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이동자

Painting by whanki kim

0.

나는 태어날 때부터 순간이동을 할 수 있었다. 어렸을 때, 나이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아기들이 쓰는 침대 위로 올라갔다가, 떨어질 뻔한 적이 있었다. 떨어질 뻔했다고 적는 이유는 물론, 내가 순간이동을 해서 땅으로 안전하게 착지하는 것으로 모자라, 다시 침대 위로 올라가기도 했기 때문이다. 만약 엄마나 아빠가 순간이동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발견했다면, 그 즉시 나는 병원 아니면 집 근처 대학의 한 연구실로 옮겨졌을 것이다. 7살이 되던 해에는 물 속에서 헤엄을 치다 그만 미끄러운 바닥에 발이 미끄러진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수영장 바닥에 머리를 찧은 게 아니라, 물 밖으로 갑자기 튀어나와 차가운 바닥 위를 부드럽게 굴렀고, 수영을 하던 사람들은 다들 나를 쳐다보며 ‘쟤는 왜 저기서 구르고 있을까’ 하는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11살 때는 놀이터에서 갑자기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고, 한창 사춘기를 보내고 있던 14살 때는, 그만 아파트 옥상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적도 있다. 내 감정과 호르몬을 내가 컨트롤할 수 없었던 탓이다. 아파트의 정글 같은 화단에서 나는 입 속에 솔잎을 문 채로 밖으로 나왔고, 1층 로비 복도를 걷는 동안 기다란 솔잎을 뱉으며 이렇게 생각했다.

“세상은 아무래도 단단히 잘못된 것 같다”고.

그 후로도 나는 순간이동을 몇 번 경험했다. 처음 사귄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다 갑자기 화장실의 맨 구석칸, 사람들이 가장 찾지 않는 — 혹은 LED등의 빛조차 방문하기를 거부하는 — 곳에서 우두커니 변기 위에 앉아 있었던 적도 있고, 아니면 반대로 화장실에 있다가 갑자기 밖으로 나와서 꽤 당황했던 적도 있다. 사람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지금은 추억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당시의 나는 제법 미친 상태로 나의 운명을 원망하고 있었다. 순간이동이란 저주받은 능력이라면서. 나는 가족과 친구를 제외하곤 나의 능력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친구들은 나를 그들의 방식대로 위로해 주었다 — 실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지만. 이성애자가 동성애자를 위로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나중에, 내가 순간이동자를 위한 체계적인 교육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나는 정기적으로 모임에 참석했고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평상시에 순간이동을 조절하는 방법과 기술을 배우게 되고, 그리고 새롭게 순간이동이 가능하게 된 사람들을 찾아서, 그들에게도 순간이동의 자세한 원리와 기법을 가르쳐 주게 되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내가 순간이동자 모임에서 말을 하는 장면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끝이 어디가 될 지는, 솔직히 말해 나도 잘 모른다. 모쪼록 와 주었으니 끝까지 나와 여행에 함께하기를 바란다. 나는 여러분이 내 이야기의 갑작스러운 순간이동을 견딜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니까.

1.

“안녕하세요, 모두들. 반갑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순간이동을 경험하게 된 정세유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열심히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처음에 발표할 때는 박수 소리에 긴장해서 다음 말을 찾지 못해 허둥댔지만, 이제는 박수 소리를 듣고도 여유롭게 나의 경험을 사람들 앞에서 설명할 수 있었다. 앞에서 서술한 얘기들을 적당한 농담과 함께 말한 뒤, 나는 말을 잠시 끊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순간이동자들은 — 저와 여기 계신 분들을 포함해서, — 어릴 적에 한 번 이상의 비자발적인 순간이동을 경험하게 됩니다. 비자발적인 순간이동은 때로는 매우 당황스럽고, 때로는 경이롭고, 때로는 타인에게 보여질 수 있는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저 또한 수영장에서 미끄러질 때 비슷한 기분을 느꼈는데, 물론 수영장 바닥을 구르는 동안 수치심을 느끼기도 했지만 — 몇 명이 웃는다 — , 그것보다는 타인이 내 순간이동을 알면 어떡하지? 혹시나 나를 잡아서 이상한 곳으로 보내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에 휩싸였던 것을 명백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7살의 저는 아직 어렸지만, 저 역시도 순간이동이란 이상한 것이라는 사실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뒤로 저는 순간이동을 최대한 억제하려고 노력했지만, 이 능력은 호르몬의 분비와 함께 발현되는 경향이 짙어서, 호르몬이 몸 안을 타고 흐를 때면 어김없이 순간이동을 한 번 이상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불쾌했냐고요? 물론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었죠. 하지만 제가 백 번 이상의 순간이동을 경험하며 느끼게 된 것은, 이 능력이 때로는, 그러니까 가끔은 좋은 능력으로 쓰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예감은 순간이동자 모임에서 드디어 현실이 되었죠.”

다시 박수소리. 이제는 언제 박수소리가 나올지도 예상할 수 있다. 나는 말을 계속 잇는다.

“처음에 순간이동자 모임은 일본에서 생겨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30년 전, 일본에서는 순간이동자가 대략 1500명 정도 존재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들은 자신 말고도 다른 순간이동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했지요. 하지만 다른 순간이동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게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저와 마찬가지로 여성인데요, 이 분이 순간이동자 모임을 처음 일본에서 발족한 이후, 일본의 순간이동자 모임은 최대 25개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점차 줄어, 지역별 모임이 10개 가량 존재할 뿐입니다. 한국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모임이 생긴 게 대략 10여년 전, 그리고 이제는 지역별로 모임이 5개 정도 존재합니다. 혹시 제주도에서 오신 분도 계신가요?”

두 명 정도 손을 든 사람이 있다. 여긴 서울이지만, 그런 것은 순간이동자들에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말을 계속한다.

“제주도에서 오신 분들은 서울 쪽으로 오시는 게 아무래도 도움이 되겠죠. 여하튼, 순간이동자들의 모임에서 우리가 새롭게 입회한 순간이동자에게 가르치는 것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하나하나 예를 들어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손으로 제스쳐를 만들어 키노트를 화면에 띄운다. 화면에 달린 3차원 센서가 스스로 제스쳐를 인식해, 내 스마트폰에 파일 형태로 저장되어 있는 키노트를 재생하는 것이다. 나는 키노트를 살펴보며 말의 속도를 조금씩 조절한다. 내 말소리가 청중에게 너무 빨리 들리지는 않을까 주의하면서.

“우선 첫 번째, 순간이동에 대한 고정관념의 탈피입니다. 아마도, 대다수는 아니겠지만 어떤 분들은 순간이동에 대해 부정적인 언사나 멸시, 차별 등을 사회 속에서 받아 왔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모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이것입니다. 순간이동은 우리가 타고난 능력이고, 절대음감과 비슷하게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을 우리는 새로 입회한 순간이동자에게 철저히 가르칩니다. 절대음감과 마찬가지로 순간이동도 후천적으로 얻은 능력이 아니라 선천적인 능력이고,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으며, 어떤 식으로든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순간이동이란 축복받은 능력이며, 절대 자신의 능력을 책망하거나 죄책감을 느낄 이유가 없음을,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드러내 보여줄 수 있음을 말하고 가르칩니다. 즉, 우리는 모든 순간이동자들이 자신의 능력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행동하기를 궁극적으로는 바라고 있는 것이죠. 자신의 능력에 익숙해지는 일의 첫 단계는 이렇습니다.”

여기서 잠시 휴식한다. 사람들의 이백 개 가까이 되는 눈이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음을 몸으로 느낀다. 그들은 나를 순간이동의 전문가 쯤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여기에 왔을지도 모른다. 좌표값만 주어진다면, 순간이동자가 갈 수 없는 곳은 지구에서는 없다. 그들은 지구 어디라도 이동할 수 있다. VIP를 위한 비밀 파티에 참석할 수도 있고, 요트 위에서 바람을 즐기며 사람들을 놀래킬 수도 있고, 심지어는 비행기 안에서 바깥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순간이동자의 월경 — 국경을 뛰어넘는 일 — 은 외교적으로도 큰 이슈가 되었는데, 암스테르담 합의 이후 순간이동자들은 허락 없이 국경을 넘어서 사는 일을 허락받게 되었다. 대신 사회보장과 연금은 소속되어 있는 해당 국가에서만 적용된다. 만약 순간이동자가 갑자기 아프거나 다치게 되면 능력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는 다른 순간이동자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런 이유도 있고 해서, 보통 순간이동자들은 국적을 가진 나라에서 거주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은 순간이동자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자유민’이라고 불린다. 자유민들은 그들만의 소통 채널을 통해 대화하고, 아프다거나 하는 비상상황에 대비한다. 누군가가 길에서 쓰러질 경우, 그것이 위협에 의해서든 아니면 자연적인 지병에 의해서든, 채널은 즉시 활성화되고 그 자리로 이동할 수 있는 자유민이 세 명 정도, 많게는 열 명까지 채널이 안내하는 좌표값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아픈 사람을 데리고 병원으로 이동하거나 — 순간이동을 하더라도 놀라지 않을 수 있는 병원 — 외국에서 살고 있는 자유민의 경우, 해당 국적을 소유한 나라의 병원을 찾아간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자유민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알고 있냐고? 그야 물론, 나도 한때 자유민이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은 3년 정도로, 3년 동안 문제가 발생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자유민을 만나볼 기회는 두 번 정도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이해입니다. 모든 순간이동자들이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흔히들 오해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서로의 능력은 조금씩 다릅니다. 어떤 순간이동자는 방 하나를 이동하는 게 고작인 반면, 최고로 능력이 발달한 순간이동자는 서울에서 뉴욕으로, 쿠바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 혹은 런던으로 이동할 수도 있습니다. “순간이동이 가능하다”는 의미에서라면 모두 같은 순간이동자겠지만, 이처럼 능력의 레벨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처음 모임에 참석하는 순간이동자들을 위해서 몇 단계의 테스트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1부터 5단계까지 테스트를 거치는데, 1단계는 앞서 말했듯 방 하나 정도의 이동, 그리고 5단계는 국경을 넘는 초원거리 이동이 됩니다. 이를 위해 IAT 서울지부는 이웃나라인 일본, 중국, 그리고 대만과 제휴를 맺고 테스트를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5단계를 통과하는 순간이동자는 대략 1% 정도로, 전체 순간이동자의 수에 비하면 굉장히 적습니다. 전세계에서 파악된 순간이동자가 약 75000명 정도 되니, 물론 약간 높게 파악한 수치이긴 합니다, 계산하면 750명 정도가 국경을 뛰어넘는 순간이동을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저를 포함해서 음… 한 10명 정도 될까요. 이것도 많은 편이죠. 이 중에 모임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은 없고, 나이대는 중학생부터 노인까지 다양합니다. 노인이 어떻게 서울에서 뉴욕까지 움직일 수 있냐고요? 글쎄요. (웃는다) 이 자리에 있으니 나중에 한번 물어보시면 되겠습니다. 정리하자면, 순간이동자의 능력은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다채롭고, 능력의 측정은 서울지부의 테스트로 이뤄집니다. 각 지부에서도 간이 테스트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만, 정확한 능력의 확인을 위해서는 서울지부의 방문이 필수입니다.”

이곳에 온 순간이동자도 테스트를 받기 위해 서울까지 부러 올라오거나, 아니면 순간이동해 왔을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왜냐면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최대 거리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순간이동을 위해서는 정확한 좌표값이 주어져야 하는데, 일상 생활에서 지정할 수 있는 좌표값은 학교, 사무실, 직장, 은행, 집, 극장, 기타 자주 방문하는 장소로 한정된다. 지구상의 위도경도를 아는 것과 좌표값을 아는 것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난다. 왜냐면 좌표값은 물리적으로 시공간의 4차원 좌표값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즉,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곳에 대해서는 다른 시간값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 지구 밖으로 순간이동하기 어려운 것도 비슷한 이유다. 우주의 시간은 모든 별과 은하에서 같게 흐르지 않는다. 따라서 그런 이유들로 인해 시간이동자들은 좌표값을 지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알기 위해 테스트를 받는다. 오늘은 간단한 테스트만 진행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사실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잠시 여러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현재 시각이 오후 4시 20분 정도인데… 이따 6시에는 저녁을 먹을 예정입니다. 부디 이 자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저녁 식사 자리에까지 참석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인원 수는 저희들을 포함해 120명을 예약했는데, 마침 딱 맞아 보이네요. 그럼 다시 발표 시작하겠습니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뜨거운 시선을 느끼며, 탁자 위에 준비된 물을 한 모금 마신다. 아, 순간이동자들은 — 비록 소수에 한정되지만 — 가까이 있는 물건을 자신의 손으로 가져올 수도 있다. 이러한 일에 대해 순간이동자들은 비슷한 원리로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증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에 확실한 이유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인간이 시공간의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이동하는 것과, 시공간의 한 점이 인간이 서 있는 점으로 오는 건, 서로 닮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 세계란 참 오묘하고도 합리적인 방식으로 짜여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두근거린다.

“세 번째 사실은, 순간이동으로 자신이 사회 속에서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와 발견입니다. 순간이동이라는 고귀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능력이 자신이 하는 일과 별 상관이 없다면 능력은 장을 보러 갈 때나, 아니면 친구들을 만나러 지하철을 타러 갈 때나 활용될 뿐입니다. 물론 그렇게 능력을 사용하는 일도 나름대로 삶에 도움이 되겠지만, 기껏 얻은 능력을 쓰는 방법으로는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희 IAT 서울지부에서는 순간이동으로 할 수 있는 직업들을 몇 가지 제시하고, 아직 어리거나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청년, 제가 이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장내가 높고 낮은 웃음으로 가득해진다 — , 직업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에게 직접 현장에서 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드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회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1시간의 저녁식사 뒤에 제시될 예정이니, 설명은 이쯤으로 하고, 이제부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 대한 간이 테스트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준비가 끝났나요?”

“네. 준비됐습니다.”

나와 5년 정도 같이 일한 준이 답하고, 나는 제스쳐로 화면의 전원을 끈다. 스마트폰을 뽑아서 주머니에 챙겨넣고, 준의 안내를 따라 5개의 준비된 방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따라 나도 대회의장 밖으로 나온다. 문을 닫고, 나에게 배정된 첫 번째 방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이 때만큼은 나 역시도 긴장될 수밖에 없는데, 당연하게도 순간이동이라는 능력을 테스트하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갈 수 있나”, 혹은 “얼마나 피로하지 않고 능력을 사용할 수 있나”는 개인마다 천차만별이고, 그 중에 능력에 미숙해서 정해진 지점까지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면, 센터에 상주하고 있는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여야 한다. 혼자서 순간이동하는 일이야 자신의 몸이니까 별 문제 없지만, 지친 사람을 붙잡고 순간이동하는 일은 꽤나 힘들다.

