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초심자로 책읽기

책을 읽기 전에

『과학한다, 고로 철학한다』 책을 소개하는 글을 보고 무척 반가웠다. 수험서와 참고서가 출판 시장을 주도하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인문학 책보다도 덜 읽히는 과학 책인데다 신간이라서 눈길을 끌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과학철학을 알기 위해 노력해 본 적이 없다. 나한테 과학철학은 생소할 뿐더러 그 동안 책읽기를 위한 선택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과학철학을 모른다. 『과학한다, 고로 철학한다』 책을 추천하는 글과 역자 서문에서 과학철학의 입문서임을 알고 감히 책을 읽을 용기를 내었음을 고백한다.

책읽기를 통한 과학철학의 이해

과학철학은 과학에 대해 철학하는 것이다. 철학은 대상이 지닌 의미를 찾기 위한 활동을 주로 한다. 철학이 융성했던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과학은 존재했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따라서 과학의 의미를 찾아내고, 과학이 인간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평가하려는 활동이 과학철학이라고 이해했다.

번역서 제목은 ˝과학한다, 고로 철학한다˝. 원서 제목은 The Meaning of Science. 직역하면, ˝과학의 의미˝이다. 원서 제목이 번역서보다 밋밋해 보이기는 하지만, 책의 핵심을 분명히 가늠할 수 있다고 본다.

저자는 팀 르윈스. 영국 캠브리지 대학 과학철학 교수로, 우수한 강의에 부여하는 필킹턴 상을 수상한 바 있다. 과학철학 뿐만 아니라 생물철학과 생물 윤리에도 관심을 가진다고 한다. 책 후반부는 저자의 관심을 녹여낸 느낌을 받았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고, 전반부(제1부)에서 과학이 무엇인지(1–4 장), 후반부(제2부)에서 과학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5–8장)를 주제로 구성된다. 전반부는 과학사를 정리하는 내용이고, 후반부는 인간의 삶과 관련된 안전, 도덕, 본성, 자유에 대한 과학적 논의를 다룬다.

  1. 과학적인 방법

과학에 속하는 학문, 진정한 과학을 알려주는 표지가 무엇인지 묻는다. 그리고, 과학에 대한 칼 포퍼의 입장과 반증주의를 설명한다.

진정한 과학은 반증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포퍼의 생각이다. 반론을 제기했을 때 틀릴 가능성을 지닌 학문만이 진정한 과학이다. (p41)

그러나 관찰과 이론이 상충하는 경우에 포퍼의 세계에서 과학은 확답을 줄 수 없다. 그래서 포퍼의 과학 체계는 늪 속 말뚝 위에 지어진 건물이 아니라 공중누각이다.

2. 그것도 과학인가?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포퍼의 반증주의를 쓸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경제학이나 지적 설계 이론, 혹은 동종 요법 같이 종종 사이비 과학이라고 비난 받는 학문의 위상에 대해 우리는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이 학문이 ˝과학적˝인지에 대한 일반적인 질문을 하지 말고 과학에서 이상화(idealization)의 역할이나 증거 혹은 심지어는 위약(placebo)의 역할 등에 대해 구체적인 질문을 하여야지 ˝이것이 과학인가, 아닌가?˝와 같은 일반적인 질문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3. `패러다임`이라는 패러다임

˝과학 혁명의 구조˝를 중심으로 토마스 쿤의 주장을 설명한다. 과학 혁명 후 세계가 바뀐다, 다른 패러다임에 속한 이론은 공약 불가능하다, 다른 과학자들이 ˝다른 세계˝에서 작업을 한다 등 쿤의 주장과, 과학적 진보에 관한 쿤의 칸트주의적 입장을 설명하고, 쿤에 대한 평가를 덧붙인다.

4. 그런데 이게 진실일까?

저자는 과학이 진실을 추구한다고 여겨지는 ˝과학적 실재론˝이 맞는다는 결론을 전제한다. 그리고, 결론에 이르는 길을 찾기 위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세 가지는, 미결정성(underdetermination) 이론과 비관적 귀납(pessimistic induction) 논증을 반박하고, 과학적 실재론을 지지하는 주장으로 ˝기적은 없다˝ 논증을 살펴본다.

