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라 센치해진건가 정말 오랜만에 긴 글을 쓸 것 같다.

정권교체 이전 지난 9년 동안 가랑비에 옷젖 듯 서서히 분위기가 변해갔던 것인지 아니면 원래 우리나라가 늘 그 지경이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 무지했고 감정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자립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다만 내가 기억이 나는 것은 2008년 광우병 파동 때, 몇개월 소는 먹어도 좋다 안좋다 표기를 하면 된다 아니다 그런 쟁점들과는 상관없이, 사실 아..불안하면 걍 소고기 골라서 먹든가 정 싫으면 걍 안먹으면 되지…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음에도 시위하고 있는 시민들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무자비하게 대응하는 공권력을 인터넷으로 목격하고 혈압이 거꾸로 솟는 느낌을 순간적으로 받은 기억이 있다. 감정이 격해졌으나 시위에는 결국 한번도 나갔으니 감정적으로 뭔가 대응을 한 적은 없다. 그러나 이건 잘못됐다는 느낌은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한 생각으로 머릿속에 자리잡았다. 애석하게도 이런 경우는 다른 문제로도 여러번 있어왔다.

그러나 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내 눈에 보이는 상황이 복잡해질수록 그냥 더더욱 나에게 집중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잘못됐지만 어떻게 해결해야할지도 몰랐고 잘못된 상대는 눈에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너무나도 거대했다. 그냥 점점 더 ‘일단 나나 잘해보자’라고 되뇌이며 세상과 맞서기를 피했다. 모든 것을 갈취하고도 갈취당한 사람들에게 세상은 원래 그런거야라고 말하는 뻔뻔한 인간 부류들과, 갈취를 당했음에도 먹고사느라 바쁘므로 사회정의, 인권? 먹는 거임? 먹는거 아니면 신경안쓰노라는 먹고사니즘을 운운하는 사람들을 경멸하면서도 나 스스로도 결국은 그냥 아무 말 안하는 편을 택했다. 그러다 우연히 독일에 오게 되었고 문제해결은 차치하고라도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누구나 소리내서 말을 해도 해코지 안 당하는 세상이 이 세상에 있구나하는 것을 알게되면서 난 여기와서 꼭 공부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왔다. 공부했고 일도 했다. 그렇지만 세월호가 침몰하던 그때, 그때에도 결국에 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어른들 모두가 잘못해서 300명의 아이들이 희생 당하는 모습을 다 지켜보고도 결국은 그냥 또 입닥치고 있음으로서 세월호 문제를 유가족들의 문제로 개인화되는 과정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또 동참하였다.

내가 존경했던 은사님이 밧줄에 꽁꽁묶여 법정을 드나든지 어언 수개월째, 방금은 법정에서 그분이 눈물을 보였다는 기사를 읽었다. 나도 은사님을 향해 욕을 하고 원래부터 저럴 줄 알았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나는 부끄러워 그럴 수 없다. 죄값은 당연히 치러야겠지만 나는 댓글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편하게 말하는 것처럼 은사님이 악마같은 파렴치한 기회주의자라서 그런 일에 동참했다는 것이 아니란 걸 잘 짐작할 수 있다. 지난 9년 동안 잘못된 것을 알았음에도 여태까지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에 비추어 볼 때 그 짐작이 거의 맞을 것이라는 것도 안다.

9년 전부터 내가 스스로에게 받은 좌절과 답답함을 저버리고 결론내린 침묵은 백번 양보해서 내가 어리고 어리석었기 때문이라고 치자. 그러나 10년 후의 나는 이딴 글 안썼으면 좋겠다.

One clap, two clap, three clap, forty?

By clapping more or less, you can signal to us which stories really stand 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