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205

나는 영락없는 일반인이다. 예전부터 어렴풋이 짐작은 했지만, 인정하긴 싫었다. 영화나 드라마 소재가 될 수 있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모두가 “보통이 아니구나”라고 느끼는 그런 사람. 중학교 때는 그런 확신이 있었고, 고등학교 때는 그 확신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대학교 때, 특히 대학교를 졸업할 즈음에는 그 확신이 사라졌고, 평범한 내 자신이 못 견디게 처량하기도 했다. 대학교 이후의 성장과정은 내 자신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고, 일반적인 인생도 나쁘지는 않다는 것을 조금씩 배우는 과정이었다. 지금은 내가 평범하다는 것을 아쉽지만 나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정착하지 못하고 해외를 떠도는 내 모습을 예전에는 반지의 제왕의 아라곤이 왕이 되기 전 방랑하던 모습과 비교하곤 했다.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 모두와 떨어져 사는 지금의 경험이 나중에 큰 일을 할 때 밑거름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는 한편 이렇게 고생만 하고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면 어떠나 두려움도 있었다. 로스쿨 졸업하고 로펌에 들어가는 일을 단순하게 나와 내 가족이 먹고 사는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고, 내 인생이 앞으로 그릴 거대한 내러티브에 들어맞는 지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 생각을 지금도 조금은 한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의 마음 고생 모두 “나는 대단해야 한다”라는 일종의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어딜 봐도 나는 대단하지 않다. 글을 쓰고 싶어하지만, 겁먹고 엄두를 못내서 쓰지를 못한다. 그러면서 벌써 작가가 된 양 글쓰기에 대한 얘기는 잘하고 다닌다. 아버지가 실직하신 것을 비극적인 서사의 일부라고 인식을 하지만, 사실 내 동년배들의 아버지들은 일을 그만둔 지 오래다. 남들은 늘 해왔던 생활을 나는 이제부터 하는 것에 불과하다. 내게는 특권도 기회도 너무 많다. 아직 괜찮은 로스쿨에 돌아갈 기회도 있고, 열심히 해서 로펌에 취직해 많은 돈을 벌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지금 휴학하고 하는 일도 살 길 막힌 사람들과 바교하면 엄청난 사치를 누리는 것 아닌가. 하지만 가세가 기운다고 한탄하고픈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 가끔 그냥 우는 소리를 내고 싶어하는, 지극히 일반적인 심리다.

예전에는 그런 내 모습이 싫었지만, 지금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타고나길 이런 인간인데 어쩔 수 있나. 그냥 나한테 맞는 옷을 입고 나한테 주어진 일들을 하며 열심히 살면 그만인 것 같다. 욕심이라면, 글은 계속 썼으면 좋겠다. 대단한 작품을 써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반적인 삶을 노래하고 표현하기 위해서. 그렇게 살면 평범해도 내 인생 훨씬 재밌고 즐겁지 않을까? 어차피 인생 별 거 없다는데, 즐겁게 사는 게 최고 아니겠는가. 평범한 내 인생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