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
19 min readJun 4, 2020

내 인생의 동아시아인들*에게

*이글은 어디까지나 내 경험과 내가 만난 사람들을 바탕으로 썼으나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쓰기도 했습니다. 태국, 필리핀, 싱가포르에서 자라면서 만난 동남아시아인, 남아시아인, 그리고 백인들을 생각하지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글은 당신들을 위한 글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무엇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지난주는 무엇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까? 누구를 위해 걱정을 하고 있습니까? 현재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흑인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까? 아니면 그런 주제를 다루기에는 불편하지는 않으셨습니까? 혹시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않나요?

이해합니다. 우리는 다 “”에서 자라났습니다. 우리는 백이 곧 기준이라고 듣고 자라났습니다. 백의 틀과 세계관이 보편적인 인간경험이라고. 우리는 이 고정관념을 도전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주어진 환경과 어울리도록 백을 최대한 내세우도록 했습니다. 우리는 백인처럼 말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백인친구들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백인 선생님, 교수님, 멘토, 코치 등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백인 상사와 동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백인들과 사귀기도 합니다. 우리는 백인들의 책, 방송, 영화 등을 즐겨봅니다. 우리에게 백은 친근합니다. 우리는 심지어 백색 자체를 좋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흑” 또한 좋아하고 흑으로부터 훔치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렇게 하면 동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깁니다. 우리는 힙합, 랩, 농구, 흑인 아티스트나 운동선수, 흑인 트위터, 흑은 밈 (meme)등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또 N으로 시작하는 그 단어를 말하기 좋아합니다. 우리는 “Yas. Naw. Word. Squad. AF. Dope. Extra. Aite. Fuck it up. It be like that”과 같은 용어를 흔히 사용하면 멋있을 거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우리는 이른바 “흑인영어 (African American Vernacular English)”를 구사함으로서 사랑받고 시선을 끌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흑인문화에서 유래된 주류 은어를 쓰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흑인문화를 좋아하지만 막상 흑인들의 목숨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족 일원이 반흑인주의적인 말을 하면 지적을 안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족에게 있는 반흑인주의를 곧이곧대로 인정해버립니다. 이건 원래 이런 것이라면서. 우리가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그들도 항상 그래왔다고.

흑인들은 정부에 의해서 끊임없이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경찰의 손에서. 감옥, 구치소 등에서. 경찰제도는 1838년에 흑인들을 제어하고 노예로 삼기 위한 목적하에 만들어졌고 그 목표를 아직까지도 효과적으로 달성하고 있습니다. 미국정부가 매년 치안에 천억불을 쏟아붇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이 돈을 치안보안에 쓰는 대신에 노숙자 문제를 이백만불로 해결할 수 있거나 모든 미국인들에게 공짜로 대학교 입학을 시키는걸 삼백사십만불로 해결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중요한 공공정책을 지원할수 있습니다. 미국 수정 헌법 제13조에 의하면 노예제도는 아직 합법입니다. 이 나라는 무상 수역을 통해서 대량생산을 이뤄냈습니다. 이번 코로나사태의 사상자중에서 흑인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흑인트랜스젠더들은 끊임없이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흑인 엄마들은 병상에서 죽음을 맞이하고있습니다. 흑인부모들은 자식들을 정부기관에 빼앗기며 흑인가족들은 영구적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흑인들은 병원에서 흔히 “미친놈” 취급을 받으며 무참히 갇혀 살고 있습니다. 흑인아동들은 학교에서 학대 받으며 학교제도에서 쫓겨나고 있습니다. 흑인들은 “과도하다,” “적합 하지않다,” “문제아”라는 등의 이유로 취업을 못하고 있습니다. 흑인장애인들은 강제입원등을 통해서 그들의 인간성을 빼앗기곤 합니다. 흑인거주자들은 gentrification으로 인해서 가족이 대대로 거주하던 집에서 쫓겨나 거지가 되곤 합니다. 또한 흑인들은 redlining으로 인해 부유한 백인 동네에 입주 허가를 거부당하며 결국에는 높은 퀄리티의 교육, 보건, 주거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피해와 폭력은 방지가 가능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흑인들이 살고 있는 동네는 주민들이 생성하는 오염보다 56% 더 많은 오염을 겪습니다.” 그리고 오염이 제일 심한 폐기물 지역에 살아야만 합니다. 이런 해와 폭력은 방지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참여할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반흑인주의적 인종차별은 우리의 문제입니다.