방에 도착했을 때, 거기에는 직원이 세 명 있었다. 모두 초원거리 순간이동이 가능하지만, 한 명은 움직이지 않고 상황을 살펴본다. 이번에는 준이 그 역할을 맡았다. 향과 솔과 나, 유는 직접 순간이동을 하면서 사람들이 어디까지 움직이는지, 혹은 돌아오지 못하지는 않는지 등을 살펴보게 된다.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직접 옮기고, 쉬게 만드는 역할은 셋 모두가 맡지만, 향은 나보다 먼 거리를 이동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혹시나 초원거리를 이동 가능한 참가자가 있을 경우, 그 때는 솔이나 내가 움직일 수밖에 없다. 같은 초원거리라고 해도 한계거리 — 순간이동자가 이동할 수 있는 4차원 상의 최대 직선거리 — 는 모두 다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참가자는 없을 거라 믿는다. 백 명 정도밖에 안 되는 참가자들 중에, 1%의 확률을 뚫고 초원거리 이동을 하는, 그것도 향과 솔의 재능을 뛰어넘는 사람이 나올 리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마음 편하게 먹자고 나는 향과 솔과 준에게 다짐하듯 말한다. 향은 웃고, 솔은 긴장과 불안과 기대가 섞인 표정을 짓고, 준은 늘 그렇듯 안경 너머로 날카로운 시선을 보낸다. 그러나 준은 이 중에서도 가장 솔직한 사람이다. 나는 준비된 의자에 앉고, 스마트 워치를 찬 왼손목으로 시선을 돌린다.

간이 테스트는 정확히 4시 반부터 시작되었다. 우선 참가자들은 5번째 방부터 들어가고, 여기서 20명 정도 되는 인원이 그대로 남는다. 즉, 그 자리에서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체감하고, 5번째 방에서 4번째 방으로 이동할 필요가 없게 된다. 테스트를 통과한 80명은 그대로 4번째 방으로 이동하고, 그런 식으로 향과 솔과 준과 내가 있는 첫 번째 방까지 오는 인원은, 평소에는 없다. 그래서 우리들은 꽤나 편하게 한 시간 반 정도 되는 시간을, 수다를 떨고 과자를 먹으면서 보낸다. 향은 평소에도 수다쟁이로, 특히 우리 넷이 모일 때면 이야깃거리가 줄어들질 않는다. 항상 뭔가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그래서 솔은 중간중간 향의 말을 가로막으면서 자신도 말하고 싶다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준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종종 틀린 사실을 지적한다. 나? 나는… 듣는 편이긴 하지만, 가끔 이야기를 해 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외국에서 살았던 경험을 얘기할 때도 있다. 이런 얘기를 몇 번이나 해서 솔직히 말하면 지겹기도 하지만, 그래도 듣고 싶어하는 사람도 계속해서 생겨나는 법이니, 나는 귀찮다는 내색을 하지 않고 얘기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 노력하는 편이라고 말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내 이야기는 길어보았자 30분을 넘기지 않는다. 정말로, 나는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면 듣는 걸 좋아한다. 왜냐면 내 경험은 그대로 나의 경험이지만, 다른 이의 경험은 그렇지 않고, 언제나 새롭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떠들다 보니 시간은 잘 갔고, 5시 50분이 되자 이야깃거리가 다 떨어지는 우리는 슬슬 저녁을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언니, 이제 슬슬 우리도 나가 볼까요?”

“그래도 6시까지는 기다려야 하지 않겠니. 아직 두 번째 방에서 연락도 안 왔잖아.”

“그래, 솔아. 아직 10분이나 남았거든.”

“향, 너는 언제나 먼저 저녁 먹으러 달려나가면서 왜 남의 얘기 하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

“내가 언제 그랬다구요. 안 그랬거든요~”

“일단 5분만 더 기다려 보죠. 식사는 바로 밑의 식당에서 하게 될 테니까.”

“그래. 준이 하는 말 들었지?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내가 어째서 언니 역할을 도맡게 되었는지는 지금 생각해 봐도 잘 모르겠다. 나는 언니 체질이 아니었는데, 문득 깨닫고 보니 나는 여기서 가장 나이가 많았고, 나이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언니’라는 호칭을 상대방에게 허락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나도 ‘언니’라는 말이 익숙해져서 이름으로 불리기보다 언니라고 불리는 데 위화감이 없어졌다. 예전 같았으면 “누가 네 언니니?” 하고 상대방이 무안해 할 정도로 날카롭게 지적했을 것 같은데,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우리는 5분만 더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이 갔으면 좋았을 것을.

똑똑.

준이 문을 열었을 때, 그곳에는 두 번째 방의 직원과 함께 여자아이가 한 명 서 있었다. 왜?

“이 아이는 누구죠?”

“저희가 진행한 테스트를 통과한 아이입니다. 두 명 중에 하나입니다.”

“어디까지 갔는데?”

“이렇게 말하면 놀랄지도 모르겠지만… 후쿠오카까지.”

“뭐? 어떻게 거기까지 갈 수 있는 거야?”

“그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여하간 후쿠오카에 있는 규슈지부를 지정해서 좌표를 알려주자, 이 분이 곧바로 무브해버려서 저희도 놀랐습니다. 다행히 상주하고 있던 초원거리 이동 가능한 직원이 데려다 줘서 죽다 살았지만, 안 그랬으면 저희는 빈 손으로 올 뻔했습니다.”

“규슈지부 좌표는 왜 알려준 건데?”

약간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러면 안 된다. 진정해야 한다.

“그게… 더 멀리까지 가 보고 싶다고 이 분이 말해서요.”

더 멀리? 얼마나 멀리?”

“글쎄요… 까지 가 보고 싶다고 말하던데요.”

이라. 그래, 생각해 보면 달까지 갈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달에는 테라포밍에 성공한, 이미 인간이 거주하고 있는 기지가 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달이라니… 이 아이는 대체 뭘 생각했던 걸까. 나는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았다.

“후쿠오카의 좌표는 바로 머릿속에서 구체화된 거야?”

“네. 3초 정도 생각했더니.”

“그럼 이동하기도 어렵지 않았겠네?”

“네. 예전에도 한번…”

“예전에? 어디까지 갔는데?”

“심심해서 평양까지 가 본 적이 있었거든요. 친구하고 어디까지 갈 수 있나 내기를 해서.”

평양이라. 갈수록 가관이다. 물론, 15년 전에 국경을 개방하는 완전통일이 되었기 때문에 평양에 가는 건 큰 무리가 없다. 그런데 평양까지 간 이유가 단지 내기 때문이라니. 나는 아연한 기분이었다.

“그럼, 여기서 테스트를 해 보고 싶다고 말해서 온 거야?”

“네. 아저씨가 한번 받아보라고 말한 것도 있지만요.”

“제가 그런 말을 하긴 했죠.”

“알았어. 책임은 나중에 묻고, 그럼 시간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테스트를 진행해 보도록 할게. 이쪽으로 와 주세요.”

흥분해서 반말이 나왔지만, 참가자에게는 나이와 상관 없이 존대말을 사용해야 한다. 아이를 우리에게 보낸 사람을 다시 내보내고, 준과 향과 솔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의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하는 터라 긴장이 됐지만, 예전의 경험을 떠올리려 애쓰며 몇 가지 좌표를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 어차피 지구 안에서 시간축의 좌표는 같다고 봐도 무방하니까 — 3차원 좌표를 불러주었다. 한번 어디까지 갈 수 있나 시험해 보고 싶었다.

“여기하고 여기, 갈 수 있겠어요?”

“어딘데요?”

“베를린하고 파리. 별로 안 멀어요. 생각보다.”

“한번 해 볼게요.”

그리고 우리는 같이 이동했다. 베를린과 파리의 지부에 가서 잠깐 인사하고, 우리는 다시 돌아왔다. 소녀는 상기된 표정이었고, 나 또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주위에서 보기엔 둘 다 마찬가지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았다. 준은 박수를 쳤고, 솔과 향도 따라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나 참, 이게 뭐라고 그러는지.

“그럼 오늘의 테스트는 여기까지 할게요. 벌써 시간이 6시가 되었으니까.”

“나중에 이곳으로 오면 더 자세한 테스트를 받을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언제든, 원할 때 오세요. 하루 전에 전화로 약속을 하셔도 되고, 아니면 직접 오셔도 환영해요.”

“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

그녀는 웃었고, 나도 웃었고 준과 솔과 향도 웃었다. 그 날은 다들, 대략 120명 정도 되는 인원이 건물 2층에 있는 식당에서 약간 호화로운 식사를 했고, 우리는 남은 적립금을 전부 털어낼 수 있었다. 마지막에는 뒷풀이를 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아무래도 그녀와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남은 사람들끼리 알아서 편을 짜도록 내버려두고, 나는 그녀의 허락을 얻어 가까운 카페에서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뭘로 주문할래요? 커피, 아니면 차, 아니면 스무디?”

“잠시만요…”

신중하게 결정하는 성격이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먼저 병에 담긴 사과주스를 주문하고, 그녀가 메뉴를 고르기를 기다려서 호지 라떼를 주문했다. 여기서는 ‘호지티’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무슨 상관이랴. 푹신한 소파에 앉은 뒤에 우선 내 소개를 했다. 그러는 편이 그녀 삶의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제 소개부터 할게요. 저는 — 아까 설명을 들었다면 잘 알겠지만 — 정세유, 나이는 만으로 32세에요. 한국 나이로는 34살인데, 실은 그게 중요한 건 아니죠. IAT 서울지부에서 일한 지는 대략 9년 정도 됐고, 부지부장을 맡고 있어요. 실무적인 일은 제가 전부 관리하고, 조직의 중요한 의사결정이나, 대표가 필요할 때만 지부장님이 움직이는 식이죠. 조직에 대한 소개는 나중에 할 기회가 있을 것 같아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도 소개를 들을 수 있을까요?”

말을 마치고 나는 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 달달한 사과주스가 내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준다. 손으로 냅킨을 만지면서 대답을 기다리고 있자, 어렵지 않게 그로부터 말이 흘러나왔다. 가라앉지도, 들뜨지도 않은 목소리였다.

“저는 17살, 만으로는 16살이에요. 이름은 이유라라고 하고, 고등학생이에요.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죠. 순간이동을 처음 하게 된 게… 대략 6년 전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6년 전이면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인데, 그 때 저는 처음으로 사춘기를 겪고 있었거든요. 몸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있어서 혼란스러웠는데, 마침 사건이 하나 있었어요.”

“어떤 사건?”

묻고 나서, 나는 다시 얼음이 담긴 플라스틱 컵으로 손을 가져간다. 얼음이 찰랑거리는 소리를 내고, 사람들이 주위에서 떠드는 소리와 함께 카페에서 트는 음량이 큰 노래가 들려온다. 원두를 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스무디를 만들기 위해 과일을 집어넣고 믹서기에 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여러 가지 소리 속에서 그녀는 말하기를 머뭇거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머릿속에 있는 너무나 긴 이야기에 절망하고 이야기를 다시 처음부터 재배열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여럿 되는 고민의 빛들이 그녀의 눈동자 안을 스쳐 지나갔고, 나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며 사과주스를 쭉쭉 빨았다.

“당시에 학교에서는 자유학기란 게 있었는데, 6학년 1학기나 2학기 중에 하나를 골라서 자기가 해 보고 싶은 일을 하는, 그런 게 있었거든요.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체험을 해 보거나 하는, 그런 활동이었는데. 그 때 저는 “자유학기에는 국내를 돌아보고 싶다”고 선생님께 말했거든요. 선생님은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해 보고 싶은 일을 해 보는 건 좋은 일이라고 허락을 해 주시고, 저는 계획서를 써서 제출하고, 사흘 있다가 여행을 시작했거든요.”

“으흠.”

“그래서 여행을 제주도부터 백두산까지, 재밌게 다녔는데, 중간에 이런 일이 있었던 거에요.

백두산에서 비행기를 타고 김포까지 올 예정이었거든요, 김포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끝이니까. 그런데 그날 밤에, 저는 자고 있어서 잘 몰랐는데, 집에서 제 목소리가 들렸다는 거에요. 말이 안 되는 일이라서 저는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하고 물었는데, 엄마가 말하기를 “집에 있는 너 방에서 네 목소리가 들려서 이상하게 생각했다”는 거죠. 저는 그게 무슨 일인가 하고 당시를 되새겨 봤는데, 그런데 침대에 이불이 흐트러져 있어서, 혹시 내가 순간이동을 했던 게 아니었을까 하고 처음으로 의심했어요. 예전에는 딱히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이불이 어질러진 걸 보고 확신하게 된 거에요. 그 뒤로도 몇 번 순간이동을, 의도적으로든 혹은 의도가 아니든간에, 하고 난 뒤에 제가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 거에요. 능력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된 건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였어요. 그 뒤로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기도 했는데, 남들이 제가 순간이동을 한다는 사실을 잘 눈치채진 못하는 것 같더라구요. 일부러 말을 안 해 주면 잘 모르는 것 같아서… 그래서 지금도 친구와 가족 말고는 제가 순간이동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몇 명 안 돼요. 그런 일을 알긴 어렵다고 생각해요.”

“맞아. 약속시간에 제때 오고, 지각하지 않는 성실한 학생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지. 사실 순간이동을 해서 오는 건데도 말이지. 그러면 유라 씨는, 순간이동을 할 때도 그다지 자각 없이 하는 편인가봐요? 내가 순간이동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건 아니고, 그냥 자연스럽게?”

“어… 잘 모르겠어요. 자고 있을 때 순간이동을 하는 경우는 이제 드문 것 같고, 순간이동을 “하겠다”고 생각하면 의식적으로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아니라면 무의식적인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제 능력에 대해 멀리까지 갈 수 있다는 것만 빼고, 제대로 아는 건 없으니까.”

아무래도 이 아이, 이유라는 굉장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말하는 내용이 사실이라면, 그녀는 자신이 순간이동한다는 자각 없이도,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고, 의식적으로 순간이동을 한다면 더 멀리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갔다가 돌아오는 방법을 알기만 한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사실, 지구 안에서의 순간이동은 이미 끝에서 끝까지 가는 사람들이 몇십 명 정도 있긴 하다. 나도 좌표만 확실하다면 그렇게 이동할 수 있긴 하지만, 그 뒤에는 쉽게 피로해지기 때문에 자제하는 편이다. 그녀도 그렇게 할 수 있을 테고, 분명, 그렇다면 반드시 자세한 테스트를 받게 만들어야 한다. 사과주스를 다 마셔서, 얼음컵에 물을 담아 와서 나는 물을 몇 모금 마셨다.

