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들 [기동전사 건담]의 작품 테마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해”라고들 한다. 그리고 [기동전사 건담 UC]의 테마를 마찬가지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단적으로 말하건데, [기동전사 건담 UC]의 테마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해”가 아니다.
작품에 테마가 있다고 함은, 작품의 여러가지 이미지나 장면들을 관통하고 응집시켜 일관된 설명을 가능케하는 것이 있다는 말인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해”같은 지나치게 추상적인 것으로는 작품을 견인하기 어렵다. 말하자면 그것은 건담이란 프랜차이즈 전체가 유념에 두고 있는 것이고, 각각의 작품에는 그 작품에 걸맞는 더 구체적인 테마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역습의 샤아]의 경우에는 키워드로 말하면 “변혁” 혹은 문장으로 말하면 “변혁이 일어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가 생각하는 기동전사 건담 UC의 테마는 “주문”이다.
문장으로 말하자면, “주문은 무엇으로 쓰여있는가”라는 문제다.
기동전사 건담 UC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저주(呪い)다. 저주는 말하자면 과거의 어떤 사람에 의해서 다른 사람의 운명을 한 (부정적인) 방향으로 밀어넣는 강력한 힘이나 현상이다. 그리고 주문은 바로 그 저주를 읊기 위해서 필요한 글귀나 행동같은 것이다.
이 주문은 물론 작품에서 가장 큰 수수께끼로 작용하는 “라플라스의 상자”의 정체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 전체가 과거의 저주에 시달리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간단한 예로 등장인물을 보자. 세 명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버나지 링크스, 리디 마세나스, 미네바 자비는 가문이라는 저주를 등 뒤에 지고 있다. 그들이 아무리 발버둥치더라도 그들 자신이 각자의 가문에 속해 있다는 사실로부터는 벗어날 수 없으며, 결말에서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그 사실에 마주한다.
주된 적으로 등장하는 풀 프론탈이나 마리다 크루즈는 어떤가? 이 두 사람은 말그대로 ‘망령’이 깃든 그릇이다. 그들은 클론이나 강화인간으로, 각각 샤아나 플의 역할 혹은 능력을 발휘하도록 강요받은 인간들이다.
여기에 더해서 등장하는 주변인물인 스베로아 진네만이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이나, 비스트 재단의 인물들이 비스트 가문임을 강하게 인식하고 (찬성하든 반대하든) 행동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저주에 걸린 모습과 마찬가지다.

작품의 등장인물을 넓혀서, 작품 세계 전체의 인물들에게는 과거의 전쟁이라는 저주가 씌워져 있다. 그들은 과거의 전쟁(1년 전쟁)에서 일어난 일때문에 두려워하거나 증오하며 행동한다. 스페이스 노이드의 자치를 거부하든 긍정하든 그들의 행동에는 과거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뜨려져 있고, 그것이 그들의 행동을 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저주를 일으키는 주문은 무엇으로 씌여 있는가? 그것은 피다. 주문은 피로 쓰여지는 법이라고, 기동전사 건담 UC는 말하고 있다.
그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동물로써 인간, 생물로써 인간이 어쩔 수 없이 이어받는 그들의 유전 정보를 의미한다. 그것이 바로 ‘가문’이고, ‘클론’이다. 그렇다면 다른 하나는? 그 ‘피’는 ‘과거에 희생당한 사람들’이나 그 ‘기억’을 의미한다. 버나지 링크스가 유니콘을 조종하게 된 것은 그의 ‘피’가 이끈 결과이기도 했지만, 그의 아버지의 ‘피’를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라플라스의 상자”가 강력한 힘을 갖는 이유는 물론 그것이 은폐된 비밀이어서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두려움의 대상이 된 최초의 이유는 그것이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기 때문이다. 그것은 과거의 사건에 휘말린 사람들의 피뿐만이 아니라, 미래에 있을 사람들의 피까지 희생하였으며,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의 피를 흘렸기 때문에 감히 용서받을 수도 없이 100여년 가까이 이어져 내려왔다.
과거의 사람들과 미래의 사람들은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저주가 된다. 죽은 자에게 안식을 바라는 이유는, 죽은 자들이 안식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문의 강력함은 그것을 지우거나 없앨 수 없기에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7화의 일부 씬들은 끔찍하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사자’와 만날 수 없고, 그렇기에 저주를 풀 수도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상자의 주인은 미래에 올 사람들에게 “라플라스의 상자”를 맡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래의 용서는 있을지언정 과거의 용서는 있을 수 없다.
여기 아직도 피비린내가 나는구나. 온갖 아라비아 향수를 다 써도 이 작은 손을 다시는 향기롭게 만들지 못하리라. 아! 아! 아!
— 셰익스피어, <멕베스>
저주에 대항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그 주문 자체를 완전히 지우거나 깡그리 없애버리는 방법이다. 가문의 ‘피’든 희생의 ‘피’든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을 모조리 없애버린다면 주문은 되살아날 수 없다. 그러나 멕베스 부인이 몽유병 중에 중얼거리는 말처럼 주문은 손쉽게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주문이 살아있는 한, 저주는 계속해서 살아난다.
다른 하나는 주문은 때로 축복을 위한 말이기도 함을 기억하는 일이다. 유전정보의 ‘피’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전해주고 싶었던 것’이며, ‘희생당한 사람들’은 실인즉 ‘희생당한 가능성’이기도 하다. 전해주고 싶었던 것을, 그리고 희생당한 가능성을 기억하며, 부정적인 방향으로 사람을 이끄는 저주와는 반대의 방향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일. 주문이 없어지지 않는 한 저주는 계속해서 살아나지만, 그 저주에 맞서는 것은 잊는 것이 아니라 ‘잘’ 기억하는 일, 적극적으로 축복으로 바꾸어나가는 일이다.
때로는 우연에 의해서, 때로는 사자를 대변하려고 억지를 부림으로써, 때로는 진실이 아닌 환상을 믿음으로써, 축복도 저주가 되기 마련이다. 축복은 저주와 같은 주문으로, 같은 피로 씌여진 것이기 대문이다.
“지온 다이쿰이 뉴타입론을 제창한 일은 이 헌장이 만들어지고 나서 40년 후의 일입니다. 라플라스 사변과 함께 묻혀진 이 한 구절은, 먼 미래에 바친 기도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우연의 일치가 이 헌장을 저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 그리고, 기동전사 건담 UC는 그 스스로 저주에 걸린 작품이기도 하다. 기동전사 건담의 피를 이어받은 기동전사 건담 UC는 스스로 그 피로부터 벗어났을까. 내게는 적어도 기동전사 건담에 충실하려는 생각이, 죽은 자마저 감히 이해할 수 있다는 ‘뉴타입’이란 환상을 반복함으로써(그 끔찍한 7화의 마리다 크루즈 씬은 ‘오마쥬’다. 그것이 정도가 심하건 아니건 그 기원은 기동전사 건담에 있다.), 끔찍할 정도로 다시 저주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개개인으로써 그 저주를 풀어내는 건, ‘진실’을 확인하고 축복으로 바꾸는 일일 것이다. 마치 역습의 샤아가 기동전사 건담을 끝내고 싶어했던 것처럼. 적어도 유니콘의 갈라진 뿔은, 저주의 상징으로 남을 것이다.
Email me when 데이비드 상 publishes or recommends st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