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

«오월의 종»이라는 유명한 빵집이 아닌, 그렇다고 파리바게뜨나 뚜레주르 같은 체인형 빵집이 아닌 동네에 있는 자그마한 빵집에서 나는, 빵을 고르고 주인에게 가져가 계산을 했다. 주인이 빵을 집고 있을 때, 갑자기 빵에서 목소리 비슷한 소리가 들려왔다. 빵은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주인님. 주인님은 물리학자가 될 운명이에요. 빨리 물리학 박사과정에 들어가세요.”

“뭐라고?”

그게 내가 빵과 말하기 시작한 첫 날이었다.


빵은 내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 줬다. 내가 어떤 세계에서는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다는 것, 어떤 세계에서는 물리학에서 업적을 남기지만, 노벨 물리학상을 받지는 못한다는 것, 그리고 어떤 세계에서는 물리학을 하면서 뛰어난 학생을 키워, 그가 자신이 저술하게 되는 교과서의 서문에 감사의 인사로 내 이름을 가장 먼저 올린다는 것, 기타 등등… 나는 빵이 하는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진 않았다. 우선, 빵이 말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둘째, 빵은 먹힐 때조차 말했는데, 이는 주변의 자극에 반응하는 생물체를 생각해 보았을 때 적절한 반응이 아니다. 셋째, 내가 열심히 공부하다 정신병을 앓는 가능성. 셋 모두 내가 빵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사실이 허구에 가깝고, 따라서 논할 가치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빵의 이야기를 무시하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빵은 이제 체념했다는 듯 강권하는 목소리로 내게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빵을 씹으며 그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이제 아무리 애를 써도 주인님은 물리학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에요. 왜냐면 저를 만난 뒤로, 주인님의 마음 속에도 불꽃 같은 의심이 한 줄기 피어났으니까요. 헛된 저항은 그만하는 게 좋을 거에요.”

“알았어. 물리학 하면 되잖아. 됐지?”

“아니에요. 물리학 박사과정에 들어가셔야 해요. 석사도 아니고 박사과정.”

하지만 나는 이제 겨우 석사 2년차인 철학도다. 내가 물리학을 한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딱히 물리학을 좋아하지 않고, 학부도 물리학을 나오지 않았다. (수학과 철학을 복수전공했다) 그런데 내가 물리학을, 그것도 박사과정을 밟을 리가 없지 않은가. 나는 빵에게 물었다.

“그래, 좋아. 빵 네 말이 맞다고 치고, 그럼 나는 어떻게 물리학 박사과정에 들어가지? 개연성이 있어야 할 거 아냐. 네가 말하는 이야기 속에서도. 그건 꽤 중요하다고.”

빵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개연성은 중요하지 않아요. 어쨌든 주인님은, 물리학을 하게 돼 있으니까요.”

나는 더욱더 알 수 없는 기분에 빠졌다. 빵이라고 남의 삶에 이러쿵저러쿵 막말하는 거 아냐. 고작해야 빵 주제에.


빵을 먹다가 이제 빵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무렵, 나는 논문심사를 무사히 통과하고 지도교수로부터 칭찬을 받으며 석사학위를 받았다. 무더운 여름이었고, 졸업식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학사모를 쓰고 학위수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철학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빵의 말이 맞았던 걸까?

“~군은 이번에 인문대학 철학과 현대철학 전공에서 철학석사를 취득하게 되었으며, ~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학위를 받으며 나는 다시금 생각했다. 왜 나는 갑자기 철학하기 싫다고 생각했던 걸까?


학위를 받고, 학사모를 벗은 뒤에 나는 빵을 사 먹으러 빵집으로 향했다. 빵집에서는 갓 구워 나온 빵 냄새가 문 밖으로 흘러나왔고, 나는 군침이 돌고 있음을, 바로 빵을 집어서 한입 베어물고 싶다고 느끼고 있음을 알았다. 곧장 빵집으로 들어간 나의 눈 앞에, 주인이 서 있었다. 주인은 늙은 노인으로, 백발을 하고 안경을 쓰고 있었지만 나이보다 약간 젊어 보였다. 나는 주인에게 오늘 학위를 받았다고 말해주었다.

“축하해요. 그런데 전공이 뭐라고 했더라?”

“철학입니다.”

“철학… 어려워 보이는데 대단하네요. 머리가 좋은가 봐요.”

“아뇨, 뭐 딱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재밌어서 여기까지 해 온 거죠.”

“그럼 박사도 철학으로?”

“아뇨. 잘 모르겠습니다.”

노인은 나를 지그시 바라본다. 나는 곧장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싶었지만, 노인의 눈이 나를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음을 느끼고, 그냥 뒤로 물러서서 빵을 고르기 위해 집게와 나무쟁반을 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뭔가 떠오르기라도 한 것처럼 그가 말했다.

“철학으로 박사를 따면 나중에 먹고 살기 힘들 텐데…”

“그렇겠죠.”

말하면서 나는 빵을 골랐다. 오늘따라 빵이 잘 구워졌네.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말야, 미국에서 물리학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거든. 그런데 그 사람은 박사를 하고 나서 잘 산다고 하더라고.”

“그런가요.”

“그래서 말인데…”

나는 빵을 집었다. 잘 구워진 소보로빵이었다. 아, 옆에 팥빵도 있구나. 쟤도 같이 먹어야지. 크림빵은 근데 어디에 있더라?

“내가 죽으면 이 빵집을 물려받는 게 어떻겠나?”

“네?”

나는 뒤돌아보며 물었고, 노인은 웃으면서 — 웃을 때 미간의 주름과 팔자주름이 자글해졌다 — 대답했다.

“철학을 하든 뭘 하든, 내가 죽고 나서 이 빵집을 운영해 줬으면 하네. 자네가 이 가게의 가장 오래된 단골이니까. 게다가 가장 젊고.”

“아뇨, 저는 빵을 못 굽는데요.”

“그런 소리 말고. 빵은 배우면 누구라도 구울 수 있어. 정성과 시간과 노력의 문제야.”

“하지만 저는 박사를 하고 싶은데…”

“정 그러면 그 친구 밑에서 물리학이라도 공부해 보는 게 어떤가? 나중에 내가 죽더라도 살 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어?”

“네?”

“철학으론 먹고 살기 어려운 시대니까 말이지.”

노인은 말을 맺었다. 나는 팥이 들어간 팥빵과 소보로빵, 그리고 건포도가 들어간 식빵을 골라서 계산을 부탁했다. 노인은 계산해 주고, 나는 그가 잔돈을 1000원 더 주었음을 알아챘다. 나는 그에게 계산이 잘못됐다며, 천 원을 건네주려고 했다. 그가 말했다.

알아. 이 1000원은 내가 미래의 자네에게 투자하는 거라고. 잘 쓰게나.”

“그럼 빵집이니 물리학이니 하는 말은요?”

“그야 농담이지. 학위를 받았으니 열심히 해 보라고.”

“네. 고맙습니다.”

“그럼 잘 가게.”


노인이 말을 마치고, 다시 손님을 기다린다. 나는 빵집을 나와, 빵과 함께 먹을 음료를 머릿속으로 골라본다. 우유가 나을까, 아니면 오후의 홍차가 나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진하게 커피를 타서 마시는 게 나을까. 고민하며 상점가 가운데 있는 슈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깨에 놓인 짐이 모두 사라진 것처럼 홀가분했다. 아, 카레고로케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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