“테스트가 두 종류 있다는 거, 알고 계시죠?”

“네. 아까 강의를 들어서 알고 있어요.”

“그렇다면 설명이 쉬울 것 같은데, 이 테스트는 짧으면 하루, 길면 이틀 정도 걸리거든요. 여러 군데를 이동하면서 진행하는 테스트라, 처음 받으면 많이 피곤할 수도 있어요. 센터에 오기 전에 푹 쉬고, 잘 먹고 오는 게 좋을 거에요. 잘 먹어야 테스트 결과도 좋겠죠? 유라 씨 같은 경우는 크게 걱정하지 않지만요.”

“그렇게 말해주시니 고맙네요. 잘 먹고, 푹 쉬고 올게요.”

“그나저나 집은 혹시 어디에요? 서울까지 오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나요?”

나의 우문에 그녀는 현명하게 말을 골라서 답했다. 그 목소리에는 약간의 유쾌함이 담겨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제주에서 왔어요. 이번에는 비행기를 타고 싶어서, 비행기를 타고 왔네요.”

2.

나는 센터에서 계속 일하면서 그녀가 오기를 기다리고, 창 밖의 앙상한 벚나무가 다시 봄의 색을 되찾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센터에서 할 일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서울지부의 뉴스레터를 작성하고, 행사가 있다면 참석할 사람을 정해서 보낸다. 그 밖에 할 일은 순간이동자를 위한 강연이나 설명회, 테스트 정도인데, 사실 여기서 가장 손이 많이 가는 건 테스트였다. 국경을 넘어 순간이동이 가능한 사람을 테스트하는 데는 지구 전체의 협력이 필요하고, 여기에 주로 동원되는 지부는 사람이 많고, 자원이 많은 곳이다. 이를테면 뉴욕 같은 곳인데, 이런 곳이 10~15군데 정도 모여서 테스트를 준비한다. 그때그때 준비 가능한 곳이 달라지기 때문에, 지부에서는 일정을 공유하면서 어떤 날에 어디서 가능한지 같은 것들을 조율하고, 서로 직접 찾아가기도 하면서 최종적으로 테스트를 진행할 지부를 결정한다. 그녀가 언제 찾아올지 몰랐기 때문에, 나는 수시로 일정을 체크하며 어떤 지부와 협력해야 할지를 체크해 보았다. 그때 연락처를 받아둘걸 하고 생각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나는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벚꽃이 다 지고 해가 뜬 뒤의 오후가 더워질 때 즈음에야, 그녀는 서울에 도착했다.

“중간고사 때문에 정신이 없었거든요. 이제야 마지막 시험이 끝나서 바로 달려왔어요.”

“이번에도 비행기?”

“아뇨. 이번에는 바로 순간이동해서 왔어요. 저번에 주소를 알았으니까.”

“그렇구나. 그럼 시작해 볼까요?”

“네.”

나는 이유라 씨를 저번에 봤던 강당으로 이동시킨다. 강당에는 이미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순간이동자들은 연락을 받으면 바로 달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준비한 절차를 점검하며, 나는 몇 군데의 사람들이 바로 테스트에 협력해 줄지를 가늠해 보았다. 한 6~7군데 정도? 일정이 꽉 채워진 곳을 제외하면, 총 8군데가 남지만 그 중에 두 군데는 아마 다른 일로 바쁠 것이다. 그 정도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면 6군데. 나는 준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말해준 8군데에는 전부 연락해 봤어?”

“네. 우선 4군데에서 된다고 메시지가 왔어요. 나머지 4군데는 아직 답장이 없습니다.”

“그렇구나. 알았어. 지금 시간이 어디보자… 오전 10시 40분이네.”

“오늘은 토요일이라서요.”

“네, 그래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럼 모두들, 여길 봐 주세요. 점심이라도 먹을까요?”

우리는 — 준과 나와 이유라 씨를 포함해서 9명 — 밥을 먹으러 나간다. 주변에는 사람이 거의 없고, 거리는 초여름의 막 달아오를 듯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아스팔트는 뜨끈하게 데워질 채비를 하고 있고, 길가에 세워진 차들은 햇살 아래 느긋한 오전을 만끽하고 있다. 나는 일행을 자주 가던 일본 요리 전문점으로 데리고 간다. 차가운 소바 8개와 따뜻한 소바 하나를 주문하고, 우리는 물을 마시며 오늘 하루 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주인공은 그녀다.

“이번에 처음 테스트를 받아보는 거죠? 긴장되거나 하진 않아요?”

“네? 아, 저번에 움직이는 건 해 봐서 크게 긴장되거나 하진 않아요. 대신 푹 쉬고 오라고 해서, 어제는 10시간 정도 잤어요. 그래서 괜찮아요.”

“10시간씩이나 잘 필요는 없는데.”

“어릴 때는 많이 자야지, 나는 어렸을 때 12시간도 잤는데.”

“그건 너무하다.”

“왜 이래, 나는 14시간도 자 봤다고.”

“잠 많이 잔 게 자랑은 아니잖아.”

“그렇다고 적게 자는 것도 자랑은 아니지.”

“자자, 오늘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진정하시고, 각자 맡은 일이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어떨까요?”

“한두 번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쵸?”

“뭐, 나야 10번 정도는 했으니까. 이제 두 손가락으로 셀 수도 없겠네.”

“아니죠, 두 손가락으로 20까지는 셀 수 있죠. 접었다 폈다 하면 되니까.”

“어떤 부족에서는 손가락 마디를 세면서 12개 더하기 12개 해서 24개까지 센다고 하던데?”

“어떻게요?”

“간단한데, 엄지손가락이 남으니까, 엄지로 다른 손가락의 마디를 세는 거야. 이런 식으로.”

“정신 없죠?”

“네. 조금…”

“원래 이래요. 오랜만에 하는 거라 다들 신이 나서 그런 것 같아요. 여기 모인 사람들은 다들 처음 보는 거죠?”

“네. 저 분만 빼면.”

“준은 나하고 항상 붙어 다니는 동료라. 나머지는 전부 저나 준처럼, 국가간 이동이 가능한 사람들이에요.”

“정말로요?”

“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테스트를 준비하죠. 안 그러면 테스트를 진행하는 일조차 어려울 테니까요.”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나는 대답하고 나서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주위에 떠드는 사람들에게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듯한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의 눈동자는 나를 비추고 있고, 내 옆에 앉아 있는 준도 작게나마 비추고 있는 것 같다. 음식을 기다리는 그녀의 표정은 잔잔한 호수처럼 가라앉아 있어, 나는 그녀에게서 어떤 동요나 긴장도 발견해 낼 수 없다. 준은 혼자서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대화에 몰두해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다만 순간이동이 가능할 뿐…

“소바는 좋아해요?”

“메밀국수 말씀이시죠? 네, 좋아해요.”

“아, 그런데 여기는 그렇게 달달한 메밀국수를 만드는 곳이 아니라, 일본식으로 짜게 만드는 곳이에요. 국물이라고 할까, 츠유도 적게 나와요. 대신 꽤 짠 편이니까, 조금씩 찍어서 드시는 편이 좋을 거에요.”

“네, 그렇게 할게요. 제가 사는 곳에서는 이런 음식을 맛볼 기회가 없거든요. 일본 식당은 잘 없었던 것 같아요.”

“사실 서울에서도 이런 데는 그리 흔한 식당이 아니에요. 마침 저희가 사무실을 얻은 곳 근처에 있었을 뿐, 서울 안에서도 이런 곳은 대략 10군데 정도? 제대로 하는 곳은 그 정도 되겠죠. 나머지는 그냥 메밀국수 비슷한 거죠 뭐.”

“그래도, 어느 가게나 들어가도 맛있을 것 같아요. 아닌가?”

“그렇지는 않겠죠.”

나는 웃는다. 유라 씨도 같이 웃고, 이야기를 들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주변 사람들도 웃고 있다. 손수건으로 손을 닦고,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메일을 확인해 보았다. 아직 어떤 곳에서도 메일이 오지 않았다. 이거 조금 더 기다려야 할 수도 있겠는걸… 생각하고 나는 스마트폰을 다시 가방에 집어넣는다. 아직 시간은 오전 11시, 하루가 끝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 그리고 테스트는 길게는 사흘까지 소요될 수 있다. 서두를 일이 결코 아니다. 소바는 오래 기다리지 않아 나왔고, 우리는 소바를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었다.

가게를 나오며 파리지부에서 메일이 도착했음을 나는 확인했다. 이제 한 군데만 메일이 도착하면 큰 문제는 없다. 그대로 테스트를 진행해도 좋다고 받아들이고, 나는 일행들에게 오늘의 계획을 다시 한번 설명했다. 그래, 이 정도면 큰 문제는 없을 거야. 전혀, 테스트에 문제가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3.

유라 씨는 첫 번째 방에서 나와 준, 그리고 민과 테이라는 남자 둘과 함께 테스트를 기다리고 있다. 바이인 민과 게이인 테이는 서로 사귀는 사이인데, 지금은 그렇게 사이가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한때는 남들에게 둘의 열렬한 사랑을 표현하기도 했다. 아무도 신경쓰는 사람이 없었다는 게 약간의 비극이었지만. 민은 활기찬 성격에 자신을 드러내는 옷 — 엄청나게 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평범하지는 않은 스타일의 — 을 입는 편이고, 테이는 반대로 차분한 복장을 선호하고,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이렇게 보면 둘은 정반대의 성향인 것처럼 보이지만, 민은 언젠가 내게 농담으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마도 그가 솔직한 성격이라 그랬으리라.

“테이는 말이죠, 낮져밤이거든요. 낮에는 조용해 보이지만, 밤에는 완전히 사람이 달라진다니까요.”

“그래?”

당시에는 별 생각 없이 넘어갔었는데, 이제 보니 그건 테이가 가진 성격의 일면을 중요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대화였다는 생각이 든다. 테이는 역시나 오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민은 방금 식사 시간에 테이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지만, 테이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래서 민도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준은 원래 조용한 성격이고, 그래서 답답함을 느끼는 건 오히려 유라 씨 쪽이라 생각한 나는, 뭐라도 기분을 바꿀 만한 말을 던져보려고 했다.

“제주는 뭐가 유명해요? 감귤이나 흑돼지, 돌하르방, 이런 거 말고.”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제주라고 해서 딱히 육지하고 다른 건 없거든요. 문화시설이 거의 없긴 하지만 편의점도 마을마다 다 있고, 공항이나 도시를 왕복하는 버스도 다니고, 그렇거든요. 사람이 적고, 바다를 보기 쉽다는 게… 아, 제주 사람들은 쓰는 말이 서울과는 좀 달라요. 그런 점이 다르겠죠? 유명한진 잘 모르겠지만.”

“하긴, 제가 질문을 이상하게 던졌네요. 제주라고 해서 딱히 다른 건 없을 텐데. 저는 수학여행 때 말고 제주도에 내려가 본 적이 없어서 제주에 대해 잘 몰라요. 그래서 유라 씨가 사는 곳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저는 남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거든요. 아무 거라도 좋으니 얘기해 줄 수 있나요?”

민이 이쪽을 바라본다. 내가 꺼낸 화제에 관심이 생긴 모양이었다. 나는 민을 한번 바라본 뒤에, 다시 고개를 그녀 쪽으로 돌린다. 그녀는 확실히 말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은 아닌 듯했다.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단어 하나하나를 신경쓰면서 말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사는 곳을 이야기할 때라면 그래야 할지도 모른다. 자신이 사는 곳에 대해 쉽게 말해버리면, 상대방은 가 보지도 못한 곳에 대한 편견을 쉽게 품을지도 모르니까. 우리는 유라 씨가 전하는 ‘제주’라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경청했다. 바람과 돌이 많고 바다가 파도치는 곳, 그러나 섬 안에서도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다는 것, 많은 땅이 중국인 투자가들의 손에 넘어가 있고, 그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땅마다 하나둘 있다는 것, 그리고 많은 것들이 변해가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는 것. 사람들이 찾고 보는 제주는 정말로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유라 씨는 우리에게 자신이 사는 곳에 대한 진실된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다. 나중에는 모두가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 있었다. 나는 메일을 확인하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그녀의 이야기에 몰입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정리하며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제주에 오시면 제가 더 많은 이야기를 해 드릴 수 있어요. 부족하니까, 이렇게 말로만 전달한다는 것은.”

나도 거기에 동의한다. 말은 생각의 매개체다. 말이 경험하고 받아들인 모든 것을 전달한다는 생각은 어리석다. 나머지 한 군데에서 아직 메일은 오지 않았지만, 다른 곳에서 정확히 몇 시에 테스트를 시작할 거냐는 질문이 들어왔다. 나는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아마 영국 시간으로 오전 7시를 넘기지는 않을 것 같다”고 답장을 보냈다. 서머타임에 따라 오전 7시면 한국 시간으로는 오후 3시다. 앞으로 3시간만 기다리면 현재 제주에 살고 있는 단 한 명만을 위한 테스트가 — 전세계에서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는 — 시작된다. 메일에 답장을 보내는 버튼을 누른 뒤에야,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가 몸으로 느껴졌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끝에서부터 떨려 오는 듯한 기분… 그래, 내가 처음에 테스트를 받았을 때도 이런 기분이었지. 나는 22살로, 막 대학을 졸업하고 파주의 한 출판사에 편집자로 취직해서 출근 날짜를 손으로 꼽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에는 IAT 한국지부가 막 생겼을 때라서, 테스트를 받으려면 일본으로 가야 했는데, 나는 한국지부에 부탁해서 일본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지 않고, 대신 국가간 순간이동이 가능한 사람이 나를 일본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테스트를 받았는데, 물을 제대로 마시지 않았기 때문일까, 3시간 여에 걸친 테스트가 끝났을 때 나는 이미 기진맥진했다. 친절한 직원에게 부탁해서 편의점에서 당분이 들어간 이로하수를 두 보틀 정도 마시고 난 뒤에, 나는 후쿠오카 지부 — 규슈지부의 당시 이름이다 — 의 사람들과 같이 나베를 먹고, 바로 호텔에 들어가서 한숨 푹 잤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다음 날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는 다시 한번 메일을 확인한 뒤에, 서울지부를 포함해서 여섯 지부가 테스트에 참여한다고 답장했다.

