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여행기 — 2. 백제 문화 단지 1부 어전

낙화암을 내려와 막국수와 수육으로 점심을 맛있게 먹고, 발걸음을 옮긴 곳은 백제문화단지이다. 단지? 어떻길래 단지일까? 일단 가봤다.

짧은 안내문부터 읽어보고.

“나 잘했지요!!” 라고 합니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자.

입구부터 경복궁, 창덕궁등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뭐랄까 스케일이 크다.

운좋게 설명해주시는 선생님을 만나 귀 쫑긋하며 따라 다니게 됐다. Lucky~

입구부터 처마밑을 가리키며 왕을 상징하는 두가지 건축양식을 설명해 주신다.

첫번째는 “치미”

지붕위 양쪽 끝을 장식하는 건축 양식. 삼국 모두 갖고 있지만 그 모양은 모두 다르다. 높이는 1m 75cm나 되는 생각보다 큰 크기다. 왕의 어전, 침소등 왕이 머무르는 곳에는 치미가 있다.

<치미>

지붕위 얹어 놓은게 뭐 대수일까? 손으로 빚은 기와를 저런 모양으로 만들어 맞춘다고 생각해보라. 주름과 곡선을 표현한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말만 나온다.

두번째는 “하안"

이제는 처마 밑. 삐죽 튀어나온 나무를 가리키며 “하안”이라고 한다.

하안은 백제의 고유한 건축 기술이다. 하안이 하는 역할은 지붕의 무게를 분산시켜 처마를 길게 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하안이 없는 건물과 비교해 보면 처마의 길이가 1.3~1.5배정도 길다.

그럼 왕이 있는 건물에는 처마를 왜 길게 빼야 했을까? 척보면 지나치기 쉽고 별로 티도 안나는데. 왜일까? 답은 비(Rain).

비가 내릴때 처마가 짧으면 비가 처마밑으로 들이쳐 왕의 거동이 불편할터이다. 하지만 하안을 통해 처마를 길게하여 비가 오더라도 왕의 거동에 불편함이 없도록 한 것이다. 와! 정말 대단하다.

내가 건축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지만 이 사실 하나만으로 백제 건축가들이 얼마나 뛰어난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재밌는 사실. 하안을 예외적으로 사용하는 곳이 있다.

그곳은 절. 부처님을 모신 곳은 하안을 사용했다.

왕=부처

불교 국가이다보니 당연할 수도 있다.

치미와 하안을 보고 앞을 보니 웅장한 어전이 세워져 있었다.

어전

뭐 딱히 특별한 것도 없는데……

잘보면 정면으로 길, 계단, 문이 세갈래로 나뉘어 있다. 그리고 가운데 길의 바닥은 문양이 세겨져 있다. 눈치가 빠른 분들도 계시겠지만 가운데는 왕의 길. 왕만 걸어갈 수 있는 길이다. 왕이된 기분으로 가운데 길로 들어갔다.

재밌는건 바닥 무늬는 실내 어전까지 이어져 있었다. 이런 세심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ㅎ

바닥 무늬는 용이 새겨져 있다. 다음 이야기를 위해 용의 발톱 개수를 유심히 보시라.

왕의 어전 — 닷집

어전의 뒤에는 봉황이 있고 특이하게도 지붕이 있다. 이를 닷집이라고 한다.

닷집을 만드는 이유는 하늘의 기운을 건물의 지붕이 받아 닷집 지붕으로 모아 왕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란다. 명상을 위해 피라미드를 이용하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생각된다.

<자료출처 : http://www.hiramid.co.kr>
왕의 의복

조선 왕의 용포와 다르게 굉장히 화려하다. 자수 무늬가 엄청 많고, 무늬 하나하나에 의미가 다 있다.

양팔과 가슴에는 용이 있다. 왕은 용이다. 이건 상식이니까. 문제는 발톱. 어전 바닥 무늬에서 이야기한 용의 발톱 개수가 3개, 용포에는 3~4개.

용 발톱의 개수는 권력의 세기를 상징한다. 쎈 왕은 4개, 약한 왕은 3개. 그럼 왜 4개이고 강하고 약한건 그 기준이 뭘까? 답은 용의 발톱 5개는 중국의 황제만 할 수 있었다. 외교적으로 (중국보다) 약소국인 백제는 4개를 사용했던 것이다.

<팔에 새겨있는 용>

이제 양쪽 어깨로 가자. 흰색과 노란색 동그라미를 보다.

흰색은 달을, 노란색은 태양을 의미한다. 노란색에 있는 까만 새는 삼족오다. 삼족오는 태양에서 살다가 나라에 좋거나 나쁜 일이 일어날때 나타난다고 믿었다.

삼족오는 원래 부여(고구려 이전의 만주지역 부여를 말함.)의 상징이었다. 부여의 혈통임을 강조한 백제는 성왕이 사비로 도읍을 천거한 뒤에 국호를 남부여로 바꾸기도 했다.

어전을 나와 우리가 마주친건 종이대신 대나무로 엮은 백제본기

백제본기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이니 나무에 글을 써서 기록했다.

<대나무를 엮어서 기록했다.>

이렇게 기록하고 재사용을 못했으면 대나무가 남아나질 않았을 것이다. 재사용할때는 지금처럼 세제가 없었을테니 지우지는 못했고 표면을 깎아서 글씨를 지우고 재사용했다고 한다. 쓰지 못할 정도로 얇아지면 화장실 뒤처리용으로 사용했다는데.어떻게 닦았을지 상상이 안간다.

배흘림기둥

옆을 보니 기둥들이 주욱 나열해 있다. 그런데 배불뚝이 아저씨처럼 가운데가 불룩하다. 이것이 바로 배흘림기둥이다. 하중을 더 잘 견디는 것도 아니고 별로 멋지지도 않다. 선생님의 말씀이 착시현상을 이용해서 멀리서 바라보면 배흘림기둥이 곧게 보인다는 것이다. 곧은 기둥은 멀리서 보면 오목하게 보여 불안정해 보인다. 건축가들이 안정감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볼 수 있다.

배흘림기둥을 지나 밖으로 나가니 벽에 금박을 입힌 양각 벽화(?)가 있다.

사비성 천도한 광경을 새겨넣은 벽화.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하는 행렬을 새겨넣은 벽화가 있다.

<소가 끄는 마차에 타고 있는 왕과 왕비>

행렬의 끝에는 소가 끄는 마차가 있다. 그곳에는 왕과 왕비가 타고 있다.

말이 아니라 소가 끄는 것이 이례적이다. 말은 작은 자극에도 놀라서 소를 이용해서 끌게했고, 사비로 옮기며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소가 마차를 끌고 있다.

이렇게 해서 사비궁의 안내를 마치고 능산리 고분군에 있었던 능사를 재현한 곳으로 옮기자.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