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전설 섬의궤적2>

어떤 회고록

“공허한 시험”의 테마. 실로, 실로 아름다운. <영웅전설 섬의궤적 2>는 이것으로 완성된다.

이런 음악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나님이 1N년째 궤적에, 그리고 2N년째 팔콤 그 자체에 목을 매면서도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음악이다. 곡의 구성만큼이나 이 멜로디에 담긴 흔적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혹은 어느 순간에 울려퍼지는지조차도 관계 없이 그 자체로 고결하다.

고백하지만 나님은 이 음악을 섬2를 플레이하기 전에 먼저 들었다. 스포일러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거니와 고작 무언가를 먼저 접하는 것 만으로 흩어질 감동이라면 애초에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별로 자랑할만한 성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런 나님이기에 느꼈던 무언가를 아주 약간이나마 풀어낼 재주는 있다고는 있다 느끼고 이 글은 그렇기에 적는 글이다.

다시 말하지만 공허한 시험의 테마를 게임을 플레이 하기 전에 먼저 들어버렸다는 것에, 어떤 의미로는 정말 감사한다. 음악만으로도 알 수 있다. 그 순간을 상상할 수 있었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정말로, 나님은 단지 첫 소절을 들은 것 만으로도, 그렇게나 난장판으로 마무리 되었던 섬1이 “왜 그랬어야만 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플레이할 섬2가 “어떻게 끝날지”를 한순간에 알 수 있었다.

단 한소절의 멜로디에 그런 것이 담긴다는 것이 가능한가? 그 대답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나님은 그 순간에 나님이 느끼고 생각했던 것이 모두 실재했었노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그렇기에 섬2를 플레이 했던 그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 공허한 시험의 테마가 있었기에 나님에게 있어 섬2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니까, 차근차근 이야기를 진행하고, 새로운 정보에 흥분하고, 예측할 수 없는 전개에 정신이 차리지 못하다 엔딩을 맞이하는 뭐 그런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재확인 하는 회귀적인 단순 반복 작업에 지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87시간의 플레이 타임의 매 순간 그랬다. 그 시간동안 나님은 어디에도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다. 공허한 시험의 테마가 울리는 마지막의 마지막 그 순간까지.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고 생각했을 때. 하나의 외전과, 조금 긴 후일담. 아무런 보상도 의미도 없는 16층의 미궁을 돌파하고 마주한 것은 “공허한 시험”

<영웅전설 섬의궤적2>라는 게임이 나님, 아니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궤적 시리즈의 10년에 어떤 한을 가지신 분들은 팔콤이 지난 궤적 시리즈에서 이뤘던 모든 것들이 섬궤2에서 차근 차근 구현되는 모습에 전율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서서는 안된다. 우리들은 섬2에서 짐을 내려놓고 새로운 여행을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엔딩을 본 순간 자신의 안에 무엇이 남아았는지 확인해야만 한다.

섬2는 이제 어른이 되어버린 게이머들을 위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아직 아이로 남아있고 싶어하는 게이머들을 위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공허한 시험의 테마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여정에 지난 10년이 끊임 없이 피드백 되고, 그 모든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난 뒤에야 과거의 나 자신과 현대의 나 자신이 마주하면서 새로운 미래로의 길을 열게 될 테니까.

방심하지 말자. 앞으로 10년은 더 남은 것 같으니까.


인연이벤트가 서브퀘로 밀려나면서까지 린크로의 이야기에 집중했던 것은 분명 팔콤의 의도입니다. 그렇기에 종장 엔딩 시점에 나락까지 떨어져 절망하는 것은 플레이어의 온전한 권리이고, 당연한 일이죠. 하지만 플레이어의 슬픔과 분노가 린의 그것만 할까요?

