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자는 세금을 많이 내서 존중받아야 한다?!

김준형
6 min readJun 2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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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드인에 이름있는 스타트업의 대표가 쓴 글이다.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주장의 빈약한 부분들을 짚어보자.

  1. 사람은 모두 존중 받아야 한다. 소득과 세금에 따라 차등하는 가치가 아니다. 돈을 냈으니 반드시 존중을 받아내겠다는 자세가 지금 한국에 만연한 갑질 문화의 근원이다. 마이클 샐던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돈으로 가치 매김 할 수 없는 것에 가격표를 붙이면 부패한다고 했다. 존중은 대체 얼만큼의 고소득 및 세금과 교환할 수 있을까?
  2. 연예인들과 유명인들도 구설수에 오르고 무고를 당한다. 우연히 유명해진 일반인들도 그렇다. 대기업 대표나 임원도 다르지 않다. 유명세에 따라오는 현상일 뿐이다. 단지, 구설수에 오른다고 사람들이 그들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일반화 하는 것은 확대 해석의 오류이며, 소득과 세금을 이유로 존중을 강요하는 것은 매우 이상하다. 오히려 그들이 구설수에 오르는 이유는 그 대가를 받기에 충분한 역할과 결과가 있었는지 의문이 들기 때문일 수 있다. 큰 폭의 주가 하락이나 주주가치 훼손, 실적 악화와 대규모 정리해고 와중에도 대주주와 특정 임원들만 높은 연봉과 보너스를 받는다면 구설수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3. 존중은 받는 것이지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한국이 여전히 유전무죄무전유죄의 국가라고 자평한다. 탈세에 관대하고 경제사범의 처벌이 매우 가벼우며 사기에 의한 수익의 환수와 피해의 복구가 불가능하다. 부당경쟁과 담합, 불공정 행위의 과징금이 매우 가벼워 오히려 불법을 장려한다. 땅콩회항, 라면상무, 네이버 직원 자살, 대기업들의 물적 분할에 의한 주식가치 훼손과 소액주주의 피해, 주식회사 임원들의 부도덕한 주식 처분에 의한 임직원들과 주주들의 피해, 유명인들과 부자들의 음주운전에 대한 관대한 처벌, 고가차량 소유주들의 각종 패악질 등 부를 쌓은 자들의 사회적 해악이 매일매일 기사에 오른다. 한줌 권력과 돈만 있으면 무슨 짓이든 해도 된다는 사회 부적응자들이 나날이 늘어난다. 반면에 고소득층의 부정적 인식을 강화하는 사건사고들에 대한 자정작용은 전무하다. 워런 버핏이 빌 게이츠와 같은 부자들에게 기부를 독려하고 기부하지 않는 부자들을 폄훼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소득자라는 이유만으로 존경심을 보이라는 것은 흡사 멕시코에서 마약상들을 존경하라는 것과 같다. 멕시코 마약 카르텔은 멕시코 경제에 매우 큰 기여를 한다.
  4. 세금은 국가에 내는 지대비용이다. 고소득자가 세금을 더 많이 내는 이유 중에는 국가 인프라에 의한 이익을 더 많이 보았기 때문이 있다. 국가 인프라는 정부의 공공시스템과 도로/항만/공항/전기/수도 등 기간시설들이다. 한국의 가장 중요한 기간 시설들은 박정희 시대에 독일과 사우디 등에 파견되었던 노동자들이 벌어온 외화와 일제 강점기 피해의 대가로 얻어온 일본의 차관, 베트남 참전의 대가 등으로 구축되었다. 즉,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자면 고소득자들은 부모 세대의 피와 땀으로 구축된 인프라를 이용해 돈을 벌어 세금으로 사용료를 지불하는 것이다. 국가는 사용료를 받아 인프라를 유지/보수/확장하고 사회 안전망을 강화한다. 이는 기업의 영리활동과 다르지 않다.
