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h enjoe, The empire of corpses

이토 케이카쿠가 원안을 만들고, 엔조 도가 이은 <죽은 자의 제국>은, 먼저 영어 제목이 “The empire of corpses”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시체들의 제국”이라고 번역하는 편이 옳긴 하겠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살아있는 시체”(屍者)들을 그대로 표기하기엔 너무나 길기 때문에, “죽은 자”들 정도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여하간 이 책은 좀비가 등장하는 책이다. 하지만, 조금 색 다르다. 여기에서 좀비는 습격해오는 무리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죽은 자”들은, <프랑켄슈타인>에서 비롯한다. 그러니까,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을 만들어낸 기술이 정말로 널리 퍼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한 가정 위에서 쌓아올려진 개념이다. 그들은 전염병처럼 되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힘으로 그 기술을 이용하여 되살아난다. ‘좀비’가 부두교에서 특수한 처리를 받은 종이었던 것을 떠올리면, 그들이 ‘노동력’을 대신할 것이란 예상은 충분히 할 수 있다. 즉, “죽은 자”들은 (증기기관과 마찬가지로) 산업혁명을 일으키며, 엄청난 생산력을 가져다 준다. 그렇게 성립한 19세기의 자유경제의 시대, 제국주의 시대를 이 작품은 그 배경으로 한다. 말하자면 ‘네크로-펑크’라고나 할까. 참고로, 작중에서는 네크로-웨어란 말로 죽은 자의 제어 OS가 등장한다.

여기에 주인공은 셜록 홈즈에 등장했던 존. H. 왓슨. 그가 ‘아프가니스탄’에 군의병으로 참전했던 것은 실은 ‘유니버셜 무역’이라 칭하는 국가 첩보 기관의 커버 스토리이고, 그는 “죽은 자”들로만 이뤄진 제국을 누군가가 아프가니스탄 안에 짓고 있는 것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첩보원이다… 라는 것이, 이 작품의 설정이다. 19세기의 문학 작품에서 등장한 인물, 실존 인물, 가상의 인물이 이 네크로-펑크 세계관에 맞추어 변형되어 등장한다.

“대영 제국과 러시아는 그나마 나은 편이지. 브라질에서는 국가 자체가 죽은 자 공장처럼 변하고 있어. 자발적으로 죽은 자 소생을 진행시키려는 공동체가 탄생하면서 말이야. 콘셀례이루라는 치들이 그 운동을 부추기고 있다네.”국민에 대한 봉사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거지. 그 편이 더 유익한 사회를 설계할 수 있다는 명목하에서 말이야. 원인은 그냥 가난해서지만. 중국이나 미국에서는 마을들이 하룻밤 사이에 사라지고 있어. 어째서인지 알겠나.”예의 바르게 고개를 갸웃한 나를 향해 그랜트는 짧게 대답했다.
“수출용이야.”
나는 지금까지 사람이 죽는 수라는 것은 자유 경제의 수요에 응해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없는 종류의 숫자라고 근거 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자유 경제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한다. 가능한 일은 언젠가 반드시 실현된다.

이 작품은 이토 케이카쿠가 죽기 전에, 프롤로그와 짧은 시놉시스만 남겼던 것이다. 그것을 엔조 도가 완성한 것이 지금의 형태이다. 본래 이토 케이카쿠는 ‘일본’과 ‘이스라엘’을 중요하게 등장시키려고 했지만, 시놉시스 정도만 대충 쓰여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엔조 도로서는 그 전모를 알 수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이토 케이카쿠의 문체를 존중하되 그의 방식대로 이야기를 다시 쓰는 방식을 취했다고 한다.

따라서, 이 작품의 장점과 단점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이토 케이카쿠의 작품이 아니다’. 엔조 도도 물론 현학적인 대사를 쓰긴 하지만, 그것은 말하자면 작품에서 수용할 수 있을 정도를 유지하며 이뤄진다. 이토 케이카쿠의 과포화와 같은 형태와는 분명 다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토 케이카쿠와는 달리, 매우 추상적인 레벨의 아름다움을 잘 묘사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을 많이 보진 않았지만, 그는 논리적인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서, 마지막 순간에 그렇기에 논리적으로 “불가지”한 것, “센스 오브 원더”를 보여주는데 매우 능숙하다.

