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는 소라넷에 책임이 없다”는 남성들에게
1940년대 독일. 유대인들은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는가와 관계없이 그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재산을 몰수당하고, 시민으로서의 기본권을 박탈당하고, 마침내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만약 당신이 동시대의 평범한 독일인으로 태어났거나 혹은 나치와 단절된 전후 독일에서 태어나 자랐다 하더라도 “나는 유대인 학살에 책임이 없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을까. “나는 히틀러나 나치를 지지하지도 않았고유대인 학살을 지지한적도 없다 평범한 대다수의 독일인들이 유대인 학살을 이유로 비난받는 것은 옳지 않다”는 말로 책임을 회피할 수 있을까.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소라넷을 둘러싼 문제를 방영한 뒤로 엄청난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소라넷은 최근 몰카 유포, 강간 모의 등의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폐쇄 청원과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방송에 대한 반응을 두고 한국 남자들을 모두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하느냐는 불만도 따라 나온다. 소라넷의 범죄행태가 심각하긴 하지만 그건 소라넷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문제이지 남성 일반의 문제로 확장하는건 오류라는 주장이다. 성공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범죄자들과 남성일반을 구분해서 공격하라는 조언아닌 조언도 있다.
물론 소라넷의 범죄 방조 행위는 행정력에 의해 차단되고 범죄 당사자는 사법당국에 의해 처벌받아야 하는 사안이지만, 법적 행정적 결과와는 별개로 사건의 정치적, 윤리적, 도덕적 책임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다. 소라넷 문제가 곧 남성성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소라넷을 둘러싼 이슈의 중심엔 성 갈등이 존재한다. 공공 화장실에서 몰카를 찍히는 대상도, 약물에 취해 강간의 표적이 되는 대상도 여성이고 화장실 몰카를 공유하는 사람도, ‘골뱅이’나 ‘초대남’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강간을 하는 대상도 남성이다. 명백히 여성 피해자와 남성 가해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어떠한 문장으로도 에둘러 표현할 수 없다. 일본이 아무리 “전쟁은 모두가 피해자”라는 나이브한 인식을 드러낸다 하더라도 결국 전쟁을 일으키고, 재산을 강탈하고, 사람을 죽인 주체가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이라는 사실은 영원히 변치 않는다는 점과 마찬가지다.
피해자 여성을 만들어내는 배경엔 굴절된 한국 남성 문화가 있다. 메신저를 통해 유명인이 등장하는 리벤지 포르노를 공유하고 선진국 중에서 성구매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대한민국의 남성 문화는 몰카 유포와 강간 모의로 요약되는 소라넷과 어느정도 거리만큼 떨어져 있을까. 소라넷 유저들은 그저 한국 남성 문화의 스펙트럼의 끝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알고싶다에 나온 한 소라넷 유저의 “소라넷은 여자를 사람취급도 안 하는 단계에 왔다”는 발언과 비교해서 ‘보통의 한국 남성 문화’는 어디까지 여자를 인격체로 취급하고 있는지 되물어야 한다.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요구하는 바를 이해하긴 어렵지 않다. 남자로 태어난 자신의 운명에 반성하며 남은 평생을 속죄의식 속에 살라는 종교적 집단의식을 요구하는게 아니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문제에 책임을 느끼고 반성하며 피해자 집단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나아가 시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길 바라는 것. 한국인인 당신이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인에게 요구하는 내용과 크게 차이가 없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인의 “언제까지 사죄를 해야 하냐”, “전쟁은 모두가 피해자”, “이미 법적으로 끝난 일”이라는 표현에 분노해왔는지 한 번만 생각해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