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na Nowhere
12 min readMay 19, 2020

[KOREAN] UNDERNEATH COVID-19 IN SEOUL

인간의 역사는 질병과 싸우는 역사와 일치한다. 인간은 하나의 유기체이고, 한 인간의 몸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박테리아가 존재한다. 한 번 태어난 인간이 병에 걸리지 않고 완전한 상태로 죽어가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인간 집단 내에서 벌어지는 병과의 사투는 인간이 생명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인간은 집단을 이루고 내 집단과 타자를 가리지만, 바이러스는 인간의 성별이나 피부색,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감염병이 돌거나, 집단의 안녕을 위해서 ‘인간 무리’는 자신이 속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을 나누고 배제하며 혐오하는 일들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2020년을 강타한 코로나19(COVID-19)로 인해 일상이 마비되면서, 인터넷에 달린 댓글들을 눈여겨보았다. 우한에서 바이러스가 처음 발병했을 때에는 중국인 혐오댓글이 줄을 이었다. 그 이후에는 신천지와 대구에 대한 글, 정부를 비난하는 글로 도배가 되었다. 사람들은 익명성에 기대어 인터넷에 함부로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뱉어냈다.

이후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면서 양상이 더욱 심각해졌다. 중국인 혐오를 벗어나 동양인에 대한 조롱이 시작되다가 실제 영미와 유럽에 거주하는 동양인들이 조롱을 당하거나 폭력을 당하는 일이 이어졌다. ‘마스크를 쓰는 일’이 테러 이후에 얼굴 가리는 것에 대한 공포로 이어졌는지, 마스크를 쓴 동양인을 습격하는 일도 생겨났다. 1차 세계대전 때 유행하던 스페인 독감 때는 감염을 막기 위해서 마스크를 쓰는 것이 권장되었던 곳이 바로 유럽과 미국이었는데 말이다. 코로나19와 스페인 독감 모두 호흡기로 전염되는 병이다.

앞으로도 인간이 존재하는 한, 다양한 질병이 사라지고 생겨날 것이다. 그때마다 집단을 나누어 감염자를 타자로 지정해 배척하는 것이, 인간이 병과의 싸움에서 고지를 선점하는 일일까? 인간은 내 집단과 타자를 나누지만, 바이러스에게 인간은 모두 똑같은 숙주일 뿐이다. 감염자를 격리하는 과정은 감염의 확산을 막기 위한 것이지, 타자를 골라내고 혐오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인간종이 가진 자아와 타자의 분리, 그리고 타자에 대한 배제. 익명성에 기댄 본심과 악의, 혹은 익명으로만 자신의 의견을 낼 수밖에 없는 사건들.

다양한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떠다녔다.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손을 들어주기 어려웠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그 혼란을 있는 그대로 작업으로 옮겨보기로 했다.

다음은 2019년 11월부터 5월초까지의 나의 기록이다.

//2020년 11월//

상하이에 가기로 결정했다.

2020년 트럼프 정부는 미국비자 발급 시 온라인 소셜 미디어의 계정을 모두 적어야 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공식적인 소셜 미디어 사찰 선언이었다. 목적은 테러를 방지하겠다는 것이었다. 소셜 미디어는 개인의 사적인 공간이자 남에게 공개하는 공간이다. 내가 공개하고 싶은 부분을 공개하는 것이지만, 결론적으로는 내 사생활의 빅데이터가 된다. 이런 정보를 아무렇지 않게 타국에 입국하기 위해서 내주어도 되는 것일까?

거리낄 게 없다면 뭐가 상관이냐는 것이 트럼프 정부의 입장이지만, 내 사생활의 공개여부는 내가 결정해야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나는 이 사안에 대한 미국인들의 의견이 궁금했다.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미국에 방문해서 지나가는 이들의 의견을 물으려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계획했었지만, 예산의 문제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러던 와중에 중국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중국에는 믿을만한 친구들도 있고, 예산이 빠듯하긴 하지만 감당할 수 있을 정도라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먼저 작업을 하고 나중에 돈을 모아서 미국을 가면 되겠다는 심산이었다.