동양인들이 반흑인주의적이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동양인들이 겉으로 흑인들에 향해 혐오스러운 행동을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실은 이와 같은 정의가 인종차별의 체계를 오히려 유지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인종차별이라는 것은 실제로 더 복잡한 것입니다. 한 인종을 대하는 특별한 태도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종차별이라는 것은 백인들의 힘으로 인해 채택된 여러가지 정책이 곧 인종차별적인 발상을 유발하며 우리의 무의식, 관계, 가족, 직장, 기관, 동네, 커뮤니티에 침투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 침투하는 정도가 심각하여 우리로 하여금 의도치 않게 남에게 해를 끼치게 됩니다. 이 글에서도 나오듯이 백인우월주의는 상어가 아니라 바다입니다.

반흑인주의는 “흑인들의 풍부한 역사와 문화가 거부 당하고, 비하 당하고, 억압 받고, 혐오를 불러일으킨다는 신념과 그 신념의 실천”입니다. 또한 그 역사와 문화를 우리의 재미와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것.

즉, 우리는 반흑인주의로 인해 이익을 받음과 동시에 피해를 입기도 합니다. 무슨 연유인지 설명하겠습니다.

우리가 반흑인주의적임과 동시에 반흑인주의에 의해 이익을 받고있는 방식

우리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흑인문화를 도용 (appropriate)하기 좋아합니다. 유명세를 탄 동양계 유명인을 보면 다수가 소위 말하는 흑인영어를 구사하면서 (흑인성을 도용) 명성을 얻곤 합니다. Awkwafina가 그 중에 한 예입니다. 그들이 흑인 흉내를 냄으로써 유명해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흑인들이 흑인영어를 사용하면 보통 취직을 못하고, 고등교육기관으로부터 거부당하며, 백인들을 비롯한 다른 소위 부( wealth)의 문지기들로부터 “교양이 없다”라고 판단 받습니다. 하지만 비흑인들이 흑인영어를 사용하면 전술한 것들은 커녕 오히려 동료들로부터 “멋있다”며 칭찬받기 일쑤입니다. 결과론적으로 흑인들은 생존하기 위해서 항상 자신의 흑인영어 사용을 제어해야 하는 반면, 비흑인들은 자유자재로 언어를 바꿔가면서 자신의 언행이 초래할 사회적 경제적 결과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비흑인인 우리의 언어가 생존을 위해서 항시 자기 제어를 해야 되는 흑인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려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양인이 흑인들을 대상으로 경찰을 부르거나, 흑인들을 살해하거나, 흑인들의 몸을 해치는 사례는 수없이 많습니다. 동양계 경찰관들은 그들을 죽이거나 혹은 죽는 모습을 바라보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우리는 마침 우리가 백인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동양인들이 반흑인주의적 행동에 참가하는 예는 이 링크를 통해서 더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흑인들이 깡패, 범죄자이며 위험하고 험악하다는 인식을 영구화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백인들이 문화적으로나 행동학적으로나 열등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일차원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불과 몇가지 형용사로 축소시키곤 합니다.

다음과 같은 반흑인주의적인 방식들도 있습니다: “반흑인주의적인 연애취향, Black Lives Matter와 같은 흑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권운동의 진보에 대한 저항, 어두운 피부를 가진 사람들을 비하하는 컬러리즘 (colorism)에 빠지는 경우 등.”

전세계적으로도 우리는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반흑인주의의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중국기업들은 아프리카대륙 일부에 진출하여 식민자 정신으로 아프리카인들의 노동을 착취하며 자원을 약탈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위구르 무슬림 커뮤니티는 “재교육 캠프”에 강제로 구속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략학살과도 다름이 없습니다.

