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 16 짜리 용

던전월드 디자이너 중 한 명인 세이지 라토라가 발견하고 인용한 글입니다. “던전월드는 HP 시스템이 별로다”라는 이야기가 보여서 급히 번역해 보았습니다. 급한 번역이라 좀 엉성하기는 하지만 내용은 통하리라 생각합니다.

아자토님,

비디오 게임과 ‘전통적인’ RPG에서는 미미한 공격을 적이 죽을 때까지 반복하면서 그때까지 살아남는 것이 괴물과의 싸움이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와우나 파이널 판타지의 모델입니다).

그러나 톨킨 소설을 보면 스마우그는 마을 하나를 멸망시키고 수천 명을 죽였는데 정작 비늘이 없는 자리에 화살 하나를 맞고 죽었지요.

이런 싸움들은 이야기와 템포의 개념으로 생각해 보세요. ‘쟤들은 HP가 X이고 우리가 Y번 공격하여 Q번 명중시키면 죽인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런 관념에는 이야기가 고려되지 않고, 단순히 일정한 피해를 주는 공격에 맞추어 괴물의 HP를 정하는 기계적인 해결책 (시뮬레이션)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도 한때 그런 오해를 했습니다. 용씩이나 되는 적수의 HP가 16 밖에 되지 않는것을 보고 네 번을 다시 읽었습니다 (1레벨 사냥꾼도 피해 판정이 최대로 나오면 그 정도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전투 장면 하나를 보여드리습니다. 조금이라도 이해가 가면 좋겠습니다.

일행이 원하는 마법 물품이 있었습니다. 조사를 해 보니 그 물품을 갖고 있던 영웅이 용에게 죽었다는 거예요. 다른 용의 하인에게서 정보를 더 얻어서, 일행은 그 물건을 훔쳐냈습니다. 잊지 마세요. 이 세계에서 마법이란 그냥 보너스를 주는 게 아닙니다. 이 마법 무기는 영혼을 꿰뚫을 수 있어서 마법사 왕을 죽이는 데 필요했습니다. 자, 그래서 용은 화가 났고, 뭔가를 공격할 마음을 품었습니다. HP는 16입니다. 준비됐나요?

일행이 마을에 도착한 참입니다.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고 보급을 하고 (식량이 모자란 참이었습니다) 마법사 왕을 상대할 작전을 짤 생각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달이 꺼집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와작 하는 소리를 내며 시청 건물에 뭔가가 착륙합니다. 일행이 몇 초 동안 눈을 꿈뻑이는 사이 뱀 같은 머리가 내려와 사슬갑옷을 입은 경비병 하나를 단번에 찢어버립니다 (마스터 액션 “다가오는 위험의 징조를 보인다”. “파괴적” 태그입니다). 일행은 서둘러 마을로 돌아갑니다. 저는 종이를 한 장 꺼내 구불구불한 길을 그리고, 네모난 집들을 그리고, 용을 나타내기 위해 커다란 주사위를 하나 놓습니다. PC들이 마을에 들어올 때 저는 붉은색 토큰을 한 움큼 집어들고,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연기 냄새가 나고 용말이 들려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붉은색 토큰을 종이 위에 뿌려서 마을이 불타고 있다고, 그리고 용이 불길을 조종하고 있다고 합니다.

말들이 겁에 질립니다. 일행은 용케 말에서 내립니다 (몇 명은 도망치는 말들 때문에 다쳤고 한 명은 나뭇가지에 부딪쳤습니다). 이 지옥도를 지나 전진을 하는데, 때때로 그림자가 휙휙 지나갈 때마다 사람이 하나씩 반토막납니다. 타죽어가는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끌어안은 아이들이 그 품안에서 재로 변합니다.

일행은 마을 사람들을 돕기 시작합니다 (여기는 마력이 응집한 곳이 아니라서 마법사가 의식 마법으로 비를 내릴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4~5톤짜리 괴물이 건물을 부수며 내려앉습니다. 불타는 금색 눈을 번뜩이며 입을 열더니 무시무시하게 포효합니다 (“끔찍함” 태그).

PC들은 공포에 버티느라 (위험 돌파) 돌격의 기세가 흩어집니다. 공격을 할 수 있는 사람도 피해는 별로 주지 못하고 (장갑이 4지요), 이 괴물을 죽이려면 마법사의 장갑 관통 주문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불행히, 장갑 관통은 용도 할 수 있습니다.

그 뒤에 일어나는 일은 공포스럽습니다. 전사 하나가 방어 태세를 취하지만, 용의 공격은 그냥 1d10+5가 아닙니다. 전사의 팔이 뜯어져 나가고 (“파괴적” 태그) 메일 갑옷이 휴지조각처럼 찢어집니다. 용이 불을 뿜자 모두가 위험 돌파를 하고 실패하면 불에 탑니다.

일행은 도망칩니다. 용은 크게 웃고는 마을을 불태우고 생존자를 잡아먹습니다.

용의 HP는 16이었습니다. 일행은 떠나기 전에 9점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여기서 떠났다는 것은 짐도 제대로 못 챙기고 생존 말고는 아무 생각도 못 하며 밤중에 토끼처럼 도망쳤다는 뜻입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HP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 D&D 4판 플레이에서 PC 일행은 용을 열두 마리는 죽였습니다. 그 용들은 수치상으로 강했고, 똑똑했고, 전술적으로 행동했지만, 그 이빨과 발톱이 가한 것은 피해가 아니라 숫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 세션이 끝난 후, 플레이어들은 괴물 하나가 이렇게 두려웠던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습니다.

전투를 장대하게 만드세요. 이야기를 활용하세요. 불에 타서 검어진 피부가 벗겨지는 것을 묘사하고, 땅의 정령의 바위 같은 주먹에 뼈가 으스러지는 것을 묘사하세요. 많은 사람들이 그냥 5점 피해를 입습니다 같은 말로 전투의 이야기를 청소하려 듭니다. 피해는 오래 가게 하고, 치유가 어렵게 하고, 흉터가 남게 하세요. 모든 상처에 이야기가 깃들게 하세요.

싸움을 무섭거나 어렵게 만드는 데 2500HP씩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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