내 눈에 뜨인 기사는 이것이었다. 2019년 중국 일부 도시는 무단횡단자의 얼굴은 감시카메라와 안면 인식기술을 통해 가려내고 무단횡단자의 신원과 얼굴을 전광판에 띄운다는 것. 인터넷에도 공개가 되는 것은 물론이다. 사진을 삭제하기 위해서는 벌금을 내거나 교통경찰을 일정기간 도와야 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전제가 붙지만, 국가가 개인의 얼굴이나 신원을 얼굴인식으로 알아내고 공개하는 기술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뿐만 아니라, 생체인식을 하지 않으면 스마트폰을 사용하기가 어렵게 하는 법안을 발효한다고 한다. 위조지폐 문제로 알리페이가 필수가 된 중국에서 스마트폰이 없다는 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누리는 일상을 영유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중국의 상황을 4차 산업의 혁명이다, 우리도 따라가야 한다고 추켜세우는 기사들을 포털에서 읽기도 했지만, 나는 살짝 겁이 났다. 스마트폰이라는 기계가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삶이라는 건, 역으로 말하면 빅데이터라는 빅브라더(Big Brother)의해 개인의 삶이 언제든 추적당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중국은 이런 빅데이터와 공안을 통해 국민을 통제한다. 유투브나 트위터, 페이스북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유료 VPN을 결제하고 우회해서 접근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으로부터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운동에서 익명성과 얼굴 가리기는 필수 사안이다. 중국 본토에서는 소수민족의 독립 운동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지만 중국 공안은 철저한 언론 통제 하에 이 사실을 숨긴다. 티베트 독립운동이나 신장 자치구의 위구르 독립운동에 대한 내용을 공안은 유투브,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의 소셜 미디어를 꾸준히 검열하면서 외부로 소식이 빠져나가는 것을 통제한다. 이들은 시위를 나갈 때 얼굴을 가리고 암암리에 상황을 외부에 알리지만, 공안에게 잡혀가는 경우가 빈번하다. 정부의 개인 사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에 대한 중국 현지의 생각이 궁금했고, 친구들에게 물으니 정부를 비난하는 내용만 아니라면, 공원 같은 데에서 사진을 찍거나 인터뷰를 하는 것을 중국인들은 무척 좋아하니, 아무 문제없을 거라는 대답을 들었다.

표를 알아보고 호텔을 둘러보면서 여행계획을 세우던 중, 비자 발급이 까다로워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비자 발급 비용도 꽤 올라있었고, 숙박비가 비싸서 갈까 말까 고민하던 중에, 대만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최근에 고향에 가게를 오픈했는데, 놀러오라는 거였다. 하루나 이틀 정도는 재워줄 수 있다고 했다. 비자도 발급받아야 하고 물가가 비싼 상하이와는 달리, 대만은 여행비용도 저렴했고, 때마침 대만의 총통선거가 다가오고 있었다. 홍콩 사태를 지켜보면서 대만의 분위기가 궁금했기에 계획을 다시 변경했다.

올해 대만에 다녀와서 중국을 갔다가 2021년에 미국을 가면 되겠다는 계획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친구에게 연락을 받고 제일 싼 표를 찾아 에바항공 티켓을 결제했다.

타이페이에 사는 다른 대만 친구에게 연락을 취했다. 좌파가 많기로 유명한 타이난 출신의 친구는, 타이페이에서 회사에 다니는데, 총통 선거 때문에 고향에 내려갔다 와야 한다고 했다. 평소 대만의 독립을 적극 지지하던 친구답게, 내 계획을 듣더니 자기 친구를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현재 친구는 일종의 공유하우스에서 살고 있는데, 하우스메이트 중 하나가 정치쪽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인터뷰 계획을 세우고 나니 더더욱 여행이 기대가 되었다.

