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미끄럼틀 위에서

아이는 미끄럼 타는 일이 좋았다.

차오르는 한 숨 한 숨을 눌러가며 계단을 딛고 서면
신난 웃음 마냥 활짝 펼쳐지는 놀이터가 다 제 세상 같았다
시소와 모래성과 구름사다리까지…
그 모험은 실로 흥미진진해서 열 밤을 더 자도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제 또래의 모험가들도 올망 졸망 저마다의 도전에 빠져들어 있었다.

대단한 결심을 했어도 미끄럼 타는 일은 여전히 긴장되는 도전이다.
한 줌 두 줌 모은 용기를 사알작 발가락으로 움켜쥐고서
실룩, 운동화 코에다 힘을 주면 쉬-익!
찔끔하는 짜릿함과 어느새 두 발이 땅에 닿는다
아쉬운걸까, 아이는 뛰어가 다시 계단을 오른다.

실룩, 쉬-익!
그렇게 스물 두 번을 탔다.

계단은 낮아져서,
올라선 두 눈은 놀이터 너머에 닿아 있다
내려가는 일도 이제는 순식간일 터이다.그런데

덜컥!

겁이난다 발을뗄수가없다 발이붙었다.
내딛는 한 발이 닿는 찰나에 놀이터는 수 만 번이 접히고 접히려 든다
놀이터는 그 발을 내딛고 자신을 주머니에 꼬깃, 접어 넣으라 한다
한 줌 두 줌 용기를 쌓아 발 끝에 눌러 담지만 앞에 버티고 선 그건 마치,

흥미진진한 모험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겨야 하는 두려움.

실룩, 실룩…
어느 날 미끄럼틀 위에서, 아이는 그렇게 갈피를 꽂고 섰다.

2008.11.17

Like what you read? Give Aithen Kang a round of applause.

From a quick cheer to a standing ovation, clap to show how much you enjoyed this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