게임 내에서 린의 감정은 채 드러나기도 전에 시대의 격류에 휩쓸려 사라져갑니다. 애도의 순간조차 갖지 못한 채로, 아무것도 매듭짓지 못한 채로. 그저 움직이는 시체처럼 간신히 숨만 이어나가고 있죠. 플레이어가 이것을 알게 되는 것은 이미 모든 것이 끝나버려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그런 시점. 그렇기에 린이 라이노 꽃이 떨어지는 트리스타에 발을 딛는 순간 <영웅전설 섬의 궤적2>는 이전까지의 영웅전설과, 이제까지의 궤적시리즈와 전혀 다른 분기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후일담이 일어나는 트리스타란 공간은, 궤적 시리즈가 아니라면 존재하는 것 조차 불가능한 일종의 특이점입니다. 특정한 목적을 위해 작위적인 시공간을 출현시키는 것은 이제까지 수많은 변주가 이루어져 온 클리셰이고 궤적 시리즈에서도 환영의 나라란 전례 가 있죠. 하지만 섬의궤적2의 트리스타가 이제껏 만들어지고 부서져온 어떤 무대와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팔콤이 앞으로 그려내고자 하는 이야기는 소년과 소녀과 세계를 구원하는 이야기도 아니고, 상냥한 마녀가 모든 것을 희생하는 이야기도 아닌 그저 사람들이 인연을 맺고 마음을 전하고 때론 부서져내리다 결국은 그저 살아나가는 이야기이기에, 그리고 한 이야기가 끝나는 만큼 다른 이야기가 이어져 나갈 것이라는 것을 팔콤이 믿기 때문에, 트리스타는 그저 목적을 위해 박제된 시공간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 모든 삶을 영위하는 공간으로서 우리 앞에 구현됩니다.

린이 후일담에서 깨닫게 되는 것도 결국 이것입니다. 사관학교의 친구들과 선배들. 트리스타의 주민들. 제국 전역에서 마주한 사람들, 사람들,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7반의 동료들.

린과 7반의 동료들이 “그 무엇도 얻을 수 없는 공허한 시험”을 끝마쳤을 때의 상황을 다시 떠올려 보세요. 가이우스의 대사는 솔직히 힌트를 너무 준 것 같기도 하지만. 밀리엄이 즐거웠다고 천진하게 웃다 저도 모르게 울음을 터뜨릴 때를요.

울먹거리는 밀리암을 보며 TC에서의 렌을 떠올리지 않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붕괴하는 환영성을 앞두고 차례차례 떠나가는 동료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렌에게 요슈아와 에스텔은 분명하게 이야기 해줬죠. “어떤 만남에든 반드시 이별은 존재한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아플 수 밖에 없지만.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를 위해 울어줄 수 있다” 크로우를 위해 울어주지 못한 것은 분명 린 뿐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헤어짐을 납득하지 못한 것도 린 뿐만이 아니었을 거구요.

그리고 물론, 공허한 시험을 치르기 전까지 크로우를 위해 울어주지 못한 것은 플레이어 여러분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제가 이전 글에서 “궤적 시리즈의 10년에 어떤 한을 가지신 분들은 일단 섬궤2에서 짐을 내려놓고 새로운 여행을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하고.엔딩을 본 순간 자신의 안에 무엇이 남아았는지 확인하셔야 할것” 이라고 말한 것은 대략 이런 뜻이었습니다. 여러분은 10년간 이 시리즈를 플레이하면서 어떤 것을 마음에 담으셨나요? 그 무언가는 아직도 여러분의 안에 소중히 남아있나요? 남아있었다면, 그것을 섬의궤적2를 플레이하는 자신에게 전해줄 수 있으셨나요? 듀르젤도, 올리발트도, 결국 모든 것이 끝나고 난 뒤에야 편지로 밖에 전해줄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였고. 저도 이렇게 트윗으로나마 전해드리려 합니다.