//2019년 12월//

1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폐렴증세로 사람이 사망했다는 얘기가 트위터 등지를 통해 돌기 시작했다. 신종감염병증후군이라고 했다. 중국에서 유행하는 박쥐탕이 감염의 원인이라는 얘기, 우한 근처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바이러스가 퍼져나왔다는 얘기들이 들려왔다. 걱정이 되어서 라인으로 중국 친구들에게 연락을 취했더니 아직은 자기들도 잘 모른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7일, 중국CCTV가 원인미상의 폐렴을 일으키는 병원체가 나왔다고 밝혔고, 이것은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라고 공식 확인을 했다. 한국의 모든 포털사이트에는 중국인에 대한 비하댓글이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홍콩의 자치와 대만의 독립, 티베트의 독립, 위구르의 독립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중국정부의 행태나 시진핑 정권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인 전체를 싸잡아 비하하는 댓글이 줄을 잇자, 기분이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중국 정부에 대해 비판을 하는 것과, 단지 중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인격이 깎아 내리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다르다.

혼란스러웠다. 홍콩자치독립운동을 지켜보면서, 중국인들에 대한 감정이 확실히 호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밑도 끝도 없는 비난이나 욕설, 중국인에 대한 혐오와 여자 혹은 장애인에 대한 혐오가 섞인 욕설들이 꾸준히 눈에 들어오면서 중국 여행을 취소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런 내가 비겁하게 느껴졌다.

//2020년 1월//

11일, 대만 총통선거 투표가 시작되었다. 대만 독립을 지지하는, 몇몇 친구들은 투표를 위해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고향 특산품을 사올 테니 곧 보자는 말도 잊지 않았다. 대만과 티베트의 독립, 그리고 홍콩의 자치권을 지지하는 나 또한 승리를 응원하며 선거를 잘 치르고 보자고 인사를 건넸다.

20일, 국내에서 코로나바이러스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

21일, 우한 의료진 15명이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을 계기로 코로나 19가 사람 간 감염이 가능하다는 것이 공식 발표되었고, 중국을 거쳐 홍콩, 싱가포르, 대만 그리고 한국에서 감염자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그리고 미국에서 첫 환자가 발생했다.

마드리드에 사는 영국인 친구에게 인스타로 DM이 왔다. 내가 살아있는지 확인 차 연락을 한다고 했다. 한동안 인스타를 업데이트하지 않았는데, 뉴스를 보고는 혹시나 싶었단다. 중국에 오래 머문 경험이 있는 이 친구가 박쥐탕 운운하기에 잔다고 하고선 얼른 대화를 마쳤다.

24일, 프랑스에서 첫 확진자가 발견되었다.

25일, 캐나다에서 우한에 방문했던 남성이 확진자가 되었다.

28일, 독일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29일, 핀란드에서 중국인 여행자가 확진자로 밝혀졌다.

30일, WHO에 의해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가 선포되었다.

내 대만 여행은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2020년 2월//

3일, 친구들에게 아무래도 여행을 못 갈 것 같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한국의 감염자수가 급증한 것을 뉴스로 접한 친구들은 이해한다며, 마스크는 충분하게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다.

와이페이모어 어플에 접속해 에바항공 티켓을 취소했다.

천재지변이 아니기 때문에 취소수수료와 일부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절반 정도 손해를 보고 티켓을 취소했다. 다행히 호텔은 모두 도착 후 결제로 지정해둔 덕분에 손해를 입지 않았다.

손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불안했다. 하기로 했던 일들이 다 연장되거나 취소되었고 감염자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혹시나 내가 무증상감염자가 아닐까 싶어 걱정이 되기도 했다. 고령인 엄마를 생각해 좀 비싸긴 했지만, 인터넷으로 마스크를 넉넉하게 주문했다.

11일, WHO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의 공식명칭을 ‘COVID-19’로 정했다고 발표했다.

12일, 정부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약칭 코로나19)’ 한글 공식 명칭을 지정했다.

18일, 한국 감염자수는 신천지에 의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고, 4월 선거를 막기 위한 음모가 아니냐는 음모이론도 인터넷상에 떠돌았다.

더불어 신천지에 대한 혐오댓글도 인터넷상에 넘쳐났다.

26일, 브라질에서도 환자가 발생했다.

27일, 에콰도르 키토에 사는 친구로부터 메세지가 왔다. 생존 여부를 묻는 메세지였다.

