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ss-X에서 애자일 회고를 했다.

지난 8월 9일 수요일 오후 Toss-X에서 처음으로 회고를 했다. 쌓아둔 이야기를 모두 하기에도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미션을 결정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이번 회고에서 Toss-X는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고, 함께 숙제를 풀어나갈 감정적 유대를 갖게 되었다고 믿는다(아니라면 다들 연기력이 탁월한 것으로).



Toss-X는 토스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단일 조직이면서 1인당 담당 업무가 가장 많은 조직이기도 하다. 이미 소문난 것처럼 토스의 조직원에 대한 대우는 업계에서 매우 보기 드물게 좋은 반면, 구성원 면면을 보면 당연히 그 정도 대우는 기본으로 깔고 가야할만큼 능력이 탁월하기도 하다. 때문에 1인당 업무 강도가 평균보다 높은 것은 당연하게 느껴진다. 다만, Toss-X는 규모가 크고 담당하는 서비스가 많다보니 커뮤니케이션 부족의 징후가 보였다. 이를 인지한 것은 새벽 퇴근을 하던 금요일 Toss-X 개발자들의 술자리에 잠시 얼굴을 비추면서였다.

당일 술자리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데, 3자 입장에서 느낀 것은 업무 스타일에 따라 업무 진행에서 오는 스트레스의 원인과 강도가 조금씩 달랐다는 것과 다른 직군과의 대화가 직접적인 업무 진행 포인트 이외에 다양한 관점을 공유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업무 당위성을 검토하고 공유하는 몇몇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는듯 했지만, 현실적으로 그 장치들을 활용하기 쉽지 않아보였다. 아울러 다른 직군도 개발자들 만큼이나 업무가 많을텐데 그들은 어떤 생각과 감정으로 일을 진행하는지도 궁금해하고 있었다. 결론은 무엇을 고치기 보다는 우선 터놓고 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던 나는 그 중 가장 능숙하게 스트레스를 관리하던 개발자에게 회고를 해보는 것이 어떤지 제안해 보았다. 이때까지 내가 회고를 진행할 생각은 없었다. Toss-X의 회고이므로 당연히 팀내에서 회고가 진행되어야 하고 나는 준비 과정에서 조언 정도를 해 줄 생각이었다. 그렇게 팀에 회고를 제안해 보기로 하면서 집에 있는 “애자일 회고”라는 책을 빌려주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책을 찾아내어 주말 동안 꼼꼼히 읽어보기 시작했다. 잘난척하며 옆에서 도와줄터이니 회고를 해보라고 권하고서 책을 처음 읽어본 사람보다도 회고를 모른다면 창피한 일이기 때문이다. 책을 두어 번 읽어본 후 이번 회고는 제 3자의 진행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우여곡절을 거쳐 최종적으로 회고 장소와 시간이 정해졌다.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8시간이 필요했지만, 주어진 시간은 4시간이었다.


아마 회고를 위해 3 working days를 사용한 것 같다. 2.5일은 회고 설계 및 준비를 하고 0.5일은 회고를 진행하는데 사용했다. 그 사이 Toss-X의 회고는 어느새 회사 내부의 여기 저기에서 관심사가 되고 있었다. 회고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와 우려, 애자일에 대한 의심과 회의, 그리고 많은 격려들 … 회고를 마친 후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은 서버 개발자인 내가 3일 동안 노트북에는 구글 독스만 띄워놓은 채 회고 책을 부여잡고 씨름하는 동안 그 누구도 나를 터치하거나 개발자 본연의 업무에 대해 무언의 압박을 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CTO님은 회고가 Toss-X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며 잘 부탁한다는 말까지 해주었다. 다른 회사였다면 나는 어떤 반응들 속에서 회고를 준비하고 있었을까라는 비교를 하게 되었다.


이번 회고는 아래와 같이 설계했다.

활동:
A. 사전 준비하기
1. Check-in
2. 집중할 것 /집중하지 말 것
B. 자료모으기
1. 시간축
2. 점 스티커로 색 표시하기
C. 통찰 이끌어내기
1. 패턴과 변화
2. 점 투표로 우선순위 매기기
D. 무엇을 할 지 결정하기
1. 회고계획게임
2. 점 투표로 우선순위 매기기
E. 회고 끝내기
1. 감사 표현하기
2. Check-out
3. 회고의 회고

그러나 회고의 진행 내용에 대해서는 사전에 Toss-X팀과 공유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문제에 대한 해답이 뻔했기 때문이다. Toss-X팀은 업무의 종류가 많았고 업무를 효율적으로 조정해야 했다. 그러나 하나같이 중요한 서비스들이라서 업무 우선 순위 조정이 잘 안되고 있었다. 굳이 회고를 해야만 찾을 수 있는 답은 아니었다. 회고의 회고에서 결론이 뻔했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당연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회고의 진행이 뻔한 답을 말하기 위해 빠르게 진행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무엇을 목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몰라야 우왕좌왕하는 틈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궁금할 것이다. 뻔한 답이 있다면 왜 굳이 이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회고를 했을까?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대기업은 왜 위계가 강하고 상명하복이 철저히 이루어지는지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그 이유 중 하나는 구성원이 결정권자에게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의식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옳은 말과 당연한 말을 하고 회사를 위한 충언을 해도 결정권자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면 그 무엇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능동적이던 구성원들은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생각을 갖게되면 입을 다물어 버린다. 조직을 이동해도 그런 경험을 여러번 갖게 되면, 대화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만 하는 것이 습관으로 굳어버린다. 아무리 뻔하고 당연한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자리라도 절대로 입을 열지 않는다. 어서 빨리 결정권자가 지시를 내리고 자리가 끝나기만을 바라게 된다.