싱가포르의 말레이 무슬림들과 인도인들은 정부로서 억압을 받으며 주거, 교육, 취업 등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반흑인주의로 인해서 피해를 받는 방식

미국의 “중국인 배척법 (1882)”의 배후에는 당시 백인 정치가들이 중국인들에게 입국과 시민권을 허가하기 시작하면 흑인들에게도 동일한 취급을 해줘야 된다는 우려가 있었다는 사실 알고 있었습니까? 흑인들에게 인격을 다시 돌려준다는 것? 그것은 백인들의 입장에선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미국의 자본주의의 근간에는 흑인들과 그들의 노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는 흑인들의 피와 강제노동으로 세워졌습니다. 이 나라는 아직까지도 감옥 산업 단지와 직장에서의 착취를 통해 흑인들의 피와 강제노동에 의존합니다. 그 흑인들은 백인보다 30–44% 적은 수입을 받습니다.” 다시 강조하자면, “인종차별은 태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힘의 차이에서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인종차별은 자본주의에 의해 힘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반인종차별주의자가 된다는것은 반자본주의자가 된다는 것과 동일합니다. 인종차별의 힘과 성차별의 힘은 태도가 아니라 자본주의에서 시작됩니다.

흑인들은 항상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고 지적됩니다. 이러는데에는 고의의 이유가 있습니다. 미국이 전처럼 운영 되려면 흑인들이 항상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고 여겨줘야됩니다. 162명의 억만장자들은 인류의 반과 동등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2019년에 생산된 부의 82%는 세상에서 제일 돈이 많은 1% 자산소유자들에게 넘어갔습니다. 그 반면에 제일 빈곤한 삼십칠억명은 부가 전혀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왜 한번도 재산이 제일 많은 사람들을 탓하지 않게되죠? 왜 항상 흑인들의 탓으로 여겨지는거죠? 한 대륙의 전 식민을 착취하고, 죽이고, 해하면서도 전혀 질타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이 나라가 흑인들을 하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간보다 하위생물이라고 여기는겁니다. 우리도 이렇게 생각하도록 자본주의와 재산이 제일 많은 사람들이게 세뇌된겁니다.

중국인 배척법은 1917년에 이르러서 모든 동양인들에게 적용하게 되었습니다. 이 배척법으로 인해 대규모의 반동양인 캠페인이 형성되고 중국인 남성과 남아들의 대량학살에 이르게 됩니다. 미국 역사상 최대규모이었습니다. 최근에 반동양인적인 증오범죄(hate crime)가 늘어난 것은 알고 있겠죠? 이 때문에 동양인과 흑인이 대동단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수많은 조상들이 흑인들의 목숨을 위해서 싸웠습니다. 반흑인주의를 척결하지않으면 결코 반동양인주의를 척결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서로를 위해서 싸워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만이 백인우월주의에 맞서 싸울 수가 있습니다.

1965년부터 동양인들의 입국을 다시 허가하기 시작합니다. 나라가 좋은 진보적인 취지가 있어서가 아니라 서방의 제국주의의 영향을 강화하며 공산주의가 제3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견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따라서 미국은 공산주의보다 우월하고 공평하고 정의로운 민주주의의 소유자로서 이미지를 재브랜딩하게 됩니다.

또한 동양인들을 대상으로 “덜 차별”하려는 또 다른 의도도 있었습니다. “모델 소수민족 (model minority)”라는 것을 들어본 적 있습니까? 1966년에 한 백인이 지은 개념으로 동양인들은 흑인과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흑인들과 같은 “문제적인 소수민족”과 달리 동양인들은 “모범적인 소수민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하고, 불평 안하고, 금전적으로나 학업적으로나 성공적이며, 정부의 보조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이 것은 당시 시민 평등권을 요구하던 흑인들을 폄훼하는 선전이었던 것입니다. 당시 미국에 입국허가를 받았던 동양인 이민자들은 이미 높은 학위를 보유하고 커리어를 쌓아 놓았기에 그들이 소위 말하는 “아메리칸 드림 (the American Dream)”을 이뤄냈다고 보여진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는 편견의 상자에 놓여졌습니다. 우리 중 몇은 이로 인해 높은 지위와 좋은 직장이라는 이익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 상자로 말미암아 우리는 항상 불평불만없이 열심히 묵묵히 일해야 하는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비인간적이게 되고, 자존감이 떨어지고, 결국에는 보여지지 않게 됩니다. 미국의 민중은 우리 동양인들이 잘 살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금전적인 성공과 학업적인 성공을 겸비했다고. 하지만 우리는 억압받고 있습니다. 그 아이디어는 환상입니다. 여러 동양인 커뮤니티들은 실제로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빈곤, 자살, 가정폭력, 정신질환, 교육의 결여, 낮은 졸업률, 불공평한 법제도, 증오범죄 등으로 힘겹게 살고 있는 커뮤니티가 많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투명인간과도 같은 존재인가하면 2002년부터 2014년까지 동양인 커뮤니티가 뉴욕시에게 받은 사회복지서비스 보조금은 전체 기금의1.4%에 불과했습니다. 분노가 차오르지 않습니까?