나는 괜찮다고, 대구는 내가 있는 서울과는 거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타지의 친구들에게 서울이나 대구와 같은 지명은 전혀 알 수 없는 지리적 언어기에, 이걸 설명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지만, 거리가 있다는 이야기만으로도 친구는 안심을 했다.

코로나19가 처음 생겨났을 때,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은, 스페인 독감(Spanish Flu)이었다. 1918년, 미국에서 발생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이름이다. 당시 인구의 3–6%가 사망한 호흡기 질환으로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약 5000만 명이 사망하였다고 한다.

스페인 독감이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스페인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은 덕분에 전시검열에 걸리지 않아, 스페인 언론에서 이 독감에 대해 심도있게 다뤄졌기 때문이다. 실제 바이러스의 원인지가 어디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프랑스, 미국, 중국 중 하나로 추정된다. 조류 독감 바이러스가 돼지로 이동해 사람에게 옮겨졌다는 설도 있고, 영국과 프랑스 전선에서 일하던 중국 노동자들 사이에서 발병한 호흡기 질환이 퍼진 것이라는 설도 있다. 당시 기술을 생각해보면 원인을 알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어쨌거나, 그들은 이 병이 호흡기 질환이라는 것을 알았고, 따라서 입과 코를 가리는 게 의료진들의 기본 수칙이었다.

1차 감염이 이루어진 이후, 1918년 8월 2차 유행으로 번지면서, 정확한 사망자수를 알 수는 없지만 적게는 2천만명에서 8천만명 정도가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다. 인도에서만 1천만명이 사망했다. 특이하게도 한국과 일본, 중국의 사망률은 2%미만으로 피해가 가장 적은 지역에 속했다.

당시 사진을 찾아보니, 감염을 막기 위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이들은 전차에 탑승하는 것이 거부하는 사진이 있었다. 당시 의사들은 감염을 막기 위해 눈과 입을 보호하는 마스크와 특이한 가운을 입었는데, 아마존에서 할로윈 복장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흥미가 생겨서 ‘닥터 마스크’라고 불리는 것을 두 군데 회사에서 주문을 했다.

궁금증이 생겨 ‘QUORA’에 들어가 스페인 독감을 검색해봤다. 그 중 한 답변이 재미있었다. 스페인 독감의 종식에 대해서 묻는 질문에,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에게 면역력이 생겼거나 짧은 기간 내에 다수의 사망자가 나오면서 바이러스가 전파를 멈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다는 답변이었다. 문득,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가 생각났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는지, TV에 까뮈의 책을 소개하는 프로가 방영되고, 서점에서 책이 가운데 판매대에 놓였다.

QUORA에서 스페인 독감과 코로나19를 검색하면서, 『페스트』의 재열풍을 지켜보면서, 궁금증이 생겼다. 스페인 독감이 유행할 당시 누구나 써야만 했던 마스크를 미국과 유럽인들은 왜 이제 와서 거부하는가? 그들의 역사에 이미 엄청난 희생을 낸 것이 바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인데.

게다가 동양인에 대한 불편한 시선과 조롱은 더더욱 기이하게 느껴졌다. 인간은 자연의 부산물일 뿐이다.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인간의 신체는 바이러스의 숙주가 된다. 면역세포는 바이러스와 싸울 테고, 이기는 사람은 사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앓거나 죽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바이러스는 인종이나 성별, 국적이나 직업을 따지지 않는다. 동양인이 마스크를 썼다는 것만으로 동양인을 조롱하거나 신체적인 위협을 가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더 절망스러운 것은 그 아래에 있었다. ‘중국놈들 때문에 한국인이 피해본다’는 악성댓글들이었다.

//2020년 3월//

11일, WHO는 전 세계 121개국에서 확진자가 12만4909명, 사망자 4585명이라고 집계했다.

한국 정부는 전세기를 보내 교민들을 한국으로 오게 하고, 2주간 자가격리시설을 만들어 2주 잠복기간 동안 그곳에서 지내도록 했다. 그 과정에서 자가격리시설을 두고 지역이기주의다, 아니다하는 설전이 인터넷상에서 벌어졌다.