내가 Toss-X에게서 우려한 것은 이 지점이었다. 술자리에서 나는 Toss-X가 대화를 통해 서로 이해할 여지가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서둘러야 했다. 누군가는 어쩌면 곧 말해도 소용없다는 결론을 내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대화에 참여하지 않을수도 있다. 어쩌면 술자리에 없는 사람들 중 이미 그런 사람이 생겼을 수도 있다. 이런 걱정들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업무를 효율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결론이 아니고, 구성원들과 나는 합리적으로 대화할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대화를 포기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물론, 이 기회에 진짜로 상대와 대화가 안통한다고 확신하게 될 수도 있다(나는 경험해 보았다 ㅎㅎㅎ). 그건 누군가가 토스의 문화와 맞지 않거나 토스가 자신의 문화를 속이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회고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앞서 말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도구가 “시간축”“패턴과 변화”였다. 지난 한달간 일어났던 객관적인 사건들을 6가지 감정 분류 중 하나와 함께 표시하고, 구성원들은 다시 그 사건에 대한 감정이 긍정적이었는지 부정적이었는지를 표현하게 했다. 사건들은 X축을 시간으로 하고 Y축을 직군으로 구분하여 붙여졌다. 시간축이 완성 된 후 패턴을 찾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매우 많은 대화가 이루어졌다고 생각된다. 진행자라서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주위를 배회하며 조각조각 주어 듣기로는 정말 그 동안 대화가 부족했음을 느꼈다. 회고의 회고에서 나온 의견 중 가장 많은 의견 중 하나도 이런 대화의 시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고민하며 시간축을 만드는 Toss-X (꽃미남들이라 꽃 스티커~ 잇힝)
시간축을 분석하며 의견을 나누는 Toss-X (사람이 많아 꽃스티커 붙이기 포기)
회고계획게임 중 인 Toss-X
회고계획게임의 결과물 (혹시 기밀인가 해서 블러 처리)

회고를 하기 전에도 내부에서 Toss-X는 토스 본연의 문화에서 약간 비껴 서있다는 우려를 내는 목소리들이 있었다. 이는 아마 스피드를 중시한 실행력 위주의 돌격형 팀에 사업 팽창으로 새로운 사람들이 급격히 합류하면서 토스의 문화를 충분히 체득하기도 전에 다수의 업무를 성과 중심으로 수행했기 때문에 보인 특성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회고를 통해 다시 토스의 문화에 녹아드는 팀으로 복귀하기를 기대한다.

끝으로 회고 끝내기에 대해 적으면서 좀 깔대기를 대려고 했는데, 진행에 사용했던 종이를 들추어보니 좋은 피드백은 하나도 안적고 고쳐야 할점만 가득 적어서 객관적으로 자랑할게 잘 생각이 안난다. 암튼, 결론적으로는 대부분 좋았다고 하더라. 믿거나 말거나 …


사족을 붙이자면, 애자일을 관리자를 위한 도구로 활용하는 조직에서 경험한 탓으로 애자일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만큼 애자일이 보편화 되었다는 뜻일수도 있고, 애자일이 제대로 녹아들지 못하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개인적인 공부와 경험과 고민으로 애자일을 정의하자면, “애자일은 소통을 위한 끝없는 노력.”이라고 하고 싶다. 비유를 하자면 우리에게는 우리의 고유한 말이 있었고, 그것을 글로 표현할 수 있도록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으로 정리하셨다. 그것이 지금의 한글이 되었고, 표준어는 시대에 맞춰 계속 변화하고 있다. 애자일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을 통해 효과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려고 노력해 왔고, 어느 순간 애자일이라는 이름으로 정의되어 대표적인 방법론들이 전파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수 많은 방법론들이 변형되고 만들어지고 있다. “애자일 회고”에 나오는 방법들 역시도 단순한 가이드일 뿐이며, 인터넷에 찾아보면 책에는 없는 수많은 회고 도구들이 공유되고 있다. 즉, 애자일은 수평하게 소통하면서 효과적으로 협업하기 위한 자세이며, 애자일 방법론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시작점일 뿐이다. 대표적인 애자일 방법론들이 어느 조직에나 누구에게나 맞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애자일이 틀렸다고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단지 그 도구들이 맞지 않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더 잘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고 새로운 시도를 한다면, 여전히 애자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