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포스팅들을 보면서 짐작했듯이 나와 조신남의 관계는 뭔가 잘 안 맞기 시작했지만 나의 인내와 이해심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원래 인내심 짧기로 유명한 사람 아니던가. 곧 바닥이 났다. 이 과정에서 정신과 선생님의 비열한 뽐뿌질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선생님. 얘가 다 마음에 드는건 아니지만, 이정도면 참아야 하는거 아닐까요? 쟤도 노력하는데? 제가 사람을 너무 쳐내는거 아닐까요?”
“한선생님은 본인이 사람 쳐낸다는 것에 너무 꽂혀계신가봐요. 선생님이 모욕감을 느끼는 부분을 마비시키고 그런 질문을 하시네요. 모욕을 느끼는 부분이 살아있다면 어떻게 그런 사람과 같이 할 수 있겠어요.”
상담실을 나오면서 세상이 싫어졌다. 참고 얘를 계속 만나면 내가 모욕을 마비시키고 참는 사람, 참지 않고 그만보자고 하면 정신과 선생님의 꼭두각시… 나는 언제쯤 나로서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인가.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루에 한번은 메세지를 보내라는 내 요구에 하루에 두세번은 보내는 착하지만 개짜증나는(다른일도 있지만 너무 시시해서 안 적는 것임) 인간과 계속 볼것인가 말 것인가. 내 요구를 들어주는데도 낙제시키는... 아냐. 원래 상사들은 그러지… 됐어. 내가 착하고 괜찮고 일관성 있는 인간일 필요는 없어. 난 네가 나한테 더 잘할 줄 알고 좋아했던거야. 네가 나한테 잘 안하니까 내 기분이 안 좋잖아. 그럼 그냥 보지 마. 내 기분이 중요하지!
얘한테 카톡으로 그만 보자는 투로 말했더니, 만나서 이야기를 좀 하잔다. 그래서 만났는데 얘는 내가 더 많은걸 바라게 된게, 서로의 기대 수준이 안 맞기 시작한게, 서로를 알기 전에 성급하게 섹스를 해서라고 생각하는거다. 조신남이 열번 말했다.
“그날 너랑 섹스하는게 아니었는데.”
야이새끼야 듣기 싫으니까 그만말해. 내 성욕이 십년치는 죽는 것 같아. 조신남은 먹는게 아니구나. 뭐 대단한 섹스 했다고 이렇게 나를 원망하고 난리야. 그리고 난 섹스 안해도 원래 기준과 기대치가 높아. 우리가 더 잘 알았다고 이 상태가 나아질 일은 없었을거고, 애초에 그날 섹스 안했으면 내가 너랑 이런 대화 하고 있지도 않아. 섹스와 설거지 마사지 아니었으면 넌 이것보다 더 애저녁에 끝났어.
라고 말하려고 노력했는데 이자식이 내 영어를 못 알아듣는지 계속해서 그날 너랑 섹스하는게 아니었는데 백번 되풀이하는거다. 그래. 그렇게 뼈에 사무치게 후회되면 앞으로는 더 조신하게 살겠다고 결심해라. 나도 이제 조신남은 먹지 않겠다 다짐한다.세상에 나랑 자고 싶어 환장한 남자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 나도 몰라. 하지만 있겠지. 사막에 오아시스가 있듯이 세상에는 나랑 자고 싶어 환장한 남자가 있을거다
라고 생각했지만.
칼같이 일어나서 떠날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누구와 헤어져도 직접 만나서는 모질게 굴지는 못한 것 같다. 전화나 카톡으로 개싸가지 없이 헤어진적은 많았는데, 만나면 좀 착한척 해야 한다는 강박도 있던 것 같다. 얘가 내 말을 안 들어준건 없는데 내가 이래도 되나.
내가 원하는건 사실 같은 이야기잖아. 1. 하루에 한번은 문자 메세지를 보내줘 < 2. 내 생각을 많이 하는걸 표현해줘 < 3. 내 생각을 많이 해줘 < 4. 날 좋아해줘. 의 여러 단계가 있는데 1단계를 통과했지만 만족스럽지 않을때, 똑똑한 사람은 남을 1부터 4까지 행동하게 만드나. 아니면 똑똑한 사람은 4가 되는 남자를 처음부터 만나나. 잘 모르겠더라. 내가 지금 정신과 선생님의 꼭두각시가 되고 and/or 또 주제파악 못하고 나한테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는 착한 애를, 내 기대만큼 얘가 나를 안 좋아한다고 찬다는게 현명한 일인가. 그렇다면 얘랑 며칠 더 노는건 현명한 일인가 하는 여러 의문의 혼란속에 있었다. 얘가 벽을 30분에서 한시간 가까이 바라보다 자기가 좀 더 노력하겠다는 식으로 말해자 그래 얘가 이렇게 나랑 안 만나게 되는걸 싫어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말하니까, 모욕을 느낀 내 곤조는 회복된 것 같군 하며 타협하고 말았다.
어쨌든 남자한테 먼저 자자고 말한 버킷 리스트는 결과가 그렇게 좋진 않을 것 것 같아. 연하남이 ‘그때 너랑 섹스를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라고 천번 말하는데, 내가 무슨 대단한 오르가즘 누리겠다고 이런 원망을 듣고 앉아있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한번의 경험으로 일반화 하긴 무리겠지만, 나랑 자려고 환장한 남자들이랑 자는게 더 괜찮을지도 몰라. 그리고 걔네가 싫어지면, 그때 너랑 자는게 아니었는데. 라고 문자 메세지 100개 보내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