테스트의 절차를 설명해 보라고 한다면, 실로 간단하다. 나는 이를 “가장 성가신 세 단계”라고 표현하는데, 반대로 얘기하자면 이 세 단계에서 주의하기만 한다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좋은 결과를 내는 일에 집중하는 게 우리들이 할 일이었다. 나는 준에게 몇 가지 사실을 물어보았고, 준은 특별히 문제가 되는 부분이 없고, 모든 준비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고 답했다. 그러면, 이제 시작할 때가 된 것이다. 나는 모두를 불러모았다.

“아, 여러분도 잘 아실 거라 생각하지만, 테스트는 준비단계를 포함해서 크게 네 단계로 나뉩니다. 첫째는 우리들이 익숙한 준비단계, 둘째는 가벼운 워밍업 테스트, 셋째는 능력의 한계를 검증하기 위한 메인 테스트,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상력 측정 테스트입니다. 마지막은 아마도 테스트를 받아보신 분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자신의 실제 능력이 아니라 잠재력을 테스트하는 단계입니다. 여기서 기대할 수 있는 결과는 메인 테스트의 결과와는 무관하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니까, 유라 씨가 설령 평범한 순간이동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잠재력에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뛰어날 수도 있다는 얘기죠. 이제 조금 있으면 테스트가 시작할 것 같으니, 몇 가지 주의사항을 여러분께 설명하고자 합니다. 제 옆에 서 있는 준을 잘 보세요.”

언제나 한발 빠른 준은 이미 내 옆에 와 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실수하기 쉬운 몇 가지 행동들을 설명하면서, 절대 순간이동할 때 시공간을 착각하는 일이 없기를 당부한다. 아마 이 점이 일반인과 순간이동자가 확연히 구분되는 점이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바로 순간이동자는 시공간의 겹침 속에서 순간이동할 지점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인은 이런 일이 없다. 쉽게 설명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내가 사람들 사이를 걸어갈 때, 나는 사람들이 어디 있는지 무의식적으로 판단하면서 발걸음을 옮긴다. 여기서 사람들이 내가 예상할 수 없는 지점에 갑자기 나타난다거나, 갑자기 사라지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순간이동할 때는 이와 같은 일이 종종 발생한다. 나는 분명히 이 지점에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해서 순간이동했는데, 갑자기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침범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나는 물리량들이 현실화되기 전에 재빨리 옆으로 옮겨가거나, 아니면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와야만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둘은 서로 병합되어 순간이동 능력을 잃어버린 두 명으로 바뀌거나 — 오묘하게도, 자연은 두 사람의 순간이동을 없애버리는 것으로 물리적인 모순을 해결한다 — , 아니면 서로의 자리에서 튕겨 나가 자신이 알 수 없는 곳으로 순간이동된다. 형체 없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는 그 사람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예 알 수 없는 경우도 존재한다. 즉,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한다는 말이다.

준은 내가 말하는 주의사항을 열심히 몸으로 설명하고 있다. 나는 준비시간이 끝날 때까지 열심히 주의사항을 사람들에게 설명했다. 다들 테스트에 익숙한 사람들이지만, 언제라도 실수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라는 의자에 앉아서 테스트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테스트받는 당사자이기 때문에 실제로 그녀가 순간이동하는 일은 메인 테스트 말고는 거의 없지만, 그래도 나는 주의사항을 잘 들어 두라고 유라에게 말했다.

“왜냐면, 나중에는 유라 씨가 테스트를 돕는 사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말하자면 인수인계?”

“알았어요. 끝까지 듣고 있을게요.”

그리고 의자에 앉아 있는 한 소녀는 스마트폰을 꺼내지도 않고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있다. 사실, 나는 누군가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는데,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은 꼭 나중에 다른 소리를 내뱉기 때문이다. 실수한 뒤에도 그렇고, 잘못 판단내린 경우도 그렇고, 여하간 변명이 필요한 모든 상황에서 그렇다. 그래서 나는 될 수 있으면 경청하는 사람들과 일하려고 한다. 준과 민, 솔과 향 같은 사람들이 그렇다.

“이제 테스트를 시작할 텐데, 그 전에 몇 가지 할 말이 있어요. 그러니까, 음… 한 명이니까 테스트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고, 한 3시간 정도면 끝날 거에요. 워밍업 30분 — 메인 테스트 2시간(사정에 따라 조금 더 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지만) — 그리고 구상력 측정 30분. 워밍업은 어떻게 하는지 모두 잘 알고 있겠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설명할게요. 각 지부들에서 사람들이 한 명씩 오고, 그들과 인사하고 우리도 정확히 같은 수만큼 각 지부들로 이동해요. 그리고 두 사람씩 이동하고, 세 사람씩 이동하고… 최종적으로 다섯 명씩 이동하면서 상태를 체크해요. 여기에는 절차가 있으니 절대 개인적으로 움직이지 마세요. 지금 준이 나눠주는 게 움직여야 할 순서를 적어놓은 체크 리스트에요. 평균적으로 네 번 정도 움직이게 될 텐데, 많이 움직이는 사람은 아홉 번까지 움직일 수도 있죠. 아홉 번 움직이는 분은 움직이면서 자신의 상태를 체크하셔야 해요. 왜냐면, 중간에 갑자기 몸이 찌푸드드하거나 국소적으로 통증이나 미열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죠. 나머지 분들도 알아서 자신의 상태를 체크해 주시고요, 그리고 준과 저, 민과 테이는 움직이면서 사람들과 인사를 합니다. 나머지 분들은 인사를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데, 뭔가를 들고 오거나 음식물을 먹는 일은 가급적이면 삼가주세요. 나중에 귀찮아집니다. 여기까지 질문 있으신 분?”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아까 점심을 먹을 때 열심히 떠들던 사람이다. 이름이 뭐였더라?

“저는 일곱 번 움직이는 걸로 돼 있는데, 남들보다 많이 움직이면 나중에 휴식할 시간은 줍니까?”

“예. 테스트 중간에 10분 정도 쉬는 시간이 있고, 많이 움직인 분들은 30분 정도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다른 질문? 없으면 바로 테스트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사자를 내버려 두고 진행되는 30분 가량의 워밍업은, 멀리서 쳐다보면 무대 위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한 편의 무용극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열심히 몸을 움직이는 무용처럼 극적이지는 않지만, 정적이지 않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벌이는 한 편의 극. 순간이동이란 바로 이런 의미에서 예술적이다. 나는 유라가 워밍업을 바라보면서 순간이동이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싶었다. 삶이 예술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사용하는 능력은 아름답고, 능력이 가진 고유함으로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직접 두 눈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워밍업이 25분만에 끝나고 우리들은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기대했던 대로 유라는 우리가 워밍업하는 모습을 보고 내적으로 큰 감명을 받은 것 같았다. 유라는 몇 마디 말로 자신의 감상을 표현했다.

“와! 정말 대단한데요. 솔직히 말하면 놀랐어요. 저도 순간이동을 할 수 있지만, 여러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은… 놀랍다고밖에요. 멋진 퍼포먼스를 본 느낌이랄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사람들도 의자에 앉아 쉬면서 나와 유라가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워밍업이 신입에게 줄 수 있는 효과는 상상 이상이다. 메인 테스트에서 좋은 무브를 보이고, 구상력 측정 과정에서 좋은 결과를 내는 데 워밍업을 보는 게 도움을 줄 때도 종종 있다. 나는 어땠냐고 하면, 큰 차이는 없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테스트를 받는다는 긴장감으로 제대로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관찰하지도 못했거니와, 당시에는 절차가 지금과 비교하면 꽤나 간략해서, 워밍업하는 시간도 10분 정도로 짧았다. 그러니 제대로 관찰할 시간도 없었다.

유라는 준과 대화하고, 나는 페이스타임으로 전화하면서 서로에게 어느 정도의 여유가 있는지, 어디에서 어디까지 최장거리의 선을 그을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브리즈번 — 뉴욕이 가장 먼 거리로 낙점이 됐는데, 지구 반대편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점을 순간이동자는 좌표값을 머릿속에서 떠올리고, 한 번에 이동해야 한다. 만약 여기서 실패하면, 다음 거리를 테스트해 보고, 실패하면 다음 거리를 테스트하고… 하는 식으로 대강의 감을 잡는다. 만약 A에서 B점까지 이동하는 데 별 문제가 없다면 그의 한계능력은 A — B의 직선거리가 된다. 이는 우주 안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기 때문에, 나중에 순간이동자가 우주 탐사선 임무 등에 참가할 경우 참고자료로서 활용될 것이다. 우선 나는 유라의 잠재력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간단한 테스트는 건너뛰고 브리즈번-뉴욕부터 테스트해 보기로 결정했다. 결정을 다른 지부에게 알리고, 테스트를 도와주는 사람들에게도 사실을 전달하고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3시였다. 딱 좋은 시간이다. 나는 오후 3시를 병적으로 좋아한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유라 씨, 이쪽으로 와 주세요.”

내가 유라 옆에 서고 — 당연히, 테스트를 주관하는 게 나이기 때문에 — 준이 바로 옆에 선다. 이번에는 솔이 유라의 손을 잡았다. 솔은 먼 거리를 한 번에 이동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능력도 탁월하다. 그녀가 아니라면 누구도 유라의 손을 잡을 수 없었다.

“솔. 준비됐지?”

“네. 지금 바로 시작해도 아무 문제 없을 것 같아요.”

“유라 씨는?”

“저도 괜찮아요. 좌표값은 어디에 있죠?”

“좌표값은 준이 줄 거야. 자, 솔과 유라 씨가 움직이는 동안 여러분은 가만히 놀고 있느냐? 아닙니다. 종이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여러분은 각 지점에서 바톤을 들고 달리는 이어달리기 선수처럼 유라 씨의 손을 잡고 서울로 돌아와야 해요. 우선 간략히 경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울 — 브리즈번 — 뉴욕 — 리우 데 자네이루 — 파리 — 베이징 그리고 서울입니다. 베이징은 나중에 참가한다고 연락이 왔는데, 바로 스킵할 수 있다면 스킵하셔도 좋습니다. 스킵할 때는 먼저 제게 말하는 거 잊지 마시고요. 이번에는 일본을 경유하지 않고 바로 브리즈번으로 갑니다. 아시겠죠?”

“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서로의 위치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머릿속에 저장해 두고 있는 겁니다. 그래야 돌발상황이 생겼을 때 구조하러 갈 수 있겠죠? 이 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준과 저는 서울에서 여러분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관찰합니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면 저희가 움직이겠지만, 될 수 있으면 그럴 일이 없기를 바랄게요.”

“네.”

“그럼 시작합니다.”

준이 유라에게 4차원 좌표값을 불러주고, 솔과 함께 유라는 이동한다. 나머지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맡은 지부에서 서로에게 줄 바톤을 건네받기 위해 사라진다. 유라는 오늘 집으로 갈 수 있을까? 당연히, 나머지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달린 문제다. 나는 모니터를 바라보는 준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넸다.

“이번에도 쉽게 끝날 것 같은데? 크게 문제될 건 없지?”

“네. 그런 것 같네요.”

“빨리 끝내고 나가서 저녁이나 먹자. 뭐 먹을까?”

“점심을 일식으로 먹었으니까… 저녁은 중식으로 할까요?”

“그럴까? 어디로 가지? 열빈으로 갈까?”

“그럼 제가 열빈에 예약을 해 둘게요.”

테스트 와중에 벌어지는 저녁에 대한 대화는, 우리 둘 사이의 관계를 나타냄과 동시에 테스트 자체가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최장거리에서 무브가 안정적이라면, 나머지 거리는 그냥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과 다름 없으니까. 징검다리를 건널 때는 발이 어디에 있는지만 확인하면 된다. “징검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라”는 오랜 속담이 있기는 하지만, 알다시피 우리는 늘 나무지팡이를 가지고 다니진 않는다. 준은 모니터를 확인하면서 열빈에 전화를 걸고, 나는 모니터를 바라본다. 유라는 솔과 함께 브리즈번에서 사람들과 인사하고 음료수를 한 잔 마시고 있다. 영어가 안 되면 사람들을 만났을 때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 텐데도 웃는 얼굴로 대답하고 있다. 나는 무심결에 유라와 어릴 적 나의 모습을 비교해 보게 된다.

유라가 베이징을 거쳐 — 스킵하지 않고 그대로 모든 지부를 지나 — 서울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유라가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적어도 지구 안에서는 한계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따라서 뒤의 구상력 측정 테스트에서는 약간의 기대감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구상력 측정에서 형편없는 결과가 나오기도 하지만, 대체로 자신이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구상력은 비례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있어서 우려하는 점은 없었다. 반대로 우리들이 기대하고 있었던 점은, 유라의 잠재력이 자신의 이동거리 이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유라는 계속된 이동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고, 오히려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면 러너즈 하이에 가까운 얼굴이었다. 퍽 상기된 표정으로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한 가지만 남은 거죠? 네?”

“그래요. 음… 이제 하나만 하면 저녁을 먹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힘내세요.”

“고맙습니다.”

“화이팅.”

유라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나는 뒤에서 팔짱을 끼고 유라의 머리에 전극 패치를 꽂는 사람들의 분주한 팔을 지켜보고 있다. 머리에 전극 패치를 왜 꽂냐고? 그야, 그녀의 뇌 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측정하기 위해서다. fMRI를 사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겨우 구상력 측정을 위해 연구소의 fMRI를 빌릴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는 비교적 간단한 EEG 측정을 한다. 다행히도 해외의 한 지부에서 이제 사용하지 않은 구형 EEG 측정기를 무상으로 줬기 때문에 우리는 그걸 쓰는데, 듣기로 그 지부는 이제 구상력 측정을 위해 근처 연구소의 fMRI를 정기적으로 대여한다고 한다. 빌리는 데 한 번에 대략 1000만원 정도 든다나 뭐라나… 부러워만 할 일이다.

유라는 이제 10분 정도 자신의 순간이동 이미지를 상상하며, 배경은 어디든 좋으니 그 곳에 자신이 직접 있다는 실감을 경험하게 된다. 실제로 이동하지 않으면 그곳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다는 게 순간이동자의 한계이지만, 가끔은 그 이미지를 최대한 실제에 가깝게 상상해 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 순간에 변화하는 뇌파를 측정해서 비교해 보면, 그녀가 상상한 이미지가 얼마나 현실에 가까운지 검증해 볼 수 있다. 뇌영상을 직접 촬영하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고육지책으로 뇌파라도 측정해 보는 것이다. 유라는 머리에 꽂힌 전극 패치 때문인지는 몰라도, 약간 긴장한 듯한 모습이었다. 나는 몇 마디 농담을 던지며 그녀의 긴장을 풀어주었고, 어디든 좋으니 여름휴가를 떠난 기분으로 있으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4.

