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왕경 복원과 그에 대한 사견

자료가 없어도 너무 없는 신라 왕경 복원

문화재청은 최근 경주시가 제출한 “왕경복원사업”을 반려했다. 이유는 간단하게도 유네스코 유적지구에 등재되어 있는 곳에 복원이라는 명분 하에 무작정 건물을 올린다면 그것은 훼손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해외에서 훼손 등의 이유로 유네스코 지정이 취소된 선례도 있었으니 납득할 만한 이유라 할 수 있다.

(자료1: "세계유산 훼손 우려"…경주 신라왕경 복원사업 '기로'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5/20/0200000000AKR20160520131100005.HTML)

물론 전면적인 반려는 아니고 이미 일부분 복원되어 있는 동궁과 월지는 사업에서 통과시키되 그 밖의 월성이나 신라방 사업을 수정요청의 형식으로 반려한 것이다. 5월에 일어난 사건이었으나 관련 기사를 지금 본 관계로 간단하게 이 왕경 사업을 하나하나 짚어가고, 사견을 적어보고자 한다.


  1. 동궁과 월지

앞서 말했듯이 동궁과 월지는 왕경 복원 사업에서 통과 됐다. 이미 복원된 부분도 많고, 발굴을 통해 워낙 많은 건축부재가 출토되었고 따라서 복원 연구도 쉬우며 고증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국립경주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는 신라시대의 공포구조, 막새기와 등은 이러한 발굴 성과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계획에 따르면 동궁과 월지는 정전을 포함한 서편지 전역을 10년내에 복원한다고 한다. 이에 따라 당장 올해부터 단청 연구에 들어갔고 이미 박정희 대통령 당시 복원된 두 동의 건축물(안압지에 가면 볼 수 있는 기와건물이 바로 안압지 발굴 이후 일부 복원된 건물이다.) 또한 40년동안 연구된 고증자료에 맞추어 보수, 복원될 예정이다. 워낙에 발굴 성과가 뛰어나고 선행 연구 또한 많이 이뤄졌기 때문에 동궁과 월지는 단청 등의 연구만 보완된다면 당장 복원되어도 문제 없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2. 황룡사

신라 왕경 복원의 핵심 중에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황룡사이다. 하지만 자료1의 기사에서 황룡사의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고 이런 저런 곳에서 뒤져봤는데 황룡사는 복원 계획이 통과가 된 것인지 반려된 것인지 자료가 없다. 그래도 신라 왕경 복원에 있어 빼 놓을 수 없으므로 이 부분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한다.

황룡사 복원에 있어 가장 뜨거운 부분은 목탑의 구조와 금당의 중층여부라고 할 수 있다. 황룡사 목탑은 1960년대 일본의 학자 후지시마 가이지로 교수(1920년대 경성고교공업학교 조교수시절부터 조선의 고건축을 연구해온 학자이다. 일본에서 시텐노지의 복원을 이끈 사람이었고 동경제대 졸업 후 조선와 일본의 경복궁 훼손을 보고 충격을 받아 1980년대까지도 총독부 건물을 당장 철거하라고 충고하던 일화로 유명하다.) 의 복원안부터 11개의 복원안이 나와있다.

수십 년간의 산발적인 연구 끝에 지금으로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높이는 225척(약 80m)에, 통일신라~고려 초기의 암석화나 소탑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체감률(고층으로 올라갈 수록 줄어드는 비율)이 일정하고 체감(위층과 아래층의 크기 차이)이 크지 않으며 백제의 영향을 받아 하앙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고 내부에 탑을 오르내릴 수 있던 층계와 각 층마다 장식과 불교적 채색이 되어있었다는 것 정도이다.

현재 가장 큰 문제를 꼽자면, 이걸 건축공학적으로 어떻게 세우냐는 것과 내부구조의 문제이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남아있는 고대 고층목탑은 11세기 요나라시대에 건축된 응현목탑(60m) . 딱 하나이다. 그 밖에는 일본의 짜잘한 20m~30m 정도의 황룡사 목탑에 비하면 짜리몽땅한 목탑들이 남아있다. 문제는 이 응현목탑을 참고하여 복원을 한다면 탑이 너무 불안정하다는 점에 있다. 실제로 응현목탑도 워낙 많이 기울어져서 보완하는 기술을 연구 중에 있다. 황룡사 자체도 고려 시대에 들어 기울어져버리는 현상이 수십년에 한번씩 기록되어있는 것을 보면 이 점은 구조를 떠나 목재건축의 한계로 볼 수도 있겠다.

그래서 황룡사 복원 연구팀 측에서는 내부에 현대식 보완 설계를 할 생각도 했지만 이 것은 원형복원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 때문에 진척되지 못하고 있고 여전히 내부 구조와 함께 연구중에 있다.

탑과 함께 황룡사의 주된 논점 중 하나인 중금당의 구조 또한 많은 연구가 이뤄졌고, 현재 진행중이다. 중금당은 우선 차양칸(지붕을 길게 빼서 마치 중층처럼 보이는 구조)가 있었다는건 확실하다. 대표적인 차양칸이 있는 건물은 바로 경복궁 근정전이다.

