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과 몸이 바뀌면서 타키는 어떤 인연이나 유대를 쌓았던 걸까요?
<너의 이름은.>감상
데이비드 상
21

추가 노트 : 작중 표현을 빌면 ‘제멋대로 바꿔놓은 인간관계’들. 예를 들어 미츠하랑 오쿠데라의 관계가 어떤 것이었나에 대한 문제.

나에겐 이 둘이 사실 연인관계처럼 보인 건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타키의 몸을 빌렸을 뿐이지 일종의 자매애sisterhood처럼 읽혔다. 영화 안에서 묘사된 한에서 이 둘의 관계는 적극적인 공세나 밀땅이라기보다는 ‘남성의 무례함’을 배제한, 편안하게 의지할 수 있는 관계였기 때문이다. 경험적 작가가 그렇게 의도했다기보다 그렇게 만들어져버렸다. (아마 그 의도는 ‘남자사람친구 연애를 도와주다보니 남자사람친구의 매력을 알게 된’ 것이었겠지만, 정작 데이트 때 미츠하가 타키에게 주었던 가이드들을 떠올려보라.)

그렇다면 그렇게 미츠하가 형성해버린 자매공동체sisterhood, 그 ‘제멋대로 바꿔놓은 인간관계’는 극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가? 이는 다시 타키가 ‘왜 미츠하 말고 모두를 구해야하는가?’란 문제와 연결된다. 이 모든 질문은 망각이라는 작품의 장치로 무마된다. 물론, 나는 <너의 이름은.>에서 전하고자 한 망각의 고통이 허무맹랑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필름, 아니 모든 기록물은 변색되고 마모되어 불타 사라지기 마련이다. 어느새인가 그 내용은 떠올리기 힘들어진다.

그러나, 날마다 벌어지는 망각과 떠올림의 필사적인 전투 속에서, 떠올림은 어떻게 가능해질 것인가. 잃어버린 너를 나는 어떻게 기억해낼 수 있을까? 떠올림의 무기는 나밖에 기억할 수 없는 고독함과 절박함 뿐인 것일까?

One clap, two clap, three clap, forty?

By clapping more or less, you can signal to us which stories really stand 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