테스트가 끝났을 때 우리들은 무척이나 놀라워했다. 그녀의 뇌파가 일반적인 패턴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순간이동자가 보이는 패턴을 A라고 한다면, 그녀의 패턴은 일반인의 패턴 B와는 다르지만, A와도 일치하지 않았다. 굳이 표현하자면 A’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유라의 자료를 정리해서 뉴욕지부에 보냈다. 해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게 분명했기 때문에, 우리는 뉴욕지부의 답장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아직 시간은 4시 반 정도지만, 광화문까지 가는 데 30분 정도 걸리고 음식이 나오는 데 30분 정도 걸린다고 하면, 저녁 시간에는 딱 맞았다. 모두들 짐을 챙기고, 가방을 메고 불을 끄고 사무실을 떠나는 데는, 10분 정도면 충분했다. 우리는 지쳤기 때문에 광화문까지 순간이동하지 않고,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이긴 하다. 멀리까지 움직일 때는 순간이동을 하면서, 가까운 곳을 갈 때는 순간이동하지 않고 지하철을 타고 가다니.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가까운 곳을 이동할 때는 굳이 순간이동할 필요가 없다고. 왜냐면, 순간이동을 하는 이유는 시간과 돈을 절약하기 위해서지, 남을 놀래키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준이 미리 예약해 두었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6인 테이블 두 개를 빌릴 수 있었고, 요리를 주문하고 우리는 몇 마디 잡담을 나누었다. 이번 테스트는 성공적이었다, 좋았다, 모든 면이 만족스러웠다 하는 자화자찬의 말들이 많이 나왔고, 마지막의 구상력 측정에서 유라의 뇌파를 궁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와 준을 포함해서 몇 명 있었다. 아마, 음, 예전에도 서울지부에서 그렇게 뇌파의 패턴이 다른 사람이 한 명 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민이었는지 솔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솔에게 질문을 던졌다.

“솔, 혹시 옛날에 테스트 받을 때 있잖아요, 그 때도 뇌파가 이상하게 나오지 않았나요?”

“저요? 어, 저는 그냥 평범했던 것 같은데. 여기서 제일 이상한 건 아마 준일 걸요?”

준의 눈이 커진다. 절대 “나는 그렇지 않다”라고 강변하는 듯한 눈이었다. 나는 고개를 민 쪽으로 돌렸다.

“그럼 민인가?”

“네? 뭐가요? …아아, 뇌파. 그렇죠. 제가 약간 이상해서 그 때도 결과보고를 받는 시간이 일주일 정도 걸렸던 것 같은데요.”

“그렇지. 그 때는 누가 뇌파 해석을 담당했지?”

“그 때는 아마… 준?”

“자료를 확인해 보면 알 수 있을 텐데, 어디 볼까요. …뉴욕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쪽이었네요. 칼텍에서.”

“아, 그 때는 샌프란시스코 지부가 칼텍 근처에 있었나?”

“뭐, 어차피 자료는 전부 그쪽에서 관리하니까요. 겸사겸사 민의 테스트 결과도 해석해 봤겠죠.”

“결론은?”

“민의 뇌파는 정상적이다. 아마도 그의 상상하는 방법이 달라서 뇌파가 달랐을 수도 있다, 라는 게 결론이었죠.”

“결국 방법의 문젠가. 민, 너는 순간이동을 이미지로 그릴 때 어떤 방법을 써?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글쎄요… 저도 구체적으론 잘 모르겠어요. 전 그냥 무브하기 전에 거기에 제가 있는 모습을 그리고요, 약간 미리 정신이 그쪽으로 가 있다고 표현하면 되려나? 몸이 움직이기 전에 정신이 먼저 그 곳에 가 있는 것 같아요.”

“그게 가능해? 좌표값을 입력하는 거하곤 전혀 다른 거지?”

“그쵸. 좌표값 입력이야 이미 머릿속에서 연산으로 수행하는 거고, 이미지화는 좌표 작업하고는 전혀 다르죠.”

“신기하네. 준, 혹시 거기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나 학술논문은 없어?”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 이미지화와 순간이동 수행의 정확도 측정에 대한 통계학 논문은 하나 있네요. 이미지화가 구체적일수록 — 물론, 이 구체적이란 말이 온전히 수행자 본인에게 의지하기 때문에 심리적인 질문이긴 하지만 — 순간이동 수행의 정확도가 높아진다는 결론에 도달하네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다른 논문도 찾아봐야겠죠.”

“그렇구만. 알았어, 나중에 더 찾아봐줘. 민, 그러면 유라도 비슷하게 이미지화를 하는 게 아닐까?”

“그건 유라 씨에게 물어보셔야죠.”

유라는 화장실에 가서 없다. 나는 그제서야 유라가 이 자리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득, 갑작스럽게 나는 뭔가 깨달음을 얻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유라는 의자를 뒤로 당겨 자리에서 일어나 종업원에게 위치를 물어서 화장실에 간 게 아니라, 순간이동으로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고 있다. 유라가 이 건물에 와 본 적이 없다고 한다면, 혹시 유라는 좌표값에 상관 없이 이미지만으로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는 게 아닐까? 그게 불가능하다는 말은 없다. 알다시피, 순간이동이라는 능력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한 줌에 지나지 않고, 능력에 대해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우리들은 자발적으로 구상력 측정이라는 단계를 거치며 자료를 각 연구기관에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 능력에 불가능이라는 말은 없다. 아니, 애초에 그런 말이 성립하지 않는 게 순간이동이다. 유라가 화장실에서 다시 걸어서 돌아오기 전에 이미, 나는 뉴욕지부에서 올 결과를 예상하고는 가슴의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축복받았다는 건 얼마나 설레고 두려운 일인지! 그날 먹었던 음식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나는 크게 흥분해 있었다.

예상보다 일찍 뉴욕지부에서 결과에 대한 해석이, 다른 피험자들의 자료와 함께 도착했다. 예상했던 대로 유라의 패턴은 다른 순간이동자들의 패턴과는 현저히 다른 패턴을 보이고 있었고, 장비를 가지고 있는 뉴욕지부는 유라의 뇌파를 이렇게 해석하고 있었다.

“매우 흥미로움. 뇌파의 패턴이 다른 피험자와는 확연히 구분됨. 그러나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원인을 확인하기 어려움. PET 혹은 fMRI 검사가 요구됨.”

약간 화가 났다. 이래서야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잖아! 나는 유라에게 다시 테스트를 받아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과연 알 수 있는 게 하나라도 있을까? 글쎄, 내 생각은 부정적이었다. 결과가 나온다 해도, 민과 비슷한 결론을 내릴 게 분명했다. “상상하는 방법”이 다르다 운운. 그래서 나는 뉴욕지부의 메일에 “그녀는 지금 학업을 수행 중인 고등학생 신분이라 어려울 것 같다”는 답장을 보내고, 드립커피를 내려 한 잔 마신 뒤에 다시 메일을 적었다. 이번에는 내가 잘 아는 사람들이 많은 규슈지부로 메일을 보냈다. 유라에 대해 할 말이 많았고, 석사 시절에 신세를 졌던 지도교수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답장은 사흘 뒤에 도착했다. 긍정적인 어조였다. 나는 규슈지부의 메일에 답장을 보내며, 며칠 정도 묵을 것 같으니 숙소를 잡아달라고 부탁했고, 지부에서는 친절하게도 연계된 게스트하우스의 방을 일주일 정도 빌려줄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감사를 표했고, 여행의 시작에 맞춰서 할 일을 정리했다.

5.

후쿠오카로 건너가서 사람들과 인사하고, 나는 바로 지도교수가 있던 대학으로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지하철을 타고 다시 버스로 건너타야 해서 시간이 좀 걸렸지만, 다행히도 점심시간 이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도교수는 내년이면 명예교수였고, 그래서 연구실을 정리하고 있었다. 문을 열자 바닥에 쌓인 책이 문을 막고 있는 게 느껴졌는데, 그래서 나는 문이 조금 열린 채로, 몸을 게처럼 해서 연구실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잘 왔어요. 그쪽 의자에 앉아요.”

교수님이 말한 대로 나는 쿠션이 깔린, 팔걸이가 있는 의자에 앉았다. 의자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몇 년 전의 풍경과는 전혀 다르게, 책들이 1/2 정도로 없어진 게 눈에 보였다. 또 달라진 점이 몇 가지 있었는데, 창가에 두던 꽃화분들이 없어졌고, 컴퓨터가 신형으로 바뀌어 있었다. 책상 위에 늘 있던 서류들도 대부분 사라져 있었고, 쓰던 물건들도 대부분 집으로 가져간 듯 책상은 절반 정도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교수님에게 공항에서 사 온 과자 상자를 건넸고, 교수님은 고맙다는 말과 함께 과자를 받았다. 교수님은 내게 물었다.

“잘 지내고 있나요? 서울지부에서 부지부장으로 일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네. 부지부장으로 승진한 건 유학에서 돌아와서 바로였는데, 인사가 늦었습니다.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어서요. 교수님도 잘 지내셨나요?”

“예, 보시다시피. 그런데 어쩐 일로 일본까지 온 거에요? 뭔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는 뉘앙스였는데.”

“그게, 이번에 대단한 재능을 가진 여자애가 한 명 들어와서요. 이름은 유라라고 하는데.”

“유라. 그 아이는 어디까지 이동할 수 있죠?”

“그게…”

나는 교수님과 눈을 마주쳤을 때, 여전히 그 눈 속에 잠들어 있는 미명과도 같은 불꽃을 확인하고 주눅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 능력이 아니라, 유라의 능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라서 나는 차분히 얘기하려고 노력했다.

“일단 지구 안에서는 제한이 없다고 보면 됩니다. 그것도 체력저하 없이요.”

교수님은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유라처럼 국가 단위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은 지구상에 꽤 있다. 전체에서 비율이 매우 적을 뿐, 다 합해서 150명 정도 될까? 공식적인 집계에 포함되지 않는 자유민을 포함하면 그 정도 될 것이다. 교수님은 나를 바라보다가 컵을 들어 물을 한 잔 마시고, 펜을 들고 이번에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게 다가 아닐 텐데요? 그죠?”

“네.”

“혹시 그녀도 겉모습만 인간이라거나… 아니, 이렇게 말하면 실례네요. 좌표화가 필요하지 않나요?”

“네.”

“그래서. 그럼 그녀의 능력이 다른 사람들의 능력과 다르다는 것도, 이미 구상력 테스트에서 밝혀졌겠네요.”

“그렇죠.”

“이건 정말 흥미롭네요. 정말로.”

교수님은 그제야 쓰고 있던 안경을 벗었다. 안경을 벗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눈을 바라보는 게 덜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은 펜을 쥐고 몇 가지 메모를 하다, 이번에는 연구에 몰입하는 학자답게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혹시 그녀를 지금 당장 이곳으로 오게 만들 수 있나요? 좌표화 없이.”

“글쎄요… 그건 아마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불가능한지 아닌지는 모르니까, 한번 해 보자는 거에요. 제가 그녀와 전화를 해 볼 수 있을까요?”

“전화라면 가능합니다. 잠시만요…”

나는 스마트 워치로 그녀의 연락처를 찾아서 전화를 걸었다. 유라가 전화를 받고, 나는 교수님의 말을 그대로 통역해서 전달해 주는 역할을 맡았다. 교수님은 이렇게 말을 맺었다.

“…라는 곳에 제가 있는데요. 유라 씨, 혹시 이 곳으로 건너올 수 있나요? 좌표는 알려드리지 않아요. 가능한가요?”

“네?”

“그러니까, 좌표값 입력 없이 바로 건너올 수 있냐는 말씀이신데.”

“잠시만요. 그게 어떻게 가능하죠?”

나는 웃었다. 거봐, 이럴 줄 알았다니깐. 나는 스마트 워치에서 입을 떼고 교수님에게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수님의 입에서 나온 다음 마디는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말했다.

“가능해요. 유라 씨, 이미지를 상상해 보세요.”

유라에게 이메지라는 일본어의 한 낱말은 퍽 인상깊게 들렸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 말이 한국어의 ‘이미지’와 대응한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을까? 글쎄, 아마 그 때의 그녀에게 물어본다면 답을 구할 수 있겠지만, 나는 바로 연구실에 나타난 유라의 모습을 보고 놀라느라, 그런 질문을 해야 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유라는 연구실 한켠, 쌓아놓은 책과 책들 사이에서 버섯처럼 솟아올랐고, 나와 교수님 모두 교복을 입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랐다. 교수님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 유라에게 말을 걸었다. 늙으면 관록이 생긴다더니, 맞는 말인 것 같다.

“어서오세요. 반가와요.”

“??”

“반갑다고 인사하고 있어요. 유라 씨도 적당히 인사하세요.”

“안녕하세요. 이유라라고 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고요, 이제 17살이에요.”

“안녕하세요.”

“자기소개를 하고 있어요.”

교수님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라, 음… 그녀를 어떻게 평가하면 좋을지, 영원히 알 수 없다는 기분을 느낀 것도 그 때가 처음이었다. 교수님과 유라가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통역을 맡았다. 통역은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지만, 서로 알지 못하는 두 언어를 말하는 사람 사이에 통역이 필요함은 당연하다. 나는 교수님에게 유라는 수업이 있을 테니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고, 유라는 오늘은 오후 수업이 없어서 괜찮다고 말했다. 눈치 좀 채라. 내가 통역하기 싫다는 걸 유라에게 직접 말해야 하나? 그러나, 교수님은 내 기분을 눈치채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 이제 슬슬 점심을 먹으러 가 볼까요? 유라 씨, 점심은 먹었나요?”

“아뇨. 오늘은 안 먹었어요. 오후 수업이 없어서요.”

“그럼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먹죠. 제가 낼게요. 괜찮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유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책으로 만든 단단한 성채 같은 연구실을 나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학교식당으로 향했다. 학교식당에서는 여러 가지 점심 메뉴를 팔고 있었다. 나는 조리실 위에 걸려 있는 메뉴를 바라보며 유라에게 말했다.

“오후 수업이 없다는 거, 정말이에요?”

“네. 이제 곧 여름방학이라서요.”

“아, 이제 여름방학이라 단축수업을 하는군요. 여름방학은 언제 시작해요?”

“음… 언제였더라. 7월 15일이었나.”

“이제 얼마 안 남았네요. 방학 때는 뭘 할 생각이에요?”

“글쎄요. 한 달 정도라서 그렇게 길지 않으니까, 어디 여행이나 다녀올까 생각중이에요. 국내도 좋고, 해외도 좋고.”

