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택의 장면 하나

그 뭐냐, 세상에는 사람을 둘로 나누는 수만가지 기준들이 있다고들 하지 않나. 그러니까 이런거 말이다. 여자, 남자. 노래를 잘 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 키가 180을 넘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박경리의 토지를 읽어본 사람과 읽어보지 않은 사람. 나열하자면 끝도 없이 써내려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이런 기준들 중에서 내가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기준은 바로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하고 싶은 말을 눈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나는 후자에 속했다. 나는 말을 해야했다. 기분이 나쁘면 기분이 나쁘다고, 내 음식에 손을 대지 말라고, 오늘은 혼자 좀 내버려 두라고. 위로만 형이 둘 있는 나같은 인간은 그렇게 자랄 수밖에 없다. 눈빛으로 무언가를 쏘아대면 날아오는 것이 고작 ‘꼽냐, 야린다?’ 수준의 비아냥이었으니까. 말을 한다는 것은 일종의 살아남는 방법이기도 했다.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내가 말을 멈추지 않은 것도 이러한 가정환경의 영향이 적지 않았을테다. 다수의 친구들은 나를 ‘재밌는 놈’으로 여겼고 몇몇 선생님은 ‘재간둥이’란 별명을 하사하기도 했다. 우르르 몰려다니는 무리 한가운데는 언제나 내가 있었다. 가끔은 그렇게 모든 것을 입밖으로 내뱉어야만 하는 것이 못견디게 피곤해지곤 했다. 한달에 두세번 꼴로 그랬다. 그럴 때는 전부를 말로 하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난 눈으로 무언가를 말할 줄 아는 부류의 사람을 누구보다 쉽게, 민감하게 알아챘다. 초등학교 땐 옆자리 여자애가 그랬다. 그 애에겐 친구가 없었다. 가끔 아이들은 그 애 앞을 지나며 흠칫 놀라곤 했다. 나는 그들이 느끼는 불편함이 무엇인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애의 친구가 되어준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그 묘한 침묵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즐거웠던 것도 같다. 그래도 옆자리 여자애는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았는데, 그것도 순전히 눈 때문이었을 테다. ‘날 괴롭히지마. 날 가만히 둬.’ 분명 그렇게 외쳐대고 있었을 테니까.

‘콜라가 마시고 싶어.’ 그날의 택운이형은 이렇게 외쳤다. 그러니까, 눈으로. 그 묘하게 찢어진 눈으로 말이다. 대학가에서 흔히 파는 싸구려 삼겹살이 불판 위에서 구워지고 있는 동안 형은 애타게 콜라를 찾았다. 형 주위에 앉아있던 선배들은 그 외침을 듣지 못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무심하게도 소주잔을 건넸을리가 없다. 형은 어느새 자신의 손으로 넘어온 소주잔에 살풋 눈살을 찌푸렸다.

“선배님들, 기분 좋은데 이쯤에서 또 원샷 해야죠~ 안그래요? 선배님들만 쫙 원샷, 어때요, 콜?”

말을 꺼낸 것은 나였다. 이미 몇병의 소주가 나뒹굴고 있었고 불판 위 고기는 기분 좋은 지글지글 소리를 냈다. 몇 차례 박수와 웃음소리가 오간 상태였으니 단체로 소주를 털어버리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순서였다. 그래도 굳이 그렇게 말을 한 것은 형 때문이었다. 정택운. 곤란함을 두 눈으로 있는 힘껏 말하고 있는 그 형 말이다. 나는 흘러내릴 듯한 가디건을 걸친 형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한 잔을 가득 채운 콜라와 함께. 소주잔을 감싼 형의 손가락 사이로 나의 손가락이 파고들었고 순간 택운이형의 시선이 나를 향하는 것이 느껴져 온 몸이 찌릿했다. ‘선배님은 힘들어보이니까 특별히 제가.’ 나는 있는 힘껏 눈을 접어 웃었다. 술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 해맑은 웃음이었을게다.

“자자, 건배!”

소주잔이 정신없이 부딪혔다. 여전히 접은 눈을 풀지 않은채 소주를 들이켜면서 다른 손으로는 슬쩍 콜라잔을 들이밀었다. 아마도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고 싶었겠지만 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이번에는 입을 열지 않았다.

Show your support

Clapping shows how much you appreciated 두두’s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