15일, 정부는 대구 및 경북 일부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마스크 공급이 어려워 마스크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아올랐다. 미리 사둔 게 넉넉히 남아 있었고, 외출을 자주하는 편이 아니라 안심이 되었다.

22일부터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었다.

감염자가 점점 늘어나는 미국과 유럽의 나라들도 마트와 우체국, 은행을 제외한 시설의 문을 닫고 시민들의 이동을 제한하는 락다운(lockdown)을 선포하기 시작했다.

27일, 스페인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을 취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마드리드에 사는 친구였다. 소셜 미디어도 전혀 하지 않는 친구라, 생사를 알 수가 없었다.

친구는 일하던 극장이 문을 닫아서 집에서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다행히 친구의 동네는 마드리드 근교의 작은 동네여서 사람들이 원래 많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다행’이라는 말을 써도 괜찮은 건지, 친구와 나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죄책감을 느꼈다. 마스크를 좀 보내주고 싶었지만, 가족 관계가 아니면 마스크를 보낼 수 없었다. 친구 말로는 내가 보내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마드리드 우체국에서 마스크를 빼돌릴 테니 의미 없는 짓이라고 했다.

28일 인도에 사는 친구로부터 왓츠앱이 도착.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도에도 퍼졌는데, 병원이 많지 않아 걱정이라고, 너는 살아있느냐는 메시지였다. 몇 가지 서로 불평을 늘어놓고 위로를 하고 나니, 친구가 집에 갇혀있어야 하니, 재미있는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몇 가지를 알려주고 살아서 다시 만나자고 안부를 전했다.

메르스(MERS)나 사스(SARS)의 경우와 코로나19를 비교하는 기사들이 연달아 쏟아졌고, 백신이나 치료제에 대한 기사도 제법 있었지만,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모든 기사들마다 날선 댓글들이 베스트가 되었다.

//2020년 4월//

인스타그램에서 학생극단을 찾아 DM을 보냈다. 작업에 대한 설명을 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물었다. 1월부터 3월까지 코로나19에 대한 기사에 달린 중국인 혐오 댓글을 모은 것을 읽어줄 사람과 영상에 출연할 사람이 필요했다. 녹음료와 시간을 설명했고, 8명의 배우들에게서 답장이 왔다. 영상에 출연할 한 명의 배우도 구할 수 있었다.

11일, 1차적으로 네 명의 배우들과 만나 17개의 악플을 녹음했다. 배우들은 자신들에게 배정받은 악플을 읽고 난색을 표했다. 몇 번의 연습 끝에 녹음을 마쳤다. 배우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대놓고 할 수 있겠느냐를 물으니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답을 들었다. 대부분의 악플들은 논리가 없었고, 중국인 혐오와 지역 혐오, 여성 혐오까지 같이 섞인 내용들도 있었다.

녹음한 것들은 컴퓨터로 옮기는 동안 인터넷을 열었더니 미국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동양인 여성이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다가 집 앞에 웅크리고 있던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염산테러를 당했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절망스러웠다.

18일, 2차 녹음을 시작했다. 네 명의 배우들을 만나 23개의 악플을 녹음했다. 역시 읽다가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이런 내용을 진짜 누군가가 적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소감을 물었다. 이런 악성댓글을 다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기 싫다는 답변을 들었다.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속으로야 오만가지 생각을 하는 게 인간이지만, 로그인이라는 귀찮은 절차를 걸쳐서 까지 악의에 가득한 혐오발언을 굳이 인터넷상으로 써야 할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많지는 않지만 주변에 이런 말을 가끔 내뱉는 이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나 또한 올바른 말만 하고 사는 건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굳이 접속하고 로그인을 하고 글을 쓰는 과정을 거쳐서 그런 말들을 남기는 과정이 이해가 안 되기는 매한가지였다.

29일, 배우를 만나 영상 촬영을 했다. 밝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을 한 달 내내 만나니 기분이 좋았다. 밝고 건강한 20대 배우들을 보면서 새삼스레 희망을 느끼기도 했지만, 내가 수집한 자료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가라앉았다.

