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전설 섬의궤적]

<팔콤>과 <영웅전설 섬의궤적>의 그래픽 논란에 대해서.


우리는 고작해야 도트로 찍힌 조악한 그래픽을 통해서도 뭐라 말할 수 없는 경이감과 현실감을 느끼곤 합니다만, <영웅전설>이 게임인 이상 이전보다 발전된 기술을 통해 게이머들에게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팔콤이 져야하는 의무입니다.

저는 스스로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고, 아직 부족한 역량을 과신하지 않는 팔콤의 철학을 존중합니다. 실제로 섬의 궤적 이전의 궤적 시리즈는 그런 타협의 산물이었구요. 만약 섬의 궤적이 여태까지의 전략을 답습했다면 저도 이 문제에 관심이 없었겠지만, 알다시피 섬의 궤적은 틀을 깨는것을 선택했습니다. 편히 안주할 수 있는 공간을 떠나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들이 도전하려는 세상을 지배하는 규칙에 따라서 평가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저는 섬의 궤적에서 캐릭터들이 다양한 표정을 짓고, 웃거나 울거나 하는 모습에 감정을 이입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새로운 마을에 도착했을 때 펼쳐진 광경에 감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눈 앞에 나타난 적이 정말로 압도적이어서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받기를 원하고, 팔콤이 섬의 궤적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세계에 만족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 모든 욕망을 무시하고 “스토리에 집중하라” 거나 “영웅전설의 장점은 다른 곳에 있다” 는 말을 듣고 싶지 않습니다.

팔콤의 게임에서 소년, 소녀는 여행을 떠납니다. 여행의 과정에서 때론 좌절하거나 멈춰서더라도, 그들은 성장하고 현실을 마주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 모든 것을 긍정했던 팔콤이 그들 자신의 도전에서 그들이 그려왔던 이상을 부정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섬의 궤적>이 어떤 작품일지는 뭐 나와봐야 알겠습니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정보로는 여러가지로 과도기적인 작품이고, 약점 투성이 입니다. 새로운 영역에 진출하려다 스스로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을 실패하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 팔콤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입니다. 어떤 결말이 기다리던 스스로의 선택에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것 뿐입니다.


“SF는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적인, 또는 철학적인 개념을 원격적인 방식으로 종종 다루곤 합니다.” 그는 ‘세컨드 선’의 핵심에 위치한 사회 문제를 ‘배경’이라고 불렀지만, “재미와 초인 경험이 주제를 능가한다”고 말했다.”

게임이 게임이어야 하는 이유. 원하는 세계를 구현하고 그것을 경험하는 것이 게임의 본질이기 때문. 나님이 <영웅전설 섬의 궤적>을 여전히 삐딱하게 볼 수 밖에 없는 이유.

그리즈머가 말했다. “우리가 다가갈 수 있는 수많은 새 플레이어들이 있게 될 겁니다. 우리는 그들이 이해해야 하는 몇 시간짜리 뒷배경을 갖고 싶진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상호작용하고, 그저 박제된 세계관이 아닌 실제로 역동하는 듯한 제무리아 대륙” 이라는 설정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그걸 실제로 구현하는 건 다른 이야기. 이 문제에 대한 팔콤의 방법론은 분명 장인의 손길이라고 부를 자격이 있는, 예스럽고 빈틈 없는 치밀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뭐, 이짓도 슬슬 한계라는 것이 문제지만.

솔직히 말하면 영웅전설 시리즈가 다루는 이야기는 한줄로 쓸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주제에 정작 핵심적인 메시지는 너무 추상적이다. 이 모호한 메시지에 다다르기 위해 플레이어는 수많은 NPC들과 끝도 없는 대화을 나누고,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전투를 해야 하며, 소설인지 게임인지 모를 스크립트를 읽기 위해 현실 시간으로 수십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아직까지는 나님도 이 번거롭고 귀찮은 과정을 사랑하고 즐길 수 있지만, 그게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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