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공상과학

장강명, SF의 본질은 ‘공상’에 있지 않을까

“우선 불필요한 열등감을 버려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SF 작가나 팬을 멸시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대체로 SF에 관심이 없습니다. 간혹 SF 팬을 그냥 약간 웃긴다고 보는 정도입니다.”

나는 직역을 싫어하는데, 대체로 그건 언어가 ‘기계적으로 번역될 수 있다’는 믿음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아닌 경우는 예외). 두 언어가 아무리 근친하더라 1:1로 대응할 순 ‘절대로’ 없다. 원칙적으로 말하면 ‘완벽한 번역’은 실재하지 않는다.’번역’을 믿는다는 것은 이 불완전성을 받아들인 위에서, 어떻게든 번역가가 다른 언어를 이 언어로 번역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정보를 이 언어에도 ‘들려주고자’하는 의지가 있을 때에만 번역이란 행위는 일어난다.

이미 영어가 세계공용어의 위치를 실제적으로 차지한 지금 많은 용어가 이니셜(-initial)이나 영어로 들어오는 것은 어쩔 수 없고, 또 이해에도 무리가 없다. 그러나 SF라는 용어엔 분명히 여러 역어가 있고, 이를 포기하자는 건 번역의 포기다. 이중에서 과학소설이란 용어는 SF영화나 SF게임과 같이, SF가 문학 장르에만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에 쓰기 곤란하다. “과학소설 영화”나, “과학소설 게임”으로 쓸 순 없는 노릇이다. 다른 역어로는 ‘공상과학’이 있는데, 이는 골수 SF팬들로부터 많은 반발을 받고 있다.

먼저, 공상과학이 잘못된 역어라는 의견이다. 공상과학의 유래는 일본에서 Fantasy & Science Fiction이 넘어왔을 때, 이를 번역하면서 생겼다고 하는 것이 통설이다. 즉, 판타지와 SF를 묶어서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된 역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판타지’라고 불리우는 장르를 과연 ‘공상’이라는 말과 연관지을 수 있을까 의문스럽다. 특히나, PC 통신 시절의 작품들과 반지의 제왕 삼부작의 영화 개봉으로 ‘판타지’라는 장르는 ‘판타지’라 불리우는 경우가 많으며, 역어를 사용할 경우엔 ‘환상 문학’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잦다. 따라서 그 유래가 어떠하건, 공상과학을 사용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게다가 듀나의 말을 빌어 “(의사) 과학적인 방법으로 지금은 불가능한 상황을 가능하게 하고, 바로 그 상황이 영화의 등뼈가 되는” 것이 SF라고 한다면, ‘공상과학’이라는 말은 이에 매우 합치한다고 볼 수 있다. 유사 과학, 의사 과학까지 포함하는 ‘공상 과학’이란 말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는, 역사적으로 ‘공상과학’이 ‘애들이나 보는 것’과 같은 경멸적인 언어로 쓰인다고 주장하는 경우인데, 이는 위에 글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몇몇 SF 팬들은 ‘공상과학’이라는 말을 버리고 ‘과학소설’이라고 쓰면 SF라는 장르가 지금보다 더 존중받을 거라고 믿습니다. 즉, 이것은 기실 인정투쟁과 관련된 얘기였던 것입니다. 용어의 정확성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그리고 모든 인정투쟁이 그러하듯이, 이 인정투쟁의 밑바닥에는 열등감과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과연 SF와 SFX가 혼동되는 (D-war를 SF라고 부르는 것처럼) 상황에서, ‘SF’와 ‘공상과학’이 인정 투쟁에서 차이가 존재할까? 어느쪽의 단어를 선택하든 그 허황된 것이란 비웃음은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만약 인정 투쟁을 해야한다면 바로 그 허황된 것의 가치, ‘공상’이라는 단어의 가치를 새롭게 정의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언제까지고 ‘장르 문학’이라는 것은 거기서 머무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공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고, ‘공상’을 즐기는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식의 인정투쟁이 훨씬 효과적이지 않을까.

단, 현실적으로 나는 SF가 결국은 받아들여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SF 팬들의 투정하고 전혀 상관 없이, 그것이 두 글자라 타자치기 매우 편리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결국 기호이며, 기호 체계 내의 차이보다는 바깥의 경제성이 훨씬 큰 압력으로 작용한다.


Originally published at noobcoela.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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