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과 대중성 사이, 그 모호하면서도 적절한 지점_상수동 라멘트럭을 다녀와

개인적으로 꽤나 불쾌한 일이 생겼던 12월 중순의 어느 날, 잡혀있던 일정을 모두 뒤로 하고 유희를 만나 밥을 먹으러 갔다. 이런저런 일들로 기분이 상했고 그래서 오늘 저녁은 그냥 둘이 조용히 먹는 게 좋겠노라고 이야기하고 뭘 먹을까 잠깐의 고민 끝에 정한 메뉴는 일본 라멘.

최근 들어 약간 주춤하고 있는듯한 인상도 느껴지지만, 몇 년 새에 서울의 라멘 시장은 꽤나 큰 성과를 이루며 발전해왔다는 것이 중론이다. 신촌의 겐조(!)라멘 외의 선택지가 없던 시절에서 원 앤 온리 하카타 분코 시대를 지나 부탄츄, 나고미, 가마마루이 등 신흥 돈코츠 라멘 점포들과 함께 열린 홍대/신촌지역의 돈코츠 라멘 전성시대, 그리고 최근에는 베라보의 시오라멘, 잇탠고의 바질 라멘 등 새로운 형태의 강자들 까지, 근 10년 새에 ‘라멘’이라는 음식이 서울에서 다양성과 깊이 양측에서 발전해 왔음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2013년 여름 극동방송국 앞 라멘트럭. 트럭에서 운영하며 꽤나 험한일을 많이 당했다 들었다.

그중 그날 저녁 방문한 라멘집은 상수동에 위치한 ‘라멘트럭’. 극동방송 앞 진짜 라멘트럭에서 시작, 상수역 인근에 작지만 제대로 된 업장을 열고 꽤나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다. 신뢰할만한 블로거가 늘 좋은 뉘앙스의 리뷰를 줬던 곳이기도 하고, 4년 전 트럭 포장마차 시절의 어느 새벽 술에 잔뜩 취해서 쌔우형 과 찾아 맛있게 먹었던 기억에 어느 정도 기대감을 안고 방문했다. 저녁 7시가 좀 넘어 도착했더니 앞에 대기는 8팀, 대략의 웨이팅 시간은 30분 정도가 예상된다고 하였다. 이만큼의 웨이팅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약간의 고민이 있었지만 잘되는 집은 그럴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며 기다리기 시작했다.

2015년 상수역 인근에 차린 업장

10평이 되지 않아 보이는 크지 않은 공간에 쉴 새 없이 들어오는 손님들에도 불구하고 분주하고 경쾌한 태도로 라멘을 만들어 내는 스탭들과 만족한 표정으로 업장을 빠져나오는 손님들의 얼굴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 찾아낸 주인장의 인스타그램에서 보이는 라멘을 향한 열정이 기대감을 더해갔다. 결국 45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어렵사리 자리에 앉았다. ‘라멘’ 단일 메뉴에 차슈, 계란 같은 꾸미들은 추가가 가능한 심플한 구조. 차슈를 추가한 라멘과 맥주를 한잔 함께 주문하였고 음식은 잠깐의 기다림을 거쳐 나왔다.

꽤나 배가 고파졌던지라 그릇을 받고 바로 한술 뜨는 순간, 기억했던 것과도 기대했던 것과도 다르게 느껴지는 맛에 적지 않이 당황했다. 첫번째, 스프의 맛이 기대했던것 보다 너무 희미 했다. 그제서야 테이블 앞에 붙은 ‘너무 진한 스프 보다 균형감 있는 맛을 추구한다’ 는 안내문이 보였다. 타래를 한 스푼 더 요청해보았지만 만족도는 크게 높아지지 않았다. 두번째, 라멘의 온도감이 심각하게 떨어져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보았던 조리과정은 8그릇의 라멘을 한꺼번에 말고 나서 그 위에 차슈를 한장 씩 뒤집개로 떠서 올려 내는 방식. 차슈를 한장씩 뜨는 과정이 쉽지 않아 보였고, 결과적으로 면을 스프에 넣은 뒤 테이블까지 오는 시간이 2분정도가 걸렸던것 같은데 그 사이에 스프의 온도감과 면의 식감이 많이 떨어지지 않았나 싶다. 위의 두가지 외에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식사를 마쳤을때에 ‘기대 이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옆에서 혹평을 하는 유희에게 우리가 그간 높은 수준의 돈코츠를 많이 접해봐서 그런것일수도 있다고 얘기하기는 했지만,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시간에도 길게 늘어선 줄과 내가 느낀 맛에 대한 감상 사이의 괴리에서 마음이 복잡했던것이 사실이다. 거기에 (조리과정에 약간의 의문부호는 있었지만) 업장에서 느낀 스탭들의 열정은 충분히 마음에 와닿고도 남았다. 그렇기에 그 음식에 큰 감흥을 받지 못한것에 나는 되려 약간의 가책까지 느꼈다.