5. 가치와 진실성

과학적 실재론과 과학에 대한 가치 중립적 개념이 서로 연결된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에 관해 말한다. 스탈린주의 생물학, 여성의 오르가슴, 다윈의 자본론, 기후변화와 의사소통 등을 제시하면서 오히려 과학자가 가치 개념을 지니고 있지 않다면 현명한 조언을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음을 경계하고, 합리적인 예방책 수용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6. 인간적인 친절

도덕 행위의 진화론적 기원을 설명할 때 이타주의, 이기주의, 냉소주의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상황에서 저자는 ˝심리적 이타주의 개념˝과 ˝생물학적 이타적 행위˝를 구분함으로써 심리적 동기와 성공 결과를 분리한다. 심리적 이타주의는 심리적 상태를 가진 생명체에게만 적용되지만, 생물학적 이타주의는 모든 생물체에 해당된다.

한편, 다음과 같은 주장에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부모가 자식을 보살핌은 보통 생물학적으로 이기적인 행동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문제의 생명체가 심리적인 동물이라고 했을 때 어떤 동기에서 그런 자비로운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주는 바가 없다. (p239)

7. `본성 `이라는 단어의 위험성

“인간 본성”이라는 것이 인간이 진화를 통해 가지게 된 보편적인 특징을 단순히 가르키는 문제 소지가 없는 개념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저자는 진화와 변이, 문화 적응, 유전, 자연질서 등의 연구 결과에서 밝혀진 바대로 인간 본성이라는 말이 문제의 소지가 많다는 것을 설명하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8. 자유가 사라진다?

우리는 최선의 행동을 하기 위한 선택을 자주 하고 또 그러한 의식적인 고민이 어떤 행동을 할지 결정하는 데 기여한다고 느낀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자유롭게 행동한다고 느낀다. 하지만, 신경과학자들은 인간의 자유가 환상이라고 주장한다. 이들 주장을 인과 관계 논변과 지연에 의한 논쟁으로 유형을 나눠 각각을 살펴보고, 저자는 결론을 내린다.

책을 읽고나서

과학철학 까막눈이지만, 일단 책을 읽었다. 그러나 과학철학의 초심자로 책을 읽어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역자의 충고대로, 급하게 읽어내려가기 힘든 책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한 번의 책읽기로 책의 내용을 모두 소화하기 힘들었지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밑줄을 그어가면서 끝까지 읽었다. 밑줄 그은 내용을 위주로 한 번 더, 모두 두 번을 읽고나니 저자가 물음을 던지고 답을 제시하기 위해 전개해나가는 문맥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저자는 서문에서, 과학이 무엇인지 그리고 과학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을 위해 썼고, 이 책을 읽기 위해 과학적 지식이나 철학적인 내용에 익숙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지만, 책읽기는 결코 쉽지는 않았다. 각 장이 독립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어느 장을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고 안내하고 있지만, 1 장부터 목차를 따라서 읽었다. 뒤로 갈수록, 전반부보다 후반부가 내용이 어려웠다. 나와 같은 초심자는 1장부터 차례대로 읽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일독으로 책 내용을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점은 원서가 그런 것인지, 아니면 번역 상의 문제가 있는지 출판사 측이 따져보기를 바랄 뿐이다.

게다가, 편집과 관련된 문제점들도 발견하였다. 목차와 본문의 제목이 달랐다. 예를 들면, 목차에서 제 7 장은 ˝본성이라는 말을 조심하라!˝이지만, 본문은 ˝본성이라는 단어의 위험성˝이라는 제목이다. 그리고 오타도 눈에 띄었다. 예를 들면, 81 쪽에서 ˝자신에 책에서˝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지만, 맞춤법에 철처하지도 못했다. 책을 급하게 제작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옥의 티라 여기지만, 이런 편집 상의 오류가 책읽기의 방해 요소가 된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책읽기는 과학철학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본다. 책의 내용은 매우 유익하다고 생각하고, 평소 접하기 힘든 과학 논리와 의미에 대해 많은 지식을 주었다. 시간이 되는대로 이 책을 다시 한 번 더 읽어보고 싶다. 그리고 MID 과학책들과 추천사를 쓴 장하석 교수의 책도 읽을 기회를 가지도록 노력해보아야겠다.

책 내용에 대한 평점은 별 다섯이 부족할 수 있겠지만, 번역과 책 편집 상태가 최상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별 넷을 매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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