경복궁 근정전은 중층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단층이고 외부에선 차양을 빼면서 중층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다. 이것은 자금성 태화전에서도 보일 만큼 대부분의 동양 중층 건물에 공통된 양식이다.

이처럼 황룡사 또한 차양을 빼면서 외부에서 중층의 모습을 보였던것은 확실한데 문제는 그 밖에도 황룡사 금당이 내부 또한 중층이였는가 아니였는가의 문제이다. 중층이었다면 한층이 더 올라가서 외부에선 3층처럼 보였을테고, 아니었다면 근정전처럼 2층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는 성격상 발굴로써 알아낼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타임머신이 개발되지 않는 한 절대 풀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왜냐하면 동시대에 참고할수 있는 건축이 동아시아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황룡사 금당이 건축된 6세기 건축은 동아시아 전체를 다 뒤져봐도 다 불타고 사라짐.)결국 이 부분은 현대의 학자가 결정해야 할 문제 중 하나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황룡사는 우선 연구가 거의 끝나가는 중문, 남문, 담벼락만 우선 수년 안에 복원하고 중금당, 서동 금당과 강당, 종탑과 목탑 순으로 차근차근 복원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목탑이나 금당 복원의 경우는 황룡사 목탑, 금당 복원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현재 경주시에 널려있는 사찰 유적지에 우선적으로 복원연구와 사업을 진행하여 노하우를 얻은 이후에 가장 중요한 사찰인 황룡사 복원을 최종적으로 해내는게 옳아 보인다.

대표적으로 경주에는 망덕사지라고 폐허가 된 사찰이 하나 있는데 삼국유사에 따르면 이 사찰은 나당전쟁 당시 당나라가 연이어 신라에 패전하자 “신라가 사천왕사를 지어 불심으로 당군을 쳐바르고 있다”라는 소문이 돌았고 이를 확인차 나온 당에게 사천왕사를 숨기려고 수년 만에 임시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임시로 지은 절답게 부실공사가 있었는지 당시에도 삼국사기 후대의 기록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사찰이 이 망덕사인데 대부분의 내용이 목탑이 기울어지고 갑자기 흔들리고 쓰러져버렸다는 내용이다. 이런 사찰은 기록이 많아 연구도 수월하고 황룡사에 비해 비교적 규모도 작고 중요성도 떨어져서 황룡사 복원 이전에 시범안으로 복원연구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3. 경주 월성

사실 경주 월성은 연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발굴이 불과 작년에 시작됐기 때문이다. 발굴 시작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발굴 현장에 방문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문화재청에서도 경주시의 왕경복원사업 계획에서 월성 복원 계획을 반려시킨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왜 경주시가 이를 복원하겠다고 계획서에 넣었는지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발굴도 방금 시작한 곳을 어떤 생각으로 20년만에 복원 완료 시키겠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일까? 상식적으로 지금 당장 건물 배치도조차 모르는데 신라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유적을 20년만에 전부 복원시킨다는건 말도 안되는 얘기이다.

월성 복원의 가장 좋은 선례는 일본의 평성궁이다. 평성궁 또한 폐허가 된지 1000년가까이 된 나라 시대 유적으로 설계도도 없는 상황에서 동시대 나라 유물, 당나라 유물, 고구려 벽화등을 자료로 복원하고 있다

평성궁은 70년전, 재건되면서 콘크리트로 무식하게 때려박고 현대적인 내부모습을 갖춘 오사카 성 같은 모 성들과 다르게 현대 일본 고건축 복원의 대표적인 좋은 예로서 1970년대 발굴이 시작된 이래 40년간 연구해가며 지금까지 대문, 정전, 연못만 복원해두고 지금까지도 발굴을 진행해가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처럼 월성도 지금은 성벽과 해자만 복원을 하고 또 연구를 지속하여 20~30년동안은 대문, 정전등 큰 건물만 복원하고 100년후 전건물 복원을 목표로 삼아서 차근차근 계속 복원해 나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없어지고 파괴되는 것도 역사의 일부이고 따라서 역사적 유적의 복원은 말도 안되는 처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정 부분 동의하는 의견이지만 현실적으로 바라보았을 때 이는 지역 주민들이나 국가 경제적으로 보았을 때는 손실이다. 당장 로마시 같은 경우도 유적 복원을 위해 정부에 7천억원을 요구했고 이집트의 경우도 살라딘 성채를 복원 중에 있다.

(자료2: 문화재 복원 사업 중인 여러 국가의 상황 http://221.145.178.204/nrichdata/arc/book/file/2006/GJS14_09_01.pdf)

정확한 고증과 튼실한 설계만 뒷받침 된다면 관광자원적인 측면으로 보았을 때 복원보다 더 나은 선택지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에서도 이를 추진 중인 것이다. 기왕지사 시작한 일 부디 부실 복원 논란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국가를 먹여살릴 관광자원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