기본라멘 7천원 + 차슈 추가 1천원

하여 무엇이 사람들의 발길을 끊임없이 상수동 뒷골목으로 이끌까 한번 더 생각해 보았고 몇가지 이유를 생각해냈다. 첫번째, 라멘트럭의 라멘은 주인장이 추구하는 ‘균형감’ 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때 목적에 부합하는 한그릇의 음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면과 스프, 고명이 각각 따로 놀지 않으며 함께 먹었을때에 어느 한 요소의 맛이 툭 튀어 나오거나 쳐지지 않는 ‘발란스’ 가 잘 잡혀있는 한그릇이다. 두번째, 이 ‘발란스’는 지금 ‘라멘’ 이라는 음식을 먹고자 하는 대다수 소비자들의 기대치를 적당히 부합시킬 수 있는 아이템이라는 것이다. 개인별로 격차는 있을수 있겠으나 그 만족도는 대체적으로 30–45분의 기다림이라는 기회비용을 상회하는 수준일것이며 그렇기에 입소문을 타고 손님들을 불러 모았을 것이다. 세번째, 입술이 쩍쩍 달라붙을 정도의 진한 스프로 대변되는 돈코츠라멘의 정통성의 부재는 스탭들의 친절한 접객 태도와 좁지만 흡사 일본 어느 동네 뒷골목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업장의 무드가 대체하였다. 진정성이라는 측면은 주관적인 성향이 강해 각자가 감흥을 받는 지점이 다르고 고객/대중이 공감할 수 없는 진정성에 대한 추구는 때로 ‘아집’ 이라는 인상을 주고는 하는데 ‘라멘트럭’은 진정성의 포커스를 다소 분산시켜 그 부담감을 덜어냄으로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라멘의 섭취 빈도로 보았을때 난 ‘마니아’ 자격은 없는 그냥 적절한 정도의 경험치가 있는 일반 손님일 뿐이지만, 마니아와 입문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상품을 만들어 내는것은 실질적으로 어렵다고 보았을때에 — 특히나 라멘과 같이 장르적 특성이 확실한 음식의 경우엔 더더욱 — 라멘트럭은 대중성과 진정성, 마니아와 입문자, 오리지널과 로컬라이징 그 사이의 ‘적절한’ 지점에 자리를 잡은것으로 보인다. 다시 방문할 계획이 있냐고 묻는 다면 자신있게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평균적인 입맛을 가진 누군가가 상수 인근의 괜찮은 라멘집 한군데를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추천 리스트에 올라 갈 수 있을 집일듯 하다.

라멘트럭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7길 6

P.S 1) 사실 이 주제에 대해 쓰게 되면 서울역 인근의 ‘도동집’ 에서 느꼈던 복잡한 감정도 함께 쓰려고 마음먹었지만 글이 지나치게 길어질 듯 하여 ‘단맛’ 에 대한 생각을 쓸 기회가 있을때에 다시 적어보려 한다.

P.S 2) 각 지역별로 숨어있는 라멘집에 대한 정보가 궁금하다면 라멘 전문 블로거, 라멘마스터(http://blog.naver.com/jdrug2002/) 의 블로그를 추천한다. ( 쿠자쿠라는 라멘집을 경영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정리한 상태.)

혹 10년전 라멘 시장이 어땠는가에 대해 편린을 엿보고 싶다면 건다운님(http://blog.daum.net/gundown) 의 블로그를 참고하는것이 좋을것 같다. 이용재 님 (http://bluexmas.net) 역시 늘 그렇듯 다소 시니컬한 톤으로 여러 라멘 가게의 리뷰를 한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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