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저녁 들려온 반갑잖은 빗소식이 사실이 아니었나 의심을 해보려던 참에 활짝 열어둔 문 너머로 소란스럽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집에는 어찌 돌아가나 하는 걱정과 함께, 담배를 피우러 나간 문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문득 방향을 가늠할 수 없게 되었다는 생각… 얼마나 오래 결정을 유예해 왔는가. 지난 며칠간은 또 한 번 피치 못할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찾아오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러나 그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그런 상황은 찾아오지 않았고, 나는 또 다시 커다란 두 개의 문 앞에 서게 되었다. 어느 쪽 문을 열든 그 건너엔 똑같이 두 개 혹은 세 개의 문이 나를 기다리고 있음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리고 무엇이 두려운가. (…)
선택을 유예하는 것이 무엇도 선택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현이 될 수는 없다. 그 역시 또 하나의 선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유예의 끝에는 언제나 예외없이 선택이 도사리고 있다. 죽음 또한 또다른 하나의 선택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도 선택하지 않는 것은 필경 가능하지 않다.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지만, 내가 믿고 있는 하나의 가능성은, 무엇도 나의 의지로 선택하지 않을 수는 있을 거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천과 이행의 주체로서의 나 자신을, 더 넓게는 현실의 수많은 상황과 변수들 사이에 끼어 있는 나를, 그것의 감정과 욕망을 철저히 배제할 수 있어야 한다. 어려운 일이기는 해도 불가능하진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