“해외로 간다면 어디로?”

“유럽 쪽으로 한번 가 보고 싶었어요. 최대한 시원한 곳으로. 네덜란드나 스위스도 좋아 보였는데요.”

“그렇구나.”

유라와 나는 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사실, 그녀는 일본어를 읽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대신해 주문해 준 것이나 다름 없었다. 나는 긴장을 풀기 위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일본 대학에서 학생식당에 와 보는 건 처음이죠?”

“네. 사실 일식을 먹어본 적도 거의 없어요. 제주에는 아시다시피 그런 식당이 없어서요.”

“그렇겠죠. 괜한 말을 했네요.”

“아뇨. 그래도 이렇게 와 볼 수 있다는 건 재밌는 일 같아요. 게다가 얻어먹는 거기도 하고.”

“음.”

교수님이 계산하고, 우리는 학생들 틈에 앉았다. 바깥에서는 이제 곧 여름이 온다는 사실을 알리려는 듯, 구름에 가려 흐릿한 오후 햇살이 창문을 침범하고, 에어컨이 돌아가는 학생식당에서는 이제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옆에 음료수를 두고 열심히 공부하거나, 아니면 젓가락을 한 손에 들고 점심을 빠르게 해치우고 있었다. 교수님이 말 없이 밥을 먹는 중이라, 나는 교수님에게 말을 걸지 않고 대신 유라에게 말을 걸었다.

“맛은 어때요?”

“맛있어요. 그런데 이거 젓가락으로만 먹어야 하는 거에요?”

“아뇨. 스푼으로 먹어도 되는데, 대신 음, 일본에서는 보통 밥을 젓가락으로 먹으니까요.”

“그렇구나. 그럼 젓가락으로 먹을게요. 저는 젓가락을 잘 다뤄요.”

그러면서 유라는 손으로 젓가락질을 해 보인다. 나는 남들이 하는 젓가락질을 관찰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잘 하는 것 같다. 교수님은 말없이 계속 밥을 먹고 있다, 내가 밥을 먹고 있을 때 불쑥 말을 던진다. 어휴, 깜짝이야.

“서울에서 생활하는 건 어때요? 여기하고 비교했을 때는.”

“괜찮은 것 같아요. 원래 서울에서 살기도 했고, 뭐 대학도 서울에서 나왔으니까요.”

“그런가? 유라 씨 같은 경우는 어떻게, 대학에 갈 생각은 있나요?”

“글쎄요. 아마 한국의 다른 고등학생들처럼, 대학에 가지 않을까 싶은데요. 요즘도 다들 대학에 가려고 하니까요.”

“그렇군요. 사실 요즘 일본도 대학에 오는 학생들이 많아서, 질적 저하를 우려하는 학내의 시선들이 있긴 했는데, 제 생각에는 기우인 것 같아요. 그렇게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고 할까, 애초에 대학에 새로 입학하는 애들이 차이난다면 얼마나 차이나겠어요. 특히 전공에서는 더더욱 그렇고. 알고 대학에 들어오는 애들은 없잖아요.”

“한국도 뭐, 예전보다 인구가 줄어서 신입생 수가 줄었는데, 제 생각은 꼭 그렇게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요. 부실대학들은 정리해야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정원을 줄이는 건 그렇게 효과적이지 않은 것 같아서요. 문과를 줄이는 움직임이 많아서 조금 씁쓸하죠. 제가 문과라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아, 그랬어요? 저는 이과인 줄 알았는데.”

“그게… 심리학과라 그럴지도 모르겠는데, 저는 문과로 입학했어요. 대부분 심리학과는 한국에서 문과로 분류돼요. 지리학 같은 경우는 이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고. 컴퓨터 사이언스 같은 경우도 이과죠.”

“아, 유라 씨.”

“네?!”

“다시 집에 돌아가는 건 문제 없죠? 좌표값을 알고 있으니까.”

“네. 늦기 전에만 돌아가면 돼요. 그런 쪽으로 부모님이 간섭을 하지는 않으세요. 늦게 돌아오시기도 하고.”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부모님께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작은 사업을 하나 하고 계세요. 집 한켠을 개조해서 게스트하우스 사업도 하시고요. 귤나무도 키우고 있어요.”

“그렇구나. 그럼 나중에 놀러가 봐도 될까요? 저는 비행기를 타고 갈 테지만.”

“네. 그렇게 하세요. 그런데 제주에는 볼 게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워낙 작은 섬이라서요.”

나는 유라의 말을 중간에 끊고 물어보았다. 정말로?

“게스트하우스를 하고 있다고요? 그것도 제주에서?”

“네. 집이 주택인데 조금 넓어서요. 그래서 개조해서 게스트하우스로 만들었어요. 잠만 자는 곳이지만요.”

“그래? 정말 놀랍네요. 저도 같이 놀러갈래요.”

“뭐, 그야… 다들 제주를 정말 좋아하시네요. 놀랐어요.”

“제주도는 한국과는 다른 독특한 매력이 있어서 좋아해요. 한국이면서 마치 한국이 아닌 듯한 느낌이랄까. 휴양지로도 탁월한 곳이고요.”

“그런가? 뭐, 그렇다면 그렇겠죠.”

흥분해서 또 다른 소리를 해 버렸다. 아니, 나는 제주도에서 놀고 싶어서 유라에게 물어본 건 아니었는데…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변명 같아서 나는 입을 다물고 녹차를 한 모금 마셨다. 교수님은 아까 한 마디 하신 뒤로 전혀 말이 없고, 유라도 밥을 다 먹고 우유를 마시면서 아무 말이 없었다. 떠드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고역 같은 시간이었다.

밥을 다 먹고 우리 셋은 학교 안에 있는 작은 빵집에서 빵을 몇 개 사서 다시 연구실로 돌아갔다. 연구실 안에 있는 포트로 물을 끓이고, 물이 끓고 차가 우려지는 동안 나와 유라는 책 정리를 도왔다. 우선 문 옆에 있는 책부터 차곡차곡 박스에 담고, 벽 가장자리에 버섯처럼 붙어 있는 책들도 한꺼번에 묶어서 거대한 종이박스 안에 집어넣었다. 책이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새삼스럽지만 깜짝 놀랐다. 유라도 곁에서 열심히 책 정리를 하고 있었다. 교수님은 이것저것 챙기느라 바쁘다. 아까 열었다 닫은 서랍을 다시 열고, 서랍 안에 쌓여 있는 물건이라든가 서류 같은 것들을 한데 모아서 정리하고 있다. 25년 가까이 있어 온 곳이니까, 지나온 세월 속에서 쌓여 온 것들도 많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책들을 박스에 담고, 담고, 또 담으며 남은 오후를 보냈다. 아, 빵과 함께 차도 마시면서.

6.

유라와는 그 뒤로도 계속 연락하고 — 2월 정도에 교수님이 다녀갔다는 얘기도 유라는 했다. 정말로 갔구나 싶어서 나는 묘하게 안심했다 — 서울지부에서 하는 일도 계속 이어지다, 일상에 급격한 변화가 생긴 건 다음 해 4월 말이었다. 이번에도 메일이 온 것은 뉴욕지부였는데, NASA의 유인 화성탐사계획에 순간이동자들이 5명 정도 참가하고, 어디서든 뽑을 수 있으니 기회는 열려 있고 따라서 우리도 후보자를 3명 정도로 추려서 — 꼭 3명이 될 필요는 없다고 메일에서는 친절하게 각주로 덧붙여 주었다 — 보내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목적은 단순하게도, 순간이동자들이 화성의 극한 기후에 적응할 수 있는지 여부와, 임무 수행 중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순간이동자들이 유효한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여부를 말하고 있었다. 나는 알았다고 답신을 보내고, 곧바로 유라를 떠올렸다. 고등학생인데 참가하려고 할까? 게다가 유라는 이제 고3 — 한국에서는 무겁게 다가오는 말이었다 — 인데도? 우선 유라에게 연락은 해 보겠지만, 아마도 시험 때문에 거절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과연 유라가 한국에서 대학을 가려고 할까? 그녀에게는 이것도 함께 물어봐야지. 그리고 나서 나는 준에게 연락해, 서울지부의 메일레터로 유인 화성탐사계획 홍보문을 간략하게 적어달라고 했다. 유라 말고도 나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같이 가는 것도 좋겠지. 나는 유라가 당연히 나사의 계획에 참여하리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대체 왜일까? 그녀의 능력이 뛰어나서? 그녀 말고도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많다. 그렇다면 왜? 오늘 중에 이유를 생각하고 그녀를 설득할 때 내세워야지. 나는 준에게 일을 맡기고 먼저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기로 약속했고, 친구는 이제 결혼해서 세 아이를 두고 있는 어엿한 가장이었다.

“지금 집이에요?”

“네. 저희는 야자 안 하는 고등학교에요. 아니, 제주에서는 거의 안 한다고 봐야 하려나.”

“아, 잘 됐다. 그럼 바로 얘기할게. 이번에 나사에서 유인 화성탐사계획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데요, 거기에 유라도 같이 참여해서 스펙을 쌓아보는 건 어때요? 자동통역 애플리케이션이 있어서 언어 문제는 크게 없을 것 같은데. 나중에 큰 도움이 될 거에요. 인맥도 넓어지고.”

“아? 음… 그럼 지구를 떠나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네. 아마 3년 정도는 지구를 떠나서 화성에서 살아야겠죠. 왔다 오는 데 2년 정도, 임무 수행은 1년 정도라고 알고 있어요. 순간이동자들은 유라 말고도 네 명 정도가 같이 행동하면서요. 그럼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네… 근데 저 대학은 가야 할 텐데요.”

“수능 볼 때까지는 시간이 있을 것 같아요. 당장 화성으로 출발하란 말은 아니니까. 그러니까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네. 한번 부모님과도 상담해 볼게요.”

, 하는 한숨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아까 마신 와인 탓인지, 내 입은 자제를 모르고 만으로 18세밖에 안 된 소녀에게 다짜고짜 화성으로 가라는 소리를 해 버렸다. 전화를 끊고, 나는 뉴욕지부에서 보낸 메일을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임무 시작은 내년 1월이었다. 나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수능을 보고 대학합격까지 보고 나서, 유라는 임무수행을 위해 화성으로 떠난다. 내겐 이미 확실해 보이는 사실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술에 취한 나를 약간 우울하게 만들었다. 친구에게 잘 들어갔냐는 메시지를 보내고, 나는 불을 끄고 바로 잠들었다.

그 뒤로 11월까지 사소한 신변을 제외하면 유라에게서 온 연락은 하나도 없었다. 그날 괜히 말했다!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었지만, 어차피 메일레터를 보냈으니까 유라도 메일을 확인하고 그게 사실이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서울지부에서는 한 명만 지원했고, 그는 국가간 순간이동이 가능한 26세의 남성이었다. 물리천문학부 석사과정에 재학하고 있으며, 박사를 진학할까 고민하던 와중에 메일을 보고 한번 지원해 보자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나는 당신 말고도 참여할 사람이 한 명 더 있을지도 모른다고 답했고, 그 밖에 유라에 대한 정보는 한 마디도 발설하지 않았다. 애초에 별 의미가 없기도 하고, 순간이동자들이 우주선 안에서 모여서 지낼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니깐. 그래도 서로 언어가 통하는 두 사람이라면 여러모로 도움은 되지 않을까? 나는 유라의 답장을 기다리면서 뉴욕지부에 서울지부에서는 한 명 아니면 두 명이 참가한다고 메일을 보냈고, 뉴욕지부는 알았다며 테스트 날짜를 전달해 주었다. 11월 중순이라. 조금 빡세긴 하네. 하지만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기다렸다.

7.

유라는 수능을 보고 바로 다음 날에 연락을 해 왔다. 사무실 바깥의 카페에서 손을 녹이고 있던 나는, 유라의 연락을 받고 몇 가지 사실을 빠르게 전달해 주었다. 테스트 날짜라거나 유의점이라거나, 기타 필요한 사실 등등. 유라는 다행히도 내 말을 알아듣는 듯한 눈치다. 그녀는 말했다.

“그럼 테스트에 참가해 볼게요. 어차피 떨어질지 붙을지도 모르는 거고, 게다가 저는 영어를 못 하잖아요?”

“영어는 아마 큰 문제 없을 거에요. 어차피 전 세계 수많은 나라에서 사람이 온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대신 활발하게 행동하는 건 중요할 거에요. 제 말 무슨 말인지 알겠죠?”

“네. 대강은. 요는 가서 주눅들지 말라는 거죠? 긴장된다고 해도.”

“바로 그거에요. 주눅들지 말기. 테스트 절차를 충실히 따르기. 그나저나, 수능은 잘 봤어요?”

말해놓고 나도 아차 싶었다. 혹시 수능을 못 봤으면 어떡하지? 또 괜한 말을 던졌다 싶었다. 그러나 유라의 목소리는 제법 밝은 편이었다. 그녀는 쾌활한 어조로 답했다.

“잘 모르겠어요. 사실 채점도 안 했어요. 수능은 최저등급만 맞으면 바로 갈 수 있으니까요. 아마 그 정돈 됐겠죠.”

“그런가? 하긴, 나도 대학은 정시가 아니라 수시로 갔으니까. 그러면 이제 서울에 놀러올 수 있는 거에요? 아니면 학교가 방학해야 서울로 올라올 수 있는 건가? 앞으로 일정이 어떻게 돼요?”

“그게, 음… 일단 테스트 기간 중에는 학교를 빠질 수 있을 것 같고요, 만약 학교에서 방학을 예정보다 일찍 한다고 하면 저도 뭐, 서울에 있어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아요. 잘 곳이 문제겠지만. 아, 서울지부도 혹시 게스트하우스 같은 걸 가지고 있나요?”

“아뇨. 저희는 그렇게 돈이 넉넉한 게 아니라서… 대신 주변에 호텔을 약간 싸게 묵을 수 있긴 해요. 호텔 지배인이 서울지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라서요. 그러니까 순간이동자 한정인 셈이죠. 음, 그럼 제가 예약해 둘까요?”

“아뇨! 아직은 아닌 것 같아요. 일단 테스트를 받고 생각해 볼게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요.”

“1월까지는 이제 두 달밖에 안 남았어요.”

“시간을 세 보면 그렇겠지만, 두 달이 정말로 긴 시간일 수도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최근에 그걸 느꼈거든요.”

“그건 또 무슨 얘기죠?”

“말하자면 너무 길어져서요. 다음에 얘기해 드릴게요.”

“알겠어요. 그럼 그렇게.”

“테스트 끝나고 봐요.”

