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세, 이직을 결심하다 1

이렇게 살아서는 안될 것 같아.

이 곳은 나에게 희망이었다.

직장생활 11년차, 화려하지만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영상 프로덕션 PD생활 5년 이후, 과로로 생긴 허리통증과 자꾸만 떨어져가는 자존감에 1년의 휴지기와 또다른 실패기를 거쳐 나름의 준비작업과 운빨이 만나 들어오게 된 곳. 클라이언트의 무리한 요구에 ‘No’가 가능하고 오후 6시가 넘어 책상앞에 있으면 “왜 집에 가지않니?”라고 물어보는 곳. 당시만 해도 온라인PR이라는 새로운 분야의 신생팀이라 모르는 것도, 해야할 것도 많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의 ‘쉴 권리’를 존중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배울 것이 참 많다는 점에서, 함께할 수 있는 동료들이 너무도 듬직해서 나는 이 곳이 너무도 자랑스럽고 좋았었다.

희망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다.

약 5년간의 시간이 흐른 후, 출산 1개월 전까지 출근을 하고, 1년이상의 육아휴직을 뒤로하고 6개월 만에 복귀했던 것은 이제야 비로소 각광받기 시작한 온라인PR/ 디지털 PR분야에서 뒤쳐지기 싫어서 였다. 그렇게 야심차게 출근한 첫날 이후 워킹맘의 현실과는 조금 별개로 회사생활은 이전보다 아주 많이 불편해져있었다.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반면 팀원을 통제하려는 성향이 강한 리더. 리더가 일을 열심히 하면 할 수록, 그간 온라인에서 구르고 깨져서 잡아놨던 흐름이, 효율적인 일처리 방식이 팀 안에서 사라져가고 있었다. ‘규칙을 잘 따르고 리더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순응하는 팀원’을 원하는 그를 따르기에는 그간 주도적으로, 축적해왔던 경험치가, 상황을 바라보는 눈높이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전부 사라져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익숙해지는 것이 두려웠다.

새로운 시도, 절반의 성공

육아를 위한 플렉서블 타임제 실시. 회사에 대한 애정은 아직 남아있던 터라 회사 내에서 다른 방향성을 찾기 시작했다. 온라인PR에서 더 나아가 통합 PR이 가능한 곳, 새롭게 출범해서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BTL+PR통합 조직으로의 팀 이동. 대표와 신입사원이 주요 구성원인 작은 팀. 이벤트, 언론PR, 온라인PR 다양한 업무들이 쏟아졌지만 믿음직한 리더의 조언과 조금 더 자율적이고 조금 더 주도적인 업무롤에 만족하는 만큼, 피곤했지만 피곤하지 않으려 애썼다. 경쟁 PT에서 몇번의 승리를 맛보면서, 이 시기만 지나면 안정화 될거다- 다시 예전처럼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육아에 지친 남편을 다독였고, 업무에 시달리는 나 자신을 다독였다.

절반의 성공뒤에 숨어있던 전체의 실패

승진을 했다. 직원이 충원되었다. 장기간 함께하는 클라이언트가 생겼다. 그러나 업무는 더욱 늘어났다. 이곳에서 몸담은 6개월간의 밤샘 일 수가 이 회사에서 몸담았던 5년간의 밤샘 일 수의 총 합을 넘어섰다. 실무 기획자, 실무 진행자, 실무 검수자, 관리자의 역할 모두가 오롯이 내 몫으로 돌아왔다. 잠 잘 시간을 줄여서 일을 처리하는데도 제대로된 일의 진행이 아닌 구멍을 막기에 급급한 하루하루가 지속되고 있었다. 업무 보고를 빙자로 리더와 면담을 진행했다. 그리고, 모든 조직의 문제는 바로 리더와 그를 둘러싼 환경에서 나온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경험이 많고 부하직원들을 아끼는 리더였지만 불편한 상황을 제대로 바라보려 하지 않았다. 누가 어느만큼의 일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체력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계가 온 것 같다’는 내 말에, 불가능한 것을 되게 만들고, 한계를 극복해나가면서 느끼는 희열에 대해 역설했다. 부드러운 말투 속에 ‘헝그리 정신’에 대한 강요가 들어있었다. 대화의 마지막은 ‘중간관리자로 부하직원들을 다독여줘. 그 건 청구좀 빨리 진행해줘’ 였다.
이 곳은 더이상, 나를 꿈꾸게 하는 곳이 아니었다.

그렇게 39세 마지막 이직이 시작되었다.

새벽2시, 태어나서 가장 빠르게 업무를 치고 나서 확인한 시각이 이 시간이라니…. 집에 도착하자마자 잠을 조금 미루고 구인사이트에 등록을 시작했다. 입사한지 만 6년이 되는 어느 날이었다. 가볍지 않은 직책과, 아이의 엄마, 39세라는 어마무시한 나이. 40대 중반만 해도 일자리가 없다는데, 누구는 명퇴를 한다는데 … 호기롭게 시작한 이력서 작업위로 걱정이, 우려가 샘솟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더이상 이렇게 살수는 없다. 일을 즐기는 것도,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도,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내 삶의 권리니까.

그간 전문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팀웍을 존중했고, 신뢰를 받는 만큼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 애썼다. 
주어진 위치에서 책임을 지고, 앞장서서 나아갔었다. 다시 한번, 나와 내 삶을 조금 더 배려해주는 곳에서 더 큰 꿈을 꾸고 싶다. 39세, 다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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