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2

7

엊그제 무턱대고 수미씨를 찾아간 것이 영 찜찜하다. 밤 11시 넘어 회사로 찾아가서 그녀가 너무 부담을 느낀 것 같다. 그것이 오늘 하루 종일 나를 짓누른다. 회사일도 하는 둥 마는 둥 그렇게 보내고 집으로 왔다.

마음이 영 무겁다. 수미씨 문제 말고도 요즘 스트레스 받는 건이 몇 건 있다. 그래서 최근엔 잠을 편히 잔 적이 거의 없다. 나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회사 문제이다. 우리 회사는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이다. 즉, 성장성 있는 High-Tech 벤처기업에 투자하여 그 기업을 코스닥 시장에 등록시켜 자본 차익을 얻는 그런 회사이다. 물론 한때 우리회사는 잘 나갔다. IMF 이후 인터넷 열풍이 불기시작하면서 우리회사도 고도의 성장을 이루었다. 밀려드는 사업계획서와 투자문의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내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2000년 하반기 인터넷의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시련을 겪기 시작했다. 투자기업은 거의 다 망해가고 투자금 회수도 힘들어지면서 우리회사도 위기를 겪기 시작했다.

두 차례에 걸쳐 구조조정이 이루어졌다. 2001년 하반기와 2002년 9월 무렵에 이루어진 구조조정으로 친구, 동료, 선후배들을 내 보냈다. 그들은 순전히 우리회사의 이상한 인사평가로 내보내 졌다. 일부 자기와 코드가 맞지 않아 능력에 상관없이 나간 사람도 있고, 우리 회사의 중심가치라는 정직, 열정, 능력 중 정직 항목에 걸려 아주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어처구니 없이 나간 사람도 있다. 그러면서 이런 과정을 수행한 부사장도 토사구팽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 많던 직원이 반 이하로 줄어든 이 시점, 경기라도 좋아 투자처가 많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세계 경제는 장기 침체로 접어들어 벗어날 줄 모르고 우리회사 또한 투자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다 보니 직원들 어깨가 다 처져 있다. 이것이 나를 힘들게 한다.

요즘은 나의 장래, 비전에 대해서 무척이나 고민을 많이 한다. 내가 과연 이 회사를 계속 다녀야 되나, 아니면 이번에 다른 회사로 옮겨야 하나 머리가 어지럽다. 그러면서도 언뜻 결정을 못 내리겠다. 벤처캐피탈 업계가 어렵다 보니 추가 채용하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제일 힘 든 것은 상사의 핍박도 아니고 업무의 불 만족도 아니었다. 제일 힘 든 것은 회사에 비전이 없고 내 비전이 없는 것이었다. 지금의 내 상태가 바로 이런 상태이다. 하루 하루 회사 나가는 것이 고통이다. 그래서 요즘 내가 잠이 없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동생이 아직 안왔다. 집 아래 수퍼에서 맥주를 사왔다. 수미씨 일도 맘에 걸린다. 매일 연락하다가 오늘은 연락을 안했는데… 맥주가 한 캔, 두 캔 넘어가면서 계속 휴대폰에 손이 간다. 번호를 검색해서 버튼을 누르려다 말고 휴대폰 끄고 다시 누르려다 말고를 반복하길 수십 번 이번엔 문자를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쓰기를 수십 번. 그러는 사이 캔은 하나더 비워지고 난 그만 잠에 빠지고 말았다.

아침에 문자 벨소리에 잠을 깼다. 머리가 아직 멍하다. 토요일에 어디가겠냐는 수미씨의 메시지에 밤새 가슴조린 것이 다 풀렸다. 난 바로 전화를 걸어 한택식물원 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오늘은 5월 1일 노동절이라 쉬는 날이다. 그런데 난 회사에 갔다. 딱히 일이 있어 간 것은 아니었다. 그냥 집에 있는 것이 싫었다. 언제부터인가 난 휴일에도 집 보다는 밖에 있는 것이 맘이 더 편했다. 그래서, 휴일엔 가급적 밖으로 떠돌려고 한다. 이런 것에는 아침 일찍 눈이 떠지는 요즘의 내 수면 습관과도 관련이 크다. 아무리 피곤해도 아침 7시만 되면 눈이 떠져 더 이상 잠이 안오기 때문이다.

회사엔 아무도 없었다. 출입카드를 찍고 내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켰다. 그리고 바로 네이버로 들어가서 혁연이가 메일로 보낸 한택식물원을 검색했다. 한택식물원 홈페이지와 관련 기사들이 나왔다. 그 중에서 매경 기사가 제법 잘 나와있어서 프린트를 했다.