전화를 끊고 나는 생각에 잠겼다. 유라는 휴스턴으로 아마 바로 가겠지. 거기서 서울지부에서 온 남자와 처음 만날 것이다. 뭐, 나하곤 상관 없는 일이다. 카페라떼가 평소보다 달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코트를 걸치고 밖으로 나와 곧바로 사무실로 향했다. 마신 커피의 약발이 오후 6시까지는 들어야 할 텐데라고 생각하며.

휴스턴에서 돌아온 유라는 여전히 밝고 쾌활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얌체공을 튕긴다면 아마 저렇겠지. 나는 유라에게 테스트 결과가 언제 나오냐고 물어보았다. 12월 초라고 했다. 아마 추측컨대, 나사에서는 순간이동자가 받아야 할 사전 안내와 훈련이 나머지 참가자들에 비해 별로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임무 시작 한 달 전에 결과를 발표하고, 그들에게 적당히 훈련을 시킨 뒤에 같이 우주선에 태워서 보낸다. 아니라면, ISS로 순간이동자들을 이동시킨 다음에 — 비록 정지좌표가 아니긴 하지만 — 거기서 태워서 보낼 수도 있었다. 재잘거리며 있었던 일을 설명하던 와중에 유라는 또 이런 말도 했다.

“다른 분은 중간에 그만두고 나왔어요. 거기서 이야기가 잘 돼서, 박사과정에 들어가게 된 것 같아요.”

“웃기네. 애초에 그런 목적으로 테스트에 참가한 건가?”

“그럴지도 모르죠. 여하간, 지구에서 계속 있게 된 사실에 대해 그다지 유감이 없어 보였어요.”

“체질이 그럴지도 모르지. 지구 체질이라서.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앞으로 계획은?”

“저번에 얘기한 것도 있으니까요. 서울에서 좀 놀다 내려갈게요. 호텔 예약은 지금도 가능한가요?”

“응. 경비로 일주일 정도는 끊어줄 수 있어요. 보고서를 하나 적어야 되긴 하지만, 이 정도는 간단하죠.”

“그렇네요. 이제 더이상 학교에 갈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대학에는 어떻게 얘기해야 좋을까요?”

“글쎄요. 적당히, 3년 휴학이 가능한지 물어보는 게 좋을 거에요. 만약 불가능하다고 대답이 오면, 그 때는 제게 물어보세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도와드릴게요. 발표는 언제 나요?”

“수능 결과가 나오고 바로 나오는 걸로 알고 있어요. 물론 다 떨어질 수도 있지만…”

나는 고개를 젓는다. 벌써부터 그런 생각을 하다니, 안 돼요. 유라는 나를 보며 다시 웃음 띤 얼굴로 돌아온다. 그래, 그런 얼굴이 그녀에게는 가장 잘 어울린다. 나는 유라와 함께 밥을 먹고, 호텔에 연락해서 방을 잡은 뒤에 유라에게 제주에 가서 짐을 챙겨 오라고 했다. 가방 하나에, 필요한 것만 간단하게 챙겨오라고 나는 말했다.

“그러다 우주에 가서도 짐을 챙기는 걸 까먹으면 어떡하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제 말은, 나중에 우주에 가서 빼먹은 짐이 있으면 어떻게 하냐는 말이었어요. 그 때는 다시 돌아오기도 어려울 텐데요.”

“뭐, 그 때가 되면 다른 사람에게 빌리면 되지 않을까요? 많은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는 거니까.”

“그렇구나.”

“네, 그런 거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유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추운 날씨 탓에 그녀의 코에서 김이 새어 나오는 게 눈에 보였다. 인간의 몸은 따뜻하다, 지나칠 정도로 따뜻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녀가 짐을 챙겨오고, 우리는 함께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고, 나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준, 향과 함께 크리스마스 케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송년 파티를 어디서 하면 좋을까 하는 이야기도 나눴다. 추위에 얼었던 몸은 대화하면서 금세 녹아버렸다.

8.

유라와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신나게 놀고 집으로 돌아온 금요일의 밤에 나는 기묘한 꿈을 꾸었다. 꿈에서 나는 그물처럼 촘촘히 짜인 하얀 직물 위에 서 있었다. 얇아서 끊어질 것 같지만 끊어지지 않는 직물은 원인 모를 중력에 흔들리고, 사람들이 왔다갔다함에 따라 아래로 꺼졌다 위로 솟았다 했는데, 나는 고정된 점이라도 된 것처럼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그리고 바로 앞 10km 돼 보이는 곳에는 유라가 서 있었다. 그녀는 체크무늬 셔츠와 굽이진 치마, 스니커즈와 모자를 쓰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높이뛰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녀는 위로 한번 점프했다 다시 땅으로 착지했다. 그 순간, 시공이 요동치며 직물이 여러 레이어로 분화하는 듯한 환영이 보였다. 그 뒤에, 그녀는 나를 한 번도 되돌아보지 않고 멀리멀리 사라졌고, 나는 고정된 점 속에서 그녀가 사라지는 뒷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녀가 사라진 뒤에도 나는 꿈을 몇 개 더 꿨는데, 나머지 꿈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은 채로 나는 아침을 맞았다.

“이제 준비됐어?”

“네.”

“갈때 안부인사 꼭 하고요. 연락하는 법은 알죠?”

“네. 알고 있어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사진 찍어서 꼭 보내줘요. 다른 분들에게도 모두.”

“물론이죠. 꼭 찍어서 보내드릴게요.”

“더 챙겨야 될 건?”

“없어요.”

“…몸 잘 챙기세요. 그게 제일 중요하니까.”

“고마워요.”

“안녕.”

“안녕!”

출국장 앞에서 유라는 나와 팀원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손바닥이 저렇게 하얬던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녀가 순간이동해서 휴스턴까지 가는 선택을 마다하고 비행기를 타는 이유는, 한번 비행기를 타 보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제주에서는 비행기로 오지 않았나? 몇 번 있었던 것 같긴 한데, 미국까지는 아마 처음 가 보는 걸테다. 나는 준에게 말했다.

“이제 정말로 떠나네. 그러고 보니 한 일년 정도 됐나, 우리가 만난 게?”

“그렇죠. 처음 만난 게 2월 초 정도였으니까, 딱 1년 정도 되네요.”

“이제 어떻게 하지?”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유라를 위해 기도하는 거죠.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있겠어요?”

“그래. 하지만 내가 더 해 줄 수 있는 게 있을 줄 알았어. 하다못해 자유민이 되는 법이라도 가르쳐 주면 좋았을 텐데.”

“아뇨,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유라 씨는 이미 충분히 자유로우니까요.”

준은 말하면서도 계속 출국장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출국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준에게 물었다.

“자유롭다는 게 뭘까? 우리 같이 자유롭게 순간이동이 가능한 사람들도, 때때로 부자유를 느끼곤 하잖아. 그렇다면 자유는 움직일 수 있는 능력과는 상관 없다는 건데. 자유로운 상태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저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마음가짐에 달린 문제겠죠.”

“마음가짐? 갑자기 왠 유심론.”

“깃발이 흔들리느냐 내 마음이 흔들리고 있느냐… 옛 스승들이 말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건 자연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라는 거. 자연은 우리가 설명하는 게 아니라 정직하게 기술되는 거죠. 반면에, 우리 마음을 우리가 정직하게 기술한다는 건 불가능하고, 오로지 묘사하거나 설명할 수 있을 뿐이에요.”

“그래서?”

“그래서… 결론적으로 유심론이 옳다는 거죠. 우리는 흔들리는 대상을 우리 마음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우리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고? 그건 또 어떻게 안담.”

“지금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것도 다 우리 마음이 흔들리고 있으니까 성립하는 거에요. 만약 우리 마음이 자연처럼 있는 그대로 움직인다면, 인간과 인간 사이의 대화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겠죠. 자연의 패턴에 기본적으로 ‘의미’는 없으니까.”

“너무 어려운 이야기야. 잠깐, 너 학부 전공이 뭐였지?”

“동양철학이요. 전 동양철학을 배웠어요. 주로 불교를 배웠죠.”

“그렇구나. 나는 그런 이야기는 전혀 모르겠어. 자세히 알고 싶지도 않고.”

“하지만 언젠가는 깨닫게 될 거에요. 물리적 실재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순간이동에는 몸이 필요하잖아?”

“몸은 물리적 실재가 아니죠. 적어도 우리 마음이 그리고 있는 은.”

“무슨 말이람. 됐고, 어디서 뭘 먹을까?”

“동양 얘기가 나왔으니 동양 음식을 먹어볼까요? 한식 어떠세요? 저는 비빔밥이 먹고 싶어요. 지하에 푸드코트가 있어서, 거기서 비빔밥을 팔고 있어요. 다른 것도 물론.”

“알았어. 저기, 준이 지하로 내려가자는데 같이 갈까?”

“네.”

“좋죠.”

우리는 출국장에서 지하까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와, 바로 옆에 있는 푸드코트에 도착했다. 준은 말한 대로 비빔밥을 주문하고, 나와 다른 사람들은 각자 먹고 싶은 걸 골라서 각자 계산했다. 자리에 앉아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육체와 분리된 정신이란 게 과연 가능할까? 우리 마음은 뇌에서 출발하는데, 따라서 뇌를 벗어난 정신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데 준은 그런 게 마치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 마냥 내게 말했다. 흐음… 한 가지는 납득할 수 있었다. 진리가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라는 것.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상현실도 훌륭한 예다. 나는 가상현실 속에 들어와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거기서 느끼는 건 나의 진짜 감정일까?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준이 비빔밥을 열심히 비비는 모습을 쳐다보며 나는 유라가 비행기를 타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동체가 번쩍번쩍 빛나는 비행기와, 게이트를 찾아서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면세 물품을 팔기 위해 가게 앞에 서 있는 점원들, 외국인들 등이 모여 있는 모습도 상상해 보았다. 내 마음 속에서 모든 사람들은 살아 있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 사람들이 진짜로 있다고 말하지는 않잖아?

비행기를 탄 뒤에 유라는 문자를 보냈고, 문자에는 처음 멀리까지 가는 비행이라 두근거린다고 적혀 있었다. 나는 잘 다녀오라고 답장을 보내고, 밥을 먹은 우리들은 홍대 쪽으로 가기 위해 공항철도를 타러 개찰구로 향했다. 가면서 나는 준이 한 말을 계속해서 생각해 보았지만, 그런 일이 있을 수는 없다는 결론에 재빨리 도달했기 때문에 그에게 더 묻거나 하진 않았다. 하긴, 더 묻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겠지. 옛날 사람들이 유심론과 유물론 사이에서 그렇게 고민하던 것도, 다 이유가 있지 않겠어? 나는 갑자기 궁금해져서 다른 사람들에게 학부 시절에 뭘 전공했냐고 물어보았다. 재밌게도 다 대답이 달랐다.

“저는 수학이요.”

“저는 식품영양학이요.”

“저는 생물학.”

“저는 사학과로 가서 대학원에선 고전학을 전공했어요.”

“어? 그러면 준하고 나, 그리고 성수 씨가 문과고, 향하고 솔하고 민은 다 이과네? 정확히 절반으로 떨어질 줄이야. 신기하지 않아, 다들?”

“음… 글쎄요. 저는 원래 이과였는데, 전공을 바꿔서 사학과로 들어간 케이스라서요.”

“그럼 전과한 거에요?”

“아뇨. 고등학교 때까지 이과였고, 수능을 보고 교차지원해서 문과로 들어갔어요.”

“재밌네요. 향은 수학이라고?”

“네. 저는 고등학생 때 올림피아드에도 나갔거든요. 장려상 받았지만. 그리고 수학을 전공했어요. 지금 하는 일하곤 아무 상관 없죠.”

“아니, 꼭 그렇지는 않지… 민은 왜 생물학?”

“저는 어릴 때부터 살아 있는 동물들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르게 됐다고 할까.”

“그럼 나만 심리학이네. 아, 뭔가 아쉽다.”

“그런데 심리학도 과학 아닌가요? 현대 심리학은 거의 경험과학이라고 알고 있어서요.”

향이 묻는다. 아, 그야 그렇지.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고나 할까… 나는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망설였다. 그러자 내가 아니라 준이 향의 질문에 대답한다. 나이스, 준!

“심리학이 과학이긴 하지만, 인간을 이해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인문학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과학은 인간 그 자체를 이해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인간의 구조와 작동기제를 이해하는 게 목적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런가? 인간하고 인간의 구조는 어떻게 다른 거에요?”

“야! 넌 이과잖아.”

“에이, 그거하곤 별로 상관 없죠. 제가 이과라고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인간의 구조는 아마도… 인간의 정신적인 활동과는 별개로 움직이는 거죠. 마치 뇌가 움직이지만 그 속에서 인간의 생각은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것처럼. 같은 인간의 구조라고 해도, 서로가 느끼는 바는 달라지는 것처럼요.”

“호. 그런 것 같네. 하지만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뇌를 가지고 연구하기 때문에, 인간이 보편적으로 하는 생각을 중심으로 탐구하지, 인간의 개별성을 탐구하지는 않아요. 그런 의미에서 향이 말한 대로 경험과학이라고 할 수도 있죠. 그런데 심리학의 동기를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할까, 준의 말대로 인간을 이해하는 데 학문의 목적이 있죠.”

“거봐, 내 말이 맞다니까.”

“제 생각에는 둘 다 맞다고 세유 씨는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맞죠?”

“네. 둘 모두를 포함하고 있는 학문이 심리학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래서 심리학을 골랐어요. 재밌어 보여서.”

“실제로 해 보니 어떻던가요? 심리학이 재밌다고 느꼈나요?”

“네. 어떤 면에선 그렇고, 또 어떤 면에선 그렇지 않고. 원래 대학원으로 가서 박사까지 할 생각이었는데, 생각이 변해서 석사를 일본에서 하고 그냥 여기서 일하기로 했죠. 박사까지 하면 아마 연구원으로 일하지 않았을까? 높은 확률로 그렇게 됐겠죠. 하지만 지금도 저는 행복해요. 일과시간에 이렇게 놀 수도 있고.”

“확실히, 서울지부는 다른 지부처럼 잡무도 많지 않고 휴가를 쓸 수도 있고, 좋은 점이 많은 듯해요.”

“맞아. 그리고 연말에는 보너스도 줘.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애초에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곳인데, 보너스가 많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겠죠. 그것들도 다 우리들 회비에서 나가는 걸텐데.”

