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미러 시즌 2 — 화이트 크리스마스

Joe
7 min readSep 1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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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치는 외딴 기지, 두 남자가 함께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는다. 그들이 서로에게 들려주는 세 개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또는 기술의 발전이 빚은 세 편의 비극 (넷플릭스 소개문)

외딴 기지에 두 남자가 있다. 사교적인 매튜(좌측)와 경계심이 강한 (우측).

이야기는 허름한 거실에서 시작한다. 잠에서 깬 죠는 거실에서 매튜를 본다. 사교적인 매튜는 죠와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반면 죠는 매튜를 경계하며 난로만을 쳐다본다. 이윽고 매튜는 죠가 지난 5년간 세마디 정도 밖에 말하지 않았다며 무슨 얘기든 해보자고 천천히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해리와 매튜

죠에게 말을 하는 게 자신의 일이라고 소개한 매튜는 연애 컨설턴트를 하고 있었다. 단지 현실의 컨설턴트와 다른 점은 모든 게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예전 뜨거운 형제들이란 예능의 아바타 소개팅을 봤다면 카메라와 도청 장치를 이용하여 실시간으로 조언을 얻는 장면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매튜의 이번 고객은 해리. 자신감이 없는 그는 매력적인 흑발 미녀 제니퍼의 호감을 얻으려 매튜의 도움을 받는다. 매튜와 그의 고객들에게 해리의 헌팅은 오락 요소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며 웃고 즐긴다. 매튜는 능력 있는 컨설턴트. 실시간으로 대상의 SNS를 분석하여 상대의 호감을 살 수 있게 행동하게 한다. 모든 건 잘 풀렸다. 단… 제니퍼가 정신병을 앓고 있단 게 밝혀지기 전까지.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던 제니퍼는 매튜와 동료들과 대화를 하는 해리를 보고 자신과 같다고 생각하고 동반자살을 기도한다. 황급히 자료를 폐기하려 하였으나 아내를 속일 순 없었다. 이 사건으로 매튜는 가족을 잃었다.

여기서 잃었단 건 죽었단 의미가 아니다. 차단(blocked)이다. 미래 기술 제드 아이(Z-eye)를 이식한 사람들은 타인이 자신을 차단하면 얼굴을 볼 수도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게 된다. 매튜의 아내는 그를 차단하고 떠나서 그 어떤 접촉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 게 직업이 될 수 있나?” 이야기를 들은 죠는 냉소적으로 말한다. 매튜는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이건 부업일 뿐이고 본업은 따로 있다고.

매튜가 소개한 그의 직장은 스마텔리전스 사. ‘쿠키’를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쿠키는 집을 관리하는 스마트 기기이다. 사용자에게 완전 맞춤형으로 집을 관리된다. 적당히 익힌 토스트, 기상시에 나오는 클래식 음악…

이러한 맞춤 서비스의 비밀은 쿠키에 복제된 인격이 사용된다는 것. 자신의 좋아하는 일을 자신이 하게 만드는 격이니 완전 맞춤형일 수 밖에 없다. 여기서 고객에게 복제된 인격이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업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게 매튜의 일인 것이다.

쿠키가 말을 듣지 않으면 매튜는 시간을 돌려버린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쿠키는 방치를 겪고 나면 뭐라도 할 일을 달라고 매달리게 된다.

매튜의 두 번째 이야기를 들은 죠는 야만적이라며 질색한다. 매튜는 그런 감성을 가진 죠가 좋은 사람이라 평한다. 죠는 자신이 나쁜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자 매튜는 “나쁜 일을 한 좋은 사람”이라며, 단 둘 뿐인데 이야기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한다. 죠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죠와 그의 아내 베스

죠와 베스는 화목한 부부이다. 웃음이 떠나지 않으며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 역시 노래방도 함께 다니고 여가 시간에 식사도 모여서 하는 등 원할하다. 그런 그들의 일상에 금이 간 건 임신 테스트기.

죠는 베스가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고 환희하며 베스에게 달려갔지만 베스의 반응은 영 시원찮다. 27살인 자신에게 버거운 짐이라며 애를 지울 거라 말하는 베스에게 죠는 분노한다. 혼자만의 선택이 아니지 않는가?

