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프리시리즈A를 클로징한 스타트업을 떠나며

Goobong Jeong
6 min readApr 2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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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째 멤버이자, PO로 입사했습니다. 채용한 인원 중에는 첫 팀장이었습니다. 그리고 2년 후 프리 시리즈A 라운드를 클로징하며 회사를 나왔습니다.

평생 간직할 프로필을 그려준 메이아이

넷플릭스의 부검 메일을 참조하여 회사에 남긴 문서를 포스팅합니다.

1. 왜 떠나는지

1–1. 저를 더 잘 알게 됐습니다 #1: 취향, 멋지다고 생각하는 도메인에서 일하고 싶다

메이아이에서 고군분투하며 시장을 찾았는데, 타겟 시장은 대기업이었습니다. 이 시장은 돈을 많이 주는 혜자 시장입니다. 하지만 그 돈을 받기 위해서는 특유의 비효율적인 의사결정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런 모습이 전혀 멋져보이지 않았고 복잡한 프로세스에 지쳐버렸습니다. 제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도메인에서 일하고 싶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1–2. 저를 더 잘 알게 됐습니다 #2: 욕망, 전혀 쿨하지 않다

저는 창업자로 처음 커리어를 시작했는데요. 메이아이에서 직원으로 일한 지 2년 정도 지나니까 “사람들이 나를 무엇으로 부르는가”에 대해 전혀 쿨하지 않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평가하기에 더 fancy 해보이는 co-founder, 극초기멤버 레벨로 일하기로 했습니다.

1–3. 사람이 어떻게 변하니 #1: 문화, 내가 메이아이의 조직문화에 맞지 않는구나

제가 생각하는 조직문화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조직이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면서 자연스레 알게된 성공 방정식”. 메이아이에는 많은 조직문화가 있지만 “밤늦게까지 같이 일하며 어떻게든 문제를 풀어내는 열정, 그 과정에서 피어나는 동료애”가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똑똑한 주니어가 많이 모여있는 집단이라 특히 그렇습니다. 저도 처음 메이아이에 왔을 때에는 밤늦게까지 어울리며 일을 하기 좋아했습니다. 아침 8시에 와서 밤 10시 넘어서 퇴근하는 일이 많았어요. 하지만 제가 “가정”을 꾸리니까 저녁을 집에서 와이프와 같이 보내지 않으면 제 인생이 불행해질 거라고 느낌이 왔습니다. 작년부터 일찍 퇴근하는 일이 기본값이 되면서 “내가 메이아이의 조직문화에 맞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1–4. 사람이 어떻게 변하니 #2: 동기, 이 비즈니스에 공감하지 못했다

제가 메이아이에 들어온 동기는 준혁님(대표님)입니다. 준혁님의 리더십이 멋져보여서 가까이 가서 검증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6개월만에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그저 빛. 하지만 그 다음에는 사업의 비전에 공감해야 했는데요. 저는 끝내 이 비즈니스에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이건 “어떤 미래가 올 것이냐” 라는 믿음의 영역이라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고요. 준혁님이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이야기 나누었지만 다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메이아이의 감사한 금손들

2. 회사에서 배운 것

회사의 성장과 개인의 성장은 비례하지 않기 때문에 메타 인지가 필요하다.

메이아이는 분명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작년 4분기 ~ 올해 1분기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회사의 성장은 갑자기 빨라져서 개인의 성장이 따라가기 힘들었습니다. 회사에 요구되는 세일즈를 가장 잘하도록 성장할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개인적으로는 다른 것을 원했기 때문에 떠나는 게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런 생각은 저 뿐만이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회사의 성장과 무관하게 스스로 성장을 챙기지 않으면 이후에 본인의 자리는 더이상 없을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다음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했습니다. “회사에서 부여하는 책임과 권한이 내가 생각하는 역할과 핏한가?”. 이 질문에 “핏하다”라고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한 번 쯤 개인의 성장이 느린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 각자가 메타 인지를 할 수 있게 회사 차원에서도, 동료끼리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회사는 개인에게 부여한 책임과 권한을 명확하게 만들어서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내게 부여된 정성적인 문자(역할, 태스크)과 정량적인 숫자(연봉, 스톡옵션)를 종합하면 회사가 나에게 기대하는 바를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내가 기대하는 바를 비교해보면 되겠죠. 부수적으로 개인은 ROI 를 계산하는 도구로도 사용할 수 있을거고요.
  • 이런 맥락이 생기면 동료의 책임과 권한도 어렴풋이 보일 것입니다. 동료로서는 피드백하려고 노력하고, 회사는 피드백을 잘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채찍질하고, 옆에서 채찍질하고, 회사가 채찍질해서 회사의 성장을 개인들이 최대한 따라가야 건강한 조직이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 회사에 아쉬운 것: 메이아이가 이랬다면 떠나지 않았을 것 같다

전체적인 글을 쓰며 참조한 이동욱님의 말을 빌려 마무리하겠습니다.

회사에 아쉬운 점은 많습니다. 다만, “그 아쉬운 점을 회사에서 채워주면 퇴사하지 않았을 것이냐” 라고 한다면 그건 아닙니다. 회사에 대한 불만으로 떠나는게 아니라서 회사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메이아이가 이렇게 했으면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는 아쉬운 점은 없습니다.

취향은 조직이 도와줄 수 없습니다. 때문에 메이아이의 많은 분들과 이야기하면서 아쉬웠지만 서로를 응원하기로 했습니다. 메이아이의 믿음이 이뤄진다면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고, 나중에라도 다른 기회로 같이 일할 수 있는 날이 기다려집니다.

4. 앞으로의 계획

다음 조직에는 메이아이를 떠나는 이유가 꽤나 잘 반영돼있습니다. 이번에 배운 점들도 적용해서 잘 헤쳐나가려고 합니다. 스타트업이 고객이고, 제 욕망에 대해 많이 배려해주셨고, 이미 결혼한 사람도 있는 조직이고, 스스로도 비즈니스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메이아이에서 배려해주셔서 생각을 비우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는데요. 다음 주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문제를 정의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쓰려고 합니다. 문제를 잘 정의하기 위해 관련된 분들과 약속을 잡고 있어서, 앞으로의 한 달이 기다려지네요!

새로운 회사의 기본 가정이 긱 이코노미라, 리모트로 근무하는데요. 집에만 있으면 답답해서 위워크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일합니다. 안정을 찾으면 가끔 놀러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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