솔이 말하고 웃는다. 향도 웃고, 민도 웃고 그리고 성수 씨도 살짝 웃는다. 나는 이런 생활을 즐겁다고 생각한다. 내 옆에 있는 준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지만 준은 웃지 않고, 올 기차를 안내하는 LED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늘 그는 먼 곳을 바라보고 있고, 내 생각이 닿지 않는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건 결코 나쁜 일이 아니지만, 그러나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건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나는 기차가 올 때까지 나머지 네 명과 열심히 떠들었다. 이윽고 기차가 플랫폼에 도착하고, 우리는 보통열차를 타고 홍대입구역에서 환승해 사무실까지 함께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라가 탄 우주선은 지구를 떠났다.

9.

유라가 화성에서 임무를 끝내는 데 3년 가까이 걸린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녀는 2년 9개월의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귀환했다. 그러니까 1월 초에 지구에 도착한 건데, 당시 나는 부지부장에서 지부장으로 승진 — 이라고 해도 별 거 없지만 — 해서 여러 가지 인수인계 절차를 치르던 와중이었다. 자연스럽게, 유라와도 많은 시간을 내서 만날 수 없었다. 그녀가 대학 진학 등으로 바빴기 때문에, 내 쪽에서도 그녀를 사무실로 부르기가 미안한 형편이었다. 그래서 나는 유라에게 짧은 메시지를 남겼다.

“시간 되면 사무실로 오세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3월 중순에 유라가 답장을 보냈다. 답장은 꽤 길었다. 나는 천천히 그녀의 글을 읽어보았다. 화성에서 있었던 일들도 재밌지만 여기서는 제끼고, 그녀 자신의 변화를 설명한 부분부터 인용해 보기로 한다.

“…지구로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놀랐던 건, 몸이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처음에는 중력 때문에 몸이 적응하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같이 참가했던 다른 분이 말씀하시길, 지구는 실제로 공전하고 있기 때문에 우주의 한 점에서 보면 굉장히 빠르게 움직이는 좌표라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태양계도 마찬가지로 공전하고 있으니, 이중으로 좌표가 공전에 따라 왜곡되는 셈이죠. 물론, 좌표의 상대성으로 이쪽에서 저쪽으로 움직이는 건 실제로 간단한 이미지만으로 가능하지만, 갑자기 좌표를 상상해 보라고 하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어요. 나머지 기분이라거나 몸 상태, 이런 건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요. (제가 우주선이 도넛 모양으로 생겨서 돌면서 움직였다고 설명했던가요?) 그리고 또, 순간이동에 대해서도 제 자신의 관념이라고 해야 할까, 내적인 의미가 많이 변했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했냐고 하면, 예전에는 좌표값을 상상하고 움직이는 게 순간이동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공간 속에서 내가 어떤 움직임을 가지고 있느냐와 함께 공간 속에서 내가 어떤 파장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순간이동은 실제로 좌표값을 가지고 움직이는 게 아니라, 우주 안의 한 점에서 존재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정신의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100%라는 건 없고 오직 확률이 중요한 거죠. 우리는 어디에 있을지 우리가 정할 수 없어요. 다만, 매우 높은 확률로 순간이동자들은 그렇게 할 수 있고,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 — 물론, 여기서 말하는 멀리라는 말은 상대적인 의미에서 좌표의 거리지만 — 의 확률의 패러미터를 높게 조정할 수 있느냐가 우리의 능력을 결정한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순간이동자는 가까운 거리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죠. 이건 결국, 다시 말하자면 상상력의 문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추신. 사무실에는 5월에는 갈게요. 지금은 뒤떨어진 공부를 따라잡느라 도무지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영어가 거기에 가 있는 동안 많이 늘어서, 영어 수업은 문제가 없어요. 앞으로도 영어 수업을 자주 듣게 될 것 같아요. 그럼.”

그녀가 사무실에 왔을 때, 우리는 몇 가지 의미에서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헤어스타일이 약간 긴 단발에서 포니테일로 바뀌었고, 게다가 가방도 평범한 가방에서 여행용으로 메는 륙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화장을 조금 했고 — 갈색으로 아이라인을 그렸다 — , 손목에는 모조 주얼이 반짝이는 팔찌를 차고 있었다. 하지만 신발은 여전히 스니커즈였다. 나는 유라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잘 왔어요.”

“안녕하세요. 다들 잘 지내고 계시는 듯해 다행이에요. 여러분에게 선물이 하나 있어요.”

“선물은 나중에 받고, 우선 이야기부터 해 볼까요?”

“그게 좋겠네요.”

유라가 의자 위에 포대자루 같은 베이지색 가방을 올려놓고, 우리는 모여서 열심히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어떻게 지냈냐고 물었고, 준은 말은 거의 하지 않았지만 유라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우주선 안에 있던 2년 9개월간의 경험에 대해 말했고, 그 중에 화성에서 있었던 1년 간의 체험에 대해서는 놀랄 정도로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당연히 이야기를 하며 시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었고, 우리는 중간에 이야기를 끊고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유라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보탰다.

“선물로 가져온 화성의 흙을 다들 마음에 들어할지 모르겠네요. 세유 언니, 화성에 가면 이런 흙을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이번 학기가 끝나면 휴학할 생각이에요. 미국에 조금 더 있으면서 여러 가지 재밌는 일을 해 보고 싶어요. 휴, 쉽지는 않네요.”

나는 마지막에 유라가 말한 쉽지는 않다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은 순간이동하는 이야기 속에서도 가장 중요한 핵심을 담고 있었다. 아마 그게 이야기를 통해 내가 말하고 싶은 바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나 말을 시작하기 전에 내가 주저하는 이유는, 삶에서 어떤 사실은 말로 표현하려고 해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말로, 말이 아무리 진실되다고 해도 거기에는 언제나 표현되지 않는 잔여가 존재하며, 잔여는 말하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무엇이다. 세상의 일은 때로 경험의 영역을 넘어선다. 그런 일은 그냥 받아들여야 하지, 자신의 틀 속에서 이해하려고 시도하면 안 된다.

10.

유라가 미국으로 떠나고 나서 며칠 뒤,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반색하며 받았다.

“무슨 일이에요?”

“지부장으로 승진했다면서요.”

“네. 저번 봄에 정식으로 승진했어요. 그거 축하하려고 전화한 거에요? 고마워요.”

“아뇨. 그런 것도 있고… 그보단 잠깐 이쪽으로 와 보시지 않을래요?”

“이쪽이라면 어디? 미국 얘긴가요.”

“네. 좌표를 제가 메시지로 보내드릴게요.”

유라는 어딘지 모를 좌표를 압축한 zip 파일을 내 스마트폰으로 보냈다. 나는 파일을 열어 확인해 보았다. 어디 보자, 위도와 경도가 이쯤이라면 혹시 여긴?

“휴스턴인가요?”

“네. 그런데 휴스턴이지만 휴스턴은 아니에요. 제 말은, 와 보시면 알아요.”

“알았어요. 그럼 곧 갈게요.”

나는 가방에 짐을 집어넣고 좌표를 머릿속에 그리며 그것을 이미지화한다. 휴스턴에 갔을 때, 나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유라는 그 가운데 웃으며 서 있었다.

“지부장으로 승진하신 거 축하드려요!”

“Congratulations!”

아이고… 이게 뭐람.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볼을 꼬집어 보았지만, 과연 꿈은 아니었다. 이런 서프라이즈 파티를 계획할 정도로 유라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는 걸까? 나는 이따가 그녀에게 자세한 사정을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서프라이즈 파티는 바로 끝났고, 우리들은 모여서 샴페인과 케이크, 피자를 먹으며 서로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교의 몇 턴이 지나고, 드디어 유라가 나의 곁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승진 축하드려요.”

“어. 고맙긴 한데, 어쩌다 이런 파티를 계획하게 된 거야? 무슨 생각으로?”

“그야, 승진하면 축하받고 싶다고 모두들 생각하니까요. 당연히 세유 언니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응. 축하받으니 기뻐. 하지만 이런 깜짝파티는 처음이라서 조금 놀랐어. 나는 깜짝파티 같은 걸 주위 친구들로부터 받아본 적이 전혀 없거든. 생일파티라면 몇 번 있어도, 그건 깜짝파티에 들어가지 않잖아.”

“분명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승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열심히 준비했어요.”

“고마워. 케이크하고 피자도 맛있다.”

“당연하죠.”

그 뒤로 나는 유라와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었다. 사는 이야기부터 해서 인간관계, 싫었던 사람과 좋았던 사람, 보기 싫은 사람과 보고싶은 사람, 어려웠던 시기 등등… 한 세 시간 정도 정신없이 떠들었던 것 같다. 이야기를 하다 중간에 유라는 이런 말을 꺼냈다. 왜 갑자기?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그나저나 언니, 혹시 화성에 가 볼 생각은 없으세요?”

“화성? 화성은 왜. 네가 다녀왔잖아.”

“그게 아니라, 제가 화성 좌표를 가지고 있거든요. 보정이 필요하겠지만요.”

“좌표를? 화성? 그게 가능해?”

“네. 좌표는 상대적인 거라고 저번에 만났을 때 얘기했잖아요. 그러니까 상대적 위치만 계산하면 자연스럽게 4차원 좌표를 기술할 수 있거든요. 보정이 필요하다는 건 거기서 오차를 줄인다는 의미고요.”

“대단한데… 그런데 좌표를 안다고 해도 맨몸으로 가면 얼어 죽을 거 아냐. 화성이 얼마나 추운데.”

“네. 그래서 제가 주는 좌표는 화성의 대략적인 좌표가 아니라, 화성 내 기지의 구체적인 좌표인 거죠. 언니를 위한 선물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동안 고생했으니까요.”

“잘 모르겠는데. 난 딱히 고생한 적도 없고, 힘든 일도 없었어. 승진도 어디까지나 운이 좋아서 한 거고. 여하튼 선물 줘서 고마워. 그런데 좌표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거기에 갈 수 있다는 말은 아니잖아?”

“네. 그렇긴 해도 나중에 한번 가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걸로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까요? 그러다 한번 실제로 가 볼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고요.”

“알았어. 그렇게 할게.”

“좌표는 나중에 보내드릴게요. 가면 우주복도 있으니까, 그걸 입고 밖으로 돌아다니면 될 거에요. 제가 입던 슈트를 선물로 드릴게요. 어차피 다시 갈 일도 없을 테니까.”

“그런가? 미래의 일은 장담할 수 없… 지 않은가. 알았어.”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도 잔을 들어 그녀의 잔에 부딪힌다. 이걸로 거래 성사인가. 유라는 그 밖에도 미국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수정구슬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속에 불꽃을 품고 있는 것 같아서, 들으면서 나도 덩달아 흥분했다. 정말 대단해! 나보다 훨씬 더 멋진 여성이 되었다고 느낀다. 그나저나, 처음 만난 뒤로 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흘렀구나. 나는 유라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를 감싸고 있는 세월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린다. 거기서 무엇을 얻을지, 주어진 정보를 따라 어떤 길을 택하게 될지는 내 결정에 달려 있다. 하지만 내 결정이라고 해도, 뭐랄까, 삶에서는 우연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이 있다. 결정론을 믿지는 않지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그건, 인간의 유한함을 의미한다. 인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지나간 순간에 있었던 일을 추억하고, 거기서 의미를 발견해 낼 수 있다.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동물은 어쩌면 무한한 생명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단일한 개체라는 의식이 존재할까? 내 생각에, 의식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은 인간의 ‘의식’과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생물의 낮은 단계에서의 의식이다. 그런 의식을 가지고 동물은 살아가며, 인간은 동물과 고등한 존재의 삶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순간이동도 납득 가능하지 않을까? 공간과 시간 사이를 이동한다는 건, 인간의 의식이 차원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어, 존재를 순간적으로 가능적인 존재로 만든다는 얘기일 테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은 고등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 의식으로 무엇을 하든, 그것은 인간이 주체적으로 결정해 움직이는 것이다. 내가 결정론을 믿지 않는 이유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후에, 유라에게서 받은 좌표를 가지고 나는 화성으로 가는 긴 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워본다. 화성에 가면 우선 뭘 할까. 슈트를 입고 선내를 돌아다니다, 기지 앞에 주차돼 있는 탐사용 로버를 타고 밖으로 나온다. 로버를 타고 밖으로 나오면 거기에는 드넓게 펼쳐진, 붉은 화성의 토양 — 산화규소가 다량 포함되어 있는 — 이 나를 맞이한다. 지구보다 자전주기가 30분 긴 화성에서는 하루 시간이 30분 정도 늘어난다. 그렇다고 늦잠을 30분 더 잘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화성에서는 ‘늦잠’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으며, 내가 10시간을 자든 15시간을 자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아니, 아무도 뭐라고 할 수 없는 데 가깝다. 화성에서 로버를 타고 나는 큐리오시티가 걸었던 궤적을 추적하는 상상을 해 본다. 본체는 이미 흙 속에 파묻혀 있겠지만, 로봇이 이동했던 궤적은 바퀴자국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기지로 돌아와 사람들이 남긴 기록을 살펴보고, 창고 안에 저장돼 있는 장기보존 우주식을 먹고, 신호가 닿지 않는 스마트폰을 켜고 지구와 소통해 보려고 시도한다. 실패할 게 뻔하지만 그게 뭐 대수랴. 그리고 슈트를 입고 스마트폰을 들고 밖으로 나와,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는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하루를 보내고, 이틀 사흘을 보낸다. 영화 «마션»처럼 화성의 흙을 퍼 와서 물을 뿌리고 비료를 섞어 감자농사를 지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기지가 날아갈 위험이 있기 때문에 굳이 내가 시도하진 않는다. 밥을 먹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다보고, 로버를 조종해 산을 올라갔다 내려온다.

유라는 이제 내 곁에 없다. 대학을 최우수로 3년 반만에 졸업하고 나사에 엔지니어로 취직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망하지 않는 이상 다시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녀가 최종적으로 어디에 자리잡게 될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을지, 어떤 음식을 소울푸드로 삼고 누구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될지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내가 아는 건 그녀가 순간이동자며, 나 또한 그렇다는 사실이다. 나는 순간이동자다. 이는 우주가 탄생하고 다시 사라진다고 해도 변하지 않을 사실이다. 이제 이야기도 슬슬 끝을 향해 나아가는 것 같다. 이제 뉴욕지부에서 연락이 올 것이다. 태양계 바깥 존재와의 최초의 커뮤니케이션에, 내가 대표로 참가하기로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말로 첫인사를 건네야 할지 스테들러 HB연필을 쥐고 고민한다. 열흘 정도 글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해 보았지만, 아무래도 나는 문장력이 없는 것 같다. 궁여지책으로 나는 옛날 우화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우화는 이렇게 시작한다.

11.

옛날 옛날에, 여우와 두루미가 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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