오전에 한택식물원을 돌고 점심을 어디 가서 먹으면 좋을까 많이 고민했다. 여기 저기 사이트를 찾다 한택식물원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안성에 있는 솔리식당을 발견했다. 솔리는 장독대가 천여개가 있는 장 담그는 서일농원 안에 있는 아담한 식당이다. 쌈 야채와 구수한 장맛이 일품이라고 해서 거기로 식당을 정했다.

점심까지 스케줄을 잡았는데 그 이후 어디로 가느냐가 문제였다. 다시 용인시 지도를 클릭했다. 용인과 안성 사이에 한택식물원이 있는데 그 오른쪽에는 이천이 있었다. 이천 정도면 거리도 가깝고 서일농원에서 서울 올라가는 길에 위치하고 있어 돌아가는 코스로 적당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천시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가 볼만한 곳을 찾았다. 이천 하면 도자기가 유명하기 때문에 이천 도예촌에 가면 적당할 것 같아 거기로 오후 코스를 잡았다. 이렇게 토요일 하루 코스를 잡으니 뭔가 스케줄이 안정된 것 같았다.

8

수미씨와 식물원에서 책을 읽고 있다. 처음엔 수미씨가 책을 가져오라고 할 때 그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물론 나도 책을 좋아한다. 그런데, 데이트 하면서 서로 말 없이 책을 읽는 다는 것은 처음엔 적응이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수미씨와 나란히 앉아 앞에 훤히 펼쳐진 전망을 보면서 책을 읽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이것 또한 색다른 휴식법이 될 수 있었다.

난 이상문학상 받은 신경숙의 “부석사”를 수미씨는 김형경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1”을 읽고 있다. 수미씨는 김형경의 책 2권이 절판이 되어 1권 다 읽어도 책 구하는 것이 걱정 이란다. 난 “부석사”를 두번째 읽는 것이다. 두번째 읽을 때는 그 소설의 잔재미가 눈에 쏙쏙 들어온다. 그래서 혼자 키득키득 거리며 웃고 있는데 옆에 있는 수미씨는 나를 힐끗 쳐다본다.

부석사 하면 재작년 초에 읽었을 때 써둔 평이 떠오른다. 그것을 친구들에게 편하게 메일로 보냈는데 갑자기 그것을 꺼내 보고 싶었다. 그때의 느낌과 지금의 느낌을 비교해 보는 것도 색다를 것 같았다.

오늘은 지난주에 읽은 2001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신경숙의 “부석사”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해마다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사서 보지만 이번 작품은 최근 5년간의 작품 중에서 최고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문체의 간결성과 언어의 고결함 그러면서도 한 순간도 긴장을 풀지 못하게 만드는 내용의 전개.

오피스텔에서 각자 사는 한 여자 한 남자가 나옵니다. 그 둘은 서로 과거 사랑의 상처를 갖고 삽니다. 그 상처의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꼭 강석경의 “숲속의 방”처럼 그들만의 방에서 삽니다. 자신만의 카테고리를 벗어나려고 하면 왠지 밀려오는 과거에 대한 아련함, 원망들이 교차하고 결국은 안주하는 그들. 그들이 택한 것은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 부석사 가자 — 아무 의미 없이 대답하고 나서 같이 부석사로 나서는 것 그 자체이죠.

여기에서 부석사는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하네요. 浮石 이라는 말 자체가 물위에 돌이 떠있다는 것이죠. 아주 조그만 간극을 사이에 두고 떠 있는 그런 말인가 봅니다. 여기서 남녀의 사이도 팽팽한 긴장감이 돌면서 부석사의 부석처럼 아주 조그만 간극으로 갈라져 있는 대상으로 나오죠. 그러면서 그 간극사이에서 각자의 생각을 하면서도 서로 교통하길 원하는 그 무언가가 있죠.

부석사로 가는 길에서 그들은 그만 길을 잃고 맙니다. 절벽을 만난 거죠. 그들은 그제서야 깨닫죠. 사랑의 상처로 인한 인생의 절벽에서 벗어나고자 부석사로 떠났건만 도중에 길을 잃고 실제 절벽에 봉착하게 되니 말입니다.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처럼 인생의 궁극을 찾고자 바다로 갔건만 결국 그곳엔 바다가 없었다라는 말과 일맥 상통할까요. 인생의 아이러니 라고나 할까요.

겨울밤은 깊어가고 차는 구덩이에 빠져 움직이지 않고 앞엔 절벽이 있고 이때 하늘에선 그 낯선 남녀가 있는 차 위로 눈이 내리죠. 그러면서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고요가 찾아옵니다. 남자는 잠들고 여자는 남자가 깰까봐 조용히 담요를 꺼내 남자를 덮어줍니다. 이때 남자는 여자를 이성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눈이 더 와서 창문을 다 덮길 바라죠.

월요일 아침부터 넘 감상적으로 빠진 것 같군요. 하여튼, 올해 이상문학상은 넘 수준 높은 작품인 것 같아요. 꼭 한번 읽어 보시길.