최후의 선택

하늘의궤적 서드 종장 환영성 돌입 직전, 은자의 정원을 떠나 마지막 싸움을 준비할 때 흐르는 음악. 모든것을 마무리 짓는 전장으로 떠나는 순간을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곡이지만, 무엇보다 이 곡이 플레이어의 가슴을 울리는 이유는 이것이 어디까지나 “아르세이유의 테마”이기 때문이다. 서드의 무대인 환영의 나라는 동료의 죄악으로 탄생한 가상세계, 그 시련을 돌파하고 현실로 귀환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자신을 마주볼 수 있는 강함과 손을 내 밀 수 있는 용기였다. 그 마음에 응답해 동료들이 서로의 심상을 모아 구현한 것이 “하얀 날개 아르세이유”인 것이다. 전작에서 한번 꺾이고 말았던 아르세이유라는 희망의 날개는 이번에야말로 한계를 초월해 벽을 넘어 최후의 전장에 도달한다.

이 “아르세이유의 테마”는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한번 더 쓰이게 된다.

각성하는 의지

섬의궤적2 종장 황마성 돌입 직전, 트리스타를 떠나 마지막 싸움을 준비할 때 흐르는 음악. 준비된 힘은 내전으로 흩어진 사관학교의 동료들을 모았던 아르세이유 2번함 “붉은 날개 카레이져스”

서드를 플레이했던 플레이어라면, 마치 거울의 양면처럼 대칭된 상황에 위화감을 느끼면서도 또 한번 동료들의 힘을 모아 희망의 날개를 펼칠 수 있을것인가 두근거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얀 날개”가 그러했듯이 “붉은 날개”도 분명 가능할 것이라고.

하지만 희망의 날개였어야 할 붉은 날개는 비참하게 짓이겨진다. 아르세이유의 테마는, 각성하는 의지로 거듭나, 이제는 죽은이를 애도하는 진혼곡이 되어 흐른다.

내부의 황혼

결코 세상에 전해지지 않을 죽음. 제도의 가장 높은 곳에서 벌어졌던 사투는 하나의 젊은 목숨을 앗아가고 그 공간 자체가 밀실이 되어 진실마저 집어삼켰다.

무엇이 하얀날개와 붉은날개를 갈라놓았나.왜 누군가에게는 주어졌던 미래가 누군가에게는 주어지지 못했나. 어째서 하얀날개는 성공했고 붉은날개는 실패했느냐고 물을 수 있다. 인연의 힘이라는 것은 현실에서는 무력하며 단지 그것을 말하고 싶었느냐 물을 수 있다. 그렇게 질문을 이어간 끝에 도달하는 각자의 해답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얀 날개가 이루었던 것을 성공이라고,붉은 날개가 이루지 못한 것을 실패라 여기는 한은 결코 알 수 없는 것이 있다.플레이어가 함께했던 린의 궤적과는 다른 크로우의 궤적이 그것이다.

손을 내미는데 필요한 것이 작은 용기라면, 그 손을 마주잡는 것은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크로우를 향해 손을 내미는 것 까지가 붉은 날개의 여정이었다면, 결코 그 마음에 응답하지 못하는 이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 그것이야말로 어디까지나 제국의 아이들에 불과했던 특과클래스7반의 한계이자 실패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인연의 힘을 긍정하는 찬가였던 아르세이유 테마는 인연의 잔혹함을 있는 그대로 연주할뿐인 진혼곡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 이후의 이야기. 종장, 외전, 후일담으로 이어지는 남겨진 이들의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는 이전에 다룬적이 있으므로 이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다음 궤적이 어떤 이야기를 그릴지 모른다.하나의 이야기를 마음에 품었을 때 그 다음 이야기를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단 한가지 분명한것은 제므리아 대륙은 하나의 주제를 위해 만들고 부수는 그런 무대장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2014년 12월 31일, 하얀마녀도, 푸른기사도 없는 세계를 살아가며.


