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칭찬 프로그램 개발 노트

Ed
7 min readOct 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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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몇 개월의 준비 과정을 거쳐서 최근에 직원 칭찬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회사에서 정기적으로 Team health survey를 진행하는데 거기서 Recognition 항목이 낮게 나왔다. (참고로 다른 항목들도 전반적으로 다 낮았긴했다..) 항목의 질문 내용은 ‘내 업무로 인한 인정이나 칭찬에 만족하시나요?’이고, 직원들이 느끼기에는 그렇지 않다는 거였다. 직장에서 인정이 승진이나 보너스 같은 물질적인 보상도 있지만, 매니저나 동료의 칭찬 같은 보이지 않는 것도 있는데, 설문 항목 중에 Reward가 따로 있었기 때문에 이 질문에서는 후자에 대한 것이었다. 이 이슈에 대해 리더쉽에서도 관심이 있었고, 비슷한 시기에 몇몇 직원들도 서로 칭찬하는 창구가 있고 보상도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아프게도 설문 결과나 직원들의 요구사항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여기만 이런 건지, 한국이 이런 건지, 사람 사는 곳 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사무실은 비난이나 비평이 칭찬보다 쉬운 분위기다. 서로의 불만을 회의에서건, 메일을 통해서건, 상위 매니저를 통해서건 활발히 전달되지만 칭찬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이런 배경에서 사람들은 업무에 방어적으로 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뭔가를 해야 했다(Asia head가 어떻게 돼가냐는 메일도 계속 보내기도 했고..)

프로그램

직원들이 서로 칭찬하고, 보상을 주자는 건 새로운 개념은 아니었다. 책이나 TV에서 본 적도 있고, 사람들과 대화해보니 이전 직장이나 팀에서 비슷한 프로그램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바둑돌을 직원들에게 하나씩 나눠준 다음에, 칭찬하는 사람에게 돌을 건네고 나중에 돌이 많은 사람을 찾는 방법도 있었고, 사내망에 웹사이트를 만들어 칭찬을 적도로 하는 방법도 있었다. 그리고 사내 채팅 시스템에서 bot을 이용해 칭찬하면 점수를 얻고 가장 점수를 많이 받는 사람을 선정하는 방법도 있었다.

직원들이 가장 참여가 쉽고, 부작용도 적어 보이는 마지막 방식을 해보기로 했다. 사실 채팅을 이용하는 건 다른 회사나 책에서 본 게 아니고, 회사 내에서 소규모 팀에서 쓰던 방식인데 지금은 여러 사정으로 흐지부지 중단된 상황이었다. 그래도 프로그램 자체의 문제로 중단된 건 아니었기에 다시 살려서 더 큰 규모에서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Tools

구체적으로는 회사에서 Slack을 쓰고 있고, 스튜디오 차원에서 여러 용도로 사용하는 채팅봇이 있어서 거기에 칭찬을 기록하는 기능을 추가했다. 기존에는 몇 개의 칭찬을 받았는지만 기록했는데, 조금 더 의미 있는 칭찬과 보상이 되려면 칭찬 문구도 저장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반영됐다.

그래서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식으로 공개 채널이나 봇에게 다이렉트 메시지로 다른 직원을 칭찬할 수 있다.

@momo praaise @user1 코드리뷰에서 생각 못 했던 점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면 모니터링 툴에서 아래처럼 지표들과 칭찬 문구들을 볼 수 있다.

모니터링 툴 화면 일부

선정

선정 기준은 처음에는 기계적으로 칭찬을 많이 3명이었다. 그러다 준비 과정에서 단순히 칭찬 수만 가지고 결정하기보다는 칭찬의 내용도 보고 추가로 선별을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들이 많아서 반영됐다.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칭찬 많이 받은 3명과, 칭찬 내용 중에 회사의 가치와 맞는 내용을 추가로 선별해서 보상하기로 했다.

보상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었다. 돈이나 상품을 주는 것, 트로피나 회사 로고가 있는 티셔츠 같은 상징을 주는 것 중에 뭐가 나은지 결정하기 어려웠다. 사내 소규모 팀에서 진행했을 때는 매니저가 사비로 상품을 준비했고, 매니저의 전배로 이어할 사람이 없었다. 바둑돌로 칭찬 포인트를 모은 경우에는 보상을 받기 위해서 바둑돌로 내기하거나 거래하는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거기에 전사적으로 사용되는 Gift Policy가 있어서 비싼 선물을 주기에는 프로세스도 복잡했다. 비싸지 않고, 의미 있고, 기념할만하고, 자랑할만하고, 그렇지만 어뷰징을 유도하지 않을 정도의 매력이 있는 보상을 정해야 했다.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참에 봇 개발을 위한 미팅에서 이 프로그램에 선정된다면 보상으로 뭐를 받고 싶냐고 물었고, 대답이 점심 사 먹게 Tmoney 카드를 받았으면 좋겠다였다. 유부남이라서 용돈도 적고, 회사에서 받은 티머니 카드도 거의 다 써서 또 주면 좋겠다는 거였다.