예전의 “부석사”의 느낌이 “浮石(부석)”이라는 말처럼 물에 떠있고 뭔가 남녀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 감이 큰 반면 두번째 읽은 “부석사”의 느낌은 남녀 간의 관계를 먼저 여자의 입장에서 기술하고 그 후 남자의 입장에서 기술하면서 남녀간의 심리적 차이와 부석사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상황묘사에 관심을 집중하게 되었다. 즉, 남자와 여자의 입장이 서로 다르고 서로 생각하는 바가 틀린 것이 “浮石”의 느낌처럼 다가 온 것이다. 같은 책에서 이런 이전 과는 다른 느낌을 잡아 낼 수 있다는 것도 큰 행복이다. 그래서, 좋은 책은 두고 두고 읽는가 보다.

책을 거의 다 읽어 가면서 수미씨의 발가락으로 눈이 갔다. 검지 발가락에 붙어 있는 밴드가 눈에 들어온다. 그 옆에 살짝 물집이 잡혀 있다. 귀엽다. 한참을 그곳에 시선이 고정되었나 보다. 수미씨가 발을 움추린다.

책을 다 읽었다. 수미씨는 여전히 책을 읽고 있다. 잠시 자리를 비워주었다. 화장실을 갔다가 먼 발치에서 수미씨를 바라보았다. 잠시 파라솔 그늘에 얼굴을 묻고 누워있다. 그런 그녀를 깨우기가 싫어 한참을 바라보았다. 정오의 따스한 햇살이 그녀를 포근히 덮고 있다. 아름다워 보였다.

“수미씨! 일어나요. 이제 점심 드시러 가시죠?”

“아 예!”

“안성 쪽에 서일농원이 있는데 거기 좋데요. 거기 가시죠?”

“넵”

차는 일죽 IC를 스쳐 음성쪽으로 빠진다. 한 20분 걸리지 않아 서일농원에 도착했다. 솔리 식당으로 가는 길에 양쪽에 있는 연꽃이 눈에 들어온다. 조금 더 가니 철쭉꽃이 언덕 전체를 뒤덮고 있다. 봄꽃의 화사함 한 가운데 솔리 식당이 있었다.

식당은 아주 깨끗하고 생각보다 넓었다. 가서 자리에 앉아 청국장과 된장찌개을 주문했다. 여기 농원 안에서 직접 담근 장이기에 기대가 컸다. 조금 있으니 케일, 상추 등의 쌈거리와 오징어 젓갈, 빈대떡, 마늘 짱아찌 등 밑반찬이 나왔다. 검은 토기 그릇에 조금씩 담아낸 그 아담함이 눈에 들어온다. 맛도 그 모양 마냥 정갈스러웠다. 거기에 된장, 청국장의 구수함 까지.

구수한 누룽지로 입가심을 하고 식당을 나서려고 하는데, 수미씨가 잠깐 매실식초를 먹으라고 부른다. 매실식초와 물을 1:4로 희석한 것인데 시큼한 맛이 온 몸으로 퍼진다. 식초가 몸에 좋다는 주인장의 말에 그만 넘어가 식초를 2통 샀다. 물론 수미씨가 사서 나에게 한통 주었다.

식사 후 산책은 운치가 있었다. 천여개의 장독대가 나란히 놓여 있어 그 모습이 장관이었을 뿐아니라 화사한 햇살에 뚜껑을 열고 그 햇살을 받으며 익어가는 장들도 멋있어 보였다. 그 구수한 냄새까지 말이다. 그 옆으로 주렁주렁 걸려있는 메주도 보인다. 예전 할머니께서 천장에 메주를 주렁주렁 걸어놓으신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 냄새가 무척이나 싫었는데 지금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냄새로 다가온다.

사실 우리 할머니는 두분이셨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세분이셨다. 일제시대때 할아버지께서 읍사무소에서 높은 일을 하셨나 보다. 첫번째 할머니께서 딸만 낳으시자 또 한분을 구했는데 그 분도 딸만 몇분 낳으시고 집을 떠나신 것 같다. 그래서 세번째 할머니가 오셨고 우리 아버지와 삼촌을 낳으셨다.

