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추천으로 미디움(Medium, 글쓰기 플랫폼)에 글을 모아두기 시작한 지 6개월 정도 지났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거의 매일같이 의식의 흐름을 고스란히 추출한 글을 쓰던 것과는 별개로, 꽤 긴 호흡으로 진중하게 써내려간 글들이 일곱 개나 있는 소중한 계정이었다.

글을 쓸 때 거의 수정하지 않고 생각의 흐름대로 고스란히 쭉 뽑아내서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펼쳐놓는 성격인 내가 무려 세 시간동안 단어 하나 문장 한 줄 고민하고, 지우고 덧붙이기를 반복하다가 ‘무단 전제나 재인용을 금합니다.’ 라는 문장으로 마무리해서 업로드했다고 하면 조금 이해가 쉬울까.

에이전시나 학교 등 기관의 도움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준비했던 해외 인턴 도전기부터 외국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바를 소상히 담아낸 기록까지, 내겐 정말 소중한 글을 담고있는 그 계정에게 실수라는 변명으론 용서할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 내 손으로 계정을 폭파시킨 것이다. (그렇지만 정말로 실수였다!)

원래도 나는 내 이름을 붙여 정보의 바다에 띄워질 말과 글의 무게를 직시하고 있었다. 책임지지 못할 컨텐츠는 발행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원칙도 있었다. 그렇지만 최근 ‘신상털기’라는 명목으로 과도한 마녀사냥과 징벌적 난도질을 집행하는 일부 네티즌들의 몰지각함은 나로 하여금 불특정 독자에 대한 막연한 공포에 떨게 만들었고, 그래서 내 생각을 담은 문장을, 내가 내 가치관과 사고방식에 당당하며 더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은 의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에게만 공개’로 설정하게 만들었다.

계정 폭파 역시 실은 그 여파의 일환이었다. 원래 미디움 계정이 내 개인 페이스북과 연동되어 있었던 것을 끊어,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 개인을 유추해낼 수 없도록 하려던 것이 그만 참사를 부른 것이다. 실존하지 않는 두려움이 인간을 잠식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정확히 깨달은 사건이었다. 나는 무엇이 두려워 그토록 허둥지둥 성급하게 개인정보를 지우려던 것일까.

소위 ‘신상털기’를 피해 내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내가 속한 집단으로부터의 배척, 내 가족과 친구, 나 자신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 내 외모, 학력, 사회적 지위 등 나를 구성하는 것들에 대한 조롱이나 멸시, 혹은 그 모든 것. 더 쉽게 말하자면, “걔 그런 애였어?” 혹은 “걔가 그런 애래.”

나의 가치관과 세계관이라는, 어쩌면 형이상학적이고 비본질적일지 모를 것이 내 실존의 명예를 실추시킬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나로 하여금 솔직하지 못하게 만든게 아닐까.

물론 진솔한 글이 과연 작가 개인을 드러내지 않고도 가능할까라는 의문도 가지기는 했다. 그가 속한 여러 집단의 성격은 곧 그의 선택과 상황을 반영하고 또한 반영된 것. 나의 글 속에서 내 스스로를 전혀 드러내지 않을 방법이 과연 있을까.

또한, 가장 좋아하는 일인 글쓰기로 인해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있었다. “글 쓰는 것 좋아한다더니 형편없네”, 라던가 “넌 그냥 딱 취미 수준인가보다.” 따위의 평가에 상처받아 절필하고 싶지 않았다. 평생 졸작만 쓰다가 죽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두려움이 나 자신을 그냥 ‘일반인 치고 글 잘쓰는 사람’으로 안전하게 머물도록 만들었다. 고등학생 때 ‘문예창작과에 지원했다가 떨어지면 난 절대 작가가 될 수 없을거야.’라고 생각하며 공부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글쎄. 그렇지만 더이상은 그렇게 이런저런 핑계 뒤에 구차하게 숨고 싶지 않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오히려 내가 가진 것, 움켜쥘수록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썩어져 없어질 것들을 부여잡기 위해 나 자신마저 숨기는 것이야말로 비본질적인 인생 낭비가 아닐까 싶었다.

사진 아카이빙 SNS인 인스타그램에조차 사진 크기만큼의 문장을 첨부해 업로드하는 내게, 전공이 디자인인데도 그림은 낙서조차도 하루에 한 개 안 그리면서 심지어 인터넷이 안 되는 아프리카에서조차, 휴대폰이 없으면 전자사전 메모장에라도, 하다못해 수학 문제집 귀퉁이에라도 매일 단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며 평생을 살아온 내게, 글을 쓰고 내 생각을 말하고 싶은 욕망은 다른 모든 것, 소유에 대한 욕망과 인정받고 싶은 욕구 따위는 가볍게 압도할 만큼 절실하고 본능적인 것이다.

이제는 내 삶의 가장 중차대한 욕구를 직시하고 해소하며 스스로 주체가 되어 살아가겠다는 결심이다.

글 못 쓴다고 욕 좀 먹으면 어떤가. 작가가 되고 싶다더니 이 정도론 택도 없었네, 하며 조롱을 받으면 어떻겠는가. 어차피 이 페이지에 올라간 이상 내 글들은 무료로, 아무 데서나, 원한다면 누구나 읽을 수 있고 읽기 싫으면 손가락으로 한 번 툭 쳐서 받아보기를 끊으면 그만인데 말이다.

나는 어찌 되었든 스스로의 욕구에 솔직하게 반응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 열중할 테다. 그 정도의 용기는 있어야 공개적으로 대중 앞에 자기 생각을 떠벌릴 수 있겠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에, 진정 자유로운 사색과 고찰을 위해 뇌만을 남겨두고 몸을 모두 없앤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 어떤 다른 에피소드보다 이 일화를 좋아하는 내가 스스로의 모든 다른 정체성을 숨겨 가며 이렇게 독립된 페이지에 글을 쓰고 싶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겠다.

나는 이 곳에서 누구의 딸, 누구의 애인, 누구의 제자, 그 누구의 어느 무엇도 아닌 한 화자이자 필자 ‘다양’으로만 존재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읽는 이에게 자신이 아는 누군가와 이 ‘다양’을 다른 이로 간주해 주는 아량을 부탁한다.

나 역시 쓰레기통에 던져져 개에게 질겅질겅 먹히는 것으로 사유의 끝을 맞이했던 남자처럼 되지 않도록, 내 뇌가 담긴 유리병이 될 이 페이지는 부디 잘 보존해야겠다. 또한 몸에서 분리한 뇌의 자유로운 사고 확장이 과연 어디까지일 수 있는지 직접 실험해 보는 즐거움을 충분히 누리겠다.

여하간에 그간 여러 사람들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좀 더 편하고 쉽게 네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좀 다른 플랫폼에 글을 써봐! (예컨대 미디움. 노엽다.)’라고 조언을 해 줘도 요지부동이 차일피일이던 나의 결단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언제 다시 소심한 겁쟁이로 돌아가 일기장에나 끄적일지 모르지만 나름대로 일종의 개인적 등단을 했으니 노오오력을 해 보오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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