반동양인주의는 반흑인주의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모델 소수민족이라는 개념은 인종차별주의적이며 분열을 초래하는 환상입니다. 우리와 흑인들을 비롯한 다른 이민자 그룹 사이에 쐐기를 박는 것이 그 의도였습니다.

이 나라는 계급과 이중이라는 개념을 근본으로 건국되었습니다. 흑인은 동양인보다 열등하다. 백인은 우월하다. 흑인은 나쁘다. 백인은 좋으며 순수하다. 우리는 백인들의 편을 그만 들고 대담하게 소신을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흑인들이 해방되는 순간 우리 모두가 해방될 것입니다. 흑인들이 자유로워지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수많은 권위는 과거의 흑인들의 우리 모두를 위한 투쟁이 없었으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특권 소유의 의미, 억압의 의미, 목숨을 위한 투쟁의 의미를 이해하게 해주는 언어와 틀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에 흑인여성들이 다른 소외된 여성들을 포함한 개념인 “유색여성 (women of color)”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유색인종 (people of color)” 이라고 부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로 인해 이 단어의 사용은 곧 반흑인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을 뜻하며 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흑인 리더쉽의 절도와 흑인들의 상실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만약에 당신이 퀴어/트랜스라면 더더욱 흑인 퀴어/트랜스들이 과거에 투쟁한 덕에 지금의 LGBTQ+인권이 존재한다는 점을 무시하면 안됩니다. 그들이 자유를 위해 폭동을 일으키고 약탈을 감행했기에 지금 우리에게 LGBTQ+인권이 있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프라이드의 달 (Pride Month)의 근본인 스톤월 반란 (Stonewall Uprising)입니다. 이 반란에 관해서 더 설명하자면,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살해되고 나서 110개의 미국 도시가 반란을 시작했고, 4천7백만불 상당의 피해를 입게 됩니다. 반란이 시작되고 나서 6일 뒤, 1968년 민권법 (Civil Rights Act of 1968) 이 통과 됐습니다.

동양계 미국인으로서 우리의 경험은 매우 복잡합니다. 우리는 억압의 느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울리기 위해서 힘겹게 노력하는 느낌도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한편 우리는 굉장한 특권과 권력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흑인들과 그들의 커뮤니티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들을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특권입니다. 그들에게는 이와 같은 럭셔리한 특권이 없습니다.

폭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폭력이란 단순히 첨예한 신체적 성적 폭력에 그치지 않습니다. 폭력에는 우리가 사용한 인종차별주의적인 언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종차별주의적인 이념과 정책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한 사회에 있어서 구성원들의 잠재력을 깨우칠 수 없게끔 방해하는 조건을 제시함으로서 그들의 인격을 거부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폭력인 것입니다. 흑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살고 싶은 인생을 못 살게 방해하며 자신들이 정녕 되고 싶은 사람이 되기를 힘들게 만듭니다. Ibram x Kendi가 말한대로

“우리는 정책의 결함이 아닌 개인의 결함을 보게끔 단련되어 있다.”

나 또한 반흑인주의로부터 무죄하지 않습니다. 내 반흑인주의와 백인우월주의와의 공범 관계는 종종 나타나곤 합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항상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자신을 자주 관찰하고 지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 또한 간혹 안주하게 되고 희망을 잃을 때도 많습니다. 몇 년 전만해도 내 주위에 있는 동양인들은 절대로 신경을 안 쓸 것이라고 단정 지으며 좌절했던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보고 나에게 좌절할 권한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흑인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희망이 필요합니다. 나는 그들의 생존을 위해 단결을 다짐합니다.”

