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지음, 윤지관/전승희 옮김 (민음사)
[1] 먼저, 지금까지 이 책을 피해왔던 나는 좀 혼나야겠다. 누가 이거 “그냥 엄청 잘 쓴 칙릿 소설이지 뭐.” 라고 했던거야? 할리킹 로맨스의 원칙 — 나를 이렇게 대한 여자는 니가 처음이야! — 과 인기몰이의 기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는 동의하지만, 이걸 단순히 연애소설이라고 생각한다면 두 주인공의 사랑 전개에”만” 집중한 것이 아닌가 싶다.
[2] <오만과 편견>은 정말 재밌는 소설이고, 장르:로코라고 해도 뭐 틀린 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읽는 내내 좀 우울했다. 엘리자베스는 내면의 성장과 더불어 “좋은 결혼”을 했지만, 결국 그녀의 선택지는 거기에 한정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대를 살아가는 나(우리)에게 가능한 선택 폭도 여기서 그다지 넓어진 바 없다는 점이.
[2–1] 조건만 보는 결혼은 지금도 수도 없이 많고, 이러한 선택을 하는 사람보다도 더 나쁜 건, 이런 선택을 강요(비스무리)하고 으레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같은 속물적 잣대를 가지고 있을 거라 여기는 이들이다.
[2–2] 최근에 나는 모 남자 친척에게 “패닉이는 이재용 아들이랑 결혼하고 싶은 마음 없니?” “여자 연예인들은 쟤랑 연 닿고 싶어서 별 난리를 친다더라.” “(너무 화가 나서 내가 욕;;을 하자) 패닉이는 대단하네~” 라는 말을 들었다. 할머니는 내 얼굴을 볼 때마다 “어쨌든 결혼을 잘해야 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해라 .” 라는 말씀을 하신다. (나는 빈 말은 안 하는 인간이라 그냥 웃고 마는데, 이번에는 할머니도 좀 발전하셔서 ㅋㅋ “너는 항상 웃고 대답은 안 하더라.” 라고 말씀하심) 엄마는 나에게 결혼 안 해도 된다고 몇 번이나 못을 박았지만, 어디까지나 내가 “능력 있는 여자” 일 때나 가능한 일이고, 아니면 나를 책임져 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2–4] 남녀 불문하고 자신의 능력을 탐색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예전보다는)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자가 “남편 찾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졌냐? 전혀 아니올시다. 제인 오스틴에서 100년이 지났어도 아직도 여기에 있듯, 10년이 지나도 나는 몇몇 사람들에게는 결혼과 남자 타령을 들으면서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으 끔찍해.
[3] 이번에는 좀 불편했던 이야기. 나는 행복한 결혼이라는 성취를 이룬 여자들이 어쨌든 간에 “미모”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물론 이야기에서 미모->행복으로 직행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베넷 부인과 위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섯 딸 중 첫째와 둘째로 아름다운 제인과 엘리자베스는 내면도 그에 맞추어 따라가고, 나머지는 그럭저럭.. 특히 메리 취급은 ..ㅎㅎ… (예나 지금이나) 결혼시장에서 여자=미모가 1순위 라는 것, 현실성 추구라면 그렇겠지만.. 그리고 엘리자베스의 매력은 그녀가 예뻤든 아니든 여전했을 것이므로 그게 중점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ㅋㅋ 암튼 그랬음.
[4] 소설과 함께 <제인 오스틴의 여성적 글쓰기>를 읽었는데 아주 좋은 흐름이었읍니다. 내가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것보다야 그냥 읽어보기를 추천드립니다. 이제는 힘빠지니까 인상깊었던 부분만 간단하게 말할거야.
[4–1] 먼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이 책을 통하여 영업당했다. 그리고 여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것도 현명하게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지금 책이 없어서 정확한 문장을 인용할 수는 없지만) 작가는 양성적 이야기(즉, 실재)를 써야 하지만, 그렇다고 여성이 여성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정리말을 읽으며, “성녀/창녀” 프레임에 갇혀 생산되는 여성 인물(이야기)이 어찌나 많이 생각나던지. 지난달에 읽었던 <나쁜 페미니스트>의 ‘여성 인물은 항상 호감이어야 하는가?’ 챕터의 문제 제기도 생각 나고.
[5] 결론을 못 쓰겠으니 아무말로 마무리. BBC 드라마랑 조 라이트 감독 영화 언젠가 볼거임. 근데 브리짓 존스 시리즈는 여전히 볼 자신이 없다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