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면서 동종 업종 종사자의 비판은 두렵지 않다. 설령 비난이라 해도 말이다. 그보다 두려운 것은 취재원이다. 특히 인터뷰이의 지적이 두렵다. 해석의 견해차가 아니라, 데이터의 부족이나 오류로 인해 인터뷰이의 의견을 왜곡하는 실수를 저지르게 될까봐 두렵다. 내게 원고를 맡기는 이들은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신경쓰는 독자는 단 한 명(집단), 인터뷰이(들)다.

드문 일이지만, 인터뷰 중이나 끝나고 나서나 인터뷰어인 나에게 의심의 눈길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사실 나의 인터뷰 방식은 다소 호불호가 갈린다. 다소 말을 많이 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말을 정곡만 찌르듯 못 하는 스타일이기도 해서 좀 에둘러 말하기 때문에 스타일 상 맞지 않는 인터뷰이는 불편해하기도 한다.

그리고 녹음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일단 나는 처음에 그렇게 배웠다. 가능한 빼곡하게 메모하면서 한 마디 한 마디가 놓인 전체 맥락을 복기하는 것. 신문사 기자 출신과 매거진 에디터 출신이 다른 점이 이 ‘인터뷰론’ 부분이 아닐까 싶다. 후자의 경우는 요즘 흔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따라서 인터뷰이에 따라서는 그 모습이 상당히 불안해보일 수도 있다.

그런 방식에 가장 불안해했지만 나중에 결과물을 보고 가장 기꺼워해준 인터뷰이는, 단언컨대 고 신해철이다. 월간 <이혼이야기> 창간 인터뷰이로,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의 ‘관계’에 도사린 어둠에 대해 고민하는 마왕의 이야기를 나는 아난처럼 외웠다. 지금도 그의 인터뷰 내용은 거의 통째로 기억한다.

몇 년간 관심있게 지켜봐 온 뮤지션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리더는 내 인터뷰 방식에 대해 다소 불안해하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티를 내진 않으려 했지만 나는 긴장했고, 준비된 질문지 앞에서도 말을 고르느라 식은땀을 흘렸다.

그리고 정리된 자료들과 싸웠다. 언급한 내용을 기존 기사와 맞춰 대조하고 확인했다. 무엇보다 신경쓴 것은 기록에 흐름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질문과 대답의 세트를 몇 개의 시퀀스로 묶어내고 그 위치를 옮겼다 제자리에 두었다 하기를 반복하였다. 그렇게 해서 원고를 넘겼다. 자신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부끄럽지는 않은 원고였다.

일 주일 정도 뒤면 원고는 화면화된 형태로 출력되어 사람들에게 전해질 것이고, 그 뮤지션들도 볼 것이다. 심판을 기다리는 기분이다. 고 신해철 님처럼 나의 원고를 어여삐 봐 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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