Mariame Kaba의 명언이 생각나네요: “희망은 수양의 결과물이다. 희망이란 감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희망이란 슬픔과 아픔을 못 느끼게 해주는 것이 아니다. 희망은 낙천주의가 아니다. 희망은 곧 불리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굳게 믿고 그 증거가 바꿔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다.”

나는 끊임없이 자신을 재평가하며, 흑인들의 목소리와 그들의 요구들을 들어주며, 다른 동양인들을 불러들여, 계속적으로 비평적 숙고와 사려 깊은 행동을 하려합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흑인들과 빈곤한 사람들을 탓하고 문제를 삼는 시스템을 해체함과 동시에 그들에게 자신들의 인생에 대한 결정력, 재력과 자원을 넘겨주는 것입니다.

자 그럼 나와 같이 행동으로 옮겨봅시다. 여러가지 실천할 기회가 많습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 당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의논함과 동시에 실천을 하세요. 둘 다 필요합니다.

  1. 흑인친구들을 도와주세요

흑인친구들과 직장동료들을 지지해주세요. 연락해보세요. 답장을 주도록 압박을 하지말고요. 그들에게 장문의 원치않은 메시지를 보내거나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지 마세요. 단지 그들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으며 지원할 수 있는 방도를 모색하고 있다고 알려만 주세요. 당신이 느끼고 있는 죄책감이나 감정들 위주로 연락하지는 마세요. 당신을 위한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드디어 깨달은 비흑인친구들에게서 이야기를 구구절절 듣거나 다루고 싶어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무언가를 제시해 보세요. 예를 들어 좋을 자료들을 공유하거나, 돈을 후원하거나, 직장에서 일거리를 더 맡아준다거나, 심리치료비용을 대준다거나, 감정노동을 해준다거나, 케어패키지를 보내준다거나, 흑인상인들의 비지니스에서 기프트카드를 증정한다거나. 만약 흑인들을 부하로 두고 있다면 그들에게 무상휴가를 주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들의 휴식과 정신건강을 지원해주세요.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나는 무엇에 액세스가 주어졌고 무엇을 공헌할 수 있는지. 창의성을 발휘해보세요. 분명히 제공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당신의 특권을 활용할 때입니다.

흑인들이 죽은 뒤에야 그들의 목숨을 위해 투쟁하지 마세요. 흑인들의 목숨을 항상 존중해주세요. 높이 추켜세워주세요. 당신의 권력을 사용해주세요. 당신의 직장의 인종다양성의 결여와 흑인리더쉽의 부족함에 대해 말을 꺼내보세요. 흑인들을 리더쉽의 지위에 더 세울 수 있도록 추천해보세요. 직장이나 다른 공간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도록 해주세요. 하지만 그들의 허락없이는 하지 마세요. 억지로 그들의 영웅이 되려고 하지 마세요.

흑인문화의 도용은 물론 N으로 시작하는 그 단어을 비롯한 흑인영어를 구사하지 마세요.

흑인상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주문하고, 흑인들이 운영하는 은행에 투자를 하고, 흑인들이 운영하는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세요.

2. 자택에서 액션을 취하세요

경찰부서의 재원을 축소시킵시다. 정말 중요합니다!

각종 탄원서에 서명하고 여러 단체에 후원을 합시다

Movement For Black Lives 탄원서에 서명을 하고 그들이 제시하는 하루 액션을 취해 봅시다

ACLU액션문자에 가입합시다. 우리의 시민자유투쟁을 위해 도움이 필요할 때 우리에게 구체적인 방법을 포함한 문자를 보내줄 것입니다.

3. 편지를 작성합시다

Joshua Williams에게 편지를 보냅시다. 그는 현재 퍼규슨(Ferguson) 시위에 참가한 뒤로 체포되어 아직까지 옥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2020년6월에 가석방 자격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 당장 보내세요.

