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tred Society

흑인,여자, LGBT, 젊은 세대. 우리는 왜 미움 받고 있을까.

Untitled (Children of the Revolution), Marcel Dzama

흑인 그리고 여자

2015년 6월 17일, 미국 찰스턴의 흑인 교회에서 총격 사건이 일어났다.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상원의원 린지 그러햄은 피의자 딜런 루프에 대해 “정신 나간 요즘 아이들 중 한 명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조사 당국과 흑인 사회의 시선은 다르다. 그들은 이것을 혐오 범죄라고 생각한다(실제로 딜런 루프는 희생자들에게 총을 쏘기 전 “너희는 백인 여성들을 강간하고 우리 나라를 탈환하려 한다”라고 말했다). 제러니 콥은 뉴요커 매거진에 이렇게 적었다. “루프가 홀로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이 사건은 단독 범행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는 다른 어떤 것과도 연고가 없는 미치광이 외톨이로 낙인 찍힌 후 잊혀질 것이다.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그는 혼자서 행동했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한국의 여성혐오에서 드러나는 폭력은 두말 할 것도 없다. 여성혐오는 그 동안 우리의 일상에 너무나 깊이 스며들어 있어 다들 알아채지도 못할 정도로 익숙해져 있었는데, 미국에서 한창 페미니즘이 대두되어 그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인지, 유독 2015년에는 온라인을 거점으로 여러가지 논란이 생기고 있다. 김태훈, 장동민, 메르스갤, 한윤형 데이트 폭력까지, 일일히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여태까지 이런 일들을 조용히 넘어가며 살아왔다는 것이 어이가 없을 정도다. 그런데 또 사실 생각해 보면 3일에 한 명의 여자가 남편, 전남편, 애인, 전애인에게 살해당하거나 살해 시도를 당하는 나라가 한국인데, 이 나라에서는 남자가 방송에서 공공연하게 여자 비하 발언을 하거나 짜증날 때 여자친구를 패는 정도의 일이야 비일비재 한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흑인들에 대한 딜런 루프의 피해의식과 여성들에 대한 일부 한국 남성들의 태도는 비슷한 점이 있다. “너희가 잘못했다. 너희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사회적 약자들은 분풀이 대상이 된다. ‘흑인이기 때문에’ 총에 맞고, ‘여자이기 때문에’ 뺨을 맞거나 살해 당하는 21세기. 인류는 조금도 진화하지 못했다.


교회, LGBT 그리고 젊은이들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는 혐오 발언과 혐오 범죄 이야기에 정신은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오늘 교회에서 들은 설교는 이런 나의 지쳐버린 마음을 완전히 짓밟는 것이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죄는 죄다.”라는 목사님의 이야기는, 직접적인 대상을 이야기 하진 않았지만 분명히 동성애에 관한 것이었고 다음 주에 있을 LGBT 퍼레이드를 겨냥한 것이었다. 그리고 뒤를 이은 이야기는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듣고 있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호국보훈의 달 이야기를 꺼내며, ‘공산당 괴뢰군의 손에서 기도로 이 나라를 건져낸’ 세대들에게 감사하고, 그들 덕분에 지금 ‘북한을 제외하고 공산당 정권이 세상에서 물러났으며’, 우리 또한 지금 혼란에 빠진 이 나라를 위해 ‘구국의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왜 궤변인지 일일히 적자면 오늘 하루 종일 다 써도 모자랄 것이다. 간단하게 두 가지로 나눠 먼저 첫 번째, LGBT 에 대한 태도의 모순이다. 한국의 많은 크리스천들은 힐송 밴드의 가스펠 앨범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곤 한다. 하지만 뉴욕 힐송 처치의 칼 렌츠 목사와 그의 부인 로라 렌츠가 “우리는 교회에서 그 누구에게도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할지 말하지 않는다. 그건 그들(성소수자)의 삶의 여행일 뿐”이라고 한 것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혹은 그들을 세상과 타협한 마케팅적 교회라 비난한다. 하지만 한국 교회라고 해서 그런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한국 교회는 정치적 세력-특히 이명박, 새누리당 등의 기득권 옹호 세력-과 굉장히 직접적으로 타협하고 서로의 힘을 등에 업고 있지 않은가. 대선이나 총선 때마다 다른 이들에게 투표의 방향을 노골적으로 강요하던 교역자들과 신도들, 그들에게 ‘마케팅적 교회’를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두 번째는 공산당 레퍼토리다. 목사님이 진짜로 공산당과 독재정권을 완전히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해서 저렇게 이야기 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실제로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문제가 있다). 이 레퍼토리는 기성 세대가 젊은 세대를 비난하거나 교육하려 들 때 너무나 자주 써먹은 주제라 이제는 지겨울 정도다. 대학에서 교양 과목으로 헤겔과 막스를 읽는데, 아직도 북한이 세습 독재정권 때문이 아니라 ‘공산당’이라서 망했다고 가르치다니 이건 너무 젊은 세대를 바보 취급하는 것 아닌가.