  5. 사회 안전망에 사용되는 세금은 고소득층이 저소득층에 내리는 은혜가 아니다. 사회 안전망이 무너지고 치안이 나빠지면 고소득자의 재산을 목표로 하는 폭력 범죄도 증가한다. 극단적으로 브라질이나 필리핀처럼 무장한 사설 경호원들이 가족들을 24시간 밀착 보호해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사설 경호원이 모든 강력 범죄를 막아내지도 못한다. 필리핀에서 경찰들이 돈을 목적으로 한인 사업가를 납치 및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심지어 무장 경비업체가 보호하는 타운하우스에서 일어난 일이다. 사회 안전망의 붕괴는 국내에서도 이런 범죄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세금을 내서 이런 불상사를 막는 것은 고소득층 자신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6. 전 세계적으로 양극화가 심화 될수록 소득에 따른 거주지 구분이 뚜렷해 진다. 그리고 돈이 많은 지역의 인프라와 편의 시설이 상대적으로 수준 높게 유지되고 개선된다. 한국에서 조사된 바는 없지만, 선진국의 연구에 의하면 고소득층의 환경에 쓰이는 세금이 그들이 내는 세금보다 많다. 즉, 낙후된 지역을 개선하는데는 재개발과 같이 매우 큰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세금 투입에 큰 장벽이 있는 반면, 고소득층의 환경은 점진적 개선이 용이하기 때문에 꾸준하게 세금이 투입되고 있다. 저소득층의 거주지가 재개발된다고 해도 저소득층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은 거주지에서 쫒겨나고 쾌적한 환경은 더 부유한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즉, 고소득자들이 내는 세금은 그들의 주거 환경을 위해 재사용되는 부분이 많다.
  7. 한국은 부동산 정책을 부양하고 금융기업들과 대기업들을 지원하는데 막대한 세금을 쓰고 있다. 이는 고소득층의 수익과 재산을 보전하고 증식하는데 기여한다. 즉, 자신들의 세금은 자신들의 재산을 위해 쓰이고 있다.
  8. 세금에는 재산세와 소득세 같은 직접세도 있지만, 유류와 공산품등에 붙는 간접세도 있다. 일부 경제학자들과 사회학자들에 의하면 직접세와 간접세를 모두 합하면, 고소득자와 고액자산가의 세금이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에게 충분히 분배되고 있는가에 대해 난색을 표하는 의견들도 있다. 오히려 소비의 상대적 가치를 계산하면 가난할수록 단위 소비에 드는 비용과 세금이 더 비싸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연구들은 높은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 충분히 많은 기여를 한다는 주장을 약화시킨다.
  9. 세금을 통한 부의 재분배는 전적으로 국가의 예산 집행에 달려있다. 정부의 예산 배분에 따라 고소득층의 세금으로 저소득층이 받는 혜택은 미미할 수 있다. 또한, 채권을 통해 적자 재정을 운영한다면 저소득층 지원이 세금에 의한 것인지 국가 채무에 의한 것인지도 모호하다. 따라서 높은 세금에 대한 대가는 저소득층이 아닌 국가에게 주장해야 맞다.
  10. 고소득층이 세금을 많이 내는 만큼 존경받고 싶다면, 부정축재와 부패를 배격하고 그들의 소득이 투명하고 정당한 경제활동을 통해 축적되었다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다. 또한, 세금이 부동산 부양이나 포퓰리즘보다는 국가 시스템과 사회 안전망을 위해 올바르게 쓰이도록 정치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또한 필요하다. 그리고 소득과 재산이 많더라도 윤리와 품격을 갖추지 않는 자들은 무리에 어울릴 수 없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러한 품격을 대중이 알게 된다면 없던 존중과 존경도 절로 샘솟을 것이다. 현재의 한국은 무슨 짓을 해도 돈만 많으면 된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고소득자의 이미지도 마냥 긍정적일 수만은 없다.

옳은 일은 꾸준히 해도 주변에서 알기 힘들다. 보통 100을 잘해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은 겨우 1 정도 뿐이며, 그마저도 드러나는데 매우 긴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존경 받는 사람들은 그 꾸준함의 끝에서 우연히 대중에게 발견되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세금을 많이 내기 때문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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