이사 기념 선물로 받은 카드

새 사무실로 이사하면서 회사에서 음료수나 음식을 파는 자판기가 생겼고 Tmoney 카드로 결제를 하는 구조였다. 회사에서 이사 첫날에 기념으로 회사 로고가 들어간 카드를 제작해서 주었고, 그 얘기를 하는 거였다. 가격도 저렴하고 카드에 프로그램 관련 문구를 넣는다면 여러 조건을 맞추는 보상 아이디어였다! 이제 카드에 넣을 문구만 정하면 됐다.

프로파간다

회사에 ‘목적과 신념’으로 불리는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를 6가지 단어(Pioneer, Teamwork, Learning, …)로 정한 게 있다. 직원 행동강령, 사훈 같은 거로 볼 수 있다. 이런 게 으레 그렇듯 좋은 말이지만 직원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 이전에 몇 가지 프로그램을 해오면서 이걸 어디에 쓸 수 없을까, 직원들에게 익숙해지도록 할 방법이 없을까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카드 문구 고민이랑 합쳐지면서 방법을 찾았다. 6가지 가치를 카드에 넣으면 직원들에게 카드 보상으로 주면서 회사 가치도 같이 전달할 수 있지않을까?

보상 카드 시안

그렇게 생각하자 다른 나라 사무실에서 오는 손님들에게도 선물로 주면 회사 가치 전달에, 숙소로 복귀할 때 택시나 지하철에서 쓸 수 있고, 회사 자판기를 직접 이용할 수 있어서 기억될만한 작은 선물이 될 거 같았다.

기존에 있는 6가지 이미지를 회사 아티스트분이 교통 카드 버전으로 수정해줘서 제작할 수 있었다.

파일럿 프로그램 중간 후기

프로그램에 대해 처음 생각을 할 때마다 남용해서 보상만 챙기려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실제로 비슷한 프로그램을 운영했던 분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어뷰징으로 프로그램 자체가 없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일단은 한 달 정도 시범적으로 운영해보면서 보완하기로 했다.

그리고 2주 정도가 지났는데 지금까지는 걱정하는 수준의 어뷰징이 보이지 않아서 별도의 보완 없이도 앞으로 계속 사용할 수 있을 거 같다. 생각보다도 더 직원들이 선한 의도로 쓰고 있어서 조금 놀라기도 하고 훈훈해지기도 했다. 아래는 샘플로 뽑은 실제 칭찬 메세지다.

  • pdd에 들어와서 좋은 의견을 많이 주셔서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었다
  • cc로 들어가 계시던 지라 티켓에서 먼저 발벗고 나서서 이슈 관련 정보 추출 도와 주심
  • 젠킨스 수정 요청에 대해 빠르게 작업해주셔서 다른 사람들이 빌드 대기하는 시간이 줄었습니다. 급하게 요청한 사항인데도 친절하게 대응해주셔서 감사해요.
  • 통과가 불가능 할 것 같았던 앱 아이콘의 라이선스 검수 이슈를 온 힘을 다해 통과 시켜주셨습니다.

보상에 관해서도 일단은 괜찮은 반응이다.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아이디어/도움을 준 직원들에게 감사의 의미로 주었는데 다들 좋아했다.

남은 일

이제 남은 일은 정기적으로 운영하면서 많은 칭찬을 많이 받은 사람들과 널리 공유할 칭찬을 받은 사람들을 선정하고 준비한 보상을 주면 된다. 근데 사람들이 칭찬들을 읽으면서 하나, 하나 다 의미가 있고, 더욱이 칭찬을 받은 사람에게는 더 그럴 것 같다. 칭찬이 몇 명에게 보상을 주기 위한 재료만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칭찬들을 읽으며 들었다. 그러면서 하나의 칭찬이라도 받은 이에게는 칭찬 메시지라도 어떻게든 전달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다. 당장은 생각이 안 나서 이메일이라도 칭찬 내용을 정리해서 전달하려고 한다. 이것도 더 좋은 아이디어를 찾기를 기다리고 있다. (알고 있다면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끝으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건 직장문화 프로그램이건 처음부터 모든 걸 만드는 경우는 없다. 기존에 해온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하건 책이나 인터넷에서 보고 따라서 만든다. 나에게는 최근 진행해온 직원 칭찬 프로그램이 이런 경우의 대표적인 예다. 모든 걸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채용했다. 그러니 누가 이 프로그램을 칭찬하더라도 겸손에서가 아니라 진실로 ‘저는 그냥 아이디어들을 하나로 모은 게 전부입니다. 이것도 잘한 거긴 하지만요.’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기존에 있는 것들, 남들이 해온 시도와 성공한 점, 실패한 점들을 기반으로 약간만 보완한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적어둔다. 내가 도움을 받은 거처럼, 직원 칭찬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 누군가에게는 이 기록이 주춧돌이 되기를, 아니면 적어도 벽돌 한 장쯤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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