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와 미니멀리즘
친절히 제목이라고 안내하는 미디엄 포맷 덕분에 노마드와 미니멀리즘이라고 쓰기는 했지만 너무 거창해 나만 보고 있는데도 부끄럽다. 게다가 노마드란 단어는 한참이었던 유행도 지난 것 아니었나. 그렇게 말하자면 미니멀리즘도 이제 ‘거의 지나가고 있는’ 화두 같기도 하다.
이런 생각이 확고해진건 아마도 올해인 것 같지만 한 집에서 30년 이상을 사는 삶을 살고 싶다. 어느 구석하나 내 손길과 시간이 닿지 않은 구석이 없는 그런집. 모든 것이 지난 시간을 거치며 나의 라이프 스타일에 완전히 최적화 되어 있는 그런 집에 살고 싶다. 그러니 내가 바라는 삶의 모습은 ‘노마드’와는 반대편에 있다. 미니멀리즘도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가구가 없는 집, 짐도 별로 없는집, 누가 사는 것 같지도 않게 나와 있는 살림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집같은 이미지로 머리속에 정리되는 미니멀리즘은 너무 인위적이다. 그것은 ‘잘 정돈된’ 것과 다르다. 갖고 싶은 것도 많고 좋아하는 것도 많은 나의 공간은 미니멀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서울을 떠나 시드니에 와 있는 나의 현재는 다분히 노마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민을 온 것도 아니고 여건만 된다면 살아보고 싶은 도시야 얼마든지 줄줄 읊을 수 있다. 도쿄는 얼마나 좋겠고 삿포로는 또 얼마나 좋겠고 베를린에서 살 수 있다면 마다할 일이 뭐가 있겠나. 그리고 내가 지금 여기인 것은 그것이 가능한가를 시험해 보는 과정이라 할 수도 있다. 30년 이상을 한 집에서 사는 삶을 원한다면서 나는 왜 정착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자꾸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일에 기웃거리는걸까.
지난 3월 중순 잠시 하우스 쉐어를 들어간 나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들이 뭔지 고민해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짐에는 여름옷 몇 벌과 가을 옷 몇 벌 신발 몇 켤레 그리고 풀러볼 기회도 없었던 만재도 미역이 들어있었다. 몇 달 지나지도 않았는데 책은 왜 자꾸 늘어나는지 부피만 차지하는게 아니라 무겁기도 무겁다. 이것만으로 ‘살림’을 할 수는 없으니 필요한 것들을 생각했고 급한대로 수건과 헤어드라이어를 구입했다. 좁은 공간에서 빨래를 널 수 있도록 빨래집게가 동그랗게 나란히 달린 빨래걸이도 구입했다.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구입한 헤어드라이어였지만 단출한 살림살이 중에서도 그것은 군계일학이었다. 내가 가진 모든 살림의 왕중왕. 이정도면 다이슨 헤어드라이어를 사도 아깝지 않겠어!를 외쳤다. 수건과 헤어드라이어와 함께라면 세상 어디에서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며칠이었다.
하지만 방 하나 욕실하나 쓰는 살림살이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아무것도 없이 생활을 어찌하냐며 간단한 청소도구와 먹고 살기 위해 필요한 한국인의 기본 양념과 수건을 친구 시어머니께서 챙겨다 주셨다. 그리고 먹고 살 식재료와 이것저것을 구입했는데 그 커다란 카트를 꽉 채워 집 앞까지 밀고왔다. 매일매일 미니멀, 최소한으로를 상기시켰지만 한 사람이 산다는 것은 뭐 이리 필요한게 많은건가. 심지어 이제는 냉장고에 식재료를 보관하기 위한 콘테이너까지 늘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계절이 바뀌면서 옷이 필요해졌다. 스웨터를 세 개 샀다. 청바지는 가져온 것 두 개였다. 입지 못해도 수트케이스 하나에 꽉찬 옷가지를 생각하면 더이상의 옷은 무리였다. 나는 한동안 스웨터 1,2,3,1,2,3,1 바지 1,2,1,2,1,2,1 을 반복해 입었다. 무엇을 입을지 고민하지 않고 고민할 만큼 옷이 없는 것은 생각보다 편했다. 물론 출근이나 다른 사회생활을 딱히 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라고 쓰고 보니 나름의 사회 생활을 하고 있는 요즘도 나의 착장은 별반 변화가 없다. 미국에서 가져온 스웨터 세 개와 청바지 하나가 추가 되었을 뿐.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이사를 나올 때 나의 짐은 이민 가방 한 개, 제일 큰 여행가방 하나, 기내용 가방 한 개에서 그 외 다수의 비닐봉지, 쇼빙백, 작은 가방에 구겨넣은 살림으로 늘어났다.
