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페미니스트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사이행성)

WhyNotPanic
Jul 20, 2017 · 4 min read

[1] 일단 엄청 재밌게 읽었읍니다. 개인 블로그 글 모음집을 읽는 듯한 재밌음과 쉬움이었달까. 학술서처럼 엄격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그래서 어쩌면 이 부분이 거슬리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입문서로는 훌륭하다. 구체적인 예시-유명한 컨텐츠-를 들어서 설명해주기 때문에, 같은 문화권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또 피부로 와닿는 점이 많을 거라 생각함(하지만 미국 문화?에 관심없고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재미없을지도..).

[1–2] 재밌었던 부분은 이거다. 나는 해외 영화 등에 관심이 많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언급한 컨텐츠나 유명 코미디언의 발언 등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이해하는 데 어렵지는 않았다. 어떤 예시를 읽었을 때, 자연스레 내가 알고 있는, 국내외의 비슷한 예시들로 치환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여혐은 문화와 국경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하나. 그들의 빈약한 상상력이 우습기 그지없다.

[2] 특권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수평갈등’이란 단어가 먼저 생각났다. 시민을 잘 통제하는 국가(또는 정부 등등)는 이 수평갈등을 조장하는 데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억압에 대한 투쟁은 실체, 즉 위로 향해야 하는 것인데 서로 조금씩 가지고, 못 가지고 있는 부분에 집중하며 싸움이 좌우나 혹은 아래로 향하게 되고 결국 남는건 없는 그런 것 말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 모두 특권층이니 세계제일불행대회 그만하고 뭉치자는 말은 저자의 따스한 주먹질 같음… ㅎㅎ 개인적으로는 나도 동의하는 바이고. 어쩌면 이번 미국 대선 투표 결과를 성별/인종/교육으로 분류한 표에서 백인여성유권자들이 트럼프를 더 많이 선택했다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함..

[3] 저자가 선정한 영화 4편에 대한 글에서는 전반적으로 동의하는 바가 많았지만-사실 <헬프>는 안 봤지만 안 보길 잘했지.. 역시 내 취향 아닐거라 생각했다-읽으면서 좀 의외였달까, 그래서 찔렸던 부분들이 ㅎㅎ 있다.

[3–2] 나는 타란티노의 <장고>에서 남발되는 문제의 n word를 굉장히 다르게 받아들였었다. “그래 니네 백인들이 무시하던 니그로 단 한 명에게 쥐어터지는 기분은 어떠냐 병신ㅋ” 이런 느낌으로.. 물론 백인인 닥터 슐츠의 도움으로 장고가 노예 신분도 벗고 총질도 배우고 등등 구해지는 것이 좀 그렇기는 했는데, 결국 슐츠가 망친(?) 일을 해결하기도 했으니 쌤쌤이라 생각하기도 했고. 그리고 백인 친화적인 흑인-스티븐-에 대해서도 나는 친일파가 먼저 생각 났기 때문에 그의 ‘선택권’에 대한 동정심이 크게 생기지는 않았달까.. 물론 당시의 흑인보다야 조선인이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더 많았을거라 생각은 하고, 또 영화에서 무작정 퇴갤시켜버리는 것에 대해 비판의 지점이 있음은 인정

[3–3] 여기까지 생각했으나 이건 솔직히 내가 흑인이 아니기에 말할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좀 양심에 찔렸음. 그리고 <노예12년>에 대해서는 ‘이제 나는 지겹고 이 영화는 노예제에 1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 좋을 것이다’는 식으로 말한 부분에서는.. 네 제가 잘 몰랐던 것 같읍니다(…) 그래도 팻시의 미래에 대한 염려는 당시 영화를 봤던 나와 똑같았고 ㅋㅋ 한편 닥터 슐츠처럼, 노섭도 브래드 피트(..배역 이름 기억 안 남)에게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라는 가르침?을 듣고 유레카의 순간, 반드시 자신의 신분을 다시 되찾아야겠다는 불씨를 찾았다는 것도 찜찜했었다.

[4] 원래 한 번 더 읽고 싶었는데, 게을러서 이전 노트 뒤적거리면서 아무말이나 써버려서 부끄럽지만ㅋㅋ 정리하자면 이 책은 정말 훌륭한 영업서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자기검열 때려치워도 우리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는 게 핵심이거든요. 마치 내가 어떤 모습, 어떤 일을 하든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이 “여자답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완벽한 페미니스트가 되지 못해 안 하는 것보다 그냥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는 게 훨씬 나으니, 이제 당당하게 “나는 페미니스트다.”라고 말하면 될 것 같음.

[4–2] 후.. 마음 같아서는 모든 학교 도서관에, 청소년 필독서 같은 걸로 넣고 싶다. 이렇게 교통정리를 간단명료하게 해주는 사람 흔치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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