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다음

“간단한 심문입니다. 긴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흰 가운 차림의 IOP 직원은 마주앉은 인형을 건성으로 바라보며 서류를 넘겼다.

“인류와 달리 인형들간의 윤리 문제는 꽤 간단하게 해결된다는 건 알고 계시죠. 그러니 복잡한 이야기는 치우고 간단하게 가죠.”

스프링필드는 마치 그것이 배려라고 생각한 듯 평소 자주 짓던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스프링필드, 당신의 서류처리 능력에 대해서 IOP는 예상 이상의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보통 전술인형들에게 그런 것을 바라진 않거든요. 특히나 이런 작업을 관리하는 보급관까지 회유하는 건 전례가 없는 사례고요.”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 없어요. 바로 그 부분이 문제니까.”

직원은 서류 한 구석을 스프링필드에게 내밀었다.

“우리 공단의 직원 참관하에 전투부적격 판정을 내린 사실이 있죠?”

“네.”

“보급관의 사인을 어떻게 받아냈는지, 그 직원을 어떻게 구워삶았는지는 별도로 조사중이니 따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제가 알고 싶은 건 당신의 논리 전개 방식입니다.”

직원의 말에 스프링필드는 미묘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마치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한 듯. 아니면 저것도 프로그램의 예외처리 루틴에 따른 것일까. 직원은 스프링필드의 목에 채워진 감시용 목걸이를 주시했다.

“지휘관 서명 없이 보급관의 허가만으로 전술인형을 폐기하는 건 극도로 예외적인 사안입니다. 이런 우회조건을 이해하고 IOP직원까지 끌어들일 정도로 당신이 열성적으로 반응한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하세요.”

“모르시는 건가요?”

“이 대화는 녹음되고 있습니다. 직접 진술하세요.”

인형은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기에, 스프링필드는 대답했다. 입을 열자 머리 곳곳에 꽂은 검사용 침들이 미세하게 떨렸다.

“저는 지휘관에게 강한 호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WA2000과 지휘관의 관계가 더 가까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일련의 작업을 시행했습니다.”

직원의 눈썹이 살짝 치켜올라갔다.

“막기 위해서?”

“아시다시피 전술인형들도 인간처럼 즐거움을 느끼는 일련의 보상 회로를 지니고 있습니다. 반대로 행동교정을 위해 불쾌감을 주는 회로도 지니고 있고요. 저는 지휘관과 WA2000이 상호 호감을 주고받으려는 시도를 볼 때마다 불쾌감을 느꼈습니다. 따라서 그 행동을 차단하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복잡한 행동을 취한 거죠?”

“비윤리적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른 절차로 WA2000을 배제했을 경우 지휘관을 심각한 충격을 받을 것이고. 그 중 54%는 WA2000에의 갈망을 더 강화시킨다는 결론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지휘관이 혼란할 상황에 최대한 절차적으로 WA2000을 배제하여 심적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고 저와의 유대감을 증진시키도록 조정했습니다.”

“그리폰 소속의 인형들은 철혈을 제외하곤 다른 전술인형을 해치지 못합니다. 그 조건은 지금도 유효합니까?”

“네, 저는 그 조건을 당연하다고 느낍니다.”

직원은 서류에 몇 자 끼적인 후 다시 물었다.

“제가 지휘관과 사전 면담을 한 것은 모르고 있었겠죠. WA2000의 부당한 폐기처분 이후 지휘관과 보급관은 별도의 면담을 했고, 서류를 재확인한 IOP도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스프링필드. 그럼 마지막으로 질문하죠.”

직원은 서류철을 덮고 계기판을 몇 번 만졌다.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스프링필드를 마주하며 물었다.

“당신이 WA2000을 동료로 인식하지 않게 된 건 언제부터입니까?”

“WA2000이 처음 지휘관에게 미소를 지었을 때입니다.”

“대답 감사합니다.”

휘장이 걷히고, 그 뒤에선 굳은 표정을 한 지휘관이 걸어나왔다. 방금 전까지 태연하게 자신의 문제점을 고백하던 스프링필드는 그 순간 사시나무 떨듯 온 몸을 떨기 시작했다. 지휘관의 차가운 눈과 마주한 스프링필드는 갑자기 날뛰기 시작했다.

“지휘관! 아니에요! 제 말을 들어주세요! 저는… 저는!”

“이러고 있는 건 고통스럽겠죠. 잠깐 끼어들겠습니다.”

직원의 조작에 스프링필드는 갑자기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입조차 굳어버려 변명조차 할 수 없게 되자 필사적으로 눈을 굴려 무어라 항변하려고 했지만. 이미 조리조차 잃은 인형의 말에 반응할 지휘관이 아니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눈을 돌려 시야 한구석에서 작업하는 직원을 살폈다. 팔 근처에서 무언가 만지작거리던 직원은 곧 무언가 반짝이는 것을 지휘관에게 건넸다. 인간처럼 설계된 안구 카메라가 심하게 떨렸다. 지휘관은 한 때 행복의 상징이었던 반지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걸로 IOP로의 양도에 동의하신 것으로 알겠습니다. 이 서류에 서명해주시면 저와 IOP는 이 전술인형의 코어가 어떤 문제를 지니고 있는지 분석하기 위해 회수할겁니다. 대체할 인형이 필요하시다면…. 저희 쪽에선 특례를 베풀 용의가 있습니다.”

지휘관의 의문섞인 눈빛에 직원은 스프링필드에게 보이지 않게 태블릿을 내밀었다. 직원은 진지한 얼굴이었다.

“제 입장에서도 놀라운 사례입니다. 가능하다면 장기적 관찰을 위해 이 옵션을 추천합니다. 희귀한 사례기도 하니까요. 나쁘지 않은 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휘관이 그곳에 서명하자. 직원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지휘관은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나갔다. 뒤이어 차가운 얼굴을 한 카리나가 작은 도구를 들고 걸어들어왔다. 카리나와 직원이 인형의 보존처리를 위해 이런저런 말을 나누었지만 스프링필드에겐 전혀 들리지 않았다.

스프링필드에겐 다른 무엇보다. 지휘관에 눈에 비친 태블릿 화면이, 그곳에 비친, 자신이 죽인 WA2000이 메모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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