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XT BRAND] #7 공감, NEXT BRAND의 조건
인생의 양을 채우지도 않았고 질을 논할 깜냥도 되지 않는 탓에 섣불리 입에 올리기 조심스럽다. 하지만 일단 과감히 말해보겠다. 참 복잡하고 번잡하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반쯤 졸면서 넘기는 뉴스들이 하나 같이 묵직하다. 어제도, 오늘도 별로 달라지는 건 없다. 계속 보다 보니 이젠 여러 이슈들이 왠지 서로 연결되어 보인다.
여름날씨와 맞물려 이벤트의 본질은 잊은 채 아이스버킷을 뒤집어 쓰는 행위를 ‘소비’하는 누군가의 웃음에, 초봄의 차가운 물 속에서 사그라진 생명들이 오버랩 되었다면 비약일까. 부모 잃은 자식을 고아라 부르지만 자식 잃은 부모에는 차마 어떤 단어도 붙이지 못했다는데, 억울하게 딸을 잃은 아비가 딸의 죽음을 해명해달라는 최후의 수단으로 시작한 단식을 비아냥거려도 괜찮은 걸까.
일기장에나 쓸법한 얘기 아니냐며 핀잔을 들어도 좋다. 하지만 필자가 지금 이해하는 세상이 이렇다. 무언가 결핍된 지금 상황을 빌어, 이번은 어떤 특정한 브랜드 하나보다 다가올 시대의 브랜드라면 잊지 말아야 할 본질 하나를 되짚고 싶다. 바로 ‘공감’이다.
2014년 광복절 연휴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뜨겁게 달군 건 막바지 여름휴가에 탑승한 즐거운 사진들이 아니라, 교황이었다. 신앙 여부를 불문하고 다정한 눈빛의 파파 프란치스코의 사진을 퍼날랐고, 브라운관으로나마 그를 본 사람들은 내가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며 담벼락에 소회를 남겼다. 시대 말에 강림한 구세주도 아닌데, 한낱 인간인 교황의 행보에 왜 우린 감동했을까. 핵심은 그가 보여준 공감 때문이었다.
몇 달 전, 각종 SNS와 커뮤니티를 본의 아니게 뜨겁게 달구며 조롱거리가 됐던 국내 모 자동차 브랜드의 페이스북 이벤트를 생각해보라. (마음 아프니까 굳이 관련 링크는 찾지 않겠다…) 그 자체로는 충분히 재미있는 기획이었는데, 평소에 브랜드가 개인의 목소리에 공감하지 않았던 과오들이 조금씩 쌓인 게 봇물 터지듯 터져버린 해프닝이다.
몇 주 전, 로빈 윌리엄스가 세상을 등지면서, 한 저명한 PR회사는 때아닌 사과를 해야 했다. 특히 공중 심리를 헤아리는 게 그들의 일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브랜드가 급박히 벌어진 상황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해 대중의 분노를 산 것이다.
우리는 어떤 브랜드를 만드는 한편, 누군가가 만든 브랜드를 소비한다. 사람은, 브랜드의 소비자임과 동시에 창조자다. 혼자만이 살 수 없는 세상, 여기에 브랜드가 존재한다. 그래서 브랜드는 관계다. 물론 관계라는 건 눈에 보이진 않지만, 이를 해부하고 분해했을 때, 그 안에 남는 씨앗은 신뢰다. 그리고 그 신뢰를 만드는 힘은 바로 공감이다.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내가 공감 받지 못한다고 느꼈을 때, 우린 불편하거나 불쾌하다. 브랜드는 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성, 즉 사람의 감정과 에너지를 그대로 투영한다. 브랜드와의 사이에서 우리의 이야기가 브랜드에 무시당한다고 생각했을 때, 자연스럽게 브랜드에 대한 신뢰는 하락하고 좋은 관계로 맺어질 수 없다.
공감이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거나, 모든 사람에 동조한다는 것이 아니다. 남의 입장에 자기를 놓을 수 있는 이해 능력이다. 우리가 ‘그 브랜드 좋다, 잘한다’고 얘기할 때 제품, 서비스, 디자인, 사내문화 등 여러 이유를 들곤 한다. 하지만 그건 모두 표면에 드러난 현상에 가깝고, 아마 우리가 열광하는 건 브랜드가 브랜드 자신 또는 우리를 대하는 진정 어린 태도이지 않을까. 지금 독자의 머리에 떠오르는 브랜드가 있다면, 바로 그 브랜드가 넥스트 브랜드다. 그리고 그 브랜드에 느낀 감정을 만들 수 있는 역량이 다가올 시대의 브랜드가 갖출 조건이자,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견지해야 할 능력일 것이다.
인간은 섬이 아니다.
- 존 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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