서초구와 강남구에 거주하며 박정희 시절 ‘중앙집권적인 강력한 권력’에 향수를 가진 장로와 권사들, 그들이 지금 내가 다니는 교회의 주체다. 그들에게는 남녀의 결합 외에 다른 연애나 결혼의 형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며 ‘공산당’은 가장 포악하고 잔인한 집단이고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나 세상에 물들어 버려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줄 모르는 이들이다. 대예배의 설교는 그들을 위한 설교다.

결국 오늘 내가 들은 설교는 LGBT에 대한, 그리고 젊은 세대에 대한 혐오였다. 동성애자들이 잘못했고 젊은이들이 잘못한 거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낫기 때문에 온갖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부모 세대의 성공을 보라! 그들은 폐허에서 이런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일궈내지 않았는가!

하지만 정말 그런가? 나는 이 세상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 나의 평생을 통틀어 가장 좋은 것을 알려준 이는 부모님도, 스승도, 친구도 아닌 예수 그리스도였다. 이성적, 감성적으로 가장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감명을 준 책은 성경이었다. 그리고 나는 나만큼 예수를 사랑하는 LGBT 친구들을 몇 명 알고 있다. 그들의 신앙심은 때로 너무나 깊고 진실해서 나에게 귀감이 된다. 그런데 나는 이성애자라서 천국에 갈 것이고, 그들은 동성애자라서 지옥에 가게 될까? 정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구절에서 ‘네 이웃’은 사실은 ‘이성애자 이웃’이었던 건가? 살인자도 창녀도 정죄하지 않고 받아들여주신 예수님이 동성애자는 싫어하신다고? 그리고 당신들은 누가 천국에 가고 누가 지옥에 갈지 벌써 알고 있단 말이야? 정말?


가장 도드라지는 혐오의 증후는 폭력이다. 폭력은 물과 같아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를 뿐, 절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르지 않는다. 광의에서의 혐오는 상호 간에 가능할지 몰라도 폭력으로 표현되는 혐오는 수직적 계층 구조의 상층에서 하층으로만 가능하다. 혁명이나 반란은 그 계층 구조 자체가 흔들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혁명이 성공할 경우 상하위의 주체가 뒤바뀐다. 또한 폭력은 인간의 가장 원시적 의사 전달 방법이기도 하다. 자신과 타인, 세계에 대해 계속해서 학습하고 사유하며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언어를 정제하는 일련의 과정을 ‘문명화’라 했을 때, 폭력은 아직 충분히 문명화 되지 않은 인간들의 언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백인들의 나라라고 믿던 이들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보며 무엇을 느꼈을까? 조신함이 여성의 미덕이라 믿던 한국 남성들은 참지 않고 불합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한국 여성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자신들이 힘겹게 일궈놓은 세상을 향해 손가락질 하며 ‘잘못됐다’고 말하는 새로운 세대를 보며 기성 세대들은 어떤 감정을 느낄까? 당황스럽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때로는 두렵기까지 할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원래 존재하던 질서가 파괴되고 세상이 뒤집어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섣부른 이들은 세상의 질서를 파괴하는 이들을 혐오하기 시작하며 그것을 언어적으로, 물리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는 쓰레기 같은 언어가 홍수를 이루고 백색테러의 위협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혐오 사회에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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