보라며 내 앞에 덜어주는 여름이, 먼저 다가와 키스하는 여름이만이 떠올랐다.
우리가 만난지 1년 째 되던 날, 나는 아침에 미친듯이 뛰고 돌아와 낮잠을 자고 일어나 술을 잔뜩 마시고 다시 잠들었다. 여름은 여름이를 자꾸 생각나게 했다. 헤어지고 나서 처음으로 SNS에서 여름이를 찾아보았다. 여전히 예뻤다. 한 가지 다른 점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드러내지 않아도 티가 났다.
여름이는 내가 알려주지 않아도 사랑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상대는 내가 아니었다. 그제서야 내 머릿속의 여름이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며칠을 더 뛰고 마시고 잤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잠에서 깨자마자 결심했다. 여름이를 내 안에서 내보내기로.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침운동을 다녀와 샤워를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샤워를 마치고 핸드폰을 확인하자 부재중 전화 1통과 문자 메시지가 와있었다.
“안녕, 잘 지내? 오랜만에 밥이나 한끼 어때?”
고등학교 친구 가을이었다.
영화 <500일의 썸머>를 생각하고 써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