난 작은 할머니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많이 따랐다. 같이 시골 장에도 따라가기도 하고 할머니 젖을 잡고 자기도 했다. 그런 할머니는 내가 대학교 2학년 마칠 무렵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 서울 원자력병원에 몇 달 입원하신 적이 있다. 그때 난 수업 마치면 어김없이 할머니를 찾았다. 할머니는 손자가 찾아오면 공부하느라고 바쁜데 왜 왔냐고 뭐라 그러셨지만 내가 돌아갈 때면 언제나 불편한 몸을 이끄시고 병원 로비까지 나와서 나를 배웅해 주셨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바로 전엔 병원을 퇴원하시고 시골 집에서 마지막 운명을 기다리셨다. 한번은 할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시골에 급히 내려간 적이 있다. 할머니께서는 계속 누워계셔 등에 녹창이 끼신 것 같다. 무척이나 괴로워 하신다. 그런 할머니 옆에서 난 책도 읽어 드리고 말도 걸어드리고 했었다. 그러던 와중에 내가 잠깐 잠이 들었을 때인데 할머니께서 옆에 있는 나를 깨우신다. 난 겨우 그 소리에 깨서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할머니께서 자신의 그곳을 가리키시며 오줌 호스를 빼달라고 하신다. 너무 고통스러워 하시는 것 같다. 그런데 난 차마 할머니의 그곳을 볼 수도, 그리고 그 호스를 뽑을 수도 없었다. 그게 못내 죄송하고 가슴이 아프다.

9

“아저씨, 여기 도자기 직접 빚는 데가 있다고 하던데요, 어딘지 아세요?”

“아! 여기 조금만 내려가면 두성도예학교가 있는데 거기 가보세요.”

“이쪽으로 돌아가면 되요?”

“이쪽으로 가도 되고 저쪽으로 가도 되요. 결국 합치거든요.”

“네, 고맙습니다”

“수미씨! 도자기 한번 빚어 보실래요?”

“음, 한번 가보죠”

그렇게 우린 두성도예학교로 향했다. 사실 도자기 빚는 것은 처음부터 계산된 행동이었다. 내가 이천으로 간 것도 도자기 구경이 때문이 아니라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서 였다. 그런데, 처음부터 도자기를 만들러 가자고 하면 약간은 부담을 가질 것 같아 그냥 도자기 구경 가는 것으로 얘기 한 것이다.

앞에 두성도예학교가 보인다. 먼저 한 커플이 도착해서 도자기를 빚고 있다. 영화 “사랑과 영혼”처럼 도자기를 빚어 올리다가 모양이 망가지기도 하고 다시 뭉쳐서 빚어 올리기를 반복한다. 그런 모습은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재밌었다.

그 커플이 다 만들고 나서 수미씨가 만들기 시작했다. 수미씨는 뭘 만들까 고민하다가 라면 그릇 만들기로 한다. 그 그릇에 라면 담아 먹으면 맛있겠다며 아주 크게 만들어야지 하면서 처음의 소극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있다. 흙을 튀기면서 도자기를 만드는 그녀가 아름답다. 영화처럼 뒤에 가서 그녀가 만든 그릇을 막 뭉개고 그녀를 뒤에서 안고 키스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녀 앞에는 아직은 애 띤 모습의 도자기 선생이 있지 않은가.

수미씨가 다 만들고 나서 내가 만들 차례가 왔다. 도자기를 뭉쳐서 발판에 올려놓고 도자기를 손으로 쳐서 가운데에 모은 다음 그것을 물을 발라가며 위로 올린다. 그런데 비틀비틀 영 가운데로 안 모인다. 선생님이 이 분만 좀 이상하다며 핀잔 준다. 옆에서 보던 때와는 달리 상당히 팔 힘이 들어간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겨우 흙을 다시 올려 도자기 형태를 만들어 갔다. 난 이조 백자 분위기의 술병을 만들었다. 저쪽 아래에 있는 수미씨는 라면그릇에 뭘 그려넣을까 하고 앞치마를 두른 채로 그림 그릴 송곳을 들고 고민하고 있다. 나도 이내 술병을 완성하고 그것을 들고 그녀 앞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그림 책자를 뒤지며 그림을 그려 넣었다. 술병에는 대나무가 어울릴 것 같아서 대나무를 택했는데 생각만큼 잘 그려지지 않는다. 수미씨는 라면그릇 안쪽에 갖가지 과일을 그려 넣는다. 사과, 배, 밤, 호박, 오이 등을 그려내는 솜씨가 상당하다. 그 그릇에 라면 담으면 무척이나 색다를 것 같았다.

“그릇 완성되면 라면 한번 끓여 주실거죠?”

“하하! 그러죠”

수미씨가 웃으며 대답한다. 그러면서 흘러내린 머리를 올리기 위해 손을 올린다. 이마에 살짝 흙이 묻는다. 그 모습까지 멋있어 보인다. 그래서 나도 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흙이 앞머리에 조금 묻었나 보다. 그녀도 이런 내 모습을 보며 웃는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 얼굴을 막 문댄다. 나도 질새라 그녀 얼굴을 막 문대었다. 옆에 있던 커플이 웃는다. 그제서야 우리의 장난은 끝났다.

도자기는 구워서 한 3주후까지는 택배로 보내준다고 한다. 정성 들여 만든 도자기에 라면과 술을 담아서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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