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조를 관조함

관조(觀照)
한자를 풀어보면 볼관에 비출조이다.
그런데 무엇이 무엇을 보고 비춘다는 것인가?
나에게 적용해보아야 문자로 끝나지 않고 
살아있는 말이 될것이다.

여기서 본다는 것은
육안으로 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기 내면을 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일어났다 사라지는 생각,마음,감정,느낌을 보다가
궁극에는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없는 바탕
내면을 바라보는 것이다.

완전 복원이 되기전에는
보이는 바탕과 보고 있는 나 사이에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계속하여 끊어짐 없이 줄기차게 보고 또 보면
보는 내면과 보이는 내면이 붙어버린다.
하나의 공간이 복원되는 것이다.
그런데 내면이 복원되고 보면
사실은 한번도 둘로 갈라져본적이 없는 내면이다.
붙었다는 말도 맞지 않는 말이 되는 것이다.

둘이 아닌 허공성
한점 티끌이 없는 청정성
부딪침이 없는 고요성
환히 아는 광명성
내면의 성정이다.
이 모든것의 시작과 과정과 궁극은 모두
보고 비춘다 하여 관조라고 한다.

처음엔 움직이는 것을 보다가
나중엔 보고 있는 자기 자신을 봄으로서
보이는 허공이 보고 있는 나의 눈인것이다.
보이는 자가 보는 자이고
보는 자가 보이는 자인 것이다.
주객일체인 것이다.

내면에 거울이 하나 복원된것이다.
이 거울에 모든 것이 보이게 된다.
고요가 고요를 보기도 하고
고요 가운데 일고 지는 모든것을 비추기도 한다.

비출조(照)
여기서 비춘다는 것은 눈부시게 하는
유광의 빛이 아니다.
여기서 비추는 것은 
움직이면 움직이는줄 알아차리고
움직이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줄 알아차리는 
자각 각성 감각의 빛이다.
이것은 비추는 작용인 동시에
무시간성인 공간성 존재성으로서의 빛 자체이다.
그래서 비출조는 비추는 작용인 동시에 빛 자체이다.

그래서 우리는 빛난다.
혹은 빛나다. 라고 한다.
빛나다는 빛나는 상태이기도 하지만 
빛이 나(我)라는 뜻으로 
빛나(我)다.이다.

우리 말에 모두 진리가 숨겨져 있다.
내면의 빛은 이미지나 상상의 빛이 아니며
형태 없는 무광의 빛으로서
동정을 알아차리는 자각의 비추는 빛이며
그 빛은 작용인 동시에 부동한 존재 자체로서
빛이 나(我)인 빛이 나다.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빛난다.빛나다.라고 말한다.
바로 각성의 빛으로서 비출조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내면을 
보고 비추다가
보고 비추고 있는 자기 자신을 자각하여
자신이 관조 자체임을 관조하게 된다.
관조는 작용을 내포한 존재의 모습이다.
관조를 관조해 보면
거기에 고요가 있고 밝음이 있다.
고요와 밝음은 둘이 아니다.
바로 진정한 나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