현재 감옥생활을 하고 있는 성적폭행 및 가정학대의 생존자들을 위해서 편지를 보냅시다

4. 후원합시다

이 링크 를 통해 각종 후원단체를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후원을 할때에는 후원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부가설명을 하지 마시고 다양한 이모티콘이나 하트를 써서 보내주세요! 부가설명을 읽고 후원을 받는 사람이 더 이상 돈을 못받게 조침을 하는 곳들이 많습니다.

5. 시위에 직접 참여하거나 참가하고 있는 시위자들을 도와주세요

현재진행중인 NY시위 리스트

백인들이 시위에 모습을 보이도록 장려해주세요. 직접 참가한 백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흑인의 몸들 사이에 백인의 몸이 섞이면 흑인들이 비교적 안전해진다고 합니다. 이 링크와 이 링크를 참조하세요.

시위에 참여하는 시위자들이 나타난 사진을 SNS에 포스트하지 마세요. 시위자들의 신상이 밝혀지고, 구속되거나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손에 죽임을 당하기도 합니다. 안전이 제일 중요하며

무엇을 준비해야 되는지 미리 숙지해두세요. 국가감시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세요. 이 가이드를 참조하세요.

비의료진을 위한 응급처지방법

시위 이전, 도중, 이후에 활용할 수 있는 자기보호 팁.

Street Somatics: 시위중 신경을 안정시키는 팁

액션에 참여할 시에 따라야 하는 윈칙들 (@peacebewithjune)

액션에 참여할 시에는 되도록 진정하도록 노력하고 리더들의 말에 귀기울여 주세요. 그들의 말과 지도에 집중하세요.

설령 흥분해서 원치않고 불필요한 행동을 삼가주세요.

극적으로 멋있어 보이려는 흥분한 백인들을 구치소에서부터 보석하는데에 소비하는 시간, 에너지, 돈은 낭비입니다.

무엇을 위해 여기 왔고 싸우고 있는가에 대해서 알고 있으세요. 이 활동을 수년간 해왔던 당신 주변의 사람들의 말씀에 귀기울여주세요.

시위자들을 위해 케어패키지를 제공해주세요: 마스크/살균제, 프린트 자료/사인 등

6. SNS에서 사람들과 의논하며 포스트합시다

동양인들과 연락을 취하세요. 지금 그들은 흑인들을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해보세요. 이러한 대화를 보편화합시다. 이 편지 또한 공유해도 됩니다.

가족과 친구들과도 상의해보세요. 이 링크를 통해서 각종 언어로 번역된 Letter for Black Lives를 열람할 수 있습니다. 가족과 커뮤니티와 공유해보세요.

친구들이 간혹 해로운 발언을 하면 곧바로 지적하세요. 여기여기 팁이 있습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SNS에 올립시다. 하지만 흑인들이 유린당하고 있는 비디오와 사진들을 올리지는 마세요. 흑인들에게는 엄청난 트라우마이고 그들이 애도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하는 행위입니다.

7. 하지만 정말 폭력이 정답인가하는 분들에게

약탈에 관련된 좋은 교육컨텐츠

약탈을 옹호하는 글

백인목격자와 현재의 린치형태

Blaqillegalism 에 관한 글: 흑인은 곧 범죄이다

이럴때는 무슨 말을 해야하지…?

8. 끊임없이 배우세요

알리십(allyship)형성에 관한 유익한 가이드

흑인/동양인 단결: 우리가 배운 것들

반흑인주의를 타도하자: 교차성 (Intersectionality)의 분석

길거리 너머의 투쟁에 참여할 수있는 방법 26가지

흑인/동양계 미국인 페미니즘 단결: 독서리스트

동양계 미국인을 위한 인종 정의 키트

PBS 동양계 미국인 역사 다큐시리즈

베트남 커뮤니티의 반흑인주의

흑인 목숨을 지지하는 인도계 미국인들

일본어로 된 Black Lives Matter관련 컨텐츠

반흑인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중요한 한국어 용어집이것

한국인 가족들과 이야기하기 전에 숙지해야 될 것들

동양계 미국인들이 다루는 600년사

인종차별, 편견, 경찰의 잔혹행위들을 다루는 흑인 다큐멘터리

링크를 통해 더 많은 사회적 인종적 정의에 대한 자료를 참고할 수 있습니다.

희망을 유지하며,

보경 올림

최민석이 번역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