30일, 녹음한 카세트테이프 위에 작성자의 아이디를 일부 가린 채 적은 스티커를 붙이고 악성댓글을 OHP 종이 위해 하나씩 적기 시작했다. 적은 종이를 액자 속에 붙이고 그 위에 카세트테이프를 하나씩 붙였다. 이 과정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고작 나 하나 따위가 이런 의문을 가지고 이런 과정을 거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뀔까, 내 질문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 수십 번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6일, 25일, 29일, 서울 시내 밤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거리는 한산했다. 스타벅스는 테이블을 일부 치우고 영업시간을 단축했다. 마스크 수급이 풀렸는지, 노숙자들도 마스크를 쓴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영업을 하지 않고 문을 잠근 일층의 가게들이 종로에 더 많아졌다.

4월 내내 우울한 기사들만 눈에 들어왔다. 뉴욕의 염산 테러 뿐만 아니라, 독일 유학생 부부가 지하철에서 독일남성들에게 ‘해피 코로나’라는 조롱을 듣고 실랑이가 붙어 팔과 손목에 상해를 입었다는 기사, 싱가포르 출신 유학생이 런던 옥스퍼드 거리에서 현지 청년들에게 린치를 당했다는 기사들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더 답답한 것은 그 밑에 달린, ‘착한 짱개는 죽은 짱개’라는 등의 중국인 비하 댓글이 한글로 달려있는 것을 볼 때였다.

녹음을 위해 총 100개의 혐오 댓글을 수집했고, 그 중 40여개를 골라 배우들과 녹음했다. 100개의 혐오댓글을 수집하는 데에는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가상공간에서 펼쳐지는 악성댓글의 향연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중국인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만들었고, 중국인들은 암적인 존재이며, 세상에서 멸종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대부분의 댓글들은 요지가 없고 감정적이었으나, ‘나는 굉장히 옳고, 내 의견은 논리적이다’라는 자부심이 댓글들에 담겨 있었다. 그들은 악성댓글을 달면서 ‘내가 세상에 일침을 가한다’고 믿는 듯 했다.

눈으로 글을 읽는 것과, 이것을 소리내어 읽는 것, 그리고 손으로 스는 것은 전혀 다른 프로세스를 거친다. 입력과 출력, 그리고 재입력.

나는 외국어가 번역 될 때 느낌이 달라진다는 야나부 아키라의 카세트 효과(cassette effect)를 떠올렸다. 언어가 발화되는 몇 가지의 프로세스를 인지하고, 생각이 언어가 되고, 언어가 그리는 것이 현실세계라는 것을 우리가 인지하고 있다면 이런 댓글들이 범람할 수 있을까. 배우들에게 연기로 읽어달라고 부탁하면서 그 소리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2020년 5월//

2일. 뉴욕 지하철에서 두 구의 시신이 다음 날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냉동 창고에는 시신들이 쌓여 있다고 했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첩경인 미국답게, 희생자들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흑인과 백인의 사망률이 차이가 난다는 기사를 읽고 나니 씁쓸해지기만 했다. 바이러스는 인종을 가리지 않지만, 병원과 돈은 인종에 따라 수급 차이가 난다.

4월부터 미국에서 락다운 반대 시위가 열렸다. 연금이나 월급을 정부에서 보조하는 프랑스나 영국과는 달리, 미국의 서비스종사자들은 주급을 받지 못하면 길거리에 나앉아야 한다. 치과를 가지 못해서 치아 절반이 없던, 친구 클린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은퇴는 했지만, 연금보험을 넉넉하게 들어놓지 않아서 뉴욕 근교에 하숙집에서 살고 있었다. 메일을 보내봤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기사를 계속 넘기다가 탄식을 하고 말았다. 일리노이주의 락다운 반대 시위에서, 한 백인이 ‘ARBEIT MACHT FREI’라는 팻말을 들고 나온 사진이 인디펜던트지에 실렸다. 뭐라고 말을 뱉기가 어려웠다. 저 문구는, 홀로코스트의 표어였다. 홀로코스트는 인종과 종교와 정치와 경제가 미묘하게 결합된 유대인 혐오가 낳은 비극이었다. 홀로코스트를 통해 독일이 얻은 것 중에는 값싼 노동력을 통한 경제적 이득이 있었다.

