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zomi T
Nozomi T
Sep 3, 2018 · 2 min read

알 수 없는 분노와 절망감에 휩싸여 하릴없이 신촌을 걸었다. 편의점에서 최근 꽂혀있는 얼음컵 음료 하나랑 저번 주에 처음 먹어본 오징어다리랑 똑 닮은 과자 한 봉지, 그리고 다신 안 태우겠다 생각했던 담배 한 갑을 샀다.

물보라와 찬 바람을 온 몸에 맞으며 털래털래 걸었다. 어차피 서로를 채울 수 없어, 맞아, 애초부터 서로를 믿지 않았는걸, 아니, 서로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믿음을 주고 받고 싶어했는걸,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오늘은 정말 난간 위에서 내려야 해, 가던, 오던.

너울대는 의식의 물결을 묵직하게 쿡쿡 찍으며 걸으니 서서히 몸을 차갑게 하던 물보라도 찬 바람도 잊혀졌다. 십여 년을 오간 대문 앞에서 땀범벅이 되어 다시 한 번 곱씹었다. 아마도, 아마도. 내 생각이 맞다면. 아니라면. 폭풍이 부는 바다와 같은 의식 속에서 생각은 밀물과 썰물을 반복했고 결정은 세워지고 부서지는 모래성이었다.

검은 대문을 열고 새카만 길을 열 걸음 정도 걸으면 또 어두운 문이고, 그 문을 열어 흰 불빛 속으로 들어갔다. “아 깜짝이야!” 문이 닫히는 소리에 놀라 소리를 질렀다. 어릴 때 부터 생긴 습관이었다. 화가 나서 문을 쾅 닫아도 내가 그런 게 아닌 양. 그러지 않으면 또 어딘가에서 책이나 유리잔이 내 머리를 겨냥하니까.

그리고 모든 걸 잊었다. 책상 밑에 드러누운 오빠가 만드는 왱왱 드릴 소리와 함께 웃고 떠들고 욕하다보니. 저녁대신 먹은 과자와 레몬에이드, SNS의 시답잖은 웃음거리들에 모든 걸 잊었다. 사실은 심각하지 않았던 걸까. 아닐까. 그렇게 모래성은 썰물과 같이 쓸려나가고 바다는 다시 잔잔해졌다.

내일 아침이면 또 버스 한 구석, 왠만하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맨 뒷자리나 기사님 바로 뒷자리에 숨어 눈을 훔치겠지. 그리고 바다는 다시 울부짖겠지.

    Nozomi T

    Written by

    Nozomi T

    의식의 흐름에 올라타, 로켓말고.

    Welcome to a place where words matter. On Medium, smart voices and original ideas take center stage - with no ads in sight. Watch
    Follow all the topics you care about, and we’ll deliver the best stories for you to your homepage and inbox. Explore
    Get unlimited access to the best stories on Medium — and support writers while you’re at it. Just $5/month. Upgrade