“몸과 사고는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양자의 사이에는 망망한 영혼이 있으며, 그 영혼은 물질이 아닌 패턴이다. 정교한 패턴이 풀림으로써 약 21그램의 정보가 공기 중에 방출된다. 질료를 갖는 것은 물질만의 특권이 아니다”

반대로 말하면 그는 이토 케이카쿠처럼 이미지를 명확히 그려내는 것은 못한다. 특히나 액션 씬은 처참할 정도라서, 도저히 머릿속으로 읽어낼 수 없다. 그리고 딱히 그도 그것을 신경 쓴 것 같지 않다. 또한, <죽은 자의 제국>의 완성본은 세계의 면면을 구체적으로묘사하는 것보다는 더 추상적인 레벨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룬다. 스포일러를 피해서 말하자면, <죽은 자의 제국>이 다루는 것은 ‘영혼(혹은 의식)’과, ‘대화’, ‘언어’의 문제다. 이것은 구체적인 세계상을 먼저 그려내어, 그것을 통해 사유를 전개하는 이토 케이카쿠의 방식하고는 많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인지, 표면적으론 <죽은 자들의 제국>은 다른 이토 케이카쿠 작품과 같이 주인공이 ‘미션(임무)’을 위해 여행한다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렇지만, 뭐랄까, 이토 케이카쿠의 그것은 ‘영화적’이라고나 할까, FPS나 액션 게임 같이 호흡이 짧고 긴장감을 계속 유지하는 편이다. 반면 엔조 도의 그것은 ‘드라마’적이라고나 할까, RPG 게임의 여정과 같이 호흡이 길고 긴장감이 늘어지는 느낌이 강하다. 나는 이 책을 한 번에 쭉 읽으라고 권하기보다는 1부, 2부, 3부를 드라마처럼 나누어서 읽기를 권한다. 만연체도 꽤 이어지는 편이다. 아무래도 번역의 문제라기보다는 본래 그렇다고 생각한다.

“국제 윤리 규정 위반물입니다. 그들은 산 자에게 통각을 담당하는 부위를 계속해서 강하게 자극당하면서 운동성능을 끌어냅니다. 끝없이 지옥 같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겁니다”
물론 이것은 일본 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준비한 허위였다. 신형 죽은 자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단지 기술적으로 이미 가능해진 일은 감정에 호소하는 것으로 규제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타인의 아픔은 이유를 불문하고 사람의 마음에 작용한다. 상대를 동료로 간주할 때에 한한다는 조건이 붙지만 내전으로 어지러워진 이 나라에서는 효과적일 거라는 예상은 맞아들었다.
“수라(修羅)라는 거군요.”
야마자와가 쓰는 단어의 뜻은 몰랐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충분히 이해가 갔다.
“추론을 할 수 있느냐, 말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고통을 느끼는 능력이 있느냐가 문제다…”
뜻박에도 벤담의 말을 인용한 야마자와는 허리를 낮추고 깊이 숨을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죽은 자의 제국>의 주제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죽은 자’와 ‘인간’이 다른 것은 무엇인가, ‘영혼’의 차이라면 대체 영혼(혹은 여기서 말하는 ‘영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힌트만 살짝 던지자면, 그것은 인간에게 스스로 자립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죽은 자들의 제국>은 해답을 내놓는다. 따라서 문제는 어떻게 ‘대화’하느냐가 된다. ‘흑막’에 의해 제시된 ‘대화’가 실험되며 거기에는 어떤 결점이 있는가, 하는 문제 역시 다루고 있다. 3부에서 등장하는 액션 씬은 다른 파트와 달리 매우 기하학적이며, 주로 이러한 추상적인 사유에 대한 게임이 지속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엔조 도만의 스타일이 빛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며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다.

이토 케이카쿠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추천하지 않는다. 그러나 스팀-펑크나, 19세기 영국이 매력적인 사람, 혹은 ‘좀비를 노동력으로 써 산업혁명에 이르렀다’는 설정이 재밌는 사람에게는 볼만한 작품이며, ‘타자’와의 ‘대화’라던가 ‘언어’라던가 하는 것에 고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매우 추천할만한 작품이다.


Originally published at noobcoela.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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