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522

아무렇지도 않게 밤 10시에 서울성곽으로 발을 돌렸다. 굽이굽이 올라가는 산길에는 가로등 하나 켜져 있지 않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올라갔다. 말바위에 도착해서는 유난히 차분해 보이는 서울 야경을 긴 시간 말 없이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또 얘기를 나눴다. 남들에게 쉽게 털어놓지 않는 그런 얘기들. 먼 이국 땅에서 외로움과 씨름하다 퓨즈가 나가듯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기대감이 꺼져버린 얘기, 늘 싸우기만 하던 부모님이 어느 날 다같이 자살할지 어떻게든 살아볼지 11살 딸에게 선택하라 한 얘기 등. 사연 없는 사람 없다지만, 사람 사는 모양은 정말 가지각색인가보다. 그래서 이렇게 타인과 교감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일지도. 교감의 순간 하나하나가 소중한 이유다.

하지만 이 순간들은 그저 추억이 되고, 이 사람들은 내 인생을 스쳤던 수많은 사람들 중 몇이 되어버릴 것이란 새삼스런 두려움을 떨쳐버리기란 쉽지 않다. 언제나 이렇게 현재를 공유할 것 같은데. 추억이 되어도 손 뻗으면 닿을 기억의 표면에 이 순간들이 영원히 머무를 것 같은데. 이 사람들도 이 순간들도 특별한 자극 없이는 꺼내보지도 않을 무의식의 서랍 속에 잠겨 나도 모르는 나의 일부가 되어갈 것이란 게 믿기지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