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 배지영

- <현대시> 2016년 11월호

Bae Ji Young
Aug 22, 2017 · 2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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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 배지영

0
아가씨, 몇 살이야
아가씨, 이것 좀 내려줘
아가씨, 이것 좀 잡아줘
아가씨, …… 해줄래?

1
아가씨, 애먼 사람 잡지 말고
이리 와봐 눈먼 사람
속 뒤집어 놓지 말고 저 문을 열어
거기 보면 와이프가 남겨놓은
낡은 약통이 있어 淨化라고 써있는
안에 약이 있을 거야 갈색 캡슐 보이지
그래, 유두같이 생긴
그걸 먹어 응, 한 번에
온갖 성병을 예방하는 비약이지
개수는 많아도 부드럽게 넘어갈 거야 녹으면서
속을 깨끗이 해주는 거야
이 세상 마지막 남은 순결
지금이 아니면 소용이 없어
내 사랑, 순진한 아가씨
미혼이면 처녀 맞지? 창녀 아니고
에헤이, 이리 와봐 그러니까
이 약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거야 지금의 너처럼
그러니 어서 사랑의 묘약을 먹고
나를 네 안에
담아줄래

2
그건 제 이름이에요
성은 없고 이름만 있어요
취하지 않아도 가끔은
자기, 가 되기도 해요 우리 자기
금방이에요 저에겐
타인의 우리가 되고
애인이 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조금만 덜 울고 잘 웃으면
팔고 있지 않아도 잘 팔려요
일종의 사랑이겠죠
사랑을 받으면
감사합니다, 해야 해요

3
비가 온다고 해서 들어왔어요

한 번도 젖은 적 없는 자리에 앉아
같은 이름의 언니들 입술을 만져요

어떤 날은 그랬어요

언니,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하늘엔 잿빛 구름이 가득하고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아요

밖이 환히 보이는 투명한 방에서
밖을 보지도 않고 말했어요 겁도 없이

언니들은 제가 무엇이든 간에 말을 하면
어떤 날은 대답을 해주고
어떤 날은 모르는 척을 해요

말하지 않아도 사실 다 알고 있어요
우리들 사이에도 있죠 영정처럼 서 있는
저 투명한 벽들 말이에요

어깨를 들썩이며 파랗게 젖어가는
이불 속에 저 언니는 이름을 잃어버렸대요
살고 싶진 않지만
언니들이 죽는다고 하면 싫어요

언니,
비 오는 소리가 들려요
소리에는 살갗이 없어서
헐지 않아요 그래서 난 좋은데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

    시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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