그러나 과도한 공격성이 문제였을까. 베스는 죠의 모습을 보고 실망했는지 죠를 차단하고 떠나버린다. 죠의 일상은 그 때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회사에 나가지도 않고 베스만을 쫓아다닌다. 그러던 어느날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찾아간 장인의 집 앞에서 베스를 발견한다.

아이를 안고 있었다. 부인에게 차단 당하면 자신의 아이에게 역시 차단 된다. 비록 아이의 얼굴을 볼 수 없더라도 어떻게 죠가 장인의 집을 찾아가는 걸 멈출 수 있겠는가? 그 날부터 죠는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장인의 집 먼 발치에서 자기 딸의 실루엣을 쳐다본다.

그러던 어느 날. 뉴스에서 베스의 근황이 나온다. 불행히도 사망 소식. 수년간 잊어가던 그녀의 얼굴은 얄궃게도 사망으로 인해 차단이 풀리고 나서야 보인다. 잠시 슬픔에 젖어있던 죠는, 이윽고 이제 자신의 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는데 생각이 미친다.

그 해 크리스마스 이브. 등을 돌리고 있는 자신의 딸에게 다가간 죠는 따뜻한 목소리로 딸을 부른다. “얘야, 내가 네…” 낯선 아저씨의 부름에 돌아선 딸은 황인이었다.

이후 극은 수년의 시간이 그대로 사라진 한 인간의 몰락에 대해 이야기한다. 죠는 극한까지 정신이 몰린 상황에서 가장 끔찍한 선택지만을 골라냈다.

다시 떠올리기도 끔찍한 기억이었을까. 말을 흐리는 죠에게 매튜가 의미심장하게 다그친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지금 자백하는게 맞나? 결국 죠는 인정한다. 그 즉시 매튜가 환호하며 극은 또다시 전환된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나눴던 죠는 쿠키였던 것이다. 매튜는 죠를 부드럽게 유도하며 심문하고 있었던 것. 죠에게 자백을 받아낸 매튜는 이제 자신이 석방될 수 있는 거냐고 묻는다. 처음에 이야기 했던 연애 컨설턴트 사업을 할 때 살인을 방조하고 은폐하려 그랬던 죄 값을 치뤄야했던 것이다.

매튜는 약속대로 석방될 수 있었다.

다만 모든 사람에게 차단 당한 채로.

복사된 인격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USS 칼리스터에서 잠깐 고민해봐서 큰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이번 극에서 눈여겨 볼 점은 차단이라는 개념 같다.

얼마 전에 일론 머스크가 뉴럴 링크에 대해 발표하며 머리에 칩을 심은 돼지에 대해 공개하였다. 일론 머스크는 기계가 우리를 뛰어넘는게 확실하니 우리 역시 기계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의 구상이 점점 구체화된다면 사람 사이에 전산적인 의미의 네트워크와 인터페이스가 몸 안에 빌트인 되어 이어질 날이 머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서 인간과의 교류가 어떻게 될 것인가? 극에서 인간 관계란 SNS처럼 다뤄진다. 맘에 안 드는 사람이 있다면 차단하면 된다. 제드 아이로 차단한 사람은 내 인생에서도 사라진다.

이런 사회에서 국가의 처벌 역시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것 같다. 매튜는 결국 모든 사람에게 차단 당한다. 쿠키에게 벌 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처벌을 받은 것이다. 이제 혼자서 살아가야만 한다.

범죄자는 인권이 있다. 하지만 쿠키는 인권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죠(의 쿠키)가 결국 자백했던 것처럼 국가 정의를 세우겠다는 대의 아래 범죄자의 쿠키를 심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각종 미제 사건은 해결되겠지만… 그럼에도 올바른 방향은 아닌 것 같다. 누군가 나의 기억과 감정을 뒤져보는 게 유쾌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온라인 상에서 쓰이는 표현 중 불편러라는 단어가 있다. 남들과 소통이 쉬워질수록, 심리적인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그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가 불편하다고 직접 표출할 수 있게 된다. 단지 불편하기만 해도 그렇다.

헌데 타인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낼 수 있는 제드 아이 같은 도구가 대중화 되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화할까? 이런 물건이 생기는 건 진보가 맞는 것인가? 모든 기술적 향상이 항상 선한 영향력을 불러오는 건 아닌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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