지금 지내는 집은 ‘Fully furnished’ 이다. 나의 취향이 반영되지 않는 기본적인 살림살이가 갖춰져 있다. 그렇다고 누구의 취향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케아의 취향만이 당당히 존재감을 뿜고 있는 ‘저예산’ 가구완비의 공간이다. 작은 공간에 정말 없는게 없다. 다른 집들은 공동 빨래방을 이용하는데 이 집은 어디서 구했는지 궁금할 정도로 작은 세탁기가 있다. 주방 살림도 넉넉하고 다양하게 하지만 최대한 저렴한 것들로 잘 챙워져있다. 샌드위치 메이커가 있는 걸 보고 웃음이 나왔다. 노력했네. 좁은 주방엔 식기세척기도 있다. 못생기고 칙칙한 블랙 레자 소파이지만 유사시 침대로 변신할 수 있는 유용한 살림도 있다. 티브이는 고려도 안 했던 살림인데 서울집 티브이 보다도 크다. 작지만 4인 다이닝 테이블도 있다. 집이 작으니 작은 테이블을 놓는게 맞다.
그런데 이렇게 다 갖춰진 것 같은 집에서도 필요한 것은 계속 늘어났다. 이사를 오고 제일 먼저 나도 이케아로 향했다. 21세기를 사는 지구인들에게 ‘이케아’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걸까. 세계 곳곳에 이케아 쇼케이스로 살아가는 가정들을 상상하니 정이 뚝 떨어질 것 같았지만 내게 필요한 것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안다. 내가 생각하는 단정한 집의 첫 째 조건, ‘책이 없을 것’은 이미 불가능이다. 책이든 가방을 풀려면 작은 책장이라도 필요했다. 일을 시작하면 가장 필요할 프린터는 배송기간을 고려해 이사 전에 주문했다. 프린터라도 올리려면 작은 선반도 필요했다. 미니멀은 틀렸어도 단정하게라도 살려면 모든 물건은 자리가 필요하다. 부족한 수납공간을 해결해주고 침대 옆 협탁이 되어줄 바구니 선반도 구매했다. 욕실에도 한 뼘남짓 남는 공간에 맞는 수납서랍을 사다 넣었다. 최소한으로, 꼭 필요한 것만 구입했다고 할지라도 이미 있는 살림까지 생각하면 이사갈 날이 이미 두려워지는 것이다. 내 집이 없는 이 도시에서 나는 비자발적 노마드이다.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또 짐을 꾸려 떠나야 한다. 이렇게 생긴 큰 살림 이외에 조금의 공간이라도 있으면 무섭게 번식하는 류의 살림도 역시나 늘고 있다. 얼마나 음식을 해 먹을지 모르지만, 아니 사실 이미 매식을 결정했지만, 선반 안에 양념은 왜 계속 다양해지는지…
그러니까 결론이라고 하면 앞서 언급한 많은 것의 앞으로의 나의 생활에 있어서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이 되겠다. 물론 노력하고 나 자신을 기특하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 갖고 싶었던 파스타 그릇도 사지 않았고,,, ,,, 아 왜 이럿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는거지. 살림 늘리지 않겠다고 추운 겨울 히터도 없이 지냈다. 이건 딱히 잘한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다시한 번 확인한다. 어디에 살게 되더라도 얼마나 작은 공간에 살게 되더라도 주방에 더블 드로어 식기세척기는 꼭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누구의 미니멀 라이프에도 식기세척기는 꼭 추천하는 바이다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