아마존에서는 ‘RELAX, I’m NOT CHINESE’라고 쓰인 티셔츠가 판매됐다. 온라인상에서 사람들은 그걸 밈(meme)으로 소비하면서 낄낄댔지만, 웃을 수가 없었다. ‘나는 중국인이 아니니 안심하라’는 말은, ‘중국인에게는 화를 내도 괜찮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나는 한국인, 나는 대만인, 나는 홍콩인’ 등의 아류 티셔츠도 등장했다.

더 절망적인 것은, 홍콩 사람들이 그 밈에 편승해서 중국인들을 조롱하는 것이었다. 홍콩인들이 중국정부를 비난하는 것은 당연하고, 자치운동을 펼치는 것에 동조하는 편이지만, 온라인상에서 익명의 다수가 인종차별을 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같은 동양인으로서 괴로운 일이었다.

방역에 성공한 대만, 홍콩은 중국과 대만, 홍콩은 다른 나라라고 선을 그으며 조소를 날렸지만, 이것은 또 다른 혐오조장이자 차별이었다. 미국이나 유럽에 이민해서 살아가는 동양인들을 생각한다면, 이런 조소는 결코 내보이지 못한다. 중국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정부의 뜻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대부분은 유치원 때부터 받아온 세뇌교육에 갇혀 시야가 좁은 편이지만, 정부에 대항하는 이들의 말로를 중국인들은 천안문 사태부터 꾸준히 보아왔다. 중국정부를 비판하고 소수민족의 독립을 지지하는 것과 ‘중국인’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국적은 선택해서 태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방역에 성공하면서 홍콩은 다시 자치를 위한 투쟁에 뛰어들었다. 2019년 3월 31일 시민 인권 전위(CHRF)가 시작한 범죄자 본토 송환 반대 투쟁은 11월 미국에서 홍콩 인권법이 통과되었지만, 홍콩시민들은 더 많은 자치를 요구하고 있다. 위구르나 티베트의 독립운동이 중국 본토에 인터넷 통제에 의해 검열되는 반면, 홍콩은 비교적 자유롭게 소셜 미디어 사용이 가능해 독립운동 상황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공안은 시위자들의 신원을 밝히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꺼내들었다. 그 중 하나가 과거 MB와 박근혜 정부 때 사용되었던 ‘얼굴체증’이었다. 카메라의 얼굴인식 가능이 발달하면서 더 정확하게 신원파악이 가능해졌다. 시위자들은 고글이나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렸고, 3D영상을 얼굴에 쏘아 안면인식기능을 방해하는 방법도 등장했다.

익명성의 순기능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이야기가 꾸준히 나오지만, 그 방안에는 나 또한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익명성의 긍정적인 면이 아닐까 싶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동시에, 익명에 기대어 지금까지 수집한 악성댓글들에 담긴 악의를 다시금 느끼며 혼란에 빠졌다.

10일, 황금연휴가 끝났다. 연휴가 끝나면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던 학교 수업도 정상화되어 대면수업이 가능할 거라고 모두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의 기대와는 달리, 코로나19의 확진자 수가 늘어나고 말았다.

이태원과 신촌의 클럽에 방문한 감염자가 대다수와 접촉을 한 것이 원인이었다. 감염자가 방문했던 장소가 게이클럽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온라인상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비난의견이 줄을 이었다. ‘아웃팅 당하기 싫으면 그런 곳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 다수의 비난 논조였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COVID-19가 창궐하면서 도서관과 학교, 미술관 등은 다수의 감염을 막기 위해 모두 문을 닫았다. 그런데 어째서 클럽이나 유흥주점은 영업의 유무가 ‘선택사항’이었을까? 어째서 비난은 성소수자에게로 향하는 걸까?

처음에는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중국인을 비난했고, 바이러스가 서구 세계로 넘어가면서 서양인들은 동양인에게 혐오의 시선을 보냈다. 한국에서는 중국인을 혐오하다가 종교인을 혐오하다가 이제는 성소수자를 혐오한다.

이제 누구를 혐오하게 될지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따라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