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크 호건 동영상 재판은 유명인의 프라이버시와 언론 매체의 표현의 자유 사이의 충돌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사건입니다.

그 외에도 생각해 볼만한 주제가 또 있습니다. 이번 사건은 우리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과 사진, 동영상은 영원히 남아 사라지지 않는다는, 그래서 언제 어디서 칼날이 되어 돌아올지 모른다는 현대 디지털 세계의 원칙을 다시 한번 알려주는 계기가 됐습니다.

헐크 호건은 은밀한 사생활이 담긴 동영상이 외부에 유출되는 바람에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고커 미디어측에서도 이번 재판 과정을 겪으면서 외부에 사적인 대화가 드러나는 일이 생겼습니다.

헐크 호건 변호인은 문제의 동영상을 올릴 당시 고커 미디어 내부의 의사 결정 과정을 알기 위해 고커 미디어 직원들이 주고받은 이메일과 사내 그룹 채팅 대화 목록을 요구했습니다. 거기에서 드러난 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당시 고커 미디어는 ‘캠프파이어’라는 온라인 사내 협업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캠프파이어는 채팅 기능이 있어 직원들이 쉽게 업무 관련 내용을 서로 소통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회사라고 일 얘기만 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일 관련 대화와 사적인 대화가 함께 이뤄지고, 일 이야기를 할 때에도 농담 한두 마디씩 섞게 됩니다.

당시 채팅 대화록을 보면 고커 직원들은 헐크 호건의 레슬링 끝내기 기술인 ‘레그 드롭’(leg drop)을 빗대, 그의 동영상과 관련 ‘tender leg drop’이니 하는 성적인 함의가 담긴 농담을 주고 받습니다. 어떤 직원은 ‘헐크 호건 거시기에 두건을 쓰고 있다’는 드립도 날립니다. (헐크 호건은 항상 링에 두건을 쓰고 등장합니다.)

2012년 헐크 호건 동영상 게시 당시 고커 미디어 직원들의 채팅 대화록 http://fusion.net/story/278532/gawker-hulk-hogan-sex-tape-trial-chat-transcripts/

헐크 호건의 변호인은 이들 대화를 고커 미디어가 당사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이 사적 이익을 위해 동영상을 올렸다는 주장의 증거로 삼습니다.

고커 미디어 전현직 직원들은 이 농담들에 대해 배심원에게 설명해야 했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과거 채팅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이 녹화된 영상이 법정에서 상영됐습니다.

친구끼리, 직장 동료끼리 얼굴을 맞대고 대화할 때 우리는 종종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농담이나 발언을 하곤 합니다. 그 이야기들은 대부분 허공으로 사라져 버리죠.

그러다 채팅 프로그램이 나오고 스마트폰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점점 더 많은 대화를 메신저로 합니다. 대면해서 하는 대화보다 부담없고 여러 사람이 언제 어디서나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메신저와 채팅은 재미있습니다. 더구나 메신저는 사적인 느낌이 강한 서비스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채팅에 익숙해졌고, 얼굴 보면서 수다 떨듯이 얼마 후면 잊어버릴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메신저에 한없이 쏟아냅니다. 지금 독자 여러분의 카카오톡에 쉴 새 없이 울리는 알람 중 의미 있는 메시지가 몇 개나 될까요?

문제는 이렇게 마음껏 떠든 채팅 내용은 많은 경우 서비스 제공 기업 서버에 쌓여 있고, 언제든 검색 가능하고, 이번 사건처럼 재판이나 수사에 쓰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4년 전에 생각 없이 던진,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시시한 농담에 대해 해명해야 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세요. 더구나 친한 사람들끼리의 농담 섞인 대화라는 맥락이 벗겨진 채 글자만 남은 대화록은 본래의 의미와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됩니다. 헐크 호건의 변호사들은 채팅 대화록을 샅샅이 분석해서 내용을 완전히 파악하고 자신들의 논리로 재구성하고 재해석하는데, 정작 대화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그 대화를 했다는 것 자체도 기억이 안 납니다.

메신저는 점점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업무 공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해외에서는 요즘 슬랙 같은 협업 메신저가 선풍적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일간 사용자 수가 200만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캠프파이어도 일 사용자가 10만명에 이릅니다. 카카오톡이니 라인이니 하는 왠만한 메신저에서는 연간 수십억 건의 메시지가 오갑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업무용 메신저가 아직 큰 인기를 끌지는 못 하지만, 카카오톡을 업무에도 쓰는 경우가 많죠. 부장님이 자꾸 업무 외 시간에 카카오톡으로 일 얘기 해서 짜증나는 분들 많을 겁니다.

업무용 메신저는 대부분 대화를 저장하고 후에 검색으로 쉽게 찾을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래야 나중에도 정확한 지시 내용이나 업무 처리 과정에 대해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들어온 직원도 쉽게 업무를 따라갈 수 있고요.

편리하고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남은 기록은 후에 업무상 과실이나 비위에 대한 증거가 되어 본인을 옭아맬 수도 있습니다. 농담 한마디 잘못 했다가 기록이 남아 불이익을 당할 수 있습니다.

대처 방안은 있습니다. 사내 대화방에서는 문제의 소지가 될 발언이나 기록을 남기지 말고, 농담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비난도 극도로 자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면 재미가 없고, 협업 메신저 사용 자체가 줄어들겠죠. 커뮤니케이션을 쉽고 재미있게 해서 업무 효율을 높인다는 애초 취지가 무색해지는 겁니다.

카카오톡 같은 경우 지난해 사찰 논란을 세게 겪으면서 메시지를 서버에 저장하는 기간을 3일 이내로 대폭 줄였습니다. 메시지가 서버에 남아 나에게 부메랑이 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그렇다고 카카오톡을 업무용으로도 쓰려니 사생활과 회사 생활이 뒤엉켜 마음이 불편합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카카오톡에서 남긴 실언이나 웃기는 얘기, 싸가지 없는 얘기는 캡처 되어서 인터넷 유머 사이트를 떠돌아 다닙니다.

어느 대학 어느 과 단톡방에서 선배들이 군기 잡는 모습, 김치녀와 비매너남이 소개팅 후 카카오톡 대화로 싸우는 장면 등이 언제 어디서 캡처돼 공개될 지 모릅니다. 요즘은 아예 ‘카카오톡 채팅’이라는 유머 장르가 새로 생긴 듯 합니다.

카카오톡은 인생의 낭비다

우리는 대부분 모바일 채팅에서의 대화를 실제 대면 대화처럼 편하게 생각하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온라인에서의 대화는 어떻게든 남아, 대화의 맥락이 무시된 채 잘못 받아들여지거나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얘기하고 잊어버리곤 하기 때문에 온라인 대화는 잊혀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종종 망각합니다.

인터넷은 망각하지 않는다. 모바일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꼭 새겨두어야 할 생활 수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