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의 미학, 안소현

<산과 사막의 앵무새>(2017)

어디선가 그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것은 어둠 속의 불빛이고,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것은 그 불빛을 저 멀리 어둠 속에서 지켜보는 일이라고. 그 구절을 다시 떠올린 것은 삶이란 어쩌면 설 자리를 찾아 끊임없이 헤매는 과정에 붙여진 이름 아닐까 생각했을 때였다.

<SCARF>(2017)

‘헤맨다’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우리는 쉬지 않고 움직이지만 정작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왜 그곳에 가야 하는지 생각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 빠진 어디는 불안의 냄새를 풍기고 그걸 감지할 때마다 우리는 핸들이 고장 난 자전거처럼 기우뚱거린다.

<ㅎㅠㅅㅣㄱ의 나>(2017)

세상은 넓고 다들 어딘가에 속해 있는데 나만 혼자 텅 빈 거리를 배회하는 기분. 자꾸만 주위를 둘러보게 되는 건 그래서다. 급한 대로 눈에 보이는 아무 곳이나 비집고 들어가 본대도 오히려 더 헛헛해질 뿐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여전히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새로운 곳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식물원>(2017)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야 할지 생각하려면 우선 멈춰서야 한다. 안소현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가능해진다. 그곳은 어지러운 소음이 완벽하게 걸러진 곳, 햇살이 의자 위로 비스듬히 쏟아져 내리고 선인장 마디마디 사이에 머무르는 곳이다. 한 번쯤 와 본 것도 같다고 착각할 만큼 일상적인 풍경으로 채워져 있지만 아무데서나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가능하게 하는 특별한 곳이다. 이를테면 온몸에 힘을 빼고 가만히 앉아있거나 멍하니 저 너머를 응시하는 것 같은 일들 말이다.

<푸른 숨>(2017)

이곳에서라면 마구 뒤섞였던 어제와 오늘을 가지런히 널어놓고 오롯이 내게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러고 보면 널찍한 선베드나 견고한 의자가 이렇게 말을 거는 것 같기도 하다. 자, 이리 와서 편안하게 앉아. 네가 여기에 있는 동안 너의 자리가 되어줄게.

<ㅎㅠㅅㅣㄱ>(2017)

물론 언제까지고 머무를 수 있는 낙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안소현의 세계 역시 영원한 종착지는 될 수 없지만, 힐링이라는 단어가 하나의 키워드였을 만큼 한 박자 쉬어갈 곳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우리에게 쉼표를 선물한다. 그녀의 작품이 유난히 포근하고 든든하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모과와 선인장>(2017)

문득 그런 느낌을 받는다. 이곳은 필요하다면 언제든 다시 찾아오라는 듯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거라고, 바깥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변하고 사라지든 상관없이 묵묵히 우리를 기다려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세상이지만 이 느낌은 왠지 믿어도 좋을 것만 같다. 자주 지치고 길을 잃는 우리들에게 그런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위안이 되니까. 그리고 이를 통해 깨닫는다. 다시 돌아올 곳이 있기에 잠시 동안 떠나있는 것이 그리 슬프지만은 않다는 것을. 쉼표가 가지는 미학은 바로 그런 것 아닐까. 그렇게 오늘도 안소현의 그림에서 위로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