하늘의 궤적 SC 이후 벌써 8년, 물리적인 시간 만큼이나 덧대어진 정보도 압도적이고 그만큼 이야기의 맥락도 달라져서 지금 플레이 하는 하늘의 궤적은 그때 느꼈던 궤적과는 전혀 다를거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나님은 올리비에를 좋아했던 적이 단 한번도 (정말로, 처음 등장했을 때 부터 최악) 없지만 이건 어떤 의미로는 질투에 가까운 감정임을 이제는 인정할 수 있다. 플레이어인 우리는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가 마음속에 다시금 간직할 수 있다.그것은 특권이라면 특권이겠지만,아무리 덧대어도 처음의 색은 재현할수 없는 법이다.단지 이것이 내가 경험했던 처음과 같다고 스스로를 속이며 나아갈 뿐이다.

일필휘지一筆揮之, 단 한번 주어지는 사람으로서의 삶. 그 삶 속에서 얻었다고 생각하고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무뎌져 갈 때 그것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은 진실로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자들 뿐. 관객에 불과한 플레이어 우리들이 아니라.

궤적 시리즈를 현실의 시계열에 따라 플레이 해온 이들에게 올리비에는 그래서 더욱 특별한 존재다. 사랑의 아름다움을 떠드는 연주가의 정체가 방탕황자라 불리는 에레보니아 제국 황제의 서자였음이 드러날 때, 우리는 그의 장난스러운 눈빛과 유쾌한 말장난에 속아 그가 짊어진 짐의 무게, 앞으로 나아갈 길이 얼마나 험난할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의 결코 돌이킬 수 없는 발걸음의 결말이 현실 시간으로 8년이 지나서야 그 편린이 드러날거라는 것조차도 몰랐다.

올리비에가 위험한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올리발트 라이제 아르노르라는 제국 황제의 서자는 주변 사람들, 제국, 대륙 전체에 위험할 뿐만 아니라 올리비에 렌하임 그 자신에게 위험한 존재이다. 얻었다고 생각한 것들이 사라져가고,이뤘다고 생각한 것들이 무너져가고,깨달았다고 생각한 것들이 흐려져 연주가로서의 자신을 버렸던 순간이 닳아 없어지는 것에 비하면,렉터가 말한”춤추다 지쳐 괴물에게 잡아먹히는”결말은 오히려 영웅의 최후에 가까울 것이다.

올리비에가 타락하고 말것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올리비에에게는 타락할 기회마저 주어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궤적 시리즈가 사람의 강함을 말할 때, 그것은 인연의 힘을 긍정하는 아주 자그마한 강함이었다. 결코 한 사람이 무한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올리비에의 운명은 너무나 가혹해서 고개를 돌리고 싶을 정도다. 사람이 인연의 힘으로 강해질 수 있다면, 올리비에는 틀림없이 그 누구보다 강해질 수 있다.그와 함께하는 이들이 수많은 일들을 이뤄낼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차근차근 소모될 올리비에를 지탱해줄 수 있는 사람이 난 잘 떠오르지가 않는다. 셰라자드?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린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서 드러나듯 올리비에 자신이 누구보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올리비에는 누구보다도 우리들, 즉 플레이어의 안티테제로써 작동한다. 궤적 시리즈가 말하는 가치를 계속해서 되뇌이고 그 의지를 이어나가려는 행동이야말로 올리비에의 예정된 풍화를 가속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는 강함을 실현하기 위해 약해져가는 존재가, 그래도 괜찮다고 웃으며 누구보다 앞에 설 광경을 생각하면 이런 안연따위 처음부터 없었으면 좋았다고 절규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런 그를 질투하는 나 자신이 혐오스러워진다.

하얀마녀에서, 섬의궤적에 이르기까지. 팔콤은 하나가 전부를 구원하는 이상을 부정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팔콤은 그 하나를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줄 수 있을까? 팔콤은 올리비에를 구원해줄 수 있을 것인가?

뭐 이게 나님이 생각하는 앞으로의 10년입니당.


