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tress America

영화 <미스트리스 아메리카>를 보았다. 30살의 브룩과 20살-19살이었던가?-의 트레이시의 뉴욕 이야기다. 자기 확신이 없고 아직 모든 것이 어설픈 20살의 트레이시와 그녀가 우러러 보는, 모든 것에 자신감 넘치고 모든 것이 익숙하다는 듯이 행동하는 30살의 브룩이 등장한다. 나는 더 이상 트레이시와 비슷하진 않다는 것, 그리고 레스토랑 오픈이 난관에 부딪히면서 흔들리는 브룩의 모습이 지금의 나와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확신에 차서 자신이 되고싶은 모습을 그려 나가던, 때로는 허세를 부린다고 느껴질 정도로 자신만만하던 브룩은 자신이 원하던 것이 어그러지면서 스스로를 의심하고 불안해 한다. 서부에 가서도 브룩은 그런 패턴을 반복하게 될 것 같다. 확신에 차서 무언가를 시작(확신이 없으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으니까)했다가 그것이 생각한대로 잘 전개된다면 신이 나고 들떠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어떤 면에서는 과대평가)한다. 그러다 난관에 부딪치고 중요한 축이라 생각한 것 중 하나라도 좌절되면 자신을 의심하고 암담함에 빠진다. 그러다 다시 다른 희망을 찾아 나서는 그런 패턴.

나는 성장한다, 발전한다처럼 의미없는 단어는 없다고 생각해 왔다. 브룩은 트레이시보다 성장한 사람일까? 성장의 의미가 더 나아진다,라는 뜻이라면,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더 자주 자기 확신-의심의 패턴을 반복하게 된다는 뜻일까 아니면 그 텀이 더 길어진다는 뜻일까? 자기 의심을 점점 덜 하게 되는 것이 성장일까, 자기 확신을 덜 하게 되는 것이 성장일까?

<미스트리스 아메리카>에 대한 감상을 적어놓은 글들을 서핑하다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안일하고 우스운 글을 발견했다. 순수한 열망에 모든 것을 걸고 달려갈 수 있는 것, 좌절이나 갈등의 순간에도 눈물 한 방에 모든 것을 날려버릴 수 있는 것이 젊음의 특권 아니겠는가? 이런 소리를 마구 써놓았더랬다. 청춘, 젊음이랍시고 라벨링한 것이 막 아름답고 숭고한 불길인 것처럼, 더 나은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필연적인 수련의 과정인 것처럼 묘사하는 이야기는 이미 구태의연해 진 지도 한참 지난 것 같은데. 자신이 이야기하고 있는 주제 — 특히 주체가 사람인 이야기 — 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본 흔적 없이 겉에서 보여지는 모습에 흔한 미사여구들을 붙여 장식한 글들은 더 이상 내 흥미를 끌지 못한다. 그런 글을 보며 감동 받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미스트리스 아메리카>가 중요한 부분을 놓치지 않고 잘 담아낸 담백한 관찰 일기 같다면 저 글은 마치 알고 있는 단어 중 긍정적인 단어들 몇 개를 골라 끼워맞춰 만든 어설픈 독후감 같다.


Mistress Nowhere

작가 김연수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글을 쓴다고 한다. 하루키도 하루에 일정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에 글이 얼만큼 쓰이던 상관없이 일정량의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있는다고 한다. 작년에는 일주일에 한번 글을 쓰는 것도 힘들었는데 쓰다보니 습관이 붙어서 이제는 틈이 나는대로 메모를 하고 일주일에 적어도 한두번은 그 메모를 읽으며 문장을 만들어내는 시간을 가진다. 그러다 보니 나는 계속해서 내 이야기만 쓰는 것이 지겨워졌다. 김연수나 하루키처럼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되어볼까 했으나 그 쪽에는 재주가 없어서 써봤자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다.

남 이야기를 정정당당하게 쓰기 위해 1월부터 주변인 인터뷰 시리즈를 쓰기로 했다. 나한테 재밌는 것이 다른 사람들한테도 재밌을까 싶다. 아예 다른 언어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다른 도시에서 삶의 터전을 잡는 상상을 종종 한다. 서울에 너무 오래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딜 가도 누군가와 함께 갔던 곳이고 누군가를 만나도 예전에 본 사람들과 비슷하다. 권태로움에서 벗어날 때는 새로운 책을 읽을 때와 새로운 영화를 볼 때 뿐이다. 일상의 권태로움과는 반대로 오히려 내 사회적 상황과 심리 상태는 상당히 불안정하다. 조급한 마음 때문에 커피와 술을 번갈아가며 많이 마시고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나오는 꿈을 매일 꾼다. 항상 누군가를 만나서 마구 떠들어대는데 정작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타임스퀘어의 TKTS 계단 위에서 트레이시를 보고 과장되게 반가운 인사를 건넨 브룩이 남은 네다섯 개의 계단을 내려오며 어색하게 침묵하던 그 몇 초의 시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