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은 무엇인가요?
나와 무관한 사람의 죽음에 대하여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다가
나와 가까운 사람이 죽게 되면
느닷없이 큰 충격이 다가옵니다.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어째서 죽었지?
죽으면 어떻게 되지?
사람은 왜 태어나는 거지?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 거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잘 먹고 잘 살던 사람이
갑자기 바보가 된듯 아무것도 모르게 됩니다.
평소에 묻지 않았던 의문들이 무수히 일어납니다.
아주 근본적인 의문들입니다.
아주 본질적인 의문들입니다.
태어난다는 것은 무엇이고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죽지 않는 것은 없는가?
태어나지 않는 것은 없는가?
무한한 것은 없는가?
영원한 것은 없는가?
한 생각은 끝없이 일어나는데
누구 하나 시원하게 답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어디에도 시원하게 정리해 놓은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금 고민하다가
세월에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의문만 일어났다가 사라진체
뭐 하나 시원하게 답을 구한것도 없이
그냥 모른체 어두운체 살아갑니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습니다.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여기서 극소수의 사람들이 구도를 시작합니다.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을 찾아나서고
선각자들이 쓴 경전들을 살피고
도반들끼리 탁마를 시작합니다.
정각하신 스승을 찾아 나섭니다.
그런데
어느분이 정각자인지
어느 경전이 정법인지
알기도 어렵고
깨닫기는 더 더욱 어렵습니다.
상근기의 구도자라 하여도
종국에 만나는 것은 결국 생사문제입니다.
유한한 생사의 존재가
어떻게 하면 생사 없는 무한한 자로 거듭나는지가
최고의 문제입니다.
결국은 죽지 못하여
죽음이 두렵습니다.
죽어보지 못하여
죽음 없음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 몸과 마음은
있다 없다 하기에 생멸이 있는 존재입니다.
태어나면 반드시 죽습니다.
생멸을 무한히 반복하고 있습니다.
한번 태어나면 반드시 죽기에
물질인 것입니다.
물질은 시간성입니다.
몸마음=변화=생멸=물질=시간성
이 사실을 분명하게 보아야 합니다.
여기에 대조하여 살펴볼것이
몸과 마음에 대조되는 것이 정신입니다.
정신은 육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작용으로 존재합니다.
몸과 마음은 있다 없다하는 생멸로서 물성이지만
정신은 관찰로서 항상 존재하기에 영성입니다.
몸과 마음이 시간성이라면
정신은 공간성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이 공간성은 자기 내면의 공간성입니다.
몸도 물성이라 백년 안쪽으로 생멸하지만
마음,생각,감정,느낌은
자기 내면에서 수시로 생멸하고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바라보면
아주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 내면의 바탕 공간이 존재하고
그 정신이 자기 자신 자체임을 자각합니다.
죽음이란
몸의 죽음만이 죽음이 아니라
내면에서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말하여
생각의 죽음이라고 합니다.
생각의 죽음은 내면의 복원입니다.
내면을 보면
내면은 무시간성 공간성인지라
태어나고 죽을 개체가 없습니다.
이것은 생사가 없는 절대의 죽음 진공입니다.
몸이 살아생전 생각의 죽음을 보아
몸(生)과 무심(생각의 死)이 동시에 존재하는
생사일여의 상태를 보게 됩니다.
내면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은
이미 죽음을 보고 있습니다.
살아생전 이미 죽어 있는 것입니다.
무한하고 영원한
생사 이전의 내면을 자각하면
몸과 마음의 생사에 흔들일 일이 없습니다.
무한한 공간 내면 가운데
몸과 마음의 생사윤회를
무한하고 영원히 바라봅니다.
이 부분은 개념정리하기도 쉽지는 않습니다.
개념정리를 넘어
실제로 내면이 복원되어야 실감이 갈것입니다.
내면이 항상한 사람에게는 당연한 사실이지만
아직 생각모드인 사람에게는 공감이 가지 않고
전혀 들어오지 않는 말입니다.
시절인연이 되어야 합니다.
생사문제가 나의 문제가 되어야 갈급해집니다.
무한하고 영원한 것이 간절하여야 먹어질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