린 슈바르처라는 캐릭터의 정체성을 한단어로 표현하자면 바로 “부채감”. 이걸 이해할 수 있어야 크로우를 향한 린의 집착이 설명된다. 린의 삶에 있어서 유일하게 크로우만이, 린이 “받으러 갈 빚”이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부모 없이 버려져 죽었을 린 슈바르처라는 존재가 가족을 선물받고, 스승을 선물 받고, 가족에게는 애정을, 스승에게는 소중한 이를 지키기 위한 힘을, 있을 자리를. 그렇게 끝없는 축복을 받은 결과 탄생한 것이 궤적 시리즈 사상 최강의 설정 과잉 주인공. 린은 이 “부조리할 정도의 축복”을 포함한 모든 것들을 자신이 가질 자격이 없다 생각하는 공허한 소년이었고, 갚을 수 없는 빚을 갚으려 고통받는 것이 그의 일생이었을것이다. 그런 린의 앞에 나타난 것이 50미라를 사기쳐서 도망간 크로우라는 존재.

자신을 이루는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알기에, 그것을 갚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삶의 전부였던 소년이 마침내 “자신이 가져야만 하는 것”을 자각하고 빚쟁이가 되어 채권추심을 하러 갈 때의 무시무시함을 상상해보라.

이상의 이야기를 납득할 수 있다면 사고는 다음의 단계로 진행된다. 린 슈바르처가, 크로우 암브러스트에게서 “받아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는 무엇이었을까?

이걸 생각해보는 것이 오늘 드리는 숙제.


토와 회장의 최종전 돌입 직전 그 발언이 너무 마음에 걸린다. 스스로의 능력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그림과는 거리가 있지만, 토와 허셜이라는 인간의 성능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결코 받아들이지 못할 인지 바깥의 상황이라도 완벽하게 파악해내 결론을 이끌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토와가 홀린듯이 중얼거린 그 단어는, 어떤 의미에서든 ”신뢰할만하다” 견디지 못하고 그것을 입에 담아버린 것은 토와가 짊어져야 하는 죄와 같은 것이겠지만. 토와는 그 순간 그 장소에 있었던 어떤 이들보다도 “공허한시험”의 본질에 가까이 있었던 것이다.


나님은 기본적으로 팔콤의 세계관 짜는 능력에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신뢰를 가지고 있지 않는데, 얘네들은 하늘 시점과 영벽 시점과 섬 시점의 지도 축척 하나 제대로 못맞추는 무능력의 극치인 놈들이기 때문이다-_-;; 이건 지난 10년간의 인터뷰 등을 비교해보면 더 확연히 드러난다. 공식 인터뷰에서 내놓은 정보도 신뢰의 대상이 못되는데, 오히려 공식 인터뷰의 이런 끝도 없는 말바꾸기를 통해서 손바닥 뒤집듯 오락가락 하는 내부 개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이러한 팔콤의 행보를 볼 때 두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첫째는 팔콤이 “큰 그림”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으며, 두번째는 “디테일”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10년간 팔콤이 내놓은 3개의 챕터의 상호 의존적인 구성에서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하지만 착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런 “무능력”이야말로 궤적 시리즈를 궤적 시리즈 답게 만드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우선 “큰 그림”의 부재. 이야기의 나아갈 길을 정하는 이정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분명 큰 약점이지만, 팔콤은 “도력혁명”이라는 사건을 근대 제무리아 대륙에 외삽하여 현실 역사에 대한 유사 사고실험을 전개해 이를 해결한다.

다음은 “디테일”의 부재. 하늘 시점부터 마구잡이로 가져다 붙인 온갖 고유명사는, 원전의 모티프를 알기 쉬운 비유로서 플레이어들에게 전달하려는 당초의 목적과는 달리 그저 신화와 신화의 혼란스러운 집합에 불과했다. 이를 해결한 방법은,다소 억지스러웠다.더 많은 고유명사와 더 많은 모티프를 차용해 말 그대로 온갖 정보를 때려넣은것이다.그 결과 하나의 체계로 세계관을 통합할 수 있는 가능성은 사라졌지만,각각의 중요도는 낮아져 세계관에 효과적으로 녹아들 수 있었다.

이것을 전제하고 나서야 팔콤이 지난 10년간 7개의 게임을 통해 “구성”하는 것에 성공한 “제무리아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다. 중요한 지점은 이 모든 것을 팔콤이 “구현”한 것이 아니라 “구성”한 것이라는 점이다.

즉,팔콤이 애초부터 어떤 거대한 플롯을 가지고 궤적 시리즈를 전개했다고 가정하면 이것은 “구현”이 된다.가가브 트릴로지에 가깝다면 이해가 쉬울까.하지만 궤적 시리즈를 만듬에 있어서 팔콤은 최초의 트리거만 당겼을 뿐 어떤 미래를 전혀 생각해두지 않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리베르 챕터. 크로스벨 챕터. 에레보니아 챕터로 이루어진 7개의 게임은, 단순히 단일한 시계열에 놓인 다른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게임인 것이 아니라, 각각의 완결된 맥락을 품은 채로 상호작용하는 구성체인 것이다.

리베르 챕터로 궤적 시리즈를 접한 플레이어와 크로스벨,에레보니아 챕터로 궤적 시리즈를 접한 플레이어가 가진 맥락은 전혀 다를 수 밖에 없다.이는 티라스일,엘 필딘,벨트루나로 나뉘어져 있어도 트릴로지로서의 일체감을 가지던 가가브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것을 이해한다면 자신이 어떠한 맥락을 바탕으로 이 세계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돌아볼 차례다. 각각의 챕터에서 완결된, 최초의 경험. 그것은 누군가 만들어준 지도에 구현된 세계관이 이니라, 플레이어 스스로가 마음속에 구성한 세계관이다.

리베르의 당신은, 크로스벨의 당신은, 에레보니아의 당신은, 전혀 다른 세계관을 품고 당신 곁을 지나칠 수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것은 단순히 게임 안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글을 읽는 트위터의 당신은 이미 이러한 분열을 보았을 것이다.

이 일련의 트윗은 팔콤이 궤적 시리즈를 어떻게 구성하였는지에 대한 방법론적인 이야기로 시작하여 그 결과 플레이어들의 마음속에 구성된 궤적 시리즈들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점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야기 하며 끝난다. 제무리아 대륙을 무대로 스스로의 길을 걷고 있을 그들 만큼이나, 우리들 또한 갈라져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것. 그것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 이 이야기가, 지난 10년간 고민했던 가가브 트릴로지 이후의 영웅전설에 대한 나님의 결론이다.


아이는 어른의 행동을 흉내내며 자란다. 무지하지만, 문의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의지다. 인연이 있다면 이어짐은 분명히 있다. 그렇기에, 때로는 냇가에 던져진 낚싯대의 파문이 포탄의 불길보다 강력하다.

<지켜주는 손>에는 낚싯대를 들고. 그 순간의 마음으로 세상의 끝까지. 영웅전설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이라고 하면 어폐가 조금 있겠죠. 16년간 영웅전설을 플레이 하면서 오직 이 한순간만 남았다는 것이 정답일겁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영웅전설 시리즈를 한컷에 담아야만 한다면, 저는 주저없이 어느 겨울날의 트리스타를 꼽겠습니다. 염화미소가 따로 있겠습니까.


PS. 14년 10월과 15년 2월 사이에 남긴 여러가지 잡상들의 모음입니다. 언젠가 하나의 글로 정리하기로 했는데 도저히 무리라, 이런저런 스케치만 옮겨두었습니다. 그럼 여러분, <